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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3 08:40:08

바스티유 요새

생 앙투안 관문에서 넘어옴
파일:Bastille_Exterior_1790_or_1791.jpg
Bastille Saint-Antoine/La Bastille
1. 개요2. 역사3. 철거4. 현재5. 기타6. 미디어

1. 개요

프랑스 왕국의 수도 파리 도성의 동문인 생 앙투안 관문 방어 목적으로 축성된 구조물.

도시에 부속 방어시설로 추가된 건축물이므로 성채, 즉 시타델이라 할 수 있으나, 시타델이라 하기엔 용도가 파리로 들어가는 다리를 막는 블록 하우스나 다름 없어 여러모로 애매하다. 보통 포트리스나 시타델로 제대로 이름 붙지 못하는 시설들은 실제로 기능이 애매해서 그렇게 애매한 이름이 붙는 것들인데 바스티유도 마찬가지다. 물론 보통 이런 애매한 축성물들은 한국어로 대충 축성물을 죄다 성으로 퉁쳐 부르듯 포트(요새)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어 원문 바스티유는 보루, 작은 요새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배스천(Bastion)의 옛 프랑스어 표현이므로, 이 시설은 문자 그대로 '생 앙투안의 작은 요새'가 되는데, 동아시아 축성 스타일로는 '생 앙투안 돈대'쯤으로 부르면 딱 맞다. 즉, 한국어로 바스티유 요새라고 부르면 요새 요새(...)가 되어버리므로 그냥 바스티유라고 하거나, 바스티유 생 앙투안, 혹은 영어로 배스천 세인트-안토니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지만, 이 시설이 원체 유명해진 탓에 신경 쓰지 않는다.

2. 역사

파일:Bastille_reconstruction_1420.jpg
초창기의 바스티유 요새와 생 앙투안 관문.
본래 바스티유 요새는 1370년에 파리 시의 방어체계[1] 중 일부로, 파리의 동쪽 성문인 생 앙투안 관문으로 오는 적을 견제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즉, 일종의 치성 역할을 하게 만들어진 것인데 치성이라 하기에는 너무 커서 성채, 즉 시타델과 비슷하고, 그렇다고 시타델로 치자니 다리를 수비하는 역할이라 여러모로 분류하기 애매하고 실제 기능도 애매했다. 구조적으로는 치성도 성채도 블록 하우스도 아닌 아성, 즉 천수각 같은 지휘용 누각인 형태란 점에서 더욱 정체성이 모호한 시설이고, 위치 또한 주요 다리이긴 하나 아주 중요한 다리는 아닌 파리 동쪽 옆구리의 애매한 자리에 있다.
파일:La_Bastille_20060809.jpg
16세기 이후 증축된 바스티유 요새. 생 앙투안 관문도 3공식의 대문으로 확장되었다.
16세기가 되자 아예 독자적인 요새로 개조되었다. 다리를 지키는 역할은 유지되었으나, 시설 자체는 다리에서 분리되었다. 그 당시 보방 후작이 받아들인 선진 축성술이던 성형 요새를 바탕으로 파리 성벽이 증축되자 바스티유 요새의 기단부도 이탈리아식 삼각 보루 모양으로 변경되었으며, 파리 시내로 이어지는 다리와 분리되어 그 다리 옆에서 침입을 방해하는 시설로 정돈되었다. 즉, 적어도 이 시기에는 체급은 애매해도 요새 혹은 시타델이 맞다.

그러나 17세기 이후로는 파리가 위협 받는 일이 없어져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 결국 잉여로 놀게 된 요새를 프랑스 정부에서 감옥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에서 등장하는 정치범들이 갇힌 바스티유 감옥의 이미지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2.1.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파일:Prise_de_la_Bastille.jpg
{{{#000000 '《바스티유 습격(La prise de la Bastille)》', 장피에르 루이 로랑 위엘, 1789, 종이에 수채.}}}
프랑스 혁명 당시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미지 및 앵발리드 무기고에서 노획한 총포류의 화약을 추가로 획득하기위해 화약이 저장되어 있다고 알려진 바스티유 요새는 시민군들의 공격을 받아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2]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3. 철거

파일:2560px-Démolition_du_château_de_la_Bastille,_MRF_-_Vizille.jpg
철거되는 바스티유 요새.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구 절대 왕권의 자취라는 사유 및 시가지 증축 과정으로 인해 요새는 철거되었다. 요새의 건축 목적이던 생 앙투안 관문 역시 이 과정에서 철거되어 오늘날 이 두 건축물은 남아있지 않다.
파일:1024px-Elephant_de_la_Bastille_aquarelle_de_Jean_Alavoine.jpg
바스티유 코끼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랑스 제1제국 시기에는 노획한 대포들을 녹여 코끼리 모양의 전망대를 철거된 바스티유 성채의 자리에 세우려 하였고, 석고로 된 목업을 먼저 세웠으나 워털루 전투 이후 나폴레옹이 실각하면서 계획은 엎어졌다. 목업으로 만들어둔 석고상에는 쥐들과 온갖 부랑아들이 몰려들어 한동안 문제거리가 되다 1846년 철거되었다. 참고로 이 코끼리 석고상은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도 등장하는데, 부랑아 시절의 가브로슈가 정착한 곳으로 나온다. 2012년 톰 후퍼 영화판에서도 이 모습은 고증된다.

4. 현재

파일:Traces_Sol_Bastille_Place_Bastille_-_Paris_IV_(FR75)_-_2021-11-26_-_3.jpg
오늘날 남은 바스티유 요새의 흔적.
현재 바스티유 요새의 자리[3]에는 파리 오페라 극장이 들어서 있으며 과거의 흔적은 도로의 점선으로만 남아있다. 극장 이외에도 근처 광장에는 요새의 이름이 남아있으며, 7월 혁명 기념탑도 여기에 있다. 바스티유역으로 해당 지역에 접근 가능하다.

5. 기타

파일:Carnavalet_-_Modèle_réduit_de_la_Bastille_01.jpg
바스티유 성채를 모형으로 만든 것도 있는데, 이 모형의 재료는 원래 바스티유 성채를 짓는데 사용했던 벽돌로 만든 것이다.

6. 미디어

프랑스 혁명과 관련한 부분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도 같이 볼 것. 이외에도 어딘가의 성의 감옥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대부분 바스티유의 이미지를 본뜨는 경우가 많다.

소공녀에서도 주인공 세라 크루가 자신들의 처지를 바스티유에 갇힌 공주라며 상상하기도 하고, 파티를 민친 교장과 라비니아 때문에 망쳤을 때 성에 사는 공주는 없어, 바스티유의 죄수만 있을 뿐이지라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라가 프랑스계 영국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절묘한 비유다.

레 미제라블에서는 시기상 바스티유 성채 자체는 등장하지 않지만, 바스티유 터의 코끼리 조각상이 가브로슈와 부랑아들이 지내는 곳으로 묘사된다.
[1] 정확히는 샤를 5세 성벽.[2] 사실 둘 중에서는 후자가 더 명확한 이유였다. 당시 앵발리드는 문자 그대로 무기고의 역할만 했기 때문에 총포류는 많아도 탄약은 비교적 적었으며, 바스티유 요새 내에는 비록 감옥으로 용도가 변경되었을지언정 로네이 사령관 휘하의 주둔군이 파리 경계근무 및 범죄자 감시를 위해 상시 주둔하던 관계로 이들이 쓸 탄약고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스티유 감옥에 수용된 정치범들의 경우 이미 이 시점에서는 수가 많지 않았다.[3] 현대 파리 시의 구획 상으로는 4구, 11구, 12구 경계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