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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15 20:58:03

기사(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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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수입3. 단급 제도
3.1. 이명
4. 전문교육기관5. 기사가 되는 법
5.1. 대한민국
5.1.1. 아마단 제도5.1.2. 연구생/입단5.1.3. 승단5.1.4. 2016년 승단 규칙
5.2. 일본
6. 기사 목록7. 기전 목록8. 기타9. 관련 문서

1. 개요

棋士/碁士

전문적으로 두는 바둑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말한다.[1] 다만 사전에서는 굳이 생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잘 두는 사람 역시 기사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다.꼭 바둑뿐만이 아니라 장기 등 전통적인 보드 게임을 전문적으로 두는 사람을 일컫는 단어다.

2. 수입

일반인들도 알 만큼 유명한 프로 기사의 경우 어마어마한 수입을 거두기도 한다. 보통 이 경우엔 국내외에서 열리는 대회(기전)에 출전하여 받는 상금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강연/지도대국/대회 심판(혹은 참관인)/바둑 도장 개설 등 다양한 활동으로 버는 기사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프로의 세계가 그렇듯 수입이 적어 빈곤한 프로 기사 역시 다수 존재한다. 특히 종목 자체가 인기가 없어, 큰 대회에서 우승을 쓸어담는 괴물급 기사를 제외하면 다른 메이저 스포츠의 상위권 선수가 받는 연봉에 비해 한참 적게 버는 수준.

전직 프로기사였던 김성룡의 썰에 의하면, 대략 평균적으로 연 5천만 원 정도 수입을 낸다고 추정한다. 프로기사가 순천바둑고등학교 교사로서 재직하면 연봉 연 4천만 원을 받는데, 바둑 고등학교 교사직이 모집 시마다 지원자가 없어 난항을 겪을 정도.

3. 단급 제도

원칙적으로 아마추어 바둑기사는 '급'의 단위를 사용하며 숫자가 낮을 수록 실력이 높다. 즉, 아마추어에서는 1급이 가장 실력자인 셈이다. 각 급별 차이는 '정선[2]'을 두어 둘 만한 실력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어떤 기사가 1급인 사람과 정선으로 승부하여 50% 정도의 승률을 낸다면, 이 기사의 실력은 2급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2점 접바둑을 둘 정도면 2급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n 점 접바둑을 두면 n 급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최하급은 딱히 정해진 것은 없는데, 보통 18급을 최하로 친다. 하지만, 프로에 근접한 1급이라면, 바둑 초보에게 25점 접바둑을 두어 박살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이 초보는 26급에 해당된다.

정식으로 프로기사가 되는 경우 '단'을 수여 받으며 입단시 初단으로 시작한다. 또한, 정해진 승단 규칙에 따라 九단 까지 오른다. 참고로, 프로기사의 단수는 한자로 표기하는게 일반적인데, 아래 설명하는 아마추어 단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서구권의 경우 初~九단표기를 로마숫자로 한다든가 하지는 않지만, 단수 오른쪽에 a(아마추어), 또는 p(프로)라는 알파벳을 따로 쓴다 (물론 헷갈릴 일 없는 프로바둑기사의 경우엔, 오른쪽 알파벳을 생략하기도 한다.). 초기의 한국기원에서는 급과 마찬가지로 단에도 실력 차이를 두어 아랫 단의 기사와 정선/접바둑으로 이길 정도가 되어야 승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바둑은 일단 프로기사가 되면 初단과 九단의 실력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무조건 호선이다.

아마추어 바둑기사가 늘어나고 1급으로 인정받는 기사들이 늘어남에 따라, 더 상위의 급수가 필요해졌고, 아마추어에서도 단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1급에 뛰어난 실력을 보일 경우 아마1단으로, 이 중에서 더 실력이 인정되면 아마2단으로 인정하는 식이다. 단 아마추어 단의 경우 프로와 구분하기 위해서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한다.

한국기원에서는 1964년에 기사제도를 만들면서 아마추어'단'과 프로'단'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3.1. 이명

각 단별로 이명이 있으며 단급 표기는 아마추어의 경우 아라비아 숫자, 프로 기사의 경우 한자로 표기함을 원칙으로 한다.
단수 명칭 의미
初단(초단) 수졸(守拙) 졸렬하나마 제 스스로는 지킬 줄 안다.
二단(2단) 약우(若愚) 일견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움직인다.
三단(3단) 투력(鬪力) 비로소 싸우는 힘을 갖춘다.
四단(4단) 소교(小巧) 간단한 기교를 부릴 줄 안다.
五단(5단) 용지(用智) 전투, 기교를 떠나 지혜를 쓸 줄 안다.
六단(6단) 통유(通幽) 바둑의 그윽한 경지에 이른다.
七단(7단) 구체(具體)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추어 완성에 이른다.
八단(8단) 좌조(坐照) 앉아서도 삼라만상의 변화를 훤히 내다볼 수 있다.
九단(9단) 입신(入神) 바둑에 관해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십단은 단위가 아니라 십단전이라는 타이틀 명이다. 그 외에 명인, 국수, 기왕 등의 많은 타이틀이 있으며, 타이틀을 획득한 사람에게 그 이름을 붙인다.

ex)강동윤 십단,[3] 조훈현 국수,[4] 서봉수 명인,[5] 이창호 기성[6], 유창혁 왕위[7] 등.

이런 명칭의 원조인 일본기원 쪽에는 5연패 이상 한 기사에게 '명예 XX(타이틀명)'이라는 칭호를 평생, 심지어 작고 이후에도 붙여준다. 혼인보 같은 경우는 제XX대 혼인보라는 경칭까지 붙고 이름도 바꿔버린다.

예) 후지사와 슈코 명예 기성(Kisei)(6연패), 가토 마사오 명예 왕좌(8연패), 고바야시 고이치 명예 기성(Kisei, Gosei)(Kisei 8연패, Gosei 6연패), 셰이민 명예 여류명인(9연패), 제22대 혼인보 혼인보 슈가쿠(9연패), 제25대 혼인보 혼인보 치쿤(10연패), 제26대 혼인보 혼인보 몬유(5연패) 등.

4. 전문교육기관

한국바둑고등학교가 있다. 2018년에는 바둑중학교가 개교할 예정이라고 한다.

5. 기사가 되는 법

5.1. 대한민국

대한민국 바둑계에서 기사는 승단보다 입단이 어렵다고들 한다. 한국엔 입단하지 못하고 아마추어로 남아있는 재야고수가 널리고 널리다 못해 발에 차일 지경이다. 사실 프로바둑에서 단수의 고저차는 갈수록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단수가 낮은 사람은 그냥 프로 입단하고 경력이 좀 덜쌓였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한 때 한국기원도 승단을 강요하고 또 그 승단을 위해서 많은 대국수를 요구하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이세돌 九단(당시 三단)이 대립하여 승단 대국을 하지 않아 三단을 유지한 채로 세계기전을 휩쓸고 다녔다. 결국 승단규칙을 개편하고, 이세돌은 국제대회 성적만으로 九단으로 승단한 일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그때부터 시작한 이세돌 九단과 한국기원의 갈등은 승단 문제 이외에도 여러 내용으로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게 상술된 승단 사건이나 09년의 휴직사건이다.

5.1.1. 아마단 제도

한국기원에서 공인하는 '아마단(아마추어 단)' 제도가 있다. 관련제도
아래와 같은 4가지 중 하나의 방법으로 아마단을 획득 할 수 있다.

기준은 프로기사에게 7점 접바둑을 이기거나 대등하게 경기하면, 아마1단을 인정한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기원에서는 최대 아마7단까지 인정한다. 아마7단이면 프로기사와 '정선'으로 대등하게 경기할 수 있는 수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5.1.2. 연구생/입단

한국의 바둑 연구생 제도는 1~10조부터 각조당 12명씩 총 120명이다. 1-5조를 1군 6-10조를 2군이라고 칭한다. (최근에는 연구생수가 적어 6조까지 조정되었습니다) 주말 한 달 내내 리그를 통해 상위 4명 승급 하위 4명 강단. 승강단체제로 상위성적 유지 및 연구생입단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연구생 10조에 들어가기 위해선 연구생선발전이라는 것을 거쳐야하는데 상위성적을 낸 학생들이 새로 들어간다. 미생의 세계(딴지일보) 그러나 앞 링크와 상반되게 이세돌 9단은 프로가 되기 쉬워졌다고 말한다.

이세돌 九단이 입단하던 시절과 지금의 입단 난이도를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쉽긴 하다. 이세돌 九단 시절에는 1년에 딱 한 번, 그것도 2명, 여자기사 1명 해서 1년에 3명만 입단하던 시스템이었고, 괴상한 승단시험도 있었으니까... 당시 입단 기준은 연구생 + 일반인 풀리그를 치러서 갑조/을조에서 전승자(승률 100%)만 입단(여류기사는 입단시험 우승자만)했다. 최소 조건이 무려 14연승(!). 전승자가 없다면? 아예 입단을 안 받았다(...).[8] 지금은 이리저리 입단대회도 많아지고 패자부활전 입단제도도 생기고 해서 남녀 합쳐서 1년에 12~15명이 입단한다. 이세돌, 박영훈, 조훈현 등 이전세대 입장에서는 문턱이 굉장히 낮아졌다고 느낄 법 하다.

다만 연구생 중에서 입단이 늦었던 사람들의 경우 좀 전성기가 빨리 와서 대회 본선에 바로 나가는 경우가 있는 편이다. 위태웅 初단의 경우 2016년 2월에 입단한 기사인데도 2016년 5월 국제대회인 신아오배 본선에 바로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입단한 지 3개월 된 신예가 중국랭킹 10위권인 구쯔하오 五단을 꺾고 본선에 진출한 거라 화제가 된 것.

연구생 단계에서 국제대회 본선에 일반조(아마조 말고)로 진출할 경우, 입단 누적포인트 100점 제도에 따라 한국기원에서 특별입단을 시킨다. 조인선 三단의 경우 2011년 삼성화재배 일반조 본선 진출(프로기사 3명을 꺾었다)로 연구생에서 특별입단이 허가되었다.

5.1.3. 승단

이전에는 한국기원에서 주관하는 승단대회에 참가해서 그 성적을 바탕으로 승단이 진행되었다. 한국기원의 경우 입단과 마찬가지로 승단 또한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였기에, 승단되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그래서 한중일 3국 중에서 九단의 수는 가장 적었지만, 단의 권위는 가장 높았었다. 하지만, 2003년 승단 규칙 개정 이후, 특별 승단으로 빠르게 九단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지며 옛말이 되었다.

한국 바둑의 최고 원로인 조남철의 경우 승단대회를 통해서 八단까지 올랐으나, 九단에 오르진 못하고 멈추어 있었다. 그 당시의 승단 규칙으로는 八단은 四~五단과 2점 접바둑을 두어서 이기는 수준이 되어야만 九단이 될 수 있을 만큼 승단이 어려웠다. 또한, 바둑 보급에 힘쓰는 등 승단대회에 열심히 참가하지 않았기에 八단에서 멈추어 있었다. 그 사이 조훈현이 꾸준히 승단대회에 참가하여 1982년 최초의 九단에 올랐다. 당시에 조남철을 특별 승단 형식으로라도 먼저 최초의 九단으로 올렸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행되지는 않았다.[9] 1983년에 김인이 두 번째로 九단에 오른 뒤에야, 조남철은 특별 승단으로 세 번째 九단이 되었다.

문제는 이 승단대회라는게 상금이 걸려 있는 게 아니고, 적은 액수의 대국료만 지급하였다. 기사들의 규율이 엄격하던 시절에는 무조건 이 승단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1989년 이창호 (당시 四단)은 그해 개최된 모든 기전뿐만 아니라 승단 대회까지 다 참여해야 했고, 1년간 111국이라는 어마어마한 혹사를 기록하며 논란이 되었다. 이 당시에도 승단대회 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이창호 본인의 성격상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 이창호의 스승인 조훈현은 그 험난한 승단전을 정석으로 뚫고 올라가 九단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논의는 흐지부지 끝났다. 이창호는 1996년 유창혁과 함께 九단으로 특별승단되며 승단전의 족쇄를 겨우 풀었다.

그러다가, 이 승단 제도를 대놓고 보이콧한 기사가 등장했는데, 바로 이세돌이다. 이세돌은 승단대회로 三단까지는 올랐다. 하지만, 이후 여러 핑계를 대가며 승단대회를 불참했고, 그러면서도 三단인 채로 국제기전에서 우승을 하는 등 활약을 하였다. 이런 덕분에 승단대회 무용론이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한국기원은 2003년부터 승단대회를 폐지하고 10개 기전을 선정하여 이 대회의 예선을 승단대회로 대신하는 것으로 변경한다. 또한, 규칙에 "세계대회 우승 시 +3단, 준우승 시 +1단, 국내대회 우승 시 +2단"이라는 내용을 추가한다.[10] 이세돌은 그 후 5개월 만에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제2회 KT배 준우승, 제16회 후지쯔배 우승을 거두며 九단이 되었다.

이 특별 승단 규칙에 의해서 후배 기사들이 비교적 쉽게 승단을 할 수 있게 되었고 九단에 오른 사람도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어린 나이에 九단에 오르는 일도 빈번해 졌는데, 박영훈은 19세, 박정환은 17세에 九단에 올랐다. 결국 한국기원도 九단 인플레가 발생하여, 2011년 기준 전체 프로기사 254명중 22%인 55명이 九단이다. 관련기사

2008년에는 여자 기사 최초로 박지은이 九단에 올랐다. 2010년에는 두번째로 조혜연이, 2018년에는 최정이 九단으로 승단하여 九단이 된 한국 여자 바둑기사는 3명이다. 중국에는 1988년 九단으로 승단한 루이나이웨이가 전세계 최초이며 중국의 유일한 여자 九단이다. 일본기원과 대만기원에는 여자 九단에 오른 기사가 아직 없다.

2011년에는 승단 규칙을 조금 더 변경해, 기전 서열에 관계없이 모든 기사가 참가하는 정규기전의 예선 첫판 결과로 승단 점수를 계산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승점제 기반으로 제도가 바뀜으로 인해서 승률이 낮더라도 오랜기간 활동하며 승수를 조금씩이라도 쌓아 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승단을 할 수는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차민수 씨 같은 경우도 바둑기전에 거의 참가를 안하지만, 틈틈히 참가하여 예선에서 승수를 쌓았기에, 2014년에 五단으로 승단하였다. 참고로 이분 입단이 1974년이다.

2016년에 전면적으로 승단규정을 갈아엎었다.

5.1.4. 2016년 승단 규칙

2016년 또다시 규정을 변경해서, 한국바둑리그 및 중국바둑리그를 포함한 모든 공식대국에서 승리 시 4점의 승점[11]을 부여하고, 각 단별로 주어진 기준 승점을 만족하면 승단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입단하여 初단이 된 후 九단이 될 때까지 필요한 승점은 총 1200점으로 공식대국에서 300승을 달성하면 된다.
구분 점수 4점 기준
初단 → 二단 80점 20승
二단 → 三단 80점 20승
三단 → 四단 120점 30승
四단 → 五단 140점 35승
五단 → 六단 160점 40승
六단 → 七단 180점 45승
七단 → 八단 200점 50승
八단 → 九단 240점 60승
합계 1,200점 300승

또한, 기존에 있든 특별 승단 규칙을 변경하여 세계대회 우승 시 즉시 九단으로 승단한다. 세계대회 준우승은 +2단이며, 국내대회는 우승 시 +2단, 준우승시 +1단이다. 제한기전은 우승 시 +1단이 적용된다.
구분 우승 준우승
세계대회 즉시 九단으로 승단 + 2단
국내대회 + 2단 + 1단
제한기전 + 1단 없음

이상의 내용은 한국기원 보도자료에서 발췌했다.

5.2. 일본

이와 정반대인게 일본 바둑 & 쇼기계로 『단』이라는 기준에 대해 굉장히 집착을 한다.

대표적으로 쇼기의 경우 1~3단까지는 일본쇼기협회 산하의 프로쇼기기사 양성기관인 장려회 회원으로 치며, 엄청나게 치열한 리그전을 치뤄 四단으로 승단해야만[12] 프로기사로 인정을 해준다. 바둑의 경우는 과거 20대는 명인 타이틀을 딸 수 없다는 말도 있었고, 80년대까지는 타이틀전 도전시에 단수에 의한 도전 제한제도도 남아있었다. 현재는 쇼기와 바둑 모두 굵직한 타이틀전에 아마추어나 여류기사들의 참여도 허용되는 추세일 만큼 재법 개방되긴 했는데, 그 규모가 매우 작아서 완전하다고 보긴 어려운 수준. 이게 일본바둑의 폐쇄성으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시작도 엄청나게 많다.

6. 기사 목록

7. 기전 목록

주요 국제 바둑 기전
종합 기전
(상금순)
응씨배 · 신아오배 · 천부배 · 몽백합배
바이링배 · 삼성화재배 · LG배 · 춘란배
제한 기전 TV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 글로비스배 · 이민배 · 봉황고성배
CCTV 하세배 · 월드바둑챔피언십 · 중일 아함동산배 · 중일 용성전
단체전 농심신라면배 · 오카게배 · 국수산맥배 · 황룡사배 · 천태산농상은행배
여자 기전 궁륭산병성배 · 센코배 · 오청원배
다른 카테고리의 바둑 기전은 아래 문서 참고
한국 기전 · 일본 기전 · 중국 기전 · 대만 기전 · 폐지 기전

8. 기타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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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종목의 전문 선수들처럼 '바둑 선수(選手)' 라고 검색해도 해당 문서 등의 검색결과로 곧바로 조회된다.[2] 흑이 선수이지만 덤을 전혀 주지 않고 두는 바둑이다.[3] 대한민국 원익배 십단전은 2013년 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강동윤 九단이 마지막 우승자로 여기에 표기한다.[4] 조훈현 九단의 16회 우승이 최다 우승이다.[5] 프로 입단 후 불과 1년 8개월 만에 대한민국 바둑계 최고 원로인 조남철 九단(당시 八단)을 꺾고 그 후 5연패 하는등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현재도 서 명인이라고 자주 불린다.[6] 2008년 19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된 대회로 이창호 九단이 19회 중 11번 우승을 거머쥐었다.[7] 이창호전관왕에 도전하던 1994년 유창혁 九단이 왕위전 타이틀을 방어하면서 이창호 九단의 전관왕을 좌절시키던 게 임팩트가 크고 4연패를 했기에 유왕위로 굳어졌다. 문제는 1995년 대회부터 2007년 왕위전 폐지 시까지 이창호가 모조리 우승했다는 것...[8] 여류기사 쪽이 좀 심했다. 박지은 九단이 입단하고 4년 동안 리그 전승자가 안 나와 입단자가 없었다.[9] 당시 한국기원의 이사장은 조남철 八단이었다. 조남철은 승단 규칙을 완화하거나, 특별 승단으로 자신이 九단이 되는 것을 한사코 거절하였다고 한다.[10] 참고로 중국에서는 국제대회 우승시 즉시 九단 승단이라는 규칙이 있다. 제7회 응씨배 우승자인 판팅위 당시 三단은 17세의 나이에 九단이 되었다.[11] 단 제한기전은 승점 1점[12] 3단 리그 우승&준우승자 / 2년 연속 3단 리그 최상위권 성적 기록자만 승단할 수 있다.[13] 碁士라는 말이 바둑 기자에 선비 사자다. 이미 저 글자 안에 바둑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