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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12:20:57

렌초 데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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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초 데베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비르질리오 포사티
(1914~1915)
렌초 데베키
(1920~1925)
루이지 체베니니
(1925~1927)
}}} ||
파일:렌조데베키.jpg
렌조 데 베키
(Renzo De Vecchi)
<colbgcolor=#0755a1> 출생 1894년 2월 3일
사망 1967년 5월 14일
국적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포지션 풀백
선수경력 AC 밀란 (1909~1913)
제노아 CFC (1913~1917)
제노아 CFC (1919~1929)
감독경력 제노아 CFC (1927~1930)
라팔로 (1930~1933)
제노아 CFC (1933~1935)
국가대표 43경기



1. 생애
1.1. 선수 생활1.2. 이후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3. 뒷이야기4. 수상
4.1. 클럽4.2. 감독

1. 생애[1]

1.1. 선수 생활

1.1.1. 클럽

데베키는 1909년 11월 14일, 만 15세의 어린 나이에 AC 밀란에서 데뷔하였다. 나이로만 따지면 그 파올로 말디니보다 어린 나이에 1군에 데뷔한 셈. 밀라니스타들은 이런 그에 큰 애정을 표했고 Figlio di Dio(신의 아들)라는 별명까지 지어주었다. 그에 걸맞게 AC 밀란의 최연소 득점 기록도 가지고 있고 하프백과 풀백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데베키는 1913년 2만4천리라에 제노아 CFC로 이적했고 1915년에 제노아 소속으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우승을 차지한 이후 바로 1차 대전이 터졌고, 이탈리아 리그는 2시즌간 전면 중단되었다. 1차 대전 시기에 데베키는 통신 회사에서 근무했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리그가 다시 시작되었다. 데베키는 제노아 소속으로 2차례 더 이탈리아의 정상에 오르고 1922년 28경기 무패 행진을 이끄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1924-25시즌에 제노아는 북부 리그 우승을 놓고 볼로냐 FC 1909를 상대로 5번의 시합을 펼쳤지만 5번째 시합에서 0대2로 패배하여 3연패 도전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는 제노아에서 총 18시즌을 보냈다.

1.1.2. 국가대표팀

데베키는 1910년 5월, 헝가리를 상대로 A매치에 데뷔하였다. 무려 16세 3개월의 나이지만 생일 문제로 이탈리아 최연소 출장 기록 보유자인지는 논란이 있다.[2]

데베키는 1912, 1920, 1924년에 걸쳐 통산 3차례의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데베키는 15년의 국가대표 생활동안 총 43경기의 출전 기록을 남겼다. 이탈리아 리그에서는 통산 47골[3]을 넣을 정도로 득점력이 있었지만 대표팀에서는 골을 기록하진 못했다.

1.2. 이후

데베키는 1927년부터 선수 겸 감독으로 제노아를 이끌었고, 세리에 A의 창설 시즌이자 현역 마지막 시즌인 1929-30시즌에는 제노아를 준우승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 시즌을 끝으로 데베키는 제노아를 떠났고 라팔로라는 클럽에서 3년간 감독직을 맡았다. 1933년, 데베키가 제노아에 다시 복귀했을 때 제노아는 세리에 B에 있었고 팀을 다시 승격시킨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감독직을 그만둔 후에는 축구 기자로 활동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이탈리아 초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덩치에 비해 힘이 좋았고 태클과 예측 능력이 뛰어나서 하프백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수비수임에도 볼 컨트롤, 드리블링, 페널티 킥에 능했다.

3. 뒷이야기

4. 수상

4.1. 클럽

4.2. 감독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로돌포 갈비넬리와 함께 논란이 있다. 다만 나이 자체에 논란이 있다기보다는 그 둘 중 누가 최연소 출전 기록 보유자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그 둘을 제외하면 잔루이지 돈나룸마가 최연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3] AC 밀란 7골, 제노아 CFC 40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