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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7 22:44:36

마르틴 페트로프

마틴 페트로프에서 넘어옴
불가리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hi-res-92333762-martin-petrov-of-manchester-city-celebrates-after_crop_exact.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마르틴 페트로프
Martin Petrov
본명 마르틴 페툐프 페트로프
Мартин Петьов Петров
출생 1979년 1월 15일 ([age(1979-01-15)]세)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브라차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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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0cm
직업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 은퇴)
소속 선수 POFC 보테프 브라차 (1995~1996)
PFC CSKA 소피아 (1996~1998)
세르베트 FC (1998~2001)
VfL 볼프스부르크 (2001~200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5~2007)
맨체스터 시티 FC (2007~2010)
볼턴 원더러스 FC (2010~2013)
RCD 에스파뇰 (2013)
PFC CSKA 소피아 (2013~2014)
국가대표 파일: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90경기 19골 (불가리아 / 199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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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스틸리얀 페트로프와 함께 2000년대 불가리아 축구의 마지막 불꽃을 대표했던 에이스. 빠른 주력과 파괴적인 왼발 킥력이 장점이었다. 그는 빠르고 크로스가 좋은 전형적인 클래식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발군의 득점력까지 갖추며 꽤 많은 골을 양산하기도 했다.

2. 클럽 경력

그는 보테프 브라차에서 성공적인 2경기를 치른 후, 이 경기에서의 활약을 통해 19살의 나이로, 스위스의 클럽 세르베트로 이적하게 된다.

2.1. VfL 볼프스부르크

2001년, 그는 분데스리가로 이동해, 자신의 능력을 알아본 VfL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7월 14일에 홈에서 치러진 FC 디나모 민스크와의 인터토토컵 경기에서 홈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고 이 날 데뷔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4:3 승리를 견인,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좋은 출발을 알린 페트로프는 2001-02 시즌 동안 주전 윙어로 기용되어 리그 32경기 동안 6골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단숨에 팀의 핵심 선수로 거듭난다.

2004년 10월 30일에는 마인츠 05를 상대로 혼자서 4골을 득점하는 원맨쇼를 선보이며 4:3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이 시즌 페트로프의 기량은 더욱 무르익으면서 리그 30경기에 나서 12골 1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때는 명실상부 분데스리가에서 탑급 윙어로 활약하던 시절.

2.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5년 여름, 1,000만 유로라는 액수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볼프스에서 4시즌간 보여주었던 활약상을 생각하면 합당한 가격이었다.

첫 시즌부터 레귤러로 뛰며 많은 경기를 소화했지만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에 비하면 확실히 실망스러웠다. 다가오는 시즌에는 적응을 끝내고 나아질거라고 예상했지만 얄꿎게도 2006년 10월 14일에 치러진 레크레아티보와의 경기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며 6개월간 전력에서 이탈해야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28일, 베티스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르며 58분간 경기를 소화했다. 5월 6일에는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신고했으나 팀은 1:2로 패했다.

시즌을 마친 뒤 페트로프는 맨시티토트넘과의 이적링크가 강하게 뜨게 된다. 그리고 7월 25일, 그가 맨시티와 계약 조건에 모두 동의했으며 메디컬 테스트까지 마쳤다는 기사가 보도되었고 하루 뒤 이적을 공식 발표했다. 이적료는 470만 유로로 옵션 포함해서 700만 유로라고 한다.

2.3. 맨체스터 시티 FC

2007년 8월 11일, 그는 팀이 2:0으로 승리한 웨스트햄과의 원정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9월 22일에 풀럼을 상대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이후 뉴캐슬레딩전에서 득점과 3개의 도움까지 기록, 적응기가 필요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초반부터 엘라누 등과 함께 맨시티의 상승세를 이끄는 주역으로 거듭난다. 물론 돌풍 팀들이 늘 그렇듯이 11월 이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며 순위가 내려갔지만 그는 시즌 내내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9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개막 이전 언론들의 예상을 뒤엎은 호성적이었다. 또한 9위로 마무리했음에도 당해 시즌 페어 플레이 팀으로 선정되며 1차 예선부터 UEFA 컵에 출전할 수 있는 진출권을 따내는 쾌거를 누렸다.

이렇게 첫 시즌부터 에이스로 자리잡은 그였으나 2008-09 시즌 개막 이전에 기존의 구단주였던 탁신이 물러나고 만수르가 부임하면서 그의 입지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구단주가 바뀌면서 재정이 여유로워진 시티가 숀 라이트 필립스를 영입한 것도 모자라 이적시장 마지막날에 첼시로 이적할 것이 유력했던 레알 마드리드호비뉴를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인 3250만 파운드에 하이재킹하며 영입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즌 초부터 무릎 부상으로 인해 시즌 절반 이상을 날려버렸고 이듬해 4월 12일, 홈에서 열린 32라운드 풀럼 전에서야 복귀할 수 있었다.

2009-10 시즌을 앞두고 팀이 카를로스 테베스엠마누엘 아데바요르 같이 PL에서 수준급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을 대거 영입되면서 그의 전망은 더욱 어두웠다. 그래도 예상과 달리 시즌 초부터 새 감독인 만치니에게 적지 않은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고 이에 그는 3경기 연속 골을 넣으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비록 확고한 주전은 아니었으나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며 2월 초까지는 꽤 많은 경기에 나섰고 활약상도 크게 나쁘지 않았으나.. 이번에도 부상이 말썽을 일으키고 말았다. 23라운드 스토크 시티전 이후 이전에 당한 무릎 부상이 재발하며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결국 4월 18일, 구단 측에서 페트로프의 시즌 아웃을 발표하며 시즌을 조기에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6월 8일, 시즌이 끝난 뒤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여담으로 맨시티를 나간 뒤 팀을 신명나게 까는 인터뷰를 한 차례 했었는데 시티에서의 커리어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2.4. 볼턴 원더러스 FC

2010년 6월 22일, 계약만료로 시티를 떠난지 2주가 좀 지나고 볼턴 원더러스에 입단한다. 첫 시즌부터 이청용과 함께 좌우 날개를 구성하며 맹활약했고 초중반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두번째 시즌에도 그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팀이 이청용과 홀든의 장기 부상 그리고 무암바가 경기 도중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더 이상 선수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생긴 공백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2부리그로 강등을 맞이하고 만다.

페트로프는 2012-13 시즌 챔피언십에서 전반기를 보내고 팀을 떠나게 된다.

2.5. RCD 에스파뇰

2013년 1월, RCD 에스파뇰로 이적했으나 반시즌간 8경기만을 뛰었고 시즌 종료 후 팀과 계약을 해지했다.

2.6. PFC CSKA 소피아로 리턴

이후 고국 불가리아의 PFC CSKA 소피아로 돌아와 한 시즌을 뛴 후 은퇴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현역 시절 그는 불가리아의 키 플레이어였으며 1999년 6월,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잉글랜드와의 유로 2000 지역예선 경기에 교체로 데뷔하였다. 그러나 8분만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하고 만다. 교체 당한 뒤에는 울먹거리며 필드를 떠나 혹독한 데뷔전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후 UEFA 유로 2004에서 불가리아는 조별 라운드에서 3전 전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둔다.

불가리아는 유로 2004 조별 라운드 3경기 중 마지막 경기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야 팀의 첫 골을 넣었고, 골을 넣은 이 경기마저 불가리아는 이탈리아에 1:2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2006년 9월 2일, 불가리아 대표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루마니아 콘스탄차에서 벌어진 UEFA 유로 2008 지역예선 루마니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루마니아에 0:2로 뒤지던 중, 2분 간격으로 2골을 넣어, 2-2 동점을 만들어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또한 슬로베니아 전과 네덜란드 전에도 득점하였다. 그는 2006년, 돋보이는 활약을 통해 불가리아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