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uel Michael Fuller
영화는 전쟁이다!
1. 개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1912~1997.2. 생애
매사추세츠 우스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12살때부터 신문사에서 일했다. 처음엔 신문사에서 인쇄공 등으로 일했으나, 총명함을 인정받아 17살 때 신문사(뉴욕 이브닝 그래픽)의 범죄 담당 취재 기자가 되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범죄 사건을 파헤친 책을 내고 심지어 펄프픽션 소설가 활동도 병행해서 하는 등 일찌감치 다재다능함을 보였다.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미 육군으로 참전하여 무공을 세워서 훈장을 타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6에 Hats Off라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놨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 겸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197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에 영향을 준 거장으로 평가 받지만[1] 미묘하게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나 걸작을 만드는 타입은 아니었고, 오히려 50년대에는 B급 영화 감독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미국의 3대 거장이라 불리며 사랑 받았는데, 평론가가 사랑한 B급 영화 감독이란 점이 존 카펜터를 떠올리게 한다.
할리우드는 장사꾼들이 돈벌이 사업을 하는 곳이라며 주류 헐리우드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으며 비주류로 살아갔다. 《지옥의 영웅들》은 50분 가까이나 잘려나갔으며 《마견》은 살아생전 제대로 개봉도 하지 못했으며 유작인 《마담 엠마》(Street of No Return)도 1시간이 넘게 잘려나갔으며 한국에서는 그저 그런 에로틱 영화로 소리소문없이 개봉했다.
암튼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존경을 받아 나중에는 유럽에 가서 유럽의 예술감독 영화들에서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하고 그랬다. 장뤽 고다르는 새뮤얼 풀러를 존경해 자신의 《미치광이 피에로》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빔 벤더스도 《아메리칸 친구》에서 풀러를 출연시키기도 하고...
미국에선 저예산 감독으로 저평가되던 이 유대인 감독은 고다르나 벤더스 같은 유럽 예술 영화거장들에게 존경받던 선배 예술 감독이었다. 때문에 풀러는 이들 영화에서 종종 카메오로 나온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전작 모독이란 악평을 듣었던 《사령전설》(스티븐 킹의 세일럼스롯 속편으로 래리 코언이 감독했다. 참고로 '사령전설'은 일본 제목으로 원제는 '세일럼스롯으로 돌아오다.' 80년대 '공포의 별장'이란 제목으로 방영한 2부작 티브이 드라마가 전작 '세일럼스롯'이다.)같은 저예산 호러에서도 주저없이 배우로도 나온 바 있다.
한국에서는 유작인 마담 《엠마》가 그냥 그런 에로틱 영화로 홍보되어 소리소문없이 개봉했다. 1963년작인 《Shock Corridor》는 '충격의 복도'라는 제목으로 80년대에 비디오로 소리소문없이 나왔으며 범작 《샤크!》(1969) (미국 배급사가 트로마다....)는 '금괴작전'이라는 제목과 '샤크'라는 원제로 역시 소리소문없이 비디오로 나왔고 《마견과 지옥의 영웅들》이 비디오로 나왔으며 두 작품 모두 지상파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3. 작품 일람
- 1949년 나는 제시 제임스를 쐈다
- 1950년 아리조나의 남작
- 1951년 철모
- 1951년 픽시드 베이어니츠! [2]
- 1952년 파크 로우
- 1953년 사우스 스트리트의 소매치기
- 1954년 헬 앤 하이 워터
- 1955년 대나무집
- 1957년 차이나 게이트
- 1957년 화살의 질주
- 1957년 40정의 총
- 1959년 금지!
- 1959년 진홍색 기모노
- 1961년 미국의 암흑가
- 1962년 메릴의 약탈자들
- 1963년 충격의 복도
- 1964년 네이키드 키스
- 1969년 샤크!
- 1980년 지옥의 영웅들
- 1982년 마견
- 1984년 밤의 도둑들
- 1989년 돌아오지 않는 거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