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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1-21 17:50:56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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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주식회사 참언론
설립일 2007년 8월 17일
대표자 표완수
본사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중림로 27, 3층
(중림동, 가톨릭출판사빌딩)
홈페이지[1]
1. 개요2. 역사3. 평가4. 역대 임원 및 간부
4.1. 대표이사4.2. 편집국장
5. 성향6. 주요 보도 및 관련 논란들
6.1. 오사마 빈 라덴 기사6.2. 북한 관련
6.2.1. 남문희 기자의 대북관 중도화
6.3. 메갈리아 옹호 논란
6.3.1. "분노한 남자들" 기사 게재6.3.2. 단체 절독 사태6.3.3. 후속기사 등장6.3.4. 이후의 행보
6.4. 시사인 편집부 욱일기 합성 태극기 논란
6.4.1. 정리6.4.2. 이후 반응6.4.3. 고재열 기자의 시사IN이 일본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발언6.4.4. 재구독 해달라고 구걸 전화
6.5. 고인드립 만평 사건6.6. WHO의 게임중독 질병화 관련 논란 6.7. '20대 남자 현상' 연재 기사

1. 개요

2007년에 창간한 대한민국의 시사 주간 잡지이다. 캐치프레이즈는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주간지이다. 정직(正直)한 사람들이라는 것과 시사저널사태로 정직(停職), 즉 직무정지상태였던 사람들이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일본의 유력 주간지인 슈칸분슌(주간문춘/週刊文春)이 높은 신뢰도로 인해 시사IN에 견줄 만하다고 하는 카더라 소리가 있지만 정작 슈칸분슌은 시사IN의 자매결연 잡지인 슈칸킨요비[2]보다도 신뢰도가 낮은 편이다. 시사in 창간 당시에는 슈칸킨요비 및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창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2. 역사

원래 시사저널을 퇴사한 기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2006년 시사저널의 이철현 기자는 삼성그룹과 당시 이학수 경영전략실장에 비판적인 '삼성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커졌다'라는 기사를 작성해 제출했는데 삼성 고위 관계자들은 이 기자와 이윤삼 편집국장과 장영희 취재총괄팀장에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 기사 게재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를 거부하자, 전직 중앙일보 부회장 출신인 금창태 당시 사장에게 연락을 해 게재를 막으려 했다. 금창태 사장은 전력과 밥줄[3]상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와 친분관계가 있었기에 데스크에 이 기사를 뺄것을 지시했고, 기자들이 이에 반발하자 편집국을 거치치 않고 인쇄소에 직접 사람을 보내 관련기사를 삭제하고 광고를 넣을 것을 지시했다.

다음날 잡지가 발행되고서야 이를 알게 된 이윤삼 편집국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기자들은 편집권 수호를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파업을 시작했다. 이를 '시사저널 사태'라고 하며, 당시 시사저널 기자 총 25명 중에 23명이 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경영진은 파업참여 기자들에게 무기정직 처분을 내리고, 인턴들을 임시 채용해서 대충 휘갈겨쓴 땜빵기사들로 발행을 강행했다.[4] 그리고 용역업체를 동원해 파업 중인 기자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는 등[5] 양측의 대립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파업기자들은 이 기간에도 각자 취재는 계속해서 '우리가 진짜 시사저널'이라면서 오마이뉴스틀 통해 기사를 선보였다. 이 사건은 재벌의 언론 길들이기라는 측면에서 PD수첩에서 다루는 등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2007년 경영진과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기자들은 시사저널을 모두 퇴사하여 새로운 잡지 창간을 준비하면서 이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다. 결국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 23명 중에 22명, 그리고 직원 6명은 시사저널을 퇴사하고 2007년 9월 새로운 잡지인 시사in을 창간했다[6].

문제가 된 기사 표제에도 볼 수 있듯이, 기사는 삼성 이건희보다 2인자라 불리던 경영전략실장 이학수를 겨냥한 기사였다.[7] 소대장보다 바로 윗 고참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허구한날 언론에 노출되는 이건희보다 이학수에 대한 비판기사가 삼성에는 더 아팠던 듯하다. 그야말로 집요하게 기사 게재를 막으려 했던 이유가 그런 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 관련 내용은 이 기사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그날 〈시사저널〉에서는 무슨 일이…

............는 대중에게 알려진 사실이고 실상은 좀 다르다.

주진우 기자는 나중에 자신의 저서를 통해 진짜 이유를 밝혔다. 이학수 기사가 아니라 이건희의 개인비서인 박명경 상무에 대한 비판기사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 제목의 '이건희 여자의 엘리베이터[8] 승진'이었고, 삼성의 집요한 방해로 결국 이 기사도 나가지 못했다. 저서에서 주진우 기자는 돌려서 이야기 했지만, 책을 읽어 보면 이건희와 박명경이 오랜 내연 관계로, 홍라희도 둘의 관계 때문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으며,[9] 박명경이 삼성 조직 내에서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세력을 키운다는 내용.[10]

박명경은 전문대학 출신인 인물이었는데, 1985년 삼성에 입사해 95년 삼성생명 과장, 98년 삼성전자 차장, 2002년 상무보, 2005년 상무까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으며, 입사 후 줄곧 삼성그룹 비서실과 전략기획실 등에 몸 담으며 이건희 회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역할을 한다. 박명경은 이른바 'MK'라는 이니셜로 삼성 내부의 문건에서 지칭되던 사람이었는데, 삼성에서 이니셜로 불리는 사람은 이건희 일가[11] 외에 박명경이 유일했으며, 당시 삼성 그룹의 몇몇 핵심 수뇌부만이 소유하고 있던 타워펠리스의 꼭대기 층 124평짜리 펜트하우스를 무려 2채나 혼자 소유했을 정도였고, 이건희 회장 가족 식사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던 인물이었다.

사실 이건희의 여자관계를 다룬 기사가 문제였나, 2인자 이학수를 비판한 기사가 문제였나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사태의 본질은 삼성그룹이 자신의 총수에게 불리한 기사를 인맥과 광고를 이용해서 방해하였고, 사실상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재벌이 돈과 인맥을 무기로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3. 평가

좋은 평가를 받은 주간지 중 하나. 시사주간지중 유료부수가 가장 많다. 2011년 7월을 기점으로 한겨레21을 넘어 주간지중 유료부수 1위를 유지해왔다. 이는 태생에 내재한 비판 정신, 시사저널 전통 멤버 특유의 필력, 광고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매체 색깔에 기인한다.

그러나 최근들어 비판받으며 세도 기울고 있다. 2012.7-2013.6 54,422부수를 발행한 것을 끝으로 지속적으로 유료부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엔 더더욱 감소했다. 오죽하면 편집국장이 이를 칼럼에 호소했을 정도.

이유는 인터넷 미디어 소비 경향, 문재인 정부의 등장 등이 있지만 시사in에 내재된 고질적 병폐가 드러난 이유가 크다.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우리나라는 극성 지지자보다는 부동층이 많은 편이고 이는 미디어소비 경향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조중동을 본다 해서 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고 시사in을 본다 하여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 그러나 시사in은 자유한국당-조중동-재벌기업 진영의 경우 거침없이 펜촉을 휘갈기며 핵심을 짚고 진실을 끌어내지만 더불어민주당-한경오-민주노총-좌파시민단체에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거나 매우 따뜻하게 휘갈긴다. 이는 '관점이 있는 뉴스'가 아니냐는 레토릭으로 윤색될 수 없다. 왜냐하면 관점을 갖는다 해도'색깔', '편집방향'에 그쳐야할 뿐, '공정성'마저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민연금, 공공부문 민영화, 한미FTA 비판보도는 정권차원만이 문제가 아닌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한민국의 정책임에도 이명박, 박근혜는 가차없이 까면서 노무현의 경우에만 '노무현 정부도 자유롭지 않다.'식으로 교묘하게 객관화하여 기술한다. 더군다나 북한의 경우 남문희 기자의 통제 아래 있는 듯 그 누구도 북한에 비판적인 글을 쓰지 않는다. 아래 항목에 상술되어 있지만 시사in기자 그 어느 누구도 북한의 명백한 잘못인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또는 일방적인 협의 파기에 북한을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고 가볍게 까는 척 하면서 결국 화살을 정부의 대응으로 돌린다. 시사in의 경우 최근 변진경 기자의 난민 아동 이슈를 비롯해 중국, 아랍 등의 인권 문제를 많이 다루는데 좋은 평가를 받음에도 신기하리만치 북한 인권은 절대 다루지 않는다. 이런 여당친화적 보도태도는 특정 독자의 기호에 영민하게 대처하여 좌파 언론의 지위를 공고하게 할지는 몰라도 결국엔 그들이 증오하는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편향언론으로 돌아가는 전조음(前助音)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반 지향했던 '공정 언론', '끈질긴 취재', '독창적인 탐사보도' 등 그들의 기조는 간데 없고 아직도 과거 정부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이 있다. 언론은 과거도 철저하게 조명하되 현재를 균질한게 분석하고 미래를 조망해주는 역할도 하여야할진대 최근 북미관계경색, 부동산폭등, 코스피/코스닥붕괴 등 국제/경제이슈가 쏟아짐에도 아직도 과거타령하며 MB정부 비판을 그냥 기획기사도 아닌 커버스토리(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 582호 2018-11-13)로 올린 것은 이들이 앞으로 문재인 정부에 취할 스탠스를 짐작케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무척 무겁다. 국내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의 홈페이지를 모두 통틀어도 시사인 홈페이지보다 무거운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저런 제약이 있는 PC방 브라우저나 성능이 낮은 모바일기기의 브라우저로 접속할 때면 시사인 홈페이지만 제대로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4. 역대 임원 및 간부

4.1. 대표이사

4.2. 편집국장

5. 성향

잡지 성향은 스스로는 중도성향을 지향한다고 하나 창간 기원과 그냥 한 번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좌파 성향 논조가 강하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삼성그룹, 조중동종합편성채널 등의 보수 세력/언론, 재벌에게 집요하게 음모론을 꾸미고 비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특히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들에게는 명과암이 분명 존재함에도 긍정적인 기사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시사in 초기(2008~2011)에는 여당야당할 것 없이 거침없는 칼질을 하기로 유명했으나 탄핵정국 이후 들어서부터 독자층을 의식한 탓인지 더불어민주당, 특히 문재인 정부에는 매우 관대하며 북한에게는 관대함을 넘어 대변하는 수준이라 대표적인 병폐로 지적된다.

유료 발행부수 기준으로 주간/월간 시사잡지 중 발행 규모가 업계 2위이다. 참고로 1위는 한겨레21이다. 2011년 발표 기준 순위[12] 2013년 발표 기준으로 업계 1위에 올라섰다.2013년 발표 기준 순위 2017년에도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시사주간지 대부분이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2017년 발표 기준 순위

특히 이 잡지의 주진우 기획취재팀장(2013~)은 2004년 시사저널 재직 당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일가의 각종 의혹을 정면으로 제기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 당시 수만 명의 순복음교회 신도들이 시사저널 건물 앞에 모여서 시위를 벌였다.[13] 또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관련 특종, BBK 의혹 등의 권력형 비리 관련 의혹을 여러 차례 터트린 바 있으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중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내곡동 사저[14],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1억 피부클리닉 의혹 등을 제기하는 등 선거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안기부 X-파일을 보도했던 MBC 이상호 기자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사회부분에서는 야구팬들 사이에선 올드야구팬으로 알려져 있는 천관율 기자가 현실사회와 야구를 연계해서 분석한 기사가 관심을 끌기도 했다. 특히 김성근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한 이후 천관율 기자가 김성근 감독을 분석한 트위터와 기사가 야구팬들 사이에서 상당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트위터. 김성근 분석기사1, 기사2, 기사3.

하지만 2016년 들어서는 결론을 미리 내놓고 빅 데이터와 편향된 분석으로 상당한 욕을 먹었다. 특히 메갈리아와 여성혐오, 페미니즘을 다룬 기사에서 어설픈 빅데이터 분석에 이해하기 힘든 논리를 전개하면서 상당한 비판을 들었다. 이 부분은 하단의 메갈리아 옹호 논란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굽시니스트본격 시사인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6. 주요 보도 및 관련 논란들

6.1. 오사마 빈 라덴 기사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당한 후 오사마 빈라덴 특집 기사를 내보냈는데, 출생부터 사망까지 오사마 빈라덴 일생이라는 기사에서는 알 카에다의 자기홍보적인 내용을 담았다. 기사의 출처를 밝혔는데, 탈레반 지도자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라고. 사실 알 카에다와 오사마가 밀착 취재가 가능한 대상은 아니라 취재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나, 테러리스트 조직의 동맹 조직, 동맹 두목 찬양의 신뢰도 빵점 인터뷰를 가감없이 게제한 것.

6.2. 북한 관련

조금 과장하면 북한 관련 보도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수준. 기본적으로 남문희 대기자 발 기사들은 크게 3가지 키워드로 요약되는데 '북한의 치밀한 외교전략', '서방세력은 나쁜놈', '우왕좌왕 대한민국 정부'로 요약된다.

억측보도도 많은데 장성택의 고향을 청진이 아닌 원산으로 표기한 것이나링크, 밝히지 못할 취재원을 근거로 북한 막후실세를 김설송이라 칭한 것, '김정은 후계자설은 사실이 아니'라 한 것들 등 수도 없이 많다.

무엇보다 시사in이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은 삼성, 정부, 법원, 국회 온갖 힘있는 기관들에 칼질을 하고 다니면서도 정작 북한에 대해서는 찍소리 못하고 허구헌날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만을 비판하는 지점이다. 예컨대 천안함 사건은 명백히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졌고 현 대통령도 인정한 사실이다링크 연평도 포격사건은 북한이 대놓고 자신들이 행했음을 밝혔지만 이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당시 이명박 정부에게만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심지어 민간인 박왕자 씨가 피살된 사건은 명백하게 북한에 의해 자행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테러임에도 북한을 까지 못하고 '피격 사건은 계획된 도발인가'식으로 객관화하여 교묘하게 북한입장을 대변한다. 개성관광 중단 검토는파국의 도화선

이게 남문희 대기자만의 책임은 아닌 것이 모든 기자들이 이 기사를 읽고 있을 것이고 데스크를 통과해 편집장이 승인을 하는 형태로 주간지가 작성된다는 특성에 비추어보면 이는 매체자체가 가진 고질적 병폐이자 한계로 진단할 수 있다. 게다가 문정우 기자도 객관적인 척 북한을 교묘히 객관화하는 칼럼을 쓰는데 이는 2018.3.20.자 시사in에 업데이트된 북한 관련 칼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격주로 번갈아 보지 않고 매주 장정일의 독서일기만 보고 싶다.
평양에 가서 직접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보고 그 체제를 둘러본 김대중 대통령의 평가는 후했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 전반에, 특히 한국에 해박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 기꺼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 문정우 (시사in 18.3.20.)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종종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특히 미국은 북한과 싸우는 데 아니라 스스로의 머리와 가슴이 다투는 통에 쩔쩔매는 듯 보였다. - 기꺼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 문정우 (시사in 18.3.20.)

황당할 정도의 이런 안일한 인식은 이게 정말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주간지가 맞나 착각을 일으킬 정도. 자국민을 굶기고 학살하는 독재자의 악행을 젖혀두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건 자주 쓰이는 요긴한 사술이다. 연쇄살인범도, 극악무도한 독재자도 누군가에겐 좋은 아버지이고 나이스한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이게 폭정을 덮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고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하고도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NLL을 침범하여 우리 국군 장병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제2연평해전) 또 2010년 3월 26일 어뢰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을 공격하여 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로도 모자라 7개월 뒤 대한민국 민간인 거주 지역인 연평도를 포격하여, 23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그 이전인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을 간 박왕자 씨가 조선인민군 육군 초병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는 박왕자 씨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였고 너무 당연하잖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 전면 중단하는 5.24조치를 발표하였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공격 주체가 북한으로 워낙 명확했고 심지어 민간거주지역을 포격하여 민간인 사망자가 2명이나 나와 정부는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음을 천명하였다. 이를 두고 북한을 까지 못하고 한국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고 짚는 건 시사in에서 오래도록 반복되어 온 북한관련 보도 공식 '북한의 치밀한 외교전략', '서방세력은 나쁜 놈', '우왕좌왕 대한민국 정부'의 재현이다. 다른 걸 떠나 김정일은 군대를 동원하여 우리나라 영토를 포격해 많은 장병 심지어 민간인들까지 살해했음에도 이를 비판하지는 못할 김정일에 대한 찬사만을 인용하여 소개한 칼럼은 다른 기자들이 힘들게 쌓아올린 시사in에 먹칠을 하는 행위이다.
부시 대통령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김정일 위원장을 피그미, 폭군, 위험한 사람, 버릇없는 아이라고 불렀다. 미국의 북핵정책은 내부갈등, 비일관성, 외교적 무능으로 점철된 대실패였다. - 기꺼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 문정우 (시사in 18.3.20.)

이 대목에선 실소가 나온다. 김정일에 대한 평가 아니 일국의 수반, 원수를 평가할 때에는 그의 국정운영, 정책, 경제성과 등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왜 저리 비판적으로 평가하냐'는 뉘앙스를 노리며 북한에 대해서는 건조하게 옹호하고 미국의 정책을 '대실패'로 규정하는 문정우 기자의 인식은 매체 자체의 신뢰를 의심케 할 정도이다.

6.2.1. 남문희 기자의 대북관 중도화

2018년 12월 남문희 기자의 페이스북을 보면 일방적으로 북한을 옹호하는 친북 성향을 보였던 과거와 달리 상당히 합리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일방적인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북한의 주장에 반대하며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15]

6.3. 메갈리아 옹호 논란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문구를 프린트한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교체된 게임 회사 넥슨의 성우 사례도 있다. 그녀가 한 일이라고는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쓰인 메갈리안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사실뿐이다. 이를 둘러싼 논쟁에 적극 참여했던 웹툰 작가들에게도 여러 방식의 불이익이 주어졌다. 이 모든 것은 페미니즘을 적대시하는 성차별주의자들의 조직적이고도 집중적인 민원 때문이다. - "‘원본’이 사라지면 ‘미러링’도 사라진다", 『시사인』 465호.
통권 465호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장혜란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논조의 글을 기고했다.'원본'이 사라지면 '미러링'도 사라진다 이에 대해 독자들의 항의와 구독철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뒤이은 통권 466호에서는 본지의 장일호 기자가 <기자의 프리스타일>이라는 짧은 코너를 통해 항의하는 독자들에게 훈계질하는 을 쓰면서 사태는 확대되었다.

이후 시사in 측에서는 논란을 의식했는지 웹사이트에서 해당 기사를 내렸다. 그러나 정정보도 혹은 사과 등의 언급은 없었다. 그러다가 8월 27일 해당 기사를 다시 업로드했는데, 게시일이 통권 제465호의 같은 꼭지 기사들(업로드 일자 8월 18일)보다 이전 날짜인 8월 12일자로 되어 있었다.시사인 홈페이지 내 '기자들의 프리스타일'

이후 발간된 통권 제467호에서는 문제가 되었던 메갈리아의 티셔츠 사진을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시사인 고제규 편집국장은 제467호의 서문에 <편집국장 브리핑>이라는 타이틀로 직접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 커버스토리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예상된다. 이 기사 때문에 절독하겠다는 구독자 의사도 나는 소비자 권리로서 존중한다[16]..(중략) 그러나 절독을 하기 전에 내곡동 사저 건,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일베 등 그동안 본지가 다루었던 기사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 주기 바란다.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기사가 아니었다. 팩트에 충실한 기사였다. - "판단은 독자에게", 『시사인』 제467호.#
편집국장의 글은 한마디로 자신들의 커버스토리가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건 인정하고 그로 인해서 절독 하실 독자분들도 계시겠지만, 본지가 창간한 이후 지금까지 써 온 굵직굵직한 큰 기사들도 '팩트에 충실'했음을 바탕으로 써 온 것들이며, 위의 남문희 기자 썰을 다시 읽어보자 이번 기사 역시 그리 했기에 같은 무게감을 가지고 믿고 읽어 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기사는 불행하게도(!) 팩트에 충실했다는 그의 뜻과는 달리 사건의 정황을 왜곡하고 메갈에 반대한 남성들을 여성 혐오자로 몰고 있는 기사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다.
467호 미리 보기 영상.[17]
사실 시사in은 이미 메갈리아에 대해서 수차례 다룬 바가 있다. 외부 필진의 에세이도 더 있었고[18], 기사도 존재했다[19]. ‘메갈리아의 딸들’ 여성 혐오를 말하다, ‘메갈리안’…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미러링이란 여성혐오의 문법에 익숙하고 충분히 갖고 놀 수 있으면서도 과속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능한 외줄타기다. …(중략)… 외부의 시선이야 어떻든, 오랫동안 온라인 공간의 여성혐오에 시달리며 단련된 이 ‘무서운 언니들’은 당분간 충격요법을 유지할 생각이다. 메갈리안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에 걸린 한 문답이 위 질문을 다룬다. “좀 더 성숙하게 논리적인 분위기로 바꾸자? 그 짓 10년 넘게 했다. 돌아온 거 없다.” - "‘메갈리안’…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시사인』 제418호.
시사인은 미러링에 대해서 '의도는 좋았고 잘만 쓰면 효과적이다' 같은 식으로 표현했으며, 이들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는 상당히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더 중요한 질문도 있다. ‘혐오를 혐오로 돌려주는 방식’은 습관적으로 여성혐오 언어를 써왔던 남성에게는 충격요법으로 먹혀들기도 했다. 하지만 맥락 없이 접해야 하는 온라인 공간의 다수 구경꾼에게 메갤발 혐오 발화는 그저 ‘여자 일베의 등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전략은 얼마나 유효할까. 메갈리안에서도 그를 둘러싼 논쟁이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 위의 기사.

시사in은 메갈리아를 모르는 게 아니고, 미러링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결과가 "여성혐오를 먼저 없애면 남성혐오도 함께 없어질 것이다" 이다. 이는 이전까지 보여주던 분석적 논리를 내던져 버리고, 한쪽 진영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치관에 따라 같은 사건에서도 어떤 언론은 개인의 책임을, 어떤 언론은 사회의 책임을 더 강하게 물을 수 있다지만, 언론은 특정세력의 확성기가 아니다.

다만 시사인이 진보 진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혐오발언마저 같은 진영이라고 쉴드치는 상황까지 다다른 것을 비판한 것이다. 혐오발언은 그 자체로 비판 대상이지, '착한 혐오발언'이나 '나쁜 혐오 발언'은 존재하지 않으며, 혐오 발언을 쉴드 치는 시점에서 언론사의 책무를 집어던진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몰카 문제는 이미 메갈리아 등장하기 10여 년 전부터 공중파 뉴스에서도 수시로 보도하고 여러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도 중요하게 다뤘던 방송이었으며 메갈리아의 등장으로 주류 언론들이 그와 관련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오히려 메갈리아의 등장으로 남녀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그런 문제들이 묻혀버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메갈리아의 비판 의의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켜 정작 다른 중요한 문제들이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진보 팟캐스트 망치부인이 남녀갈등을 국정원의 음모라고까지 했었는지 생각해보자.

즉,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정이 나빠서 나쁘게 평가하는게 아니라, 과정과 결과 모두 나빴기 때문에 나쁘게 평가하는 것이다. 메갈리아의 과정이야 그렇다 쳐도 메갈리아의 등장으로 여혐을 하던 남자들이 반성하거나 갱생한 결과를 나타내는 통계자료를 제시해야 메갈리아를 쉴드칠 수 있을 텐데, 메갈리아의 등장으로 여혐이 완화되었다는 통계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메갈리아로 인해 남녀갈등이 폭발하여 다른 중요한 문제들이 묻혀버려서 오죽했으면 진보 진영의 팟캐스트인 망치부인은 남녀갈등을 국정원의 음모라고 했겠는가? 상식적으로 메갈리아가 여혐을 하지 않던 남자마저 타겟으로 삼아 무차별로 남혐 발언으로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메갈리아에 공격 당한 남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죄없는 여자들이 여혐발언으로 상처받았으니 분노가 정당하다면, 남혐발언으로 상처받은 죄없는 남자들의 분노도 정당할 것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 있는데, 만약 여혐에 관심없던 남자가 메갈리아의 남혐 발언에 욱해서 일베에 가입해서 메갈리아에게 그대로 돌려주겠다며 미러링 이랍시고 여혐 발언을 내뱉는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미러링'이므로 '착한 여혐발언'이라고 인정해줘야 하나? 진보언론에서 초유의 미러링 발언으로 혐오 발언을 쉴드 쳐주는 황당한 진영 논리를 보였기에, 앞으로 일베가 "우린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 퍼트린 '친노' 딴지일보와 남혐 여성단체 미러링 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혐오 발언은 그 자체로 비판 대상일 뿐, 착한 혐오 발언, 나쁜 혐오 발언은 존재하지 않으며, "개한테 물렸다고 지나가는 개들을 물어댄다면 그건 그냥 광견병일 뿐"인 것이다.

이 문제는 지역비하 문제와 비교해보면 단순해진다. 특정 지역에 대한 비하 표현이 없어지면 다른 특정 지역에 대한 비하 표현도 끝날 거라는 말과 다름없는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가 뱉어내는 혐오 표현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그게 어차피 안 된다면 혐오 표현 하나하나의 잘못된 점을 공평하게 짚고, 사회에 만연한 혐오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는 방향으로 이끌거나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담론과 여론을 조성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여태까지 인터넷 악플 문제에 대해 사회는 그렇게 대응해왔다. 사실상 없어지는 게 불가능한 혐오표현을 빌미로 반대쪽의 혐오표현을 정당화하여 주는 것은 이러한 언론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남성혐오 발언에 충격받은 남성들이 여성혐오 표현을 줄였는가? 오히려 인터넷상의 여성혐오에 대응하여 추가로 남성혐오가 더 늘어 났고, 대결구도로 가면서 더 심한 혐오발언들이 오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전에 먼저 이루어진 지역 비하 또한 대결 구도로 가면서 오히려 지역감정의 폭과 갈등이 깊어진 사례가 있다.
‘탄생 정신’을 공유하지 않는 신규 유입이 이어지고 혐오 발화가 자체로 놀이코드로서 매력을 갖게 된다면(일베가 정확히 이렇다), 그때도 섬세하게 지금 궤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 위의 기사.
이 글이 나왔던 것이 2015년 9월이었고, 워마드는 2016년 1월 22일 탄생했다. 위 주장대로라면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애초부터 실패한 상황이다. 편집장은 커버스토리가 약 3주 동안의 데이터 수집을 했던 기사라고 밝혔다. 그 데이터가 2015년 9월 기사의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할 것이다.

메갈리아에서는 착한 저항은 없다고 쉴드 치는데, 문제는 이들의 저항 대상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는 점이다. 이는 흡사 묻지마 살인사건과 비슷한 상황인데 왕따 조승희가 분노해서 수십 명의 대학생을 무차별 총기 난사해서 죽인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에 비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즉, 메갈리아는 분노한 피해자가 아닌 또 다른 가해자에 불과한 셈이다.

심지어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 당시 순직한 경찰관에게 남경찰 한개 재기했다는 둥 망발을 퍼부어 순직한 경찰 가족이 온라인상에 떠도는 고인 모독에 분노를 표했다는 기사마저 보도되었는데, 경찰들은 여성이 피해를 봤을 때 도와주는 사람들 아닌가? 헌데 이런 경찰마저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욕할 정도면 이미 피해자의 정당한 저항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고 그저 이성을 잃고 아무에게나 난동부리는 망나니에 불과할 뿐이다. 대체 죄없는 경찰에게 욕하는게 무슨 저항이며 여성혐오 예방에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오히려 기사 댓글에 여혐 댓글로 가득찬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여혐을 정당화시킬 명분을 제공했을 뿐이다. 일베에게 뭐라고 할 가치도 없다느니 그런 댓글이 엄청난 추천을 받은 것만 봐도 일베마저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왕따 피해자가 정당하게 항의하고 울부짖으면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지만, 자기가 분노했다고 죄없는 친구들을 두들겨 패고 난동부리고 온갖 행패를 부리고 다닌다면 오히려 왕따를 정당화시킬 명분만 제공할 뿐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상대가 죄없는 내 친구를 때렸다고 해서, 내가 상대의 죄없는 친구를 때리는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6.3.1. "분노한 남자들" 기사 게재

그 3주 동안 데이터 수집했다는 기사가 공개되었다. 기사 작성자는 사회부 천관율 기자로, 인터넷 제목은 정의의 파수꾼들?, 오프라인 제목은 분노한 남자들.
최근 벌어지는 메갈리아 논란에서 나무위키의 위상은 독특하다. ‘메르스 갤러리’가 생성되기 직전 벌어진 ‘여성시대 해명글 조작사태(해당 용어는 나무위키 문서로 분리되어 있다)’ 당시 나무위키는,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성시대’ 회원들이 벌인 지속적인 반달 공격을 버텨내며 사건을 기록한 ‘사관’으로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또한 디시인사이드 이후 하나의 전범으로 인정된 커뮤니티 모델(‘친목질’ 및 젠더 정체성 공개에 대한 반감)은 ‘여성’ 정체성을 강조하는 커뮤니티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내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나타난 ‘괴물 같은 존재’가 메갈리아다. 즉, 나무위키는 태생적으로 여초 커뮤니티에 대한 반감을 가질 문화적·역사적 맥락이 있다.

이러한 맥락을 전제로, 나무위키 ‘메갈리아’ 항목에 대한 분석은 “누적적이며 진행형인 지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합의를 이끌어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수정된 항목’의 동적인 변화를 본다면 특히나 논쟁적이었던 사안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나무위키의 ‘진짜 재미’인 취소선이 포함된 문장(총 2043건)은 따로 수집했다. 이때 취소선은 말 그대로 ‘취소’를 의미한다기보다, 위키러의 ‘속마음’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취소선이 없다면 나무위키는 지금의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취소선 분석은 나무위키 이용자들의 감정선 분석으로 활용되었다. - "정의의 파수꾼들?", 『시사인』 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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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표는 시사인 해당 칼럼기준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가장 많은 비판은 "논리전개를 이해할 수 없다"였다.
이 기사에서 모집단 데이터를 메갈리아가 아니라 나무위키에서 뽑는다거나, 위와 같은 표를 만들면서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싸늘해졌다. 애초에 이 글은 '2015년 9월 이후 메갈리아 선언이 나오게 된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한 글'이 아니라, 왜 남자들이 메갈리아를 공격하는가에 대한 글이다.

사람들은 시사인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글을 쓴다고하니 메갈리아에 대한 뭔가 새로운 사실이나 혹은, 적어도 진보언론들은 다루지 않았던 (적어도 2015년 보다는 자세하고 근접한 시기의) 메갈리아나 워마드에 대한 분석글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정작 나타난 것은 니들이 왜 메갈리아를 싫어하는지 가르쳐줄게 & (그러니까 메갈리아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이해해야 된다) 였던 것이다. 본 기사에서 나무위키는 자신은 선량하다고 생각하면서 여성을 공격하는 남성'의 대표격으로 인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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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과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는 나무위키의 ‘메갈리아’ 항목을 분석했다. 항목이 개설된 2015년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치 수정 내역 전체가 분석 대상이다. 이 기간에 수정된 분량은 추가와 삭제를 합쳐 글자 수로 299만7430글자다(도중에 따로 분리된 ‘메갈리아 비판’ 항목을 합치면 688만8042글자다). 200자 원고지로 1만5000장가량 된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분량 1만6500장과 별 차이가 없다. - 위의 기사.

결정적 문제는 빅데이터 분석시 작성된 글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문서 전체를 삭제하는 규모의 반달 행위를 포함한 수정이력을 모두 반영하여 분석하였다는 것이다. 수정 전쟁반달행위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는 위키의 특성을 간과하고 분석한 결과, 2015년 10월 한 달 동안 수정된 글자수(byte)에 대한 분석에서만 '130만' 이상[20] [21]의 오류를 범했다.#

파일:megaliadoctable1.jpg

기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로 분류한 2015년 8월에서 11월까지 메갈리아 문서의 수정 추이 그래프이다. 푸른 꺾은선은 전체 바이트 수를 나타낸다. 바이트 수에서 반달, 하위 문서로 이동 등 문서 자체와 관련 없는 것들을 제하면 붉은색 꺾은선과 같은 수치를 얻을 수 있다. 연두색 막대는 두 꺾은선의 차이의 백분율 만큼이다. 이 시기 동안 허수로 집계된 바이트는 무려 전체의 91.9%였다. 작성이 가장 활발했던 것은 8월과 9월이었다. 이후 수정 바이트 수는 완만한 하강세를 보여 매 2달마다 6만, 4만, 2만, 1만 미만대로 줄어들었다. 수치는 2016년 6월까지 수천 대를 유지하다가 7월부터 2만 대로 늘어났다.

이것이 바로 위키의 한 문서를 빅데이터화 하기 어려운 배경인데, 빅데이터 분석을 제대로 하려고 했다고 해도 일정한 틀이 잡힌 위키 문서는 각론선에서 첨삭을 거듭할 수는 있어도 내용수정은 어렵다. 아니 애초에 나무위키처럼 첨삭에 제약이 거의 없으니까 저런 것이라도 가능하지, 위키백과처럼 기술에 제약을 두면 그것도 없다. 위키에 수정이 일어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이 일어났을 때', '관심이 극도로 집중되어서 각론적인 부분마저 논쟁이 될 때', '쓰여진 내용을 동의할 수 없을 때'이다. 즉, 위키의 수정은 특별한 사건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더구나 메갈리아 문서의 경우는 논쟁이 초기에 너무 강했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논란이 일 수 있는 부분(성향, 비판)이나 시의성을 갖춘 부분(사건사고) 등이 모두 분리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상위 문서의 수정량은 더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시스템, 사건사고 등의 문서는 2015년 9월, 비판은 2015년 11월(10월 반달은 메갈리아 문서에 들어오고, 1월 반달은 메갈리아 비판 문서에 들어온 결정적 배경), 성향은 2016년 2월에 분리되었다. 그렇기에 꼭 메갈 관련 이슈가 아니라 이런 추세를 거쳤던 나무위키의 어떤 문서를 가져다 놓더라도 비슷한 편집빈도의 경향성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저 분석이 단순히 메갈리아 문서만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메갈리아 문서에서 일부 항목이 너무 길어져서 하위 문서로 분리된 것도 그냥 삭제로 처리되었다. 나무위키에서 메갈리아 문서는 그 하위 문서인, 시스템 · 성향 · 비판 · 용어 · 사건사고 등이 별개로 존재하는데, 이 문서들은 각각 수정 전쟁을 거쳤다. 단적으로 메갈리아/비판의 경우는 134버젼부터 285 버젼까지 23672자를 통삭제했다가 되돌리기를 반복했다. 자그마치 350만에 이르는 양이다. 이는 2016년 1월 1일 오후 2시부터 3시 사이의 일로, 이것이 제대로 반영되었다면 기사의 수치는 현저히 낮아졌을 것이다. 같은 의문을 가지고 그래프와 도표화한 디시인사이드 글에서는 하위 문서를 모두 포함해서 분석하면 저 반달이 포함된 1월이 가장 많은 수정수치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에 하위문서를 배제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위키는 빅데이터로서 가치를 가지기 어려울 뿐더러, 정말로 위키를 대상으로 분석을 수행하려 했다면 나무위키내의 메갈리아 문서뿐만아니라 기타 다른 문서[22]를 바탕으로 분석을 수행했어야 한다. 문서를 토큰(단어나 음절)단위로 쪼개고 그것을 바탕으로 TF-IDF 등의 가중치를 활용하여 개별 용어가 가지는 가중치를 산출하고 그걸 바탕으로 토픽이나 네트워크를 그려내는 게 진정한 빅데이터 분석이라 볼수 있다. 메갈리아 위키페이지 수정 자 수 라는 단 한 곳의 웹사이트, 단 한 가지 파라미터는 빅데이터는커녕 데이터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하나의 수치' 일 뿐 '그 웹페이지가 핫하다는 증거' 라는 결론을 내기만도 버거운 자료다.

이런 점에서 시사인이 수행한 데이터 분석은 빅데이터도 아닐 뿐더러 데이터 분석의 기본적인 개념조차도 무시한 잘못된 접근법이다. 이런 어설픈 빅데이터 분석결과로 위에서 언급된 전제와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은..."에 대한 기자의 인식이 끼어든 결과로 저런 글이 도출되었다면 이건 화살을 먼저 꽂아놓고 주위로 과녁을 그린 것과 마찬가지다. 더욱이 이러한 말도 안되는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기사를 내놨다면 기존의 데이터 분석를 바탕으로한 기사들 역시 신뢰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데이터의 수집 및 전처리 역량, 분석역량이 이번 기사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것으로 보인다. 시사인측에서는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후속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기본적인 방법론자체가 잘못 되었는데 어떻게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또한 단어 연결을 이용한 네트워크 분석을 이러한 "컨설팅"에 이용하는 것 자체가 있어보이는 썰을 푸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의미망에서 네트워크의 구조 (클러스터링 등) 자체가 딱 떨어지게 나와도 의미 부여가 조심스럽게 하는 정도인데, 시각화 threshold를 분석자 입맞에 맞게 높였다 낮췄다 하며 화살표 하나하나에 주관적인 판단을 하는 정도의 분석은 네트워크 과학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다. 방대한 노드(단어)를 2차원 평면에 늘어놓고 적당히 주관을 개입하여 적당히 시각화 하는 것 또한 "예쁜 그림을 뽑아내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으며, 그 분야 연구자들은 이미 이런 그림을 ridiculogram이라 부르며 깐다. 과학적인 분석법의 탈을 쓰고 그럴싸한 시각화 툴로 약을 파는 전형적인 "컨설팅" 수준의 분석.

편집장의 언급에 따르면 해당 기자에게 빅데이터 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했을 정도로 자칭 빅데이터 기사 담당자인 듯 한데, 빅 데이터는 그 숫자와 양의 방대함에서 함의를 통계적으로 끌어내는 것을 말하는 거지, 숫자가 큰 거=빅 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나무위키의 편집은 열린 토론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나무위키가 여성시대 사건사고를 기록했다가 해당 항목이 토론없이 무분별하게 반달 당한 기억이 있으므로 나무위키는 ‘여성’ 정체성을 강조하는 커뮤니티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내재하고 있다는 엉터리 논리비약을 하고 있다.

비슷한 논리로 아름드리 위키는 나무위키가 여성혐오 성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여성시대의 병크들은 대충 이런저런 사건들로 뭉개면서 리그베다위키 시절에는 여성시대 언급을 못 하게 했는데 나무위키는 여성시대 편집을 허용하여 여성시대가 남초 사이트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만들었으므로 나무위키는 여성혐오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 해보면 오늘의 유머에게 성폭행 누명을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여성시대 해명글 조작 사태는 누가 봐도 명백하게 잘못해서 까일 문제였지.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제일 밑에는 시사in이 소설이나 다름없는 기사를 통짜로 가져와서 나무위키는 여성혐오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써놨다. 한 마디로, 이뭐병인 셈이다.

나무위키를 여초 사이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진 것으로 글을 썼다. 그러나, 나무위키는 여성시대뿐만 아니라 일베나 오늘의 유머에서조차 반달한 흔적이 보인다.[23] 시사in의 논리대로 라면 꼴마초 사이트로 분류되는 일베의 해당 문서를 반달을 당한 기억이 있으므로 나무위키는 ‘남성’ 정체성을 강조하는 커뮤니티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애초에 해당 커뮤니티가 반달을 했으면 그냥 해당 커뮤니티가 싫어질 수는 있어도 왜 여초 커뮤니티가 싫어진다는 것일까? 이런 논리는 사안을 여자 대 남자의 대결구도로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전 위키에 대한 이해도 부족도 보여지는데, 위키는 이런 주목도 높은 사안이 발생할 시 신규 유입된 대량의 필진의 편집이 발생하는 관계로 운영진이나 소수의 올드비가 특정 사안을 그들 마음에 드는 여론으로 몰아가는 행동이 대단히 어렵다. 2015 여성시대 사태와 메갈리아 항목은 전혀 관계가 없을 수도 있고 일정 정도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키를 집단의식을 가진 것 처럼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시사in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 자체가 오류다. 이미 그때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은 위키에 하나도 안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기 사이즈에 대해 화가 났다는 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이를 가지고 문제의 기사에서는 "그동안 남성들이 여성의 신체를 품평하다가, 정작 자신들이 품평을 받는 위치에 놓이자 '이년들이 감히?'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 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일단 메갈리아 문서의 과거 역사를 보자. 본격적으로 성기 사이즈 반론이 실린게 2015년 10월달 문서인데 # 사진 2장 링크해놓고 2~3줄 서술해 놓은게 전부다. 그 뒤로도 이런 서술 경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어떠했는지 보면 696버젼 ## 초기문서 306버젼 # 36버젼 # 그다지 관심도 없었던 것 같다..(...) 이 주제는 이미 오래전에 일본의 넷우익이 들고 나왔고, 반론 자료 6.9 다 나오고 끝난 문제였다. 한마디로 쉰떡밥. 성기를 가지고 놀리는데도 기사와는 다르게 오히려 감정적인 반응이 적은 것은 이런 연유다. 또 기사에는 남성들이 성기 크기에 대한 반론을 안했다고 되어있는데, 위에 링크 된 968 부근 버젼부터 꾸준히 링크걸어서 반론하고 있다. 다만 이미 다 끝난 문제라 독립 문서 처리되서 해당 문서에서는 논의 할 필요 조차 없는 것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나무위키에서 취소선을 감정선 분석의 도구로 사용하였는데, 이건 나무위키에서 취소선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특히 메갈리아 같은 문서에서 취소선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면 저 글을 떠나서 저 데이터 산정의 조작적 정의 산출은 상당히 편향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메갈리안에 대해 남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논리로 분석했다는 것이다.
나무위키는 분노한 남자들이 자주 원전으로 삼는 사이트이다.
=> 그러므로 남자들이 왜 분노했는지는 나무위키에 드러나 있다.
=> 이것을 알려면 문서 버전 전체를 빅데이터 분석을 하면 된다.
=> 분석결과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성기에 관한 내용이므로, 남자들이 메갈리아에 분노한 이유는 성기 품평이다.

단 한단계도 오류 없이 넘어가지 않는 기적의 논리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위의 기사 내용과는 별개로 항의 혹은 절독 전화를 건 독자에 대한 시사인의 대응에 분노한 글들이 클리앙 등에 올라오면서# 웹툰 때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각 커뮤마다 절독인증이 올라오는 중으로, 잡지 발행 직후부터 정기구독해온 장기독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파일:분노한남자들.jpg
2016년 8월 23일 현재 시사인 페이스북 메인 사진은 메갈리아4의 모금용 티셔츠 사진과 '분노한 남자들'이라는 문구를 삽입한 시사인 표지다. 이 헤드라인 또한 분노, 한남, 자들이라는 메갈리아의 남성 비하용어 라임 맞추기를 의도하고 만든 구절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일각에서는 일부러 세 글자씩 띄어 읽으라고 줄바꿈까지 넣어놓은 문구를 두 글자씩 끊어 읽어 저러한 글귀들을 유추해내는 것은 억지라는 지적이 있지만 시사인은 언론사다. 그냥 블로거나 트위터리안이면 무심코 저런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기사 속 단어 하나하나의 늬앙스까지 구별해서 쓰는 언론사가 표지 헤드라인이 오독 가능성이 있다고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정말 몰랐다면 그건 그거대로 언론의로서의 자격을 비판받아야 할 정도의 문제이다.

각 커뮤니티의 반응은 엇갈리는데, 24일 현재 시사인 페이스북에는 시사인의 태도를 비판하는 리뷰가 가장 메인에 뜨고, 기사 댓글도 별로 다를 바 없는 상황이나, 트위터 등지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해석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판단은 독자에게 라고 쓴 기사에서 독자의 목소리인 댓글을 삭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시스템 상의 오류로 생긴 일일 가능성이 높다. 고제규 편집국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창간이래 댓글을 강제로 삭제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 # [24] 통권 466호 장일호 기자의 프리스타일 기고를 삭제하고(8월28일 현재 장일호 기자의 기고문은 현재 온라인에 다시 올라와서 읽을 수 있다.# 시사인 페이스북에서는 댓글시스템 연동이 완료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기존의 댓글은 넘어오지 않았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일어난 삭제상황으로 자유게시판과 해당 게시물에서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기사를 작성한 천관율 기자가 한 독자와 가진 페이스북에서의 짤막한 대화가 알려졌다. 반달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검토를 했다는데,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저 모양이 되었는지 해명글이 기대되기는 하다.

편집장은 미디어오늘 등과의 인터뷰에서 "후배 기자들이 자기검열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가장 걱정된다" 고 했는데, 얼마나 현실인식이 왜곡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기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검열을 하지 않고 소신 있게 성역없는 비판을 가하는 배짱이 아니라, 답정너 식 왜곡 기사를 쓰지 않고 기사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분골쇄신하는 마음가짐이다. 남성이 무슨 신성불가침의 영역도 아니고, 이번 문제의 기사 역시 질적으로 수준 높은 (그래서 기분 나쁘지만 어쨌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통찰이 나왔더라면 이 정도까지 논란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사인의 기존 독자들도 그러한 것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나온 결과물은 철없는 계몽주의에 젖어 독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억지성 분석글이었다. 한꺼풀 벗겨보면 시사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신념의 색안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저질의 기사에 크게 실망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는 메갈리아에 대해서 미러링에 대한 정당성을 올렸는데, 중간에 김구 선생의 치하포 사건에 대해서 미러링이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치하포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김구 선생이 민간인을 일본 육군 중위라고 오인하여 살해했다면, 그것은 선생의 잘못된 행위이고 비판받아야 할 일이지 미러링이라고 정당화 시켜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의견이 있다.

위의 해명글에서는 기사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들이 '김일성 개새끼'를 해보라는 말처럼 들렸다며 강압적인 질문은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는데, 정작 본인은 2010년 즈음 투표 안하면 정박아란 트윗으로 장애인 단체에게 항의까지 받는 해프닝이 있었다. 물론 투표야 가급적 하는 것이 좋지만 사정이 있으면 못할 수도 있는데 다짜고짜 강압적으로 투표를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 역시 또 하나의 폭력일 수 있다.

또한 그는 욱일기 건에 대한 비판에 대해선 친일파들이란 식으로 비꼬아서 조롱한 적이 있다. 종북몰이가 싫다면, 본인도 친일몰이,여혐몰이에 극히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누군가 시사인이 허구헌날 반미,반정부 기사 써갈기고, 중국,북한에 대한 비판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북한에 대한 망상수준의 기사는 시사인 애독자들도 포기하고 볼 정도로 계속 밀고 나가고 있는 점을 들어 '시사인은 종북성향이 강하다'라고 했다면 시사인의 반응은 어떨까?

한편 고재열 기자는 과거 지하철 똥꼬치마에 대한 단상라는 글을 써서 논란을 일으키고 사과한 경력이 있다.또한 그가 마초꼰대이고 反여성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6.3.2. 단체 절독 사태

이에 주요 독자층에서 단체 절독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레진코믹스 당시와 매우 유사한 결과가 펼쳐질지 관심을 모으는 중이다.

그 와중에 개인구독 고객과 기업구독 고객의 문의에 따른 사측의 대응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 그러니까 집에서 구독해지 하니까 싹퉁없이 굴다가 기업에서 해지할려고 하니까 징징거렸다는 말이다![25]

한편, 오유 쪽에서는 대규모로 환불했다는 인증을 했던 베오베 글만 보아도 정기구독이 몇 년이나 된 사람들이 수두룩한 반면에 트위터에서의 시사인 구매인증은 딱 한 달이거나 결제창만 인증을 한 사진만 수두룩하기 때문에 타격이 커서 매우 상황이 안 좋다. 이번 사태는 레진코믹스 환불 사태와 넥슨 탈퇴 인증글과 비교될 만하다.

이와중에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는 SNS를 통해서 "갈 사람들이 갔으니 이제 그들 눈치를 볼 필요가 진짜 없어졌다."라고 발언하면서 독자들의 추가적인 이탈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

게다가 비슷한 이슈에 휘말렸던 프레시안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삼성으로부터도 살아남았다."라는 의견을 밝히면서 독자들의 절독운동을 사실상 조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단체 절독 운동은 삼성의 압력으로부터 지켜줬던 그 독자들이 현재 불매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결국, 시사저널 삼성 사태때 돈 모아줬던 일반 시민, 독자들이 지금 시사인을 떠나고 있는 독자들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독자는 삼성보다 못하다는 소리냐? 니들은 독자들이 아직도 우습게보이냐?"라는 비아냥을 듣는 중이다.# @[26]

한편, 시사인에서 과거 조선일보 절독 운동 때 내보낸 기사와 #1 @ #2 @ 자신들에 대한 절독을 바라보는 논조가 대조되면서 판단의 잣대가 그저 이중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사인 절독 사태에 대한 미디어오늘의 기사 이 기사에서 뉴스타파의 한 기자는 이번 절독사태가 “언론이 성역 없이 비판해야 한다는 점을 돌이켜봤을 때 좋지 않은 관행 같다”고 밝혔다. 이 역시 이들의 현실감각이 얼마나 부족한지 드러내고 있다. 그 동안 충성해온 독자들이 이번 일로 진보언론들에게 등을 돌리는 이유는 이 언론들이 스스로 성역을 만들고 그에 대한 올바른 비판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지적하는 독자들을 오히려 조롱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논리나 관점이 혹시나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고찰은 단 한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독자들을 탓하는 언동들은 이들이 얼마나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또 다른 투고가 올라왔다. #

독자들의 구독 해지가 제법 큰 타격이긴 했는지, SNS 상에서 구독 유도성 글을 남발하고 있다. @ 또한 8월 29일 고제규 편집국장이 기고한 편집국장 브리핑에서도 이와 관련된 멘트를 남겼다.##
내게 당장 매달 40만원이 주어진다면? 모두 <시사IN>을 정기구독해 주변에 나눠주겠다. 이유는 다 아실 것이다. 지난 한 주 한숨만 늘었다.

9월 6일 기자협회보의 기사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구독해지의 상한선을 세 단계 정도 가정해 놨는데 기사가 뜨고 2~3일만에 예측했던 최대한도인 3차 이탈을 돌파해버렸다고 한다. 정확한 매출감소액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해당 기사 혹은 이 사건을 언급하는 진보언론측에서 슬쩍슬쩍 언급하는 것을 보면 구독매출이 억대 이상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분노한 남자들'과 같은 제467호에는 신토불이 BL이라며 평소엔 하지도 않았던 여성향 성인물 작품 광고를 내세워서 여성 독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지만, 이조차도 착한 포르노라는 비웃음이나 사고 있는 중이다.# @

참고로 시사인은 예전부터 서브컬처에 관련해서 다뤄왔었다. 지금은 끝났지만 아예 시리즈로 나오던때도 있었다. 여성향 성인물로 환심을 사려고 했기보다는 평소 하던 것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게 볼 수 있으니 역시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다.

진짜로 힘들었는지 게시물 마다 후원 요청 광고가 붙혀있다. 2017년 9월 온라인 유료 모델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며 페이스북에서 '여러분의 의견이 #시사IN '생존'에 큰 도움이 됩니다.'라고 한 것을 보면 1년이 넘도록 이 피해는 복구가 안 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간경향 기자 박은하 씨가 "넷페미의 현재와 미래, 그 가능성을 찾아서" 좌담회에서 밝히기로는, 당시 사내에 어떤 '일치단결' 한 분위기는 없었지만,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기자들이 당혹스러워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에 무심한 연령대에서는 그냥 병먹금 수준으로 가볍게 취급했다고.

6.3.3. 후속기사 등장

나무위키 데이터 이렇게 분석했다
후속기사가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분석방법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앞의 기사와 주장내용이 다른 것은 차처하고, 자체 문답에서도 말을 얼버무리고 있다.
Q1. <시사IN>이 공개한, 분석 대상이 된 수정 글자수는 299만7430글자다. 대규모 삭제(‘반달리즘’)로 발생한 삭제 글자수를 대거 포함하고 있다. 반달리즘과 같은 정크 데이터를 포함했으니 오류 아닌가?

A. 분석 대상이 된 수정 글자수는 299만7430글자다. 반달리즘을 정크 데이터로 분류해 제거하는 과정은 분석 과정의 일부이다. 분석팀은 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문서 전체에 대한 광역 삭제 및 복원과 같은 다양한 문서 반달리즘을 확인했다. 이번 분석 기사의 핵심은 반달리즘을 포함한 수정 행위를 통해 나무위키 이용자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쟁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수정 전쟁의 결과물을 폐기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문서를 통으로 삭제하는 악의적 반달리즘은 의미 있는 수정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필터링할 필요가 있다. 분석팀은 반달리즘을 “A문서와 B문서 간의 수정값 합이 0인 문서”로 정의했다. 예를 들어 나무위키 ‘메갈리아’ 항목의 990버전과 991버전은 4만2163자의 문서가 통째로 삭제되고 그 즉시 복원한 경우로, 이 경우 두 문서 수정값의 합은 0이다. 이럴 경우 반달리즘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런 기준에 따라 삭제된 문서는 245건, 수정 글자수로 따지면 249만2203자가 분석에서 제외되었다. 그 결과 의미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데이터는 총 2423건의 원문 가운데 2178건의 문서를 대상으로 50만5227글자이다.
나무위키 데이터 이렇게 분석했다

1번 질문부터 이 모양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태백산맥 운운했던 내용은 당연히 뻥튀기였고, 의미없는 데이터라는 것인데, 글 쓴 사람이 원 저자가 아니라, '김학준 (아르스 프락시아 미디어분석팀장)'이라서 앞선 기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렁이 담넘어가는 것처럼 넘어간다. 이전 기사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이전 기사에서 데이터가 오해가 있었다는 것도, 지적이 맞았다는 말도 없다.

이 문답이 전부 다 이런 식이다. 분석한 사람이 자기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6.3.4. 이후의 행보

그런데 메갈리아를 비호하면서 페미니즘을 자처할 때는 언제였는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아줌마'라고 지칭하는 등 성차별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여성시대와 메갈리아 등지에서는 귀신같이 태세를 변환하여 시사in을 비난하고 나서는 중.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사인은 여전해서, 메갈리아를 '페미니즘의 대중화 계기'로 규정한 이기는 페미니즘이 왔다나 메갈리아를 포함한 페미니즘 서적을 다룬 그들의 언어에 귀가 트이기 시작했다 등의 기사가 실렸다.

2017년 9월 21일에는 여성 징병 청원을 두고 기사를 썼는데...
‘성폭행을 저지르느니 성매매를 하라’는 교육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성 인식과 성 문화. 논란 속에서도 계속 연재 중인 웹툰 <뷰티풀 군바리>가 묘사하는 성 착취적인 욕망이 여성 징병의 목소리에 포함되어 있다. 사실 남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여성 징병이 아니다. 여성들이 남자들의 군 경험을 대단하게 생각해주면서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돌봄과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2등 시민’으로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기고이기는 하나, 완전히 남성과 군대에 대해서 모욕에 가까운 언사를 써놓았다. 현재 여성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군대가 저 따위로 돌아가도록 놔둔다는 것을 전제하에 쓴 것이다. 그냥 비판만 하면 모를까, 이것은 엄연히 남성과 군인들에 대한 모독이다. 남성들이 바라는 건 여성들이 입으로만 고마워하면서 사실상 국방의 의무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걸 바란다고 생각하며 남성들을 전부 성차별주의자로 모는 언사이다. 남성들의 주장은 여성들도 국방의 의무로 제발 뭐라도 좀 하라는 것이다.

이후에 의하면 구걸 전화를 돌리는 상황인데 주진우 이름을 팔면서 어떻게든 구독을 하려는 모양새이다.

2018년 4월 13일 트리 오브 세이비어 일러레 메갈 논란을 기사로 냈는데, 2년 전의 김자연 성우 사태도 언급하면서 마녀사냥을 주장했다.

6.4. 시사인 편집부 욱일기 합성 태극기 논란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시사인_20160906.jpg

‘메갈 언론’ 낙인 찍고…기자 신상털이에 인신공격도아카이브[27]
위 기사는 시사인의 메갈리아 옹호로 발생한 일련의 사태를 기자협회보가 시사인에 우호적인 입장으로 서술한 기사인데, 첨부한 시사인 편집국의 모습을 찍은 사진의 우측 상단에서 욱일기와 태극기를 합성한 깃발이 발견된 것이 본 논란의 시발점이 되었다.
여담으로 기자 협회보 기사에서는 수정내역을 적었는데, 이것이 또 일품이다.
기자협회보에서 알립니다. 메갈리아 관련 기사에 실린 시사인 편집국 사진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시사인에서 밝힌 것처럼 '욱일승천기[28]'는 시사인 335호 표지를 만들기 위해 제작한 소품입니다. 기사의 본질과 달리 사진 속 소품을 놓고 불필요한 논란이 있어 사진 일부를 잘라서 다시 실었습니다. 강조합니다. 기사를 보고 시시비비를 가렸으면 합니다.

해당 기사가 올라오기 바로 몇 주 전 워마드에서 욱일기화 태극기를 합성하여 사용하여 문제가 되었고 동년 9월 1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있었던 데다,# 시사인에서 워마드나 메갈리아에 유리한 논조의 기사들을 쓴 전적들이 있다보니 인터넷 상에서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이 사실이 여러 사이트에 퍼지기 시작하자 사진의 일부분을 자르는 편집을 하여 논란이 되는 해당 부분을 안 보이게 하였으나, 이미 해당 기사는 아카이브@@2에 저장이 된 후였고 이러한 시도를 오히려 고깝게 보는 시선들이 있다.

편집국장이 직접 나서서 355호 <구겨진 친일 보수의 민낯>에 쓰일 표지를 제작하기 위해 만든 소품이라고 해명했으나, 해당 자료는 2014년 7월에 쓰인 것이고, 그렇다면 이미 자료로 쓴 것을 구겨진 걸 펴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걸어놓고 있었다는 말이 되므로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다. 또한 주장대로 단순한 소품이 맞다손 치더라도 왜 그것을 시계 밑에, 그것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걸어뒀는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시사인의 변명처럼 한번 만든 소품은 나중을 위해서 폐기하지 않는것이 맞긴 하다. 욱일기를 걸어놓았던 문제를 지적하자 소품실이 없어서(...) 시계 밑에 눈에 잘 띄게 붙여 놓았다는 답을 올렸다. 저 사무실에는 종이 한 장을 보관할 장소도 없는 모양이다. # @ 트위터원문@

해명문의 마지막에는 "이런 것까지 구구절절 해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까지 하다."[29]라는 욱일기를 당당히 걸어놓은 걸 지적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는 논조의 문장을 남겼는데, 이 때문에 대중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해당글이 논란이 되자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챈 것인지 7일 01시 47분 기준으로 서글프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 @ 또한 해명글에 욱일기라고 표현하지 않고 욱일승천기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의도이든 실수이든 문제가 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다. 명칭 논란에 대해서는 욱일기 항목 참고.

2015년 10월 16일자 페이스북 글에서도 윽일기로 추정되는 사진(페북원문@)이 발견되었다. 또한 2016년 6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에도 해당 욱일기가 그대로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시사인의 6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과 9월 6일 이슈가 된 사진의 두 종류의 욱일기를 걸어둔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지만 구겨짐과 각도상의 문제이지 제시된 욱일기들은 같은 것이다.

파일:1473182241 (1).png
파일:1473182793.png
해당 사진의 각도를 보정하여 겹쳐본 사진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시사인 기자가 일본인 응원단이 욱일기 모양으로 페이스페인팅한걸 역겹다고 한 기사가 발굴되었다.# @ 이를 두고 해당기사가 실린 354호가 바로 다음호가 문제의 욱일기와 태극기를 합성한 사진이 표지로 실린 호라는 점을 지적하며 1호 만에 태도전환을 하는 이 모습은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라는 평가도 있다.
파일:20160907002512_fhA29Xpr_22054_43277_2558.jpg
링크아카이브 링크
2014년 말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기사에, 욱일기로 추정되는 사진이 또 나타났다. 하지만 이 사진은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듯이 시사인 양현모 캐리돌 만평 소품을 보관중인 것으로 보인다.

6.4.1. 정리

사실 기존 시사인 논조를 보면 정말로 친일 매국을 위해 욱일기를 걸어놓았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한 네티즌 말마따나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역사적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사무실에 버젓이 2년동안이나 전시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욱일기" 그 자체보다도 시사인 관련자들의 태도에 의해 더욱 논란이 증폭되었다.

최근 몇몇 사건을 계기로 시사in 직원들의 사회적 인식이 심각하게 엉망인 증거라는 평가가 많다.[30] 욱일기를 떡하니 장식하는 문제를 지적하자 "종이 한 장 보관할 장소가 없어" 시계 밑에 눈에 잘 띄게 보관했다는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또한 이런걸 왜 굳이 설명해야 하냐는 뻔뻔하고 상대방을 바보취급하는 태도에[31]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특히 타이밍도 검찰이 마침 태극기와 욱일기를 합성한 워마드 회원에 대한 수사를 착수한 지 불과 몇 주 되지 않은 시점이기도 했다.

6.4.2. 이후 반응

6.4.3. 고재열 기자의 시사IN이 일본인들의 습격을 받았다 발언

고재열 시사in 기자는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 구독자들이 절독할 때 "갈 사람들이 갔다"고 발언한 데 이어 대중을 향해 '친일파', '일본인'이라 매도하는 수위 높은 발언을 연신 쏟아내면서 시사인을 둘러싼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고재열 기자의 태도도 문제지만 논점부터 일탈했는데, 논란이 되는건 욱일기 합성을 한 것이 아닌, 왜 사무실 시계 밑에, 그것도 많은 합성물 중에서 하필이면 욱일기를 걸어놨냐는 것이다.

더욱이 의혹을 제기하는 대중들을 싸잡아서 비하하는 태도는 그렇찮아도 사그러지지 않던 논란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6.4.4. 재구독 해달라고 구걸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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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하는 고객들에게 해지방어를 시전한 것으로도 모자랐던건지, 구독했던 고객한테 재구독을 해달라고 구걸하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 위에 나와있는 고재열 기자의 일갈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 한달 넘게 이어지는 중. 메밍아웃 시사인, 완전히 아웃되나? 2016년 11월 18일 리얼뉴스 기사

이 원인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구독층과 진보언론의 구독층의 차이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수언론 쪽은 고정적인 독자층이 매우 단단하기에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독자층의 이탈율이 적은 편이고,근데 시사인은 큰 사고를 쳤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의 단체 구독도 무시할 수 없는 수량이며, 예산도 넉넉하다. 또한 한국의 대표신문이라는 이미지가 있기에 기본 구독량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편이다.

반면에 진보언론은 상대적으로 구독층이 더 유동적이고 재정도 빈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 지지층의 의사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기사를 내놨으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것. 사실 단순히 독자의견에 반하는 기사를 낸 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을 지지해주던 독자들을 머저리 취급했다는게 더 큰 문제였다. 진보언론의 특성상 재정 문제가 발목을 잡다 못해 수렁으로 끌고 들어갈 때까지 계속 자기 소리를 낼 수도 있겠지만 과거와 같은 시사주간지 1위의 위엄을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후로도 재구독 설득 전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는 듯 하지만 반응은 싸늘하기만하며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칠 생각은 안하고 구걸이나 하고 있다며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

그러나, 더 웃긴 사실은 구독하는 구걸 전화 돌리는 것은 힘없는 하급 영업사원들이고 정작 사고를 쳤던 고귀하신 기자님들은 책임도 안 진다는 사실이다. 당장에 링크된 글의 댓글을 보아도 사고는 위에서 쳐놓고 수습은 '아랫 것'들이 하는 현실을 늘 비판해오던 기자들 주제에 정작 자기네들이 이런 일이 터졌을때는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던 사회의 기득권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비판하는 댓글이 많다.

이제는 재구독 요청을 넘어서 구독한 적도 없고 홈페이지 회원도 아닌 아무 접점이 없는 사람에게도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다. 관계 없는 사람의 휴대폰 번호를 어디서 얻어 전화를 하는지 물어도 어물쩍 넘기며 알려주지 않는 것으로 보아 뭔가 켕기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6.5. 고인드립 만평 사건

해당 만평 archive 박제 버전
파일:external/ph.sisain.co.kr/28861_55898_5332.jpg
시사인의 만화가 김경수가 4월 11일 시사인에 만평을 올렸는데 왼쪽 부분은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는 내용이였지만 만평의 오른쪽 부분이 인터넷을 뒤집어놓았다. 해당 만평에서 문재인이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낙선한 안희정 동상을 만지면서 후회한다는 뉘앙스의 장면을 실었는데, 이 동상을 만지는 장면은 고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 김정자씨가 안타깝게 먼저 죽은 아들의 동상을 그리워하며 만졌던 이야기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만평의 비판점을 차치하고, 투병 끝에 먼저 간 아들이 그리워 아들의 동상에 찾아가 그를 어루만지면서 아들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어했던 최동원의 모친 김정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타인을 정치적으로 비난할 목적으로 패러디한 것은 인간 이하의 패륜적 행동이다.

왼쪽 컷과 함께 맥락을 읽어 보면 그 지독함이 더 잘 드러난다. 왼쪽 컷에서 외연을 확대한 (영웅처럼 그려진) 타자 안철수가 타석에 서 있고, 문재인은 네거티브 전략이 먹히지 않자 '특급 소방수'를 데려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인 팀과 똑같은 색의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다음 컷으로 가면, 문재인이 말한 '특급 소방수'는 안희정인 것으로 드러난다. 문재인은 안희정 동상의 손을 만지며 안희정을 그리워하지만, 안희정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사안의 중대한 점은 최동원과 김정자 모자는 현 대선 정국과는 관계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언론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그 대상이 정치일 경우 만평은 때로는 과격하고 잔인할 정도로 날카로워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김경수는 정치상황과는 관계없는 모자(母子)의 슬픔을 패러디하였다. 그 패러디의 맥락은 아무리 그리워해도 돌아오지 않는다이다.

대다수 커뮤니티가 뒤집어졌으며, 시사인을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는 중. 위의 메갈리아 옹호 사태와는 별개로 일반인들, 특히 야구 팬들의 구독 취소가 이어지고 있다. 전두환과 박정희조차 자식을 잃은 부모는 위로하는 척이라도 했으며, 자타공인 트러블 메이커인 윤서인조차 이정도로 악랄한 패드립을 친 적은 없다. 최고의 트러블 메이커 자리를 뺏기기 싫었는지 이로부터 1년 후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비판의 대상(문재인)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제 3자의, 자식을 잃은 슬픔을, 단지 대상(문재인)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 하나로 패러디하여 조롱하는 전대미문의 패드립은 일베의 세월호 조롱 사건때나 보이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최동원 선수가 야구계를 위해 선수협을 만들기 위해 시도할 떄 그를 위해 법적자문변호사를 해준 사람이 문재인이었다는 것과, 꼬마민주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는 것(낙선)을 연관시키는 분석도 있다. 노렸다는 증거는 없으나 사실이라면 더더욱 저질적 행보라 할 수 있다. 한때 문재인과 연관이 있었던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를 조롱한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기고이기는 하지만 시사인은 최동원 선수를 높게 평가한 기사(알리와 최동원의 빛나는 공통점은?,누구에게나 인생은 ‘강속구’)들을 이전에 실은 적이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선수를 띄우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선수와 어머니를 조롱하는 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시사인의 메인 기사는 "녹슨 세월호 앞에서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였다. 아예 홈페이지 메인의 전면 최상단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진 기사라는 것을 증거로 남김. 아카이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절절한 마음에 그리도 공감한다면서 저런 패륜스러운 만평이 데스크를 통과하는 이중적인 모습에 여태까지의 세월호 사건 관련 행보도 위선이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이런 논란에 지금 당장 sns계정 등을 통해서라도 장문의 진심이 담긴 사과글을 올리기는 커녕, 시사인 측은 편집국장이 시사인 다음 호에서 입장을 밝힐 것이라 했다. 즉, 사과든 뭐든, 입장표명을 들으려면 다음 호를 사서 봐야한다는 것(...). 당연히 어처구니없다는 의견이 대다수. 사과문도 DLC 시대 과거 사건 때부터 지적당한 "선민의식"이 여기서도 나타났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사과문은 4과문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내용의 기사의 끝부분에 몇 줄 되지도 않게 끄적거린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 당연히 모든 사이트에서 욕이란 욕은 다먹는 중이다.

6.6. WHO의 게임중독 질병화 관련 논란

시사in의 이상원 기자가 쓴 문제의 기사(이해국 교수와의 인터뷰)에도 논란이 있는데, 시사in은 해당 기사로 인해 얄쨜없이 게임의 주적임을 사실상 인증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업계인들이나 게이머들에게 까이고 있다.

6.7. '20대 남자 현상' 연재 기사

04.15. 〈20대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
04.16. 〈20대 남자 현상 조사 이렇게 했다〉
04.22. 〈'반페미니즘' 전사들의 탄생〉
04.29. 〈20대 남자 현상은 왜 생겼나〉
05.07. 〈중간에 엎을 뻔한 '20대 남자' 기획〉

2019년 4월경, 시사인에서 천관율 기자가 한국리서치 정한울 연구위원과 협업하여 604호부터 연재한 "20대 남자 현상" 기획보도는 곧바로 다수의 트위터 계정과 사회운동 포럼 및 네트워크들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이미 기존에 메갈리아를 옹호하거나 일베저장소나무위키 등 문제적(?)인 사이트들에 대한 (자기들 나름대로의)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한 이력이 있는 시사인이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20대 남성들을 병리화, 문제화하고 연구대상인 것처럼 객체화하던 많은 구독자들이 환호했다.

그런데 이 보도를 둘러싸고 반발하는 쪽에서나 환호하는 쪽에서나 기획 계기, 얻어진 설문조사 데이터의 패턴, 데이터의 해석에 있어서 왜곡과 오용이 발생한다면, 이는 건설적인 논의의 가능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시사인이 이번에도 '20대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한다' 는 반남성적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편향적인 설문조사를 했다" 는 것이다.[32] 그러나 이 기사를 보면 시사인 측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설문을 시작한 것인지 오해의 여지 없이 공개되어 있다. 요컨대, 시사인에서는 당초 "20대 남성이 보수화되었는가?" 를 확인하기 위해 설문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계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유난스러울 정도의 지지 철회에 대해 2월경에 국회의원들이 20대 남성의 보수화로 설명하려던 설화 사건이었다. 그러다가 금번의 조사를 통해 20대 남성의 정치적 태도의 특수성을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33]
"지난 겨울부터 천관율 기자는 '20대 남자 현상' 을 화두로 삼았다. 20대 남자는 정말 보수화되었나? 정치인들 주장대로 이명박 정부 교육 탓인가?"
- 〈'세대 프레임'을 넘어서〉, 고제규 편집국장

물론 4월 15일자 기사의 행간에서 드러내듯이, 2015년 이래로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반영하여 여성혐오 태도 여부를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영역의 종속변인으로 선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 외에도 박근혜 탄핵 심판, 자유시장, 복지국가, 과열 경쟁과 같은 다른 정치적 영역들에 대한 태도 문항들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 중에서 20대 남성만 유독 특이하게 응답을 한 주제는 단연 페미니즘이었다. 문제는 이것을 과연 '20대 남성이 보수화되었다' 로 설명할 수 있느냐, 아니면 예컨대 '20대 남성은 여성혐오를 한다' 로 설명할 수 있느냐, 그도 아니면 제3의 다른 논리가 요청되는가이다.

본격적으로 기사를 분석하기 전에, 이 연작 기사를 논문처럼 취급해서 가상의 초록을 붙여 준다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현 집권 대통령 지지율 등을 통해 볼 때, 현대 대한민국 20대 남성들은 정치적 태도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가설은 20대가 정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다는 세대 이론이다. 이에 시사인 편집국에서는 조사 전문 대행업체를 경유하여 1,000명의 남녀 간, 세대 간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삼아 208개 문항의 광범위한 설문을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는 기존의 세대 이론만으로는 현실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세대적 특성에 더하여, 20대 남성들의 정치적 특수성은 이들의 25.9%를 차지하는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에 의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집단은 평등의 원칙이 아닌 형평성의 원칙을 들어서 여성우대 정책에 반대하며, 단지 이것이 안티페미니즘의 형태로 표현될 뿐이다. 이들이 형평성을 그처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각박한 풍조와 함께 이들이 지닌 피해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 학계에서 하듯이, 하이라이트(highlight) 개조식을 따라 주요 발견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사의 논지를 따라가 보자. 위의 링크들에서 자세한 그래프들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4월 15일자 기사에서 빨간색으로 강조된 20대 남성들의 응답 경향은 20대 여성들의 응답과 비교할 때 남녀 간에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생각이 너무나 다르다. 성차별의 심각성, 공정한 경쟁 여부, 연애 중의 헌신, 결혼문화, 양성평등 정책,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 중에서 일부 영역들에서는 아예 데칼코마니 급으로 의견이 정반대였다. 20대 남성들의 응답 경향은 30대 이상 연령층의 남성들과 비교하더라도 훨씬 더 과격한 데다 극단 반응(extreme responding)을 더 많이 나타내는 경향을 보였다. 30대 이상의 남성들은 직장의 취업 및 승진에서 여성들이 불리하다고 더 많이 느꼈고,[34] 페미니즘을 남녀동권운동으로 이해했으며, 페미니즘이 한국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는 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20대 남성은 이런 문항들에 대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으며,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라고 이해했다.

20대 남성만의 독특한 응답 패턴은 세대론으로 설명될 수도 없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여성혐오 성향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20대 남성은 여성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더 순수하고 헌신적인 성별' 이 어느 쪽이냐고 물었을 때, 20대 남성은 그 어떤 다른 인구집단보다도 더 "별 차이 없다" 를 골랐다. 이들에게 여성혐오 성향이 있었다면 남자 쪽이 더 헌신적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에 사회적으로 지원을 하는 게 적절하냐고 물었을 때에도, 가장 안티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20대 남성들조차 과반수가 "지원해야 한다" 에 기꺼이 힘을 실어주었다. 이들에게 여성혐오 성향이 있었다면 '여편네가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어딜!' 같은 부정적 응답이 많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가설들이 죄다 기각되었다. 예컨대, 20대 남성만 유독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기성세대도, 여성들도 똑같이 불공정을 느끼고 있었다.[35] 20대 남성만 유독 미래 전망이 어두워서도 아니었다. 20대 여성 역시 똑같이 미래를 비관하고 있었다.

위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한국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하지 못했다" 는 응답의 패턴에 주목해 보자. 페미니즘이 여성의 우월한 지위를 추구하고, 또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득세하고 있어서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이제는 남성이 약자가 되고 역차별을 받는 세상이 됐지만, 그렇다고 한국 여성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건 또 아니라는 얘기다. 뭔가 모순적인 느낌의 이 응답 패턴은 30대 이상의 남성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시사인 기사에서는 이를 두고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떤 종류의 긍정적인 태도도 보이지 않으려는" 일관성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이 기사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신념에 가깝게 적대적인' 경향이 20대 남성들의 상당수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했다.[36] 그리고 이 하위집단이 20대 남성들의 정치적 태도의 특수성을 설명하리라 추론했다.

4월 22일자 기사에서 이 하위집단의 기준을 정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측정하는 척도는 총 6문항으로 구성된 리커트(Likert)-5점 척도로 구성되었다.[37] 여기서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은 페미니즘 태도 문항 6개에서 모두 "매우 반대" 의 극단적인 부정적 응답으로만 일관했던 응답자의 집합으로 정의되었다. 즉, 단 하나라도 "약간 반대" 라고 응답하게 되면 이 집단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정도로 극단적인 반응 세트(response set)는 정말 특수한 응답자 풀이 아니고서야, 하물며 평범한 사회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라면 흔하게 보기도 힘든 패턴이다. 그런데 20대 남성 중에서 모든 문항에 가장 극단적인 부정적 반응으로 일관한 응답자의 비율은 25.9%였다. 이런 극단적 경향은 연령이 올라갈수록 약해져서, 50대 이상의 남성에서는 아예 사실상 소멸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극단적인 하위집단이 20대 남성들 사이에서 존재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어쩌면 20대 여성들도 그만큼 페미니즘의 '광풍' 에 휩쓸려 있어서가 아닐까? 하지만 데이터는 2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놀랍도록 조심스럽게 동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0대 여성들의 5점 척도 상에서의 응답의 극단성을 통계적으로 정리해 보면 고작 +0.3 정도로, 이건 사실상 페미니즘에 있어서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참고로 위의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은 (그 집단의 정의 상) 무려 -12.0 수치에 해당하는 응답자들만 모은 것이다! 사회과학의 관점에서는 매우 가혹할 정도의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20대 남성 4명 중 1명이 여기에 해당되었다.[38] 종합적으로, 20대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에서 평범한 종형의 분포를 보인 반면, 20대 남성들은 극단적인 좌측 편포를 보였다. 소위 말하는 SJW, 트페미 등을 생각하면 여성들 중에서도 +12.0의 속칭 '페미니즘 정신병 환자'(?)들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 수집된 데이터에 따르면, 이 응답을 보인 여성은 전체 여성들 중의 0%였다. 페미니즘이라면 무조건 무한한 찬성과 신뢰를 보낸 20대 여성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빠가 까를 만드는 게 아니라, 되로 주고 말로 받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젠더 분쟁이라는 것이다.

-12.0 수치에 해당하는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은, 그 응답 경향에 있어서 다른 20대 남성들에게 섣불리 일반화할 수 없는 특이한 경향들을 여럿 드러낸다. 예컨대, 이들은 어떤 사회적 제도가 "여성에게 더 유리하다" 고 프레임화되면 이 집단은 반사적으로 그 유리함을 긍정하며 그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가족을 꾸리는 것은 여성에게 유리하다" 는 문항이 제시되자,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에서는 과반수가 동의, 특히 34.8%가 매우 강한 동의를 드러냈지만, 기타 20대 남성들은 평범한 종형 분포를 보이는 중립적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젠더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널리 알려진 방법,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 보기" 가 반영된 문항에서도,[39] 기타 20대 남성들의 60% 가량은 우리 사회가 내 딸에게 좋은 세상이 아닐 거라면서 근심하는 반응을 보인 반면,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은 유독 지금 내가 딸을 낳는다면 그 딸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진심으로 믿는 경향을 보였다. 다른 남성들이었다면 세상은 정규분포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던 두 문항, 즉 "성차별 때문에 여성의 소득이 낮다" 에 대해 이들은 80% 가까이 치를 떨었고, 그리고 "여성차별보다 남성차별이 더 심각하다" 에 대해 100% 동의, 그 중에서도 60%가 강하게 동의했다. 이런 지점들에서 이들은 대다수 20대 남성들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을 만큼 강경했다.

이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이 가장 독특하면서도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는 문제는 공정성의 문제와 남녀의 문제가 만났을 때이다. 즉, 유독 남성과 여성이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배분하는 문제에 있어서만, 이 하위집단은 그 사회적 배분의 논리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 남성들은 "남녀의 소득이 비슷한 사회가 공정하다" 는 문항에 대해서[40] 과반수가 온건하게 동의했고, 기타 20대 남성들도 적어도 10% 정도만이 강한 반대를 보인 반면, 이 하위집단은 33.3%가 강하게 반대하는 이질적인 데이터 패턴을 그렸다. 기타 20대 남성들과 중장년층 남성들이 "여성의 수입이 적은 이유는 그들이 노오력을 안 해서" 라는 문항에 대해 평범한 종형 분포를 그린 반면,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은 2명 중 1명 꼴로 이 문장에 격한 동의를 표시했다. 이를 통해 보면, 이 하위집단이 믿고 주장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요컨대,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은 남녀가 어떤 사회적 희소가치나 권력을 경쟁적으로 획득하는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공정성의 원칙을 서로 다르게 생각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공정성의 원칙이 다수가 될 수 있으며,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 다르게 평가된다고 주장해 왔기에, 양측이 생각하는 공정성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41]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이 주장하는 것은 심플하다. 인풋이 큰 만큼 아웃풋도 커야 한다. 이 하위집단의 83.4%가 '남성' 대입 가산점 제도에 반대했다. 비록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지언정, 공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약자니까 남성들이 100만큼 투자해서 100만큼 가져가는 동안 그들은 80만큼 투자해도 100만큼 가져가는 걸 허용하자는 발상은, 이들의 관점에서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가당치도 않은 짓일 뿐이다. 이들은 오히려 그런 '여성우대 정책' 들이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걸 성차별이라는 도덕적인 비난으로 치환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자행하는 권력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느끼고,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고 느낀다. 형평성을 강조하는 크리스티나 호프 서머스에게 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안티페미니즘 하위집단은, 따라서 여성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적 게임의 룰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 '룰' 이 (기계적) 평등주의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축구에 비유하자면, 이들은 상대 팀의 선수들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경기를 진행하는 주심에게 가서 왜 저쪽만 봐주는 판정을 하냐며 따지고 있는 셈이다. 개도국 출신 축구팀과 똑같은 규칙으로 축구를 하면 평등하지 않으니까 이쪽은 골키퍼 빼라고 한다면(…) 그것을 스포츠맨십으로 볼 수 있을까? 상대 팀을 존중하려면 오히려 이쪽도 스코어가 어찌 나오든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들이 주장하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시사인 기사가 "여성을 혐오하는 20대 남성들" 을 보여준다는 세간의 인식이 틀린 이유다.

시사인 기사의 분석에서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4월 29일자의 원인 해석이다. 시사인 기사에서는 먼저 20대 전체의 경험으로서, 형평의 원칙을 강조함에 있어서 타인의 문제에 대한 내적 귀인이 심리적으로 크게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린다 스키트카(L.J.Skitka)[42]의 "인지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는 누구나 내적 귀인을 한다" 는 논문을 내세워서, 현대사회는 다른 세대의 경험과는 달리 가치의 해체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사려 깊게 생각할 기회가 많지 않고(인지적 부담), 결국 타인이 겪는 어려움을 그 타인 본인의 문제로 귀결시켜서(내적 귀인) 가혹한 형평의 원칙을 들이댄다는 것이다. 그리고 20대 여성들도 형평성을 추구한다는 사례로 조별과제에서 20대 여성들도 개인 기여별 평가를 선호한다는 점을 든다. 그런데 다음으로 20대 남성만의 경험으로서, 학창시절에 여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밀렸던 경험, 그리고 연애시장에서 남성이 손해 본다는 인식을 들어서 이들에게 피해의식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43] 하지만 여성들은 피해의식이 없는가? 학창시절에는 여학생들도 남학생들과의 경쟁에서 큰 위협을 느낄 수 있으며, 연애시장에서 여성 역시 남성에게 많은 서운함을 느낄 수 있지만, 기사에는 여성들의 응답에 관련된 데이터는 없다. 20대 전체의 경험으로부터 20대 남성만의 경험을 분리해 낼 때 '여성이 생각하는 생애주기별 (특히 학창시절) 남녀 능력 차이', '여성이 생각하는 연애 중의 이기적 행동' 에 대해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은 의문스럽다.[44] 20대 여성들의 응답 패턴이 20대 남성들과 확실하게 달라진다는 징후가 있어야 이 해석이 확증되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그럼에도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다면, 20대 남성에 관련된 다양한 주장들이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가설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탐색적인 조사 특성상, 본디 해석에는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가설의 개발과 산출이 완료되었으므로, 이제는 정말로 이들이 제기한 해석이 옳은지 검증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기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어도 우리는 생산적으로 틀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접하면서도 여전히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20대 남성들은 정치적으로 보수화됐다", "20대 남성들은 여성혐오를 한다" 는 주장들에만 머물러 있다면, 아마도 이들의 노력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 하나를 들자면, 남초 여론은 메갈리아 사태 초기부터 언론과 정치권의 페미니즘 편향에 대한 분노가 상당히 강했다. 진보적 성향이 강한 20대 남자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정치권과 언론이 갑자기 자신들의 반대편에 서게 된 것이고,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해주는 곳이 사라진 것이다. 진보세력은 사회가 평등한가에 초점을 맞추고 남자가 유리한데 왜 불만을 가지고 있지? 라고 생각하지만, 20대 남성은 체감적으로 사회 전체가 여성편 을 들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의 20~30대 여성의 높은 지지율을 보자. 그런 점에서 20대 남자현상을 만드는데 기성 남성 세대의 역할도 일정 정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 sisa.in을 입력해도 된다.[2] 週刊 金曜日(주간 금요일), 이쪽은 광고 없이 정기 구독료로만 운영한다![3] 기자사관학교로 꽤나 명성을 날리던 시사저널이 굳이 유력 일간지에서 사장을 초빙해 올 이유는 광고영업[4] 언론고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넘쳐나는 기자 지망생들을 임시 채용하고 외부 필진들에게 돈을 주며 기사를 사서 잡지를 만들었던 것. 하지만 전문적인 훈련이 안 된 인턴들이 쓴 기사의 수준이란 게 뻔하지 않겠는가. 엉망인 기사 수준에 기존 독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시사저널은 그야말로 막장테크, 훗날 2013년 한국일보 사태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5]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주진우 기자가 술회하기도 했다.[6] 참고로 파업에 참여했던 23명 중 회사로 복귀한 1명은 2011년 시사저널 편집장이 되었다.[7] 이건희 회장 밑에서 15년간 넘게 회장 비서실장,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삼성그룹 경영전략실장을 역임하면서 2인자로 군림하던 이학수와 그의 인맥들은 결국 2010년 이재용 후계구도 확립 과정에서 일제히 숙청되었다. 이 과정에서 같이 쓸려나간 게 이학수의 부산상고 동문이었던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 그리고 김응용이 데려온 선동렬 감독이었다.[8] 박명경의 출세 경위를 암시한다[9] 책에는 정확히 이렇게 나와있다. '이건희 회장 가족과 친분이 깊은 한 인사는 "이 회장의 셋째 딸이 박명경 때문에 '우리 엄마가 피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다"라고 말했다.' (주기자, 86쪽)[10] 실제 박명경의 친오빠는 삼성전자에서 상무로 근무했고, 친 동생도 삼성의 협력회사의 대표였다.[11] 이건희는 A, 홍라희는 A', 이재용은 JY 이런 식이었다[12] 하지만 시사잡지의 파이가 한정되어 있고 나꼼수, 주진우 기자의 인기가 매우 높다보니 한겨레21에서 주진우 기자의 추천에 시사in으로 갈아타는 정기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13] 이때 시위구호가 사탄기자 물러가라, 주기자를 죽이자 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나는꼼수다에서 주진우 기자는 사탄기자라는 별명으로도 언급된다.[14] 이 기사를 타이틀로 실은 시사in 215호는 시사주간지로는 이례적으로 2쇄를 찍을 정도로 팔려나갔다.[15] 과거에는 합리적인 대북관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2018년 이후 북한 옹호 주장으로 논란을 받고 있는 경향신문과 비교된다.[16] 프레시안의 경우, 옹호하는 각종 기사와 기고문 등으로 인해 후원을 중단하거나 협동조합에서 탈퇴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저희는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고 '재정적 압력'을 행사하는 이런 시도에 굴하지 않겠다' 고 말해 화를 더 부채질했다. #[17] 매주마다 편집국장이 직접 출연해 자사의 주간지를 리뷰하는 코너로, 이번 호에 소개된 기사들 링크. 일베코드,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18] 역사 속 ‘미러링’이 건네는 고민거리가 대표적이다.[19] 넓은 의미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커버 기사로 올라간 페미니즘에 귀 기울일 시간, 돈 되는 페미니즘을 보여주겠다도 포함된다.[20] 게다가 이 130만 byte는 글 전체를 날려버린 '반달' 공격이었다.[21] 135만인 걸로 보였으나 러프하게 계산한 결과 130만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22] 메갈리아나 메갈리아 하위문서의 역링크가 사용된 문서가 대표적이다.[23] 게다가 나무위키에서는 일베저장소를 비롯한 다른 사이트의 문제점도 자세하게 써놓았다.[24] 주소도 http://www.sisainlive.com에서 http://www.sisain.co.kr로 바뀌었다.[25] 하지만 환불사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그런지 나중에는 개인 절독 문의에도 호소했다고 한다.#[26] 정작 그 삼성은 비슷한 시기 갤럭시 노트7의 배터리 폭발 사건에 대해 성의 있는 사과와 리콜을 발표하였다. 그 사과 대상에 외부 충격으로 폭발했다는 말을 들으며 블랙 컨슈머 취급당한 사람들이 제외된건 넘어가자 시사인은 아래의 욱일기 논란의 해명문까지 더해 삼성과 비교되어 사과도 제대로 못한다고 더 비판 받고 있다.[27] 지금은 논란이 된 사진을 부분적으로 잘라낸 버전으로 교체하였다.[28] 저 깃발은 욱일승천기가 아니다. 애초에 태극기와 더한 형태라는 것을 떠나서, 욱일승천기라는 말 자체가 틀린 표현이다.[29] 이 어구는 미러링의 소재로 다른 기자나 네티즌에 의해 패러디 되고 있다. #1[30] 굽시니스트의 경우 본격시사인 만화에서 나치해군기가 원본인 지온공국기와 태극기를 합성하기도 했다.[31] 본인들의 사소한거 하나하나를 대중들이 다 알고 있어야한다는 스타병 선민의식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선민의식 문제는 "공부는 셀프다"라고 알려진 이전 메갈 관련 문제에서도 불거졌다. 이정도면 고질병인 듯.[32]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도 "20대 남성들이 여성혐오를 한다는 사실이 드디어 입증되었다" 면서 똑같은 오독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33] 생각건대, 이런 전후맥락을 현직 국회의원들이 간과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사를 접하자마자 그 조사의 동기와 잠재적인 가능성, 정치적인 시사점을 곧바로 파악하고, 곧장 여기서 정치적 동력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는 데 착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20대 남성들이 이걸 놓치면 그만큼 정치적 영향권에서도 겉돌게 될 수밖에 없다. 사실, 20대 남성들은 탈정치화를 억제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 현재 매우 매우 시급하다.[34]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공유하면서 '직장생활을 해 본 남성들은 여성들이 불리한 것을 목격하고 체감하지만, 직장생활을 해 본 적도 없는 남성들이 무턱대고 그런 불리함은 없다고 주장한다' 고 말하지만, 사실 세대별로 나누어 분석할 때에는 코호트별 특성의 차이를 신중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분명 흥미로운 현상이긴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회학적 후속연구가 필요하다.[35] 이는 하술하겠지만 20대 남녀 간에 공정성의 기준이 되는 원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36] 이를 이 기사에서는 '정체성' 이라고 언급했는데, 현대 들어 정체성 정치니 뭐니 하면서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캐주얼해지긴 했지만, 적절하지 않은 명명일 수 있다. 과연 20대 남성들은 자기 자신을 안티페미니스트로 소개할까? 안티페미니즘이 자신의 일부를 구성하는 키워드라고 느낄까? 안티페미니즘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느낄까? 다른 안티페미니스트를 만나면 특별한 우애와 친밀감을 공유하게 될까? 학술적으로 엄격하게 따지자면 이런 종류의 질문에 YES라고 말할 수 있어야 정체성 집단이 된다.[37]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남녀의 동등한 지위와 기회 부여를 이루려는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한국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해 왔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피해자로만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남녀 평등보다 여성 우월주의를 주장한다",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에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여기서 4~6문항은 역채점(reverse coded) 문항으로 추정된다. 차후 관련연구를 계획하고 있는 위키러가 있다면 이 척도에 대해 참고할 것.[38] 만일 -6.0으로 기준을 완화하면, 20대 남성들의 아예 절반이 넘는 58.6%가 페미니즘 반대 집단에 속하게 된다. 즉, 20대 남성 집단 내에서 구성원들은 페미니즘에 '강한 반대'~'매우 강한 반대' 태도를 지니는 타인을 2명 중 1명 꼴로 만나게 될 수 있다. 만일 그 개인이 페미니즘에 반대하고 있다면, 다른 20대 남성들 앞에서 그런 자신의 태도를 매우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다.[39] 예컨대 《맨 박스》 의 저자이기도 한 남성 운동가 토니 포터(T.Porter)는 남성들이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좋은 방법이 바로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40] 시사인 기사에서는 이 문항을 '당위적 질문', 즉 답정너식 질문이라고 해서 좋지 않은 질문이라고 부연했다. 나무위키에 한정하여 감히 말하자면, 틀렸다. 하술하겠지만 공정성(fairness)에는 매우 다양한 기준들이 제시될 수 있고 평등은 어디까지나 그 중 하나의 원칙에 불과하다. '오직 평등만이' 절대 우월의 가치라고 믿는 일부 사람들만이 이 문항을 당위적 문항이라고 느낄 뿐이다. 그리고 당위적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당연한 문항에까지 이상하게 응답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매우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문항 배치가 될 수 있다. 당장 이 기사에서 이 문항을 그렇게 써먹지 않았던가?[41] 이미 일찍이 1975년에 심리학자 몰튼 도이치(M.Deutsch)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할 때의 공정성의 원칙을 형평의 원칙(equity principle), 평등의 원칙(equality principle), 필요의 원칙(need principle)으로 정리했었다. 그리고 이후 다른 심리학자인 톰 타일러(T.R.Tyler)는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fairness)의 개념이 앞의 3가지 자원배분의 원칙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현대의 조직심리학자들과 리더십 이론가들은 더 나아가 정보적 공정성이나 상호작용적 정의 같은 개념들까지 거론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다양성과 복잡성을 간과한 채 무조건 평등 = 공정함이라는 등식을 세우는 것은 일부 사회 운동가들의 지적 게으름에 가까우며, 이들이 지적 지형도 상에서 얼마나 동질적인 집단인지를 보여준다. 이들이 말하는 '한국사회의 공정성 인식' 이라는 개념화도, 따라서 한번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42] 미국의 도덕심리학자로, 어째서 때로는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과 유사한 도덕적 판단이나 정의 판단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상황적 논리를 개발한 유명한 논문들이 학계에 몇 건 알려져 있다.[43] 따지고 보면 이것도 이상한 해석이 될 수 있다. 이들의 관점에서 이것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그저 '현실의 인정' 일 수도 있다. 즉, "우리는 학창시절에는 남성이 여성들에게 밀린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니까 너희 여성들도 직장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밀린다는 '현실' 을 인정하라" 고 주장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이걸 굳이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오히려 부족하다.[44] 그 중에서도 생애주기별 능력 차이 데이터는 특히나 다른 그래프들과는 달리 세대 간, 젠더 간 비교를 위한 다른 꺾은선들이 전혀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구심을 더한다. 도해 상으로 그런 비교를 시각화하는 게 불가능하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