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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22:17:19

도상록

도상록
都相祿 | Toh Sang Lok[1]
파일:도상록 portrait.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colbgcolor=#fff,#1f2023>1903년 10월 13일
대한제국 함경남도 함흥시
사망 1990년 2월 13일 (향년 86세)
북한 평양시
본관 성주 도씨[2]
국적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직업 물리학자, 이학 교수
분야 핵물리학
양자역학[3]
학력 영생고등보통학교 (졸업)
제6고등학교[4] (졸업)
도쿄제국대학 (이학 / 학사)
소속 송도고등보통학교[5]
신경공업대학
서울대학교
김일성종합대학
국가과학원

1. 개요2. 생애3. 약력4. 기타5.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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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상록(都相祿)은 북한의 물리학자이다.

2. 생애

1903년 함경남도 함흥부에서 출생했다. 10대 초반에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여러 명승고적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역사에 흥미가 생겼다. 중학생 시절 역사 교사와 교류를 하면서 임진왜란 시절 거북선 건조에 물리적 원칙이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자 그 시점부터 물리학에 흥미를 느꼈고, 자연과학으로 전공을 계획했다.

1919년, 영생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일때, 3.1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태형 90대를 선고받았다.# 3.1 운동의 여파로 한반도 내 모든 대학의 원서 접수가 불가능했었고, 결국 제6고등학교[6]에 들어가, 1926년 4월부터 1930년 3월까지 도쿄대학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3. 약력

학부졸업후에 양자역학에 대한 최신이론을 접하고[7]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원 및 만주 신경공업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양자역학 관련논문을 발표했다.

해방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나 미군정의 국대안 파동과 북한의 인텔리 모시기 정책에 회유되어 1946년 월북했다. 여담이지만 도상록외에도 한인석, 정근, 전평수, 여철기 등 다수의 물리학자들도 동반월북했다.[8]

북한은 이를 통해 1947년 인원부족으로 실패했던 중앙연구소 설립을 1952년 성공했으며 도상록과 그 동료들의 노력을 통해서 북한은 소련 연합핵연구소 창설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1959년에는 연구용 원자로를 만들고 입자가속기를 제작했다. 일명 북한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유명해졌다.

도상록은 북한내 원자물리학/핵물리학 과목의 활성화에 노력했다. 학술적으로는 핵입자 모형과 핵내 입자의 나선 운동 및 벗어나는 입자에 관한 방사성 원자핵의 실험&통계적인 조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QCD가 태동하고 있던 시기인 1978년에는 핵내부의 소립자 모형에서의 QCD의 적용대신 파동함수를 고전적인 스칼라장 및 벡터장으로 분리한다음 각 항의 성분을 따라서 클라인-고든 방정식을 적용하여 평균장의 디랙 방정식으로 나타내는 시도를 했다.[9] 제도적으로는 과목의 증설, 원자력연구소의 설립을 통해서 북한내 원자력 학문의 기초를 정립했으며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고 자택에서 연구를 계속하다 86세에 사망했다.

사후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4. 기타

소련, 중공과의 정치적 분쟁으로 북한은 핵무기 기술이전이 요원해지자 자체적인 기술개발에 나섰는데 도상록 등 1세대 북한과학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수학한 북한 네임드 과학자라 그런지 조선신보에서 2010년 도상록에 관한 일대기를 작성한 기사를 내기도 했다.

5. 참고 문헌


[1] 과학원통보에 게재한 그의 논문들에 영어이름이 Toh Sang Lok으로 나와있다.[2] 지재공파 28세. #.[3] 본격적인 핵개발에 착수하기전에 주로 수소, 헬륨 원자의 양자역학적 메커니즘 연구를 했다. 예를 들면, 수소헬륨 분자의 양자역학적 취급, 수소 가스의 양자역학적 이론.[4] 현 오카야마 대학교.[5] 학술 논문 : 低温に於ける水素ガスの量子力學的理論 = 저온에서의 수소 가스의 양자역학적 이론(1927). 해당 링크 6페이지에 초록이 나온다.[6]오카야마대학 법문학부/이학부.[7] 에르빈 슈뢰딩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저 번역본이 출판될 당시 슈뢰딩거의 공리는 양자물리학에서 최신 이론이었다.[8] 이때 물리학과는 물론 이공계 계열 교수들 대부분이 월북했다.[9] 도상록, 핵안에서 핵립자운동의 고전마당론적취급, 과학원통보, 1978 (6),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