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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2:39:18

앙골라-모잠비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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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모잠비크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2.2. 19세기2.3. 20세기2.4. 21세기
3. 경제 교류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앙골라모잠비크의 관계. 양국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뒤에 독립했고 공식수교했다.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본래 앙골라 지역과 모잠비크 지역은 거리가 멀어서 교류가 없었다. 하지만 내륙 지역을 통해 일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해안가 지역을 발견하면서 앙골라 지역과 모잠비크 지역에 영향을 줬다. 이베리아 연합당시 포르투갈령 지역이었던 두곳이 잠시 스페인령이 되기도 했다. 이베리아 연합이 다시 분리된 뒤에는 포르투갈령이 되었다.

2.2. 19세기

19세기에는 포르투갈이 내륙 지역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영국이 견제하면서 내륙지역을 지배하지 못했다. 포르투갈은 내륙 지역을 차지하여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한데 이으려고 영국군과의 무력 충돌까지 불사했으나 잠비아보츠와나에 대한 영국의 지배력이 너무 강고해서 끝까지 성공하지 못했다.[1]

2.3. 20세기

포르투갈의 지배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포르투갈의 지배는 1974년까지 이어졌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령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앙골라 지역과 모잠비크 지역에서도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포르투갈 정부는 포르투갈군을 파견해 독립운동을 진압했지만, 동시에 격렬한 전투도 벌어졌다.[2] 게다가 남아공에서도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독립군을 지원했다. 결국 앙골라 지역과 모잠비크 지역은 포르투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양국은 독립국이 된 뒤에 공식 수교했다.#

냉전당시에 양국은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90년대에 민주정권으로 바뀌었다.

2.4. 21세기

양국은 독립 이후에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다. 양국은 포르투갈의 지배와 영향으로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고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아프리카 연합의 회원국들이지만, 독립 당시에 지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교류와 협력이 매우 활발하다. 양국은 경제적으로 포르투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타 국가들과의 교류는 모잠비크가 주로 중개해준다. 그러나 최근 앙골라의 자원 민족주의가 모잠비크까지 영향을 주자 포르투갈-모잠비크 관계가 더 중요해진 모잠비크는 중개 무역을 끊고 앙골라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2009년 4월 7일, 잠베지강에서 홍수가 일어나자 콩고민주공화국과 앙골라, 나미비아에서 55만여명이 큰 피해를 입었고 모잠비크에서도 홍수경보가 발령됐다.#

2011년 8월 17일 ~ 18일, 남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앙골라, 남아공, 모잠비크, 짐바브웨, 나미비아, 콩고민주공화국, 에스와티니, 레소토, 탄자니아, 잠비아, 보츠와나가 참여했다.#

2013년 11월 30일, 앙골라에서 모잠비크로 향하던 비행기가 나미비아 북부에 추락해 모잠비크, 앙골라, 포르투갈, 중국, 프랑스, 브라질 등 탑승객 33명이 사망했다.#

2021년 7월 29일, 모잠비크 북부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가 일어나자 남아공 등 다국적군들이 파병했고 앙골라도 모잠비크 북부에 20명의 군인을 파병하기로 했다.#

3. 경제 교류

양국은 자원부국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석유 생산이 양국의 주요 산업에 속해 있다.#

4. 관련 문서



[1] 참고로 잠비아와 보츠와나 일대에 대한 영국의 지배력이 이토록 강고했던 이유는 애당초 영국이 이 지역에 진입할 때 지역 내의 기존 봉건 군주들을 영국에 호의적이도록 적극 포섭하여 사실상 이중구조 비슷하게 지배를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구조로 지배를 하면 영국 입장에서도 형식적으로라도 지역 토착 군주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데에 엄청난 비용이 듦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포르투갈을 방해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제국주의가 어느 시점부터는 경제적 이익 싸움조차도 아닌 그냥 국가들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됐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2] 1950년대에 포르투갈령 고아는 인도가 되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