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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환 · 정경호 · 최효진 · 송창호 전상욱 · 정문호 |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 구단으로 임대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임대 선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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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일 (1997~1998) | ▶ | 김병지 (1998) | ▶ | 홍명보 (1999~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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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5828><colcolor=#fff>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김병지 金秉址|Kim Byung-Ji | |
출생 | 1970년 5월 12일[1] ([age(1970-05-12)]세) | |
경상남도 밀양군 무안면[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본관 | 김해 김씨 | |
신체 | 184cm[3], 77.7kg, B형 | |
직업 |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 행정가 축구 경영인 | |
학력 | 밀양초등학교 (졸업) 밀양중학교 (졸업) 마산공업고등학교 (전학)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4][5] (졸업) 중부대학교 (골프지도학 / 학사)[6] | |
소속 | <colbgcolor=#dd5828><colcolor=#fff> 선수 | 상무 축구단 (1990~1992) 울산 현대 호랑이 (1992~2000) 포항 스틸러스 (2001~2005) FC 서울 (2006~2008) 경남 FC (2009~2012) 전남 드래곤즈 (2013~2015) |
기타 | 대한축구협회 (2021~2022 / 부회장) 강원 FC (2023~ / 대표이사) | |
국가대표 | 61경기 (대한민국 / 1995~2008) |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7] (1990~1992 / 상무 축구단) | |
통산 득점 | 3골[8] | |
가족 관계 | 배우자 김수연(1997년 결혼) 장남 김태백(1999년생) 차남 김산(2002년생) 삼남 김태산(2007년생) | |
별명 | 꽁지 머리, 꽁병지, 포병지, 병지옹 | |
링크 | | | | [9] | [10] | | |
서명 | [11]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은퇴 후 스포츠 해설가, 유튜버부터 행정, 경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2. 경력
2.1. 선수
자세한 내용은 김병지/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1.1. 은퇴 후
은퇴 직후 자신의 이름을 딴 '김병지축구재단'을 통한 활동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중부대학교 골프지도학과에 입학해 화제가 되었고 2016년 10월에는 수원 인계동에 재활전문치료센터를 오픈했다.2017년 11월 19일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기사 차가 크게 파괴되지 않아 별 일 없는 줄 알았지만 후유증으로 디스크 파열로 인해 신경이 마비되었고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이후 다리에 마비가 왔는데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본인의 SNS로 미루어보아 생각보다 큰 사고였던 듯하다. 이후 상당히 호전 되었으며, SPOTV 해설에도 복귀했다. 2018년 하반기 쯤엔 운동은 물론이고 공도 잘 차는 걸 보면 거의 완쾌된 듯하다.
2018년 11월 29일 꽁병지tv 라이브에서 김민구 해설위원이 밝히길 그 다음날 치질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이후 언급이 없는 걸 보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2019년 FK컵에서 김형범과 같이 서울 은평 나인티플러스 소속으로 출전한 바 있으며 스타FS 서울과의 맞대결에서 11 : 4로 패하였다. 해당 경기 기록지
2020년 3월 15일에는 축구 예능 프로그램인 뭉쳐야 찬다 - 전설들의 조기축구에서 일일 코치로 출연해서 출연진들에게 축구 레슨을 하였다. 이 때 슛을 막는 시범을 보이고는 곧바로 드리블을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안정환을 비롯한 출연진들과 버럭거리는 디스전을 벌이면서 역시 웃음을 자아낸건 덤.
2020년 8월 21일 꽁병지tv에 가짜사나이 2기 지원을 위한 체력평가 영상을 업로드 하였다. 링크 역시 국가대표 클라스는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듯이 한국나이로 51세임에도 불구하고 푸쉬업 72개, 윗몸일으키기 56개 등 웬만한 20~30대 일반인들보다도 훨씬 월등한 체력을 보여주었다.
2020년 9월 4일 가짜사나이 2기 면접 동영상이 업로드 되었다.링크 면접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대답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12]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동안 보여준 장난스런 모습 이면에 그가 선수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진중하고 속깊은 그의 철학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스무살은 어린 친구들하고 같이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살아온 인생을 잠깐 얘기하겠다. 얼마 전 제가 은퇴를 했다. 46살 때. 20살 젊은 친구들이랑 다 경쟁을 하면서 살아왔고요. 또 얼마 전 은퇴하기 전에는 저보다 나이 어린 감독과도 생활을 했었고 코치들도 전부 다 어린 친구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수 생활을 같이 했었어요. 지금 염려하시는 그 모든 답은 여기 있다고 봐요. 조직 안에 들어가면 그 조직에서 맡는 역할, 또 구성원으로 그런 책임감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감독과 친구, 코치가 저보다 어리다고 하더라고 제가 견뎌냈던 이유가 그 중에 있고...
살아온 인생을 잠깐 얘기하겠다. 얼마 전 제가 은퇴를 했다. 46살 때. 20살 젊은 친구들이랑 다 경쟁을 하면서 살아왔고요. 또 얼마 전 은퇴하기 전에는 저보다 나이 어린 감독과도 생활을 했었고 코치들도 전부 다 어린 친구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수 생활을 같이 했었어요. 지금 염려하시는 그 모든 답은 여기 있다고 봐요. 조직 안에 들어가면 그 조직에서 맡는 역할, 또 구성원으로 그런 책임감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감독과 친구, 코치가 저보다 어리다고 하더라고 제가 견뎌냈던 이유가 그 중에 있고...
그리고 2020년 9월 24일 오후 8시 공개된 티저 영상에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출연이 확정되었다. 티저 영상 공개 후 꽁병지TV에 올린 영상에서 25년간 길러왔던 꽁지머리를 깎았음을 밝혔다. 무려 자식들조차 꽁지머리가 없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인데다 김계란마저 각오를 시험하기 위해서 한 얘기지 진짜로 깎으라고 한 건 아니라고 만류했지만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 밀었다고 한다.
가짜사나이에서 만난 머독 말로는 말이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훈련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카메라를 껐음에도 계속 말을 하면서 투 머치 토커의 기질을 보여줬다고 한다.
영상이 공개될 수록 인터뷰 만큼이나 인상 깊은 활약을 보이며 호평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국가대표 주전으로 활약하고 프로 생활도 오래 할 수 있었던 멘탈이나 자기관리, 체력 등으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출연자들과 확실히 한 차원 다른 수준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최연장자로서의 배려와 리더십에 대한 칭찬도 많은 편이다.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개밴저스 감독을 맡는 등 방송인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2. 해설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SPOTV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너무 낮은 텐션과 어설픈 발음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건 듣기 좀 불편할 수는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다.[13]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는데 바로 실력적인 문제로, 해설위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발언들을 많이 한다는 것. 대표적으로 유럽대항전 중계를 하는데 원정 다득점 원칙을 모르고 있었던 것, 해설하는 경기의 라인업 미숙지, 선수의 등번호를 몰라 콜네임 두 번 연속 실수, 그라운드에 쓰러져 실제로 고통스러워하는 선수를 보고 시간을 끄는 행위라 하거나 경기 내내 상황 해설보다 잔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등 이것 말고도 많다. 또한 해설위원은 빨리 돌아가는 경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선 포인트를 잘 잡아 짧은 설명으로 이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김병지는 말이 너무 장황하게 긴 편이다.
아무래도 선수 출신 해설가들과 비선출 해설가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비선출의 경우 팬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구단, 선수, 감독, 역사 등 정보적인 측면에서는 유리한 편이다. 반면 경기 내용에 관한 전문 지식이나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 같은 경우는 선수 출신 해설가들이 월등하다. 비선출 해설가의 최고봉에 있는 한준희조차 인정하는 부분으로, 선수 출신 해설가들의 관건은 본인 머리 속의 느낌이나 흐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기왕이면 보다 더 느낌을 살려서 전달할 수 있냐에 달려 있다. 김병지는 K리그에서 압도적인 출전수와 화려한 국가대표 경력을 자랑하는 만큼 잘 들어보면 머리 속에서 그리는 그림은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상술한 것처럼 말이 지나치게 긴데다 횡설수설하는 경향으로 인해 매우 비경제적임은 물론, 낮은 텐션 및 불명료한 발음 문제와 더불어 어휘 선택도 해설가 기준으로 좋지 못하기 때문에 자질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골키퍼 관점에서 얘기하는 경향이 잦다 보니 독특하지만 공감하기 어렵다는 평도 많았으며, 선수가 누구건 간에 김병지는 직설적으로 잘했다 못했다 평하는데 너무 요령도 없이 대놓고 말하다 보니 이 부분에 대한 평가도 갈린다.[14] 마이크에 대고 대놓고 기침을 하기도 했다.
이렇기 때문에 최태욱과 함께 시청자들로 하여금 스포티비 축구 해설진에 대한 평가를 깎아먹는 데에 크게 일조하였다.[15]
참고로 김병지는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도 해설을 맡은 경력이 있었고 이 때도 많은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었는데 수년이 지난 후에도 큰 발전이 없다는 점은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2016-2017 시즌에는 EPL과 UEFA 챔피언스 리그 등 해외축구도 해설했지만 2017년부터는 K리그 중계에만 등장했고 2018 시즌을 끝으로 하차했다.
훗날 꽁병지 tv를 통해 해설위원 시절을 되돌아봤다. # SBS와 스포티비에서 자진하차가 아니고 짤렸다고 인정했으며, 처음에 중계하고나서는 악플을 읽는 데에만 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중계하면서 많은 사람이 보는 건 아니지만 방송에서는 할 수 없는 얘기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편하다고 한다.
2.3. 행정가
2021년 1월 27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됐으며, 각자 담당 분야를 둔 6명의 부회장 중 생활축구 및 저변확대 분야를 맡게 되었다.이에 관련된 행보로 경민대 축구부를 창단하는 등 일반적인 엘리트 방식의 축구부가 아닌 축구계의 다양한 방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컨셉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벤투호에 대한 실언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상당수의 축구 팬들 사이에서 김병지가 부회장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축구인으로서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안좋아졌다.
이후 클린스만호에 대해선 정반대 스탠스를 보여주며, 사실상 정몽규 회장 라인을 탔다는 것이 확실시되어 기어이 수많은 팬들을 실망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김병지/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 참고.
2.4. 경영인
강원 FC의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구단의 운영을 맡기 시작했다. 스타 축구선수이자 유튜버 출신으로서, 국내 스포츠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업무 스타일을 갖고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팬들과 직접적으로 자주 소통하며, 유튜브 및 SNS를 이용한 언론 플레이도 활발하다.유튜브에서 불필요한 발언을 하는 경우도 많아 축구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경영인으로서 지나치게 가볍다는 호불호와는 별개로,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다.
구단에 확고한 철학을 구축하고 그에 적합한 감독과 선수를 찾는 안목이 탁월하며, 언론플레이를 활용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 이득을 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16]
김병지의 발언으로 인한 구설수로 인해 까이는 경우는 있더라도, 김병지가 무능하다고 까이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
2.4.1. 강원 FC 대표이사
2022년 시즌을 끝으로 정치적인 이유로 이영표 대표이사가 떠난 강원 FC의 대표이사로 취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단독 보도가 나오며 경영인으로서 활동이 예상되었고, 2022년 12월 공식적으로 강원의 대표이사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전임 대표이사인 이영표가 민선 8기 김진태 지사 취임 이후 정치적인 문제로 물러났는데, 이를 두고 김병지가 이영표의 뒤통수를 쳤다는 소문이 무성함과 동시에 강원 대표이사 부임 직전 벤투호 관련 실언 논란으로 강원 팬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이영표의 뒤통수 논란에 대해서는 김병지가 해명했는데, 이영표가 먼저 김병지에게 강원 테크니컬 디렉터직 제안을 해서 협회 부회장직을 그만두고 강원에 합류할 예정이었다고 한다.[17] 본디 테크니컬 디렉터 합류의 전제 조건은 이영표의 재계약이었고, 이영표가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안 간다는 것이었으며 그러자 이영표가 자신의 임기와 상관없이 3년 계약을 해준다고 했지만 그래도 김병지는 이영표가 없으면 못한다고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영표가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김병지의 테크니컬 디렉터 부임도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는 듯 싶었는데, 강원 구단 측에서 김병지에게 대표직을 제안했고 이에 김병지가 이영표에게 물어보자 이영표가 강원 대표직을 맡을 것을 추천해서 제안을 수락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만일 김병지가 강원에서 일을 잘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이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골키퍼 등 축구인으로서 호의적으로 평가받던 인식과 여론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축구인으로서 몰락할 수도 있는 만큼 강원 대표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졌다.[18]
2023년 시즌 강원의 홈구장인 춘천송암스포츠타운의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이로 인해 욕을 푸짐하게 먹고 있다.
양현준 이적 사가와 관련하여 면담을 요구받았지만 이에 응하지 않아 비난 여론이 생겼으나, 오히려 구단에서 이적 불가 방침을 내린 것을 거절하고 거래를 계속 유지한 것이 김병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이 반전되었다. 셀틱 FC가 양현준에게 적지 않은 금액을 오퍼했고, 마침내 인터넷 방송에서 김병지와 양현준이 함께 출연해 직접 이적 계약서에 서명을 하며 김병지에 대한 여론은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자신에게 비판적으로 변한 여론을 돌리기 위해서인지 이적료도 적지 않게 받아놓고 보내기 싫은 티를 내다가 이제 와서 굳이 대승적 차원을 운운하며 인터넷 방송으로 양현준의 이적 소식을 전한 점에 대해서는 좀 없어 보인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받은 이적료는 무려 39억 가량으로, 기존 35억보다 4억이나 비싸게 받아왔다. 이번 시즌 폼이 좋지 않았음에도 거의 A대표팀 준주전급 수준으로 받아낸 것. 이 점은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다만 부임 첫 시즌부터 강등 위기라는 점에서 커리어의 오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19] 또한 팀은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개인 유튜브 활동, 감스트 방송 출연 등의 행보를 보이며 강원 팬들에게 집중 안 하냐고 욕을 엄청 먹었다. 그래도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하여 부임 첫 시즌부터 강등을 당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2024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새해 라이브 방송으로 김이석 영입을 확정시켜주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류재문, 안재준 영입 기사가 떴으나 딜이 파토나면서 내부 입단속이 강화되어 루머 없이 오피셜을 띄우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2부 알짜 자원들과 1부에서 주전 자리가 애매한 자원들을 데려왔다. 결과는 1명도 빠짐없이 성공이라 강원 팬들의 지지가 견고해졌다.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1위 경쟁모드에 유망주인 양민혁을 1군 정착 대성공을 시키고 시즌후 토트넘 홋스퍼 거액의 이적료 계약을 성사 시켰다.
강원의 상승세 및 활약 를 바탕으로 김진태 강원 FC 구단주는 김병지 대표이사에 대한 재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아시아 정상급의 순발력과, 탁월한 반사신경을 기반으로 한 1대1 방어, 좋은 킥력 등 골키퍼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 판단력 위에 순발력을 얹어 슈팅을 막아내는 타입의 골키퍼로 야구에 비유하면 게스 히터에 가깝다. 이런 타입의 골키퍼들이 다 그렇듯 판단이 맞아 떨어지면 불가능해보이는 선방을 보여주지만 틀리면 역방향에 걸려 어이없게 실점하는 경우도 있다.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준족을 바탕으로 커버 범위가 넓었으며 골키퍼로서 큰 키는 아니지만 점프력이 좋아 공중볼 처리에도 능했다. 킥 능력도 한국 골키퍼 중 역대 최고 수준. 동시대에 김병지와 견줄만한 킥을 가진 골키퍼는 이용발과 이운재뿐이며 후배 중에도 정성룡 정도로, 60m 거리의 선수에게 정확하게 패스를 보낼 수 있다.(7분 56초부터) 그리고 55미터 거리의 물통에도 10번만에 공을 차서 넣기도 한다![20]
전진수비가 많고 골키퍼임에도 공을 차고 앞으로 나가는 돌출행동을 할 때가 있어, 이운재보다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사실 억울한 평가다. 히딩크 감독 시절의 기억이 깊게 남은 탓이지, 커리어 전체로 보면 돌출 행동이 많은 선수가 결코 아니며 전진 수비로 인한 실점도 적었던 선수다. K리그 통산 클린시트 횟수 1위에 올라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해 준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스위퍼 키퍼이다. 2010년대에 마누엘 노이어가 안정된 볼처리와 킥, 반응속도를 근간으로 전진수비에 가담하며 대표적인 스위퍼 키퍼로 주목받자 마찬가지로 과거 전진수비로 스위퍼 역할을 겸업한 김병지 또한 우리나라 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21] 노이어 역시 전술한 김병지의 드리블 실패처럼,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32강 조별리그 대한민국 vs 독일전에서 후반전 추가시간 무리하게 전진하다 볼을 뺏기고 손흥민의 쐐기골 허용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이는 경우가 전혀 다르다. 독일은 득점이 없으면 어차피 탈락이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골키퍼까지 공격에 투입된 것이다.
한편 실제 실력 및 평가와는 별개로, 축구 팬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김병지하면 쉽게 떠올리는 부분은 수비 실력과 함께 '드리블하는 골키퍼'란 이미지일 정도로 이 이미지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깊이 남아 있다. 김병지 본인도 이벤트 경기나 방송에 출연하면 이를 자학 개그 형태의 기믹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 플레이는 관중들이 좋아해서 본인이 더 오버한 경향도 없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기장에서는 골키퍼라는 직책이 무색하게 드리블하면서 공격하는 기행을 가끔 보이긴 했지만, 자기 관리는 굉장히 철저한 선수였다.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았으며 선수 시절 항상 거의 같은 몸무게를 유지했다고 한다.[22] 김병지가 스스로 정한 자기 관리 수칙만 해도 100가지가 된다고 한다. 덕분에 45살까지 프로 선수로 뛸 수 있었다. 거기다 김병지는 골키퍼치고 키가 상당히 작은데[23] 이런 키 작은 골키퍼들은 아무리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좋아도 노쇠화가 오면 신체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24] 하지만 그가 40대 중반까지 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철저한 자기관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4위: 2002
4.2. 개인 기록
K리그 통산 최다 출전 : 708경기
K리그 통산 최다 무실점 : 229경기
K리그 통산 최다 연속 무교체 출전 : 153경기
K리그 최고령 출전 : 45년 5개월 15일
K리그 통산 골키퍼 최다 득점 : 3득점
K리그 올스타전 역대 최다, 연속 출장 : 1995~2007, 총 16회
K리그 통산 최다 무실점 : 229경기
K리그 통산 최다 연속 무교체 출전 : 153경기
K리그 최고령 출전 : 45년 5개월 15일
K리그 통산 골키퍼 최다 득점 : 3득점
K리그 올스타전 역대 최다, 연속 출장 : 1995~2007, 총 16회
4.3. 개인 수상
- K리그 베스트 11: 1996, 1998, 2005, 2007
- K리그 특별상: 1998, 2004, 2005, 2006, 2007, 2009, 2010, 2012, 2014
- K리그 올스타전 MVP: 2000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수비상: 2007
4.4. 국가대표 기록
연령 | 출전 | 실점 |
U-17 | 0 | 0 |
U-20 | 0 | 0 |
U-23 | 0 | 0 |
A대표 | 61 | 72 |
종합 | 61 | 72 |
4.5. 수훈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5. 출연작
5.1. 영화
5.2. 드라마
- 빈센조 - 유소년 축구팀 코치 역 (특별 출연)
6. 유튜버 활동
유튜브
아프리카tv
트위치
포병지 사건을 만든 감스트로 인해 인터넷 방송을 알게된 김병지는 감스트와 합방 이후 인터넷 방송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2018년 6월 4일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꽁병지tv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에 첫 영상을[25] 올리며 유튜버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유튜브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고 꽁병지tv에서 감스트와 천호성 변호사[26]를 초대하여 '감스트의 포병지 사건'을 법률적으로 다루며 이당시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 국가대표 관련 영상들에서 근본적인 문제인 축구협회는 언급조차 안하고 그 이유를 국가대표 감독에게서만 찾고있어 비판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다.
7. 논란 및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김병지/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8. 여담
- 팬서비스가 좋다. 싸인을 거의 뿌리는 수준으로 해준다고 한다. PC방 컴퓨터 본체에 해줬다라는 일화도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해당 네티즌에 의하면 온 동네에서 김병지 싸인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선수 시절 경기에 패배한 날에도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꼬맹이들이 김병지의 꽁지 머리를 잡아당기며 장난을 쳐도 허허허 웃기만 했다고...#1 사인이나 사진이 아니라도 좋은 팬서비스는 많은데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던 시민을 목적지까지 태워다준 일화도 있다고 한다.
- 염색을 즐겨하며 울프컷이라 불리는 멀릿 헤어 스타일링을 한결 같이 유지중이다. 아예 김병지 컷이라는 별칭이 생길정도.
- 12회 연속 올스타 출전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서 올스타전 참가는 15회, 2015년까지 합치면 16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 김병지는 2004년 자선축구(12월 26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스트라이커로 출전했다. 그리고 이운재와 창-방패의 대결을 펼쳤다.
- 2009년 11월 1일, 본인의 리그 500번째 경기는 F4를 앞세운 전북과의 경기였다. 499경기 때까지 김병지는 실점 496점을 기록하며 평균 실점 0.994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근데 하필이면 이때 또 전북이 폭발해 4골을 득점하면서 본인의 500번째 경기에서 500번째 실점을 하며 평균 실점 1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 23년 동안 K리그1에서 주전으로 뛰었고, K리그의 기록 제조기로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자기관리다. 정말 철저하다. 23년의 현역 선수생활 동안 데뷔했을 때의 몸무게였던 77~78kg을 항상 유지했다고 한다.[27] 우스갯소리로 술과 담배는 끊었지만 드리블은 끊지 못했다는 소리가 있다. 이건 김병지 본인도 해설 도중 언급하기도 했다. 이 체중은 은퇴 후에도 계속 유지되었으나 교통사고로 입원하면서 1~2kg 불었다고 한다. 은퇴 후에도 식단조절과 운동을 통해 2020년 6월 14일 기준으로 체중을 다시 78.75kg까지 감량했다. # 후에 11월 25일에 방송된 대한외국인에 출연했을 때도 이것을 직접 언급했다.
- 마산공고 재학 시절 부산 소년의 집[28]으로 전학간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감독으로부터 키가 너무 작으니 축구를 접으라는 소리를 들어서, 둘째는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님이 멀쩡히 계심에도 불구하고 단지 축구가 하고 싶어서이다. 그의 축구 사랑은 위대하다.[29]
- 마산공고 재학 시절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의 강호동과 함께 마산 시내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던 학생들 가운데 하나였다. 마산공고 축구부와 마산상고 씨름부에서 둘 다 엄청 유명했다고. 그래서 마산상고 씨름부와 마산공고 축구부의 1학년 패싸움에서도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 후일 강호동은 '공포의 쿵쿵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2002 월드컵 직전이었던 시기에 "당시 마산에서 유명한 운동부가 우리 마산상고 씨름부와 마산공고 축구부였는데 서로 마산 운동부를 대표하다보니 1학년끼리 신경전이 생겼고 결국 우리끼리 야산에서 패싸움을 했었다. 우리는 잡으면 던지고(?), 그쪽은 발로 차는 걸 잘했다(?). 당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시 상대 학교 선수들 중에서 뒷머리를 꽁지머리로 멋내서 길렀는데 굉장히 싸움을 잘해서 두려웠던 상대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나이먹고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김뱅지' 선수였던 거 같다. 굉장히 빨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후일 이것이 작은 이슈가 되어 김병지 역시 스포츠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패싸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 사람이 자신이 맞았고 싸울때 이미 강호동을 알고 있기도 했고 싸울때 본 것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며 결론적으로 둘다 패싸움에 각 운동부 리더격으로 참여했다는 것을 인증했다. 예체능 출연보다 한참전에 강호동의 방송 발언 이후 두 사람이 사적으로 만나서 이미 그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1998년 K리그 플레이오프 준결승 2차전 포항과의 경기에서 팀이 1대1로 비기고 있을 때 게임 종료 직전에 공격에 가담하여 헤딩슛으로 골을 넣었다. 이로 인하여 K리그 최초의 골키퍼 득점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인 남아공 vs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해설을 맡았다. 언론에서는 성공적인 해설이라고 했지만, 팬들로부터는 경기 흐름을 전혀 읽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사투리를 쓰거나 말을 버벅거린 것도 감점 요인. 다음 경기인 프랑스 vs 우루과이 경기의 해설을 맡은 박문성의 해설과 비교되어 평가가 더 나빠졌다. 다만, 이후 안 좋은 점을 고쳤으며 나름대로 좋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점점 해설에 적응해 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회 중반 이후로는 상당히 훌륭하게 해설을 했고,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키퍼 출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사항들을 해설해 줘서 평가가 굉장히 좋았다. 실제로 파라과이 vs 이탈리아 전에서 파라과이의 프리킥 상황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의 포지셔닝에 대한 지적을 했는데, 그 뒤 이탈리아는 파라과이에 바로 선제골을 먹혔다.
- 2010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네이트에 칼럼을 연재했다. 운동선수라서 필력이 서툴거 같다는 편견과 달리 한달에 두세권은 꼭 읽는 독서가라서 필력도 괜찮은 편이고 오랜 선수생활 동안의 풍부한 경험, 선수들만이 알 수 있는 경기 내적인 내용이나 현장에서의 고충을 토대로 서술하여 인기가 좋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선수 신분이기에 전문 칼럼니스트들처럼 취재, 조사하고 다닐 처지는 아니라서 연재가 정기적이지 않고 분량이 약간 짧았다. 2011년 5월 27일 칼럼을 마지막으로 네이트에서 '연재 종료' 칼럼으로 분류되었다.
* 2010년 KBO 준플레이오프 2차전 당시 이대호의 호수비를 보자 위와 같은 트윗을 남겼다.
- 2000년 8월 16일 심장 부정맥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임수혁에게, MVP 및 캐넌슈터왕으로 얻은 상금 중 300만원을 임수혁의 치료비에 보탰다.
- 2005년 FC 서울로 이적할 때, 당시 꼬꼬마였던 박주영이 김병지를 보고 어떻게 부를까 고민하다가 김병지가 '삼촌'이라 부르라고 한 뒤부터 1985년 이후 출생 선수들에게는 '삼촌'이라 부르도록 했다. 이후 경남 FC로 옮긴 뒤로도 막내들에게 삼촌이라고 불린다. 사실 나이로만 보면 삼촌뻘이 맞긴 하다. 그리고 2015 시즌 기준으로 최연소 선수가 빠른 1997년 생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라운드에서 아들뻘 되는 선수들과 뛰는 장면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말년씨리즈에도 나왔는데, 하나는 특유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또 하나는 본인 발언[30]으로 인해 이와 관련해서 개그 소재로 사용되었다. 한창 헤어스타일 현란하게 하고 다닐 적에는 경기 시작 전에 손잡고 나온 꼬마애가 기겁해서 울음을 터트린 적도 있었다.
-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던 2011년 5월 어느 날, 한 인터뷰를 통해 "나에게 승부조작 제의가 왔다면 (브로커를) 패버렸을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그의 축구사랑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이 소식을 들은 일부 축구 팬들은 김병지라면 실제로 그럴지도...라고 평했다. 위 발언은 전술된 네이트에 연재된 칼럼 가운데 마지막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승부조작 사건을 바라보는 백전노장의 안타까운 마음이 물씬 담겨있는 글이니 링크된 칼럼은 한 번씩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31][32]
- 김병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일화로 1999년 SBS 모 예능프로 몰래카메라에 김병지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몰래카메라의 시나리오는 김병지가 지나가는 앞에서 괴한들이 여자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김병지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마산에서 싸움으로도 한 때 유명했던 사람이었던지라 괴한 중 한 명에게 바로 날아차기를 시전했고 다른 괴한역의 연기자들은 쫄아서 도망가버렸다. 하지만 김병지는 전성기에 100m를 11초대에 끊던 준족이다. 얼마 도망가지도 못하고 연기자들은 잡히고 나서 김병지에게 빌었다고... 덕분에 몰래카메라 촬영은 중단되었다. 신동엽(당시 프로그램 MC)이 인증해주었다.
- 2012년 10월, 자신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에 직접 댓글을 달아 화제가 되었다. 댓글의 내용은 하이킹을 하던 중 히치하이킹을 하게 되었는데 탑승한 차량이 김병지의 차였던 것이다. 목적지까지 태워준 것은 물론 용돈까지 줬다고 한다. 김병지 본인이 단 댓글에는 대략적인 위치까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
ryuh**** 10년전 배낭여행하던 나는 경상도 어딘가에서 히치하이킹을 했고! 고급세단이 나를 태워줬다! 그리고 놀랐다 운전자가 김병지형님이었지! 어린친구가 멋지다라고 격려하면서 목적지 까지 태워다 주었고 용돈10만원도 받았다! 그이후 나는 김병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김병지 형님! 정말 인간적으로도 너무 멋진분! leos**** 김병지 입니다.. 생각나네요..포항에서 영덕가는 국도변에서 대구 지역 대학생이었던걸로 기억나네요..두분이셨던것두요...강원도 설악산까지 하이킹 하신다고, 열혈도전에 깊은 인상이 남네요..아마 그때 그 도전정신으로 지금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자리하길 바랍니다... |
- 슬하에 아들이 셋 있다. 큰아들 태백, 작은아들 산, 막내아들 태산으로, 세 아들의 이름을 태백산에서 따왔다고 한다. 세 아들 모두 축구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모두 골키퍼를 하고 싶다고. 김병지가 평하길, 태백이는 패스타이밍이, 산이는 킥력이 좋고, 태산이는 두 형에 비해 피지컬이 좋다고. 특히 작은아들 산이는 KBS N 스포츠 '날아라 슛돌이'의 2기~4기에 이을용의 아들 태석이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4기 때는 부주장을 맡기도. 그러나 감스트 방송에 출연했을때 축구는 관두고 음악을 하고 있다고 밝혔고 꽁병지tv에서 재차 모종의 사정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예고로 진학했다고 언급했다.
김병지가 전남으로 이적할 때 세 아들들을 전남 유스팀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큰아들 태백이는 광양으로 가지 않고 2015년 서울의 언남고로 진학했다.[33] 태백이는 이후 울산 학성고로 전학하였고 2019년 봄 일본의 야마나시가쿠인대학에서 축구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편, 막내아들 태산이는 최근 광양에 있는 한 리틀야구팀에 소속되었다. 장남 태백과 함께 2022년 4월 24일 뭉쳐야 찬다 2에 꽁병지FC의 일원으로 출연했다. 당시 김태백이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라고 말한걸 보면 더이상 축구선수를 하지 않는 듯 하다. 그리고 김병지는 감독 겸 구단주, 김태백은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0 승리를 일궈냈다.
- 과거 '논키퍼'라는 농약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축구에는 골키퍼 논에는 논키퍼"
- 포카칩 광고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불량감자 컨셉으로 둥그런 감자옷을 입고 날아오는 공들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장면인데 실제로 감자옷을 입고도 잘만 막았다고 한다. 너무 잘 막아서 촬영팀에서 자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경기 시작 전에는 서울 키퍼 김용대 더러 "너 아직 골키퍼 하냐?"라며 놀렸다.
-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 히딩크 감독이 보는 앞에서 폭풍드리블 후 볼 뺏기기를 재현해서 큰웃음을 선사했다.# 그 앞장면에서 초근접거리에서 김신욱의 강슛을 세이브해내는 장면도 쩔긴 쩐다.
- 2015년 7월 26일 열릴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간의 경기가 김병지의 k리그 통산 700번째 출장경기다. 그래서 7월 17일 열린 k리그 올스타전에서 등번호 700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전후반 90분 동안[35] 맹활약 했다.
- 2018년 기준 권순태에 이어 클린시트 경기 수 2위라고 한다.
- 2017년 8월 6일에 올라온 슛 포 러브 축협 기술위에 박문성, 감스트, 서호정, 말디니가 선임됐다고?? l 지구방위대 FC : 기술위원회 편에서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FC 서울의 데얀 다미아노비치 팬으로 나온 김은하수양에게 극딜을 맞았다. 그리고 김병지의 프로필 소개 문구 중 '한국 역대 최고의 GK'라고 쓰여진 곳 옆에 ??라고 써놨다. 두 문장 밑에 '특이사항은 자주 골대를 비움'이라는 문장 옆에는 맞는 말이라고 써놔 김병지를 두 번 울렸다.
어어... 김병지 선수가 문제인 거 같아요. 골대를 지켜야 하는데 안 지켜요. 그리고 골키퍼가 공격수도 아닌데 공격하러 저~기 가있고... 어.. 일단 그... 골키퍼도 약간 교체를 해야 된다고(생각합니다).
- 2017년 9월 19일에 히딩크 감독님, U-23 대표팀 감독은 어떨까요라는 인터뷰를 해서 네티즌들에게 비판받았다.
- 카잔의 기적에서 마누엘 노이어가 골대를 버리고 공격에 가담하다가 손흥민에게 골을 헌납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러시아 월드컵으로 본 노이어! 김병지 따라쟁이.. 따라하다가 X됐다. 오늘부터 드리블 연습 좀 더해라.. 헤딩은 그 다음에 배우러 온나. 가르쳐 줄게...라는 도발성 글을 올리기도 했다.
-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의 골키퍼였던 조현우가 골키퍼를 하기로 한 계기가 1998년 월드컵 당시 보여준 김병지의 활약 때문이었다고 한다.
- 2016년 슛 포 러브를 통해, 배구 선수 문성민과 공방 대결을 펼쳤다. 한준희 해설이 둘의 창-방패 대결을 해설했고, 둘의 대결은 5대5로 끝났다. 자생한방병원을 통해 메이크어위시(make-a-wish) 재단으로, 공동 명의로 300만원을 기부하게 되었다. 상대방 문성민은 축구선수가 접하기 힘든, 익숙하지 않은 구질로써 무려 다섯 번이나 골을 넣었다. 게다가 스파이크는 특성상 공중에서 내리꽂는 공격이기에, 축구 선수의 헤딩 공격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영상 끝 부분에서, 김병지는 떨어지는 공을 대비하는 연습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36]
- 홍명보와 함께 키가 상당히 늦게 큰 케이스 중 하나다. 고1때까지만 해도 170은 고사하고 165도 못 넘었으며[37] 마산공고 축구부에서 사실상 방출당하시피 했지만 고2 때부터 갑자기 키카 커서 졸업할때 쯤에 183cm가 됐다고 한다.[38]
- 첼시 로버스 FC가 우리나라에서 전지훈련 했을때 골키퍼들을 지도했었다.
-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가 밀양대학교였던 시절에 같은 밀양 출신인 연극배우 손숙과 함께 밀양대 광고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
- 보수정당의 정치인들의 유세에 참여한 적이 여러번 있다. 2016년 제20대 총선 서울특별시 양천구 갑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이기재와 역시 같은 당 동대문구(을)에 출마한 박준선의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으며 양천갑 이기재 축구선수 '김병지' 지원유세 현장! 김병지 전 국가대표 선수, 박준선 새누리당 동대문을 후보 지원유세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선거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조해진 전 국회의원 지지 유세를 했다. 또한 2022년 민선 8기 지방선거에서는 자신이 땅을 가지고 있는 양평에 와서 현 양평군수인 전진선의 유세에도 참여했다. 김병지의 개인 SNS에 당시 국민의힘 양평군수 후보와 양평시장에서 사진을 찍은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삭제된 상태이다. 조국 사태를 두고 페이스북에 '잘못을 인정하고 호되게 꾸짖을때 진정한 진보로 인정받게 된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한적도 있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호사가들한테 매 선거마다 국민의힘 영입인재 0순위로 손꼽히고 있다.
- 하지만 민주당계 정당 소속 정치인들과도 친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앞선 조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올려 댓글창에 논란이 일자 최재성 의원, 박경미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이분들도 존경한다'라는 답글을 남겼으며, 이에 덧붙여 최재성 의원과 함께 조기축구 친목회를 함께하는 사진과 함께 '이분의 선거 운동에도 함께 했다'는 답글도 남겼다. 실제로 김병지는 최재성 의원의 선거자금 펀드에 참여했다. 탤런트 이영애, 축구인 김병지, 야구인 김성한, 코미디언 이경실, 기타리스트 신대철씨 등 참여게시글의 내용을 보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이 아닌, 건설적인 이야기대신 서로의 입장만 내세운 싸움이 오가는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해당 게시글을 삭제했다.
- 전 세계 복싱계에서도 경량급에서 주먹이 아주 강하기로 유명한 매니 파퀴아오를 펀치력에서 매우 큰 차이로 이기기도 했다. 심지어 파퀴아오는 맨주먹에 온 체중을 실어 주먹을 날렸고 김병지는 두꺼운 글러브에 체중을 싣지도 않고 쳤다.[39] 축구 선수들 사이에서도 완력과 싸움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은퇴하고 나이가 많이든 시점에도 손가락으로 팔굽혀펴기를 수십 개한다.
- 현 기능사에 해당하는 자격증인 선반기능사 2급,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소년의 집에서 취득한 것으로, 학교가 공고인데다가 실전을 중시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격증 취득을 장려한다. 김병지의 신장이 골키퍼로 뛰기에는 작다는 이유로 팀들이 입단을 거절했었고, 결국 LG산전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축구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상무에 입단 테스트를 요청하여 상무에서 뛰게 된다. 상무에 입단 테스트를 요청한 경우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 2011년 12월, 트윗을 통해 2011년 목표를 운전면허 정복의 해로 선정, 트레일러와 오토바이 운전면허를 취득하였고 대형 면허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대형 면허도 취득했고 트레일러 면허는 캐러밴 타고 여행을 다니려고 딴 것이라고 밝혔다.
- 이렇듯 부지런하고 자격증 많기로 유명한데 지도자 자격증도 자격 요건 충족되는데로 바로바로 따고 있다. 2018년 꽁병지 TV에서 골키퍼 지도자, 필드 지도자 자격증 모두 A급을 취득했으며 곧 P급 취득 자격이 주어진다고 밝혔다. 자격증 취득할 시간이 빠듯하지 않냐는 말에는 시간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답했다.
- 유튜브와 해설 말고도 하는 일이 많다. 자기 이름을 딴 김병지축구교실은 18년 7월에 문 연 홍대점까지 총 7군데 운영중이고 2002년 월드컵 대표팀 모임인 ‘팀2002’와, 축구 국가대표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축구국가대표의 대표도 맡고 있다.
- 가짜사나이 2기 면접에서 보여준 모습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가짜사나이 2기에 참가했다. 2020년 9월 24일 올라온 티저영상에서 모습을 볼 수 있다.[40] 그리고 그 날 본인의 영상에 입소 전 영상을 올렸는데... 무려 트레이드 마크인 꽁지 머리를 자르고 머리를 삭발 모히칸으로 깎은 모습을 촬영해 올렸다.
- 2021년 5월 20일, 진보 시사 유튜브 열린공감TV에 출연했다.
- 2021년 SBS 예능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의 FC 국대패밀리 감독을 맡아 여성 출연자들을 지휘했다.
- 2021년 8월 21일, KBS2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스포츠스타 특집에 출연해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유상철을 추모하며 안재욱의 친구를 불렀다.
- 1999년에 EA에서 발매된 축구게임 FIFA 2000의 국내판 표지모델로 선정된 적이 있다. 전작인 FIFA 99는 안정환[41], 후속작인 FIFA 2001은 고종수가[42] 국내판 표지모델로 선정되었다.
- 2024년 10월 20일 넥슨 아이콘 매치에 FC Spear 팀으로 출전하였다. 공을 잡고 나가긴 했지만 하프라인을 넘기진 않았다.
8.1. 게임상에서
현역 시절 명성에 비해 게임에서는 비교적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피파 온라인 3가 인기를 끌면서 이러한 평가는 더 심해졌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피파 게임 특성상 키가 작은 골키퍼를 기용하는게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키가 작은 골키퍼라도 반사신경과 위치선정으로 약점을 커버하고 무수한 선방을 보여주는 모습이 적잖게 보이지만, 게임에서는 엔진의 한계로 인해 그게 안되다보니 키가 작은 골키퍼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 비단 김병지 뿐만 아니라 국대 시절 라이벌이었던 이운재는 물론이고,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했던 이케르 카시야스나 전성기에는 리그 베스트급 기량을 선보인 클라우디오 브라보, 다비드 오스피나, 스테브 망당다같은 선수들도 키 때문에 게임에서는 저평가받았다. 때문에 이런 선수들이 주전을 맡은 팀을 맞추는 유저들은 키가 큰 다른 선수를 찾아 기용했을 정도였다.[43]두 번째 문제는 김병지의 스탯 때문인데, 피파온라인 3 당시 대중적으로 알려진 김병지의 스탯은 2002년 월드컵 4강을 기념해 만든 2002 전설 시즌 김병지의 스탯이었으며, 사실 카드 자체 스탯은 이운재랑 동급으로 출시 당시만 해도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 문제는 피파온라인의 스탯 인플레가 심해지면서 나중에 가서는 명색이 전설 카드인데 특정 시즌 카드보다 스탯이 안 좋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 나중에 김병지가 유튜브에서 본인 카드의 스탯을 상향 패치 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02전설이 상향을 받고 스탯이 더 높은 K리그 더 클래식 시즌이 출시되고도 사용 빈도는 낮았던 점을 생각하면, 실질적인 원인은 첫번째의 키 문제가 컸다.
이러한 원인으로 발생한 일이 바로 포병지 사건. 2015년 7월 아프리카 BJ 감스트가 피파온라인 3에서 2002년 전설 선수 카드팩을 개봉하는 방송을 했는데, 02전설 카드 중에 가격이 두번째로 저렴한[44] 김병지만 연속으로 4장 등장해버린다. 해당영상. 욕설 주의. 주작이라고 해도 믿을 상황이 현실로 벌어지자[45] 감스트는 극대노해 키보드 샷건을 시전했고, 그 뒤로 어떻게든 복구라도 해보려고 카드 강화를 했는데 카드 강화마저도 전부 실패하고 만다. 이 영상은 피파온라인 유저들 사이에서 점점 퍼져나가며 유명세를 탔고, 결국 이 영상을 김병지 본인도 보게 되었다. 김병지는 현실에서 김병지 지지자가 된다면 용서를 하겠다. 하지만 감스트는 미워하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 훈훈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포병지 원본영상에 1천만뷰를 넘으면 고소한다고 장난식으로 댓글을 달았다.
감스트는 해당 글을 보고 김병지에게 사과를 했고, 그 뒤로는 어쩌다 김병지 카드가 뜨면 무조건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김병지와 아예 합방을 하고 김병지가 직접 강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참고로 김병지가 피파온라인과 관련해서 아예 문외한은 또 아닌 듯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김병지의 아들이 피파를 즐겨 하다보니 김병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피파온라인 게임 안에서는 푸대접 수준으로 입지가 안 좋은 김병지지만, 한 때 전혀 의외의 요소로 유저들에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바로 페르난도 병지. 피파온라인 3의 엔진 패치가 실시되기 이전에는 이른바 '바페온라인'이라는 멸칭으로 불릴 정도로 바디 페인팅 기술의 효용성이 좋다 못해 사기적일 정도로 높았다. 이 바디 페인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카드에 부여된 개인기 스탯이 1성~5성 가운데 최소 2성을 기록해야 사용할 수 있었는데, 골키퍼들은 현실에서 개인기를 쓸 일이 없으니 다들 개인기가 1성으로 책정되었었다. 그런데 김병지는 특유의 발기술을 반영하려 한건지 몰라도 골키퍼들 가운데서는 극히 드물게 개인기 2성이 책정되어 있었고, 이걸 본 일부 유저가 김병지를 공격수로 기용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여기에 김병지는 골키퍼 중에서 스피드 관련 스탯이 가장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필드에서 뛰어다니는데 더 유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월드클래스 공격수 김병지가 탄생했다는 농담아닌 농담이 나왔다. 물론 개인기 2성은 필드 선수들 가운데는 가장 낮은 축이고, 스피드도 골키퍼 중에서는 빠른거지 절대 스탯으로 보면 느린 축에 속하며, 골키퍼인 만큼 다른 대부분의 스탯은 낮기 때문에 유저의 실력이 보통 좋은게 아닌 이상 저런 모습은 나오기 힘들다. 엔진 패치 이후로는 바디 페인팅 기술의 너프로 사장됐고, 후속작으로 넘어가서는 골키퍼를 필드에 기용하는 것 자체가 막히면서 이젠 추억으로 남게 됐다. 그래도 피파 공식에서 2016년 만우절 이벤트로 스트라이커 김병지 카드를 기간 한정으로 배포하는 등 하나의 밈처럼 자리잡았고, 2017년에는 코미디언 김대범이 금카 김병지를 정성룡과 함께 공격수로 기용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어느정도 알려진건지 FIFA 14에서 골키퍼로 득점하면 깰 수 있는 골드 도전 과제 '공수의 달인'의 설명에는 '김병지를 아시나요?'라고 적혀 있다.
피파 시리즈에서는 키 때문에 입지가 나쁘지만 키의 영향이 비교적 덜한 풋볼매니저 시리즈[46]에서는 능력치가 상당히 좋다. 특히 성격 능력치가 좋아서 튜터 역할로 쓰기도 좋다.
참고로 김병지 본인은 게임 내 스탯에 납득하지 못하여 달리기 영상을 찍었다. 현역 시절에 100m 달리기 기록이 11초였는데, 게임에서 15초로 너프되었으므로 게임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은퇴 후 교통사고 후유증이 있음에도, 공을 몰고 15초나 찍었다. 사실 이는 게임 내에서 골키퍼들은 실제 속력이 좋고 안좋고를 떠나서 무조건 느린 스탯이 책정되는 탓에 일어난 일.
피파 모바일에서는 만우절 이벤트로 김병지가 RW으로 나왔다.
[1] 음력 4월 8일.[2] 現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3] 본인의 유튜브 라이브에서 본인은 184cm, 같이 경쟁했던 이운재는 182cm라고 밝혔다.[4] 이 학교는 6.25 휴전 후 부산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던 알로이시오 슈월츠 몬시뇰 신부(한국 이름은 소재건이며 그래서 보통 소 알로이시오로 불린다.)가 세운 학교로, 보통 그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이 많이 진학을 하지만 이례적으로 김병지는 고아라서 이 학교에 온 것이 아닌 축구부 활동을 위해서 다녔다.[5]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이 외에도 아동 복지 사업을 주관했던 "마리아수녀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과거형인 이유는 서울에 보육원을 운영하던 시기에 벌어졌던 아동 학대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22년에 아동 복지 사업을 그만뒀기 때문이다.[6] 2016년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7] 군복무 당시 병장 때 월급으로 만원을 받았는데, 제대 후 울산에서 프로 첫 해 연봉을 960만 원, 월급으로는 80만 원을 받으면서 프로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8] 헤더 1골, PK 2골[9] 개인 계정[10] 꽁병지tv 공식 계정[11] 때로는 skeeper를 써준다.[12] 면접을 보는 교관들조차도 감탄하는 제스처를 보였을 정도였다.[13] 사실 이것도 어쩔 수 없다기엔 너무나도 중대한 결함인데 비선수 출신 중에 이정도로 발음이 부정확한 해설위원은 아무도 없다. 선수 출신이 아니라면 방송사 문턱도 밟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 아나운서, 통역가와 마찬가지로 언어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해설가에게는 발음은 필수조건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노련해도 발음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전달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음을 교정해내지 못한다면 해설가로서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김병지와는 비교하기가 실례일 정도인 이상윤 해설 역시 선수 이름을 뭉갠다는 이유로 잦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14] 해설을 듣는 시청자들은 자기가 팬인 유럽 리그나 팀, 감독, 선수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하면 불쾌한 반응을 보이면서 그 수준에 가보지도 못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냐며 비아냥 대기도 했다.[15] 이것 때문에 해축갤에선 김병지는 페널티박스 바깥, 중계진, 피파3 선수팩(..) 등 나오지 말라는 데엔 꼭 나온다는 내용의 글이 개념글에 가기도 했다.[16] 팬덤이 빈약한 강원의 선수인 양민혁이 팀K리그 영플레이어를 수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해외 빅클럽 링크를 밝히며 어그로를 끌었고, 그 결과 0.x%의 근소한 차이로 영플레이어를 수상해냈다. 또한 토트넘과의 협상 과정에서 강원의 유스 선수들이 토트넘으로 건너가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스탭들이 토트넘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치밀함 또한 갖추었다.[17] K리그에서 테크니컬 디렉터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게 필요해 이영표가 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18] 이미 극단적인 의견으로는 2002년에는 이운재에게 주전을 내주고 경기에 못 뛴 만큼 2002 레전드가 아니라는 주장과 대한축구협회의 적폐 세력이라는 과격한 비판까지 나왔을 만큼 김병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단기간에 굉장히 높아졌다. 만일 강원 대표로도 구설수에 오르거나 사건사고에 휘말린다면 선수로 쌓은 명성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19] 물론 첫 시즌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일 잘하던 대표를 포기한 김진태 도지사가 제일 비판받고 있다.[20] 찍고 차는 것도 아니고 공을 든 채로 펀트킥으로 회전을 걸어서 정확히 넣었다. 게다가 이 날에는 바람이 꽤 불었다고 한다.[21] 실제로 김병지가 스위퍼 역할을 겸업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현역시절에도 기사화까지 되며 현대 골키퍼의 모습이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당시 기사 노이어는 가장 완벽에 가까운 스위퍼 키퍼이지, 최초의 스위퍼 키퍼는 아니다. 이미 70년 전부터 스위퍼 키퍼가 등장했으며 그 인물이 1950년대 헝가리 매직 마자르의 골키퍼 줄러 그로시치이다. 그리고 50~60년대에는 레프 야신도 존재하였다. 그 이후에도 리버풀의 레전드 브루스 그로벨라, 1990년대에 남미를 대표하는 골키퍼 중 한명인 호세 레네 이기타 등 스위퍼 키퍼는 계속 등장했다.[22] 특히나, 저녁 8시 이후에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고 한다.[23] 골키퍼는 몸으로 공을 막아내는 역할이라 축구에서 가장 신체조건을 많이 타는 포지션이다. 그래서 골키퍼는 180cm대 후반은 돼야지 표준 정도로 보는 경향이 많다.[24] 스페인 역대 최고의 골키퍼인 이케르 카시야스도 키가 작은 걸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커버했으나, 30대가 되자 이 능력들이 떨어져서 퇴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몰락했었다.[25] 해당 영상은 삭제된 상태. 시험 삼아 올렸던 영상들을 모두 내리고 정규 컨텐츠만 채널에 남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26] 유튜브 대표적으로 카라큘라 탐정 사무소에 나온다.[27] 풋볼매거진골에 나온 내용이다. 이에 김민지 아나운서는 부럽지만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28] 2018년에 문을 닫은 옛 알로이시오 전자기계고등학교, 당시 이름은 소년의 집 기계공고다. 부산광역시에서 창설된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했던 고등학교다.[29] 실제로 운동부와 같은 예체능계는 돈이 상당히 많이 든다.[30] "나는 대표팀 뒤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소금 같은 선수다."[31] 2011년 사건이 터진 후에 후배들을 전원 집합시켜서 승부조작은 절대 안 된다고,만일 제의 들어오면 자신이나(구단에게 말하기 불편할수도 있으니) 구단에 신고하라고 엄청 화냈다고 한다.[32]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K리그에 승부조작이 성행해 선수들까지 이에 가담했다는 루머가 불거졌고 선수단에게 집합을 걸어 조작 제의가 와도 절대 해서는 안 되며, 이것이 얼마나 중죄인지에 대해 강한 워딩으로 강조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 후에 경남 선수들이 브로커로부터 조작 제안을 받았으나 그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며 김병지는 이를 칭찬했다고 한다. 그리고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경남 FC는 단 한 명의 선수도 가담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33] 이때 김병지는 큰아들 태백이와 함께 프로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밝혔었고 인터뷰에서 유럽처럼 만 16세 이상이면 프로데뷔가 가능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으면 하는 소원이 있다고 말했다.[34] 일단 나이도 최용수 감독보다 1년 위인데다(김병지-1970년생, 최용수-호적상 1973년생, 실제로는 1971년생), 둘은 1998년과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대표선수들이다.[35] 원래 팀 최강희의 골키퍼는 2명이었다. 바로 김승규와 김병지였는데 김승규가 편도선염으로 인해 결장해서 김병지가 풀타임을 뛰었다.[36] 배구의 서브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고,(거기에 문성민은 120km 이상의 초고속서브를 구사한다.) 그런 서브를 네트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근거리에서 직선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반사신경을 필요로 한다.[37] 고1 시절 쭉 163cm였다고 점프해도 골포스트에 닿지도 못했다고 직접 언급했다.[38] 홍명보도 고등학교 입학시에 150 초반대의 단신였지만 졸업했을 때는 181cm였다고 한다.[39] 다만 파퀴아오는 166cm의 키로 열 체급 이상을 증량해 겨우 웰터급 체중을 맞춘 66kg의 선수고, 김병지는 180이 넘는 키에 80kg에 달하는 체중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프로 선수들의 경우 단 한 체급만 달라져도 펀치 파워의 강도가 크게 달라짐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40]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대하셔도 됩니다.'라며 가짜사나이 티저를 올렸다.[41]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4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43] 스페인 국가대표팀을 예시로 들자면 스탯 자체는 카시야스가 더 높지만 유저들은 다비드 데 헤아나 페페 레이나를 주로 기용했다. 그나마 이것도 스탯 준수한 대체자가 있으면 다행인거고, 대한민국 대표팀을 맞추는 유저들은 K리그 더 클래식 시즌 출시 이전까지 이운재, 김병지, 최은성에 비해 스탯이 많이 모자란 김승규를 주전으로 쓰거나, 그 김승규에 키에도 불만족하는 유저들은 그보다도 스탯이 낮은 김진현이나 이범영의 카드를 꾸역꾸역 구해서 강화시켜서 썼다.[44] 가장 가격이 낮은건 최은성. 최은성 역시 김병지와 마찬가지로 골키퍼 치고 키가 작고 같은 02전설 시즌 중에서 김병지보다도 스탯이 낮아서 김병지 카드의 약점이 더 강해진거나 다름 없었다.[45] 사실 이게 거짓말은 아니었던게, 주작은 아니지만 당시 실제로 카드팩 개봉시 확률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추후 공지됐다. 오류가 알려지기 전에 이 일이 일어난 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적.[46] FM에서는 골키퍼의 키도 영향을 끼치나 공중 장악력(Aerial Reach) 스탯이 별도로 있어서 키가 비교적 작아도 이로 인한 디메리트를 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