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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19:04:05

신마적

엄동옥에서 넘어옴
경성 조직폭력배 두목
종로
구마적
신마적
쌍칼
본정
하야시
서대문
김기환
왕십리
김남산
마포
정춘식

<colbgcolor=#000,#050505><colcolor=#fff> 신마적
新馬賊
파일:55_jho9405.jpg
본명 엄동옥 (嚴東鈺)[1]
별명 신마적
출생 1909년?[2]
대한제국 평양
사망 1961년?[3](향년 52세?)
북한 평양?
국적
[[대한제국|]][[틀:국기|]][[틀:국기|]](1909~1910)
파일:일본 국기.svg 일제강점기 조선(1910~1945)

[[소련|]][[틀:국기|]][[틀:국기|]](1945~1946)

[[북한|
북한
북조선인민위원회
]][[틀:국기|
행정구
북조선인민위원회
]][[틀:국기|
속령
북조선인민위원회
]](1946~1948)

[[북한|]][[틀:국기|]][[틀:국기|]](1948~1961?)
신체 182cm
본관 영월 엄씨
학력 보성전문학교 (졸업)
직업 조직폭력배, 유흥업[4]

1. 개요2. 상세 및 생애3. 여담4. 루머5.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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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시대에 YMCA 학생주먹패의 보스로 구마적, 김기환, 김남산, 정춘식 무리들과 경성일대에 활동했던 조직폭력배다.

2. 상세 및 생애

평양 출신으로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확인된 바 없다. 그는 보성전문학교[5]를 졸업하고 일본 제국 도쿄에서 유학한 엘리트다.[6] 포악한 성격과 반대되게 유창한 일본어와 만주어를[7] 구사했었고, 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술에 취하지 않았을때는 상당한 달변가였다고 한다.

1930년경에 일본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직장을 구하려고 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 본인이 원하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성격이 포악해졌다고 한다.

그는 건달이 되어 횡포와 폭력을 일삼던 중, 당시 종로2가에 있던 YMCA를 배회하다가 YMCA 학생주먹패거리들과 시비를 붙게 되고[8] 엄동옥은 시비끝에 학생주먹패 몇명을 패다가 학생주먹패 2인자인 갈치[9]라는 인물을 때려눕힌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타난 학생주먹들 중 1인자였던 해학기[10]마저 쓰러뜨리고 엄동옥은 YMCA를 장악하게 되었고 이후 해학기와 갈치는 엄동욱의 부하가 되었다고 한다.

YMCA 학생주먹패들 중 엄동옥의 측근이었던 인물의 증언에 의하면, 6척(182cm[11]) 장신으로 구마적과 비슷했다고 하며 엄청난 거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거구인데도 험상궂게 생긴 구마적과는 달리 신마적은 전성기때 조선 여학생들 여럿이 흠모할만큼 미남이었다고 한다.

그는 상당한 유도 실력자에 씨름까지도 잘했으며, 무엇보다도 구마적 이상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괴력으로 유명했다. 그도 구마적처럼 맨손으로 잣을 으깨고 호두껍질을 손가락으로 깨부수며, 성인남자 두세명이 달려들어도 못드는 역기를 단숨에 들어 올리는 괴력을 지녔다. 이에 못잖게 주먹실력도 엄청났지만, 실제 엄동옥의 특기는 이 엄청난 괴력을 동반한 유도와 씨름 기술로 사람을 패대기 쳤다는데, 실제로 그와 싸운 상대들이 그에게 던져져서 반신불수가 되는 모습들을 목격한 당대 싸움꾼들의 증언이 다수 있을 정도였다. [12]

엄동옥은 이 엄청난 괴력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신마적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렇게 불리게 된 것에는 정확한 증거들은 없고 여러가지 설들만 있다. 그 중 널리 알려져 있는 팔씨름 승부 설인데, 평소 해학기가 군림했던 YMCA 학생주먹패들을 곱게 보지 않았던 구마적이 그 해학기를 꺾고 YMCA를 장악하고 더 활개치고 다니는 신흥 강자인 엄동옥과 우연히 술집에서 조우하게 됐는데, 서로 팽팽한 긴장이 오고가던 중 구마적이 먼저 맞짱 대신 팔씨름 한번 겨뤄보자고 한 뒤, 팔씨름에서 진 구마적이 그를 새로운 마적의 탄생이라며 신마적이라 부르게하고 의형제를 맺게 되었다는 설이다.[13]

후일 구마적을 이긴 김두한에게 패배한 뒤 부하인 해학기와 갈치를 포함한 몇명과 함께[14] 만주 봉천으로 건너가서 봉천에서 주점을 하던 절친의 주점 경영을 돕다가 만주의 조직폭력단의 간부가 되어 만주에 있던 일본 야쿠자들을 제압하며 그곳에서도 건달 생활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당대에 유명했던 여러 폭력배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사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15] 다만 신마적과 함께 있었던 부하의 증언에 따르면 만주에서 해방소식을 듣고 평양으로 건너 갔는데 그 뒤 6.25 사변으로 해학기를 포함한 부하 4명이 공산당원들에게 사살당했고, 이 증언을 한 부하가 엄동옥에게 함께 남한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평양에 남았다고 한다. 그 뒤 생사여부가 확인이 안 됐고 1961년경 평양에서 병사했다는 얘기도 들었으나 이것 역시 확인된바 없다.

3. 여담

4. 루머

5. 대중매체에서

신마적의 비중이 가장 높은 매체라고 할 수 있는 야인시대 이외엔 '감격시대'라든가 '불문율'같이 일제강점기 주먹세계를 다룬 작품에서도 주로 초반에 김두한에게 패배해 전투력 측정기 역할을 해주는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장군의 아들에서도 등장하며, 일본인과 싸우다가 쓰러지면서 김두한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5.1. 드라마 야인시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신마적(야인시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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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영화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 1편에서도 신마적이라는 인물이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김형일[20]이 연기했으며 구마적과 1대 1로 대결하여 이기는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야인시대의 개차반 신마적과는 180도 다른 인물로, 성격이 매우 점잖고 신사적이며 김두한을 특별히 아끼고 뒤에서 지원해준다.[21] 인텔리가 어째서 깡패질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김두한 역시 신마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지, 신마적이 자신을 찾는다고 하자 놀라고 신마적 앞에서는 당연하다는듯이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대한다. 김기환과는 작중 면식이 없지만 형님으로 칭하는 걸 봐선 윗사람 대접 하는 듯 싶다.

하지만 이후 김동회가 속한 하야시 패거리와 싸우다 일본도에 찔려 큰 부상을 입으면서 퇴장한다.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한 김두한이 쳐들어가서 모두 박살내는 것이 영화의 후반부 내용. 1편 마지막 씬에서는 병원에 입원한 채 문병을 온 김두한의 손을 잡으며 "너는 장군의 아들이다"라고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당대 인텔리에 신진 주먹이면서 설정이나 작중 행적은 그야말로 현실도피에 가까운 행동을 자주 보여준다. 김두한을 보호하고 조언을 해주는 것은 좋은데, 하야시에 맞서서 종로를 맡아달라는 제안엔 자신은 학생이라 불가능하다면서 회피해버리질 않나 자신을 포함한 YMCA 학생패들이 징집대상이 되자 혼마찌, 그것도 하야시 생일 잔치가 열리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다 칼을 맞아버리는 등 민폐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22]

5.3. 드라마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원래는 유태웅이 배역을 맡아 출연하기로 했지만, 작가 교체로 조연들 대부분이 잘려나가며 출연이 무산되었다.

5.4. 영화 신마적: 독불장군 엄동욱



[1] 한 때 엄동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야인시대에서도 신마적의 본명을 엄동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엄동이 맞다. 한자까지 쓰여있어 확인 사살. 아마 남자 이름에 '옥'이란 글자를 잘 쓰지 않는데다 몬데그린으로 인해 '욱'으로 헷갈린 듯 하다. 야인시대에서는 김원봉도 김원으로 자막이 잘못 나오는 등 오타 표기가 좀 많은 편. 여담으로 신문 기사들 내용이 전부 술 먹고 행패부려 경찰서 간 얘기 뿐이다.[2] 1907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마적보다 2살 어렸다는 증언이 있어 출생년도를 환산하면 1909년이 된다. 다만 1935년 기사에 엄동옥의 나이가 28세, 1907년생으로 나왔었다. 이것이 만 나이일시 29~30세가 된다. 다만 1932년 기사에 엄동옥의 나이가 19세, 즉 1913년생으로 나온 것도 있어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당시 기사들을 보면 신마적을 사칭해서 횡포를 부린 인간들도 많았다고 한다.[3] 신마적이 1961년 평양에서 자연병사 했다는 소문이 사실일 경우에 해당되며,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4] 김두한에게 패배후, 만주로 갔을때 지인의 주점 경영을 도왔다.[5] 고려대학교의 전신이다.[6] 도쿄제국대학에서 유학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았다. 도쿄 내 명문대학 중 한 곳에서 공부한 것으로 추측된다.[7] 이 시대 문맥에선 표준중국어, 즉 관화를 뜻하는거지 청나라 애신각라조 그 만주어 말하는거 아니다.[8] 엄동옥의 측근이었던 인물의 증언에 따르면 술을 좋아했음에도 운동을 거르지 않을만큼 운동광이었다고 한다. 학생주먹패들과 시비가 붙은 이유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Y의 체육관에 들렀는데, 당시 Y회원이 아니면 이용을 할 수 없었음에도 엄동옥은 '같은 조선인 끼리 그럴거냐'며 되려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9] 본명은 이민규며 한성권보 출신으로 해학기의 고향 친구다.[10] 당시 YMCA 운동부와 학생 주먹패의 보스였던 인물로써 별명이 살인주먹이라 불렸다. 그도 신마적에 뒤지지 않는 기골이 장대한 거한인데다 만주에서도 미들급 챔피언을 지냈던적이 있는 이름난 권투선수 출신으로 같은 권투선수 출신인 김기환과도 인연이 있었다. 실제 YMCA 학생 주먹패는 숫적으로는 구마적 패거리들보다 더 많았으며 해학기는 구마적의 부하들 중 그의 최측근의 간부급 강자 몇몇을 쓰러뜨린적이 있어 당시 천하의 구마적도 학생주먹패를 눈엣가시로 여겼음에도 섣불리 건드리질 못했다.[11] 당시 척 단위가 30.3cm니까 계산하면 182cm가 나온다.[12] 출처[13] 또다른 설은 신마적이 실제로 구마적과 맞짱을 떠서 팽팽한 접전끝에 승리를 거두었다는 설도 있다. 허나, 팔씨름 승부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있는 설이다. 실제 YMCA의 학생주먹패들에는 운동부원들도 있어 단순 세력으로 치면 우미관 주먹패들보다 많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고 둘다 패거리들이 보는 앞에서 누구하나 맞짱에서 지면 잃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14] 엄동옥은 김두한에게 패배 후 3개월간 입원해있었고, 그가 입원한 뒤 YMCA 학생주먹패는 자연스레 해체되어 버렸다.[15] 김두한1972년 11월 21일에 고혈압으로 사망, 김기환은 1949년 7월 20일에 암으로 사망했고, 구마적은 196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흔히 하야시로 알려진 선우영빈은 1978년에 사망했다. 그리고 이화룡은 1984년 2월 24일에 고혈압으로 사망했으며, 마지막으로 시라소니로 알려진 이성순은 1983년 1월 25일에 사망했다.[16] 반대로 구마적은 누구한테는 잘해주거나 하는 그런 것도 없었고, 부하들이건 상인들이건 다 포악하게 돈을 뜯으며 다루었다. 그래서 김두한에게 얻어맞고 지자마자 부하들이 금방 떠나거나 김두한 밑으로 들어가버렸다.[17] 아직 18살의 어린나이에 천하의 구마적을 때려눕히고 어마어마하게 세력을 확장한 김두한이었기에 섣불리 덤벼들순 없었기 때문이다. 구마적, 신마적만 유명했던게 아니라 김두한의 엄청난 싸움실력은 이미 경성 시내 주먹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슈였다. 특히 김두한의 발차기는 한대만 맞으면 반격의 여지도 없이 무조건 인생 끝장이라고 소문나서(구마적이 그렇게 건달인생 끝나서 난 소문) "잇뽕(한방) 김두한"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벌벌 떨었을 정도였다.[18] 사실 이건 김두한의 계략이다. 김두한은 신마적과도 싸울 명분을 위해 부하들을 시켜 일부러 신마적의 심기를 건드려 두들겨 맞게 놔둔 뒤 아우들의 복수랍시고 신마적에게 도전할 명분을 만든 것이다.[19] 구마적에게는 아예 더 노골적으로 도발했었다. "형님 이제 저한테 맞으실텐데 부하들 다 보는데서 맞으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대한극장 뒤로 따라 나오셔서 저랑 얘기 좀 합시다."라고 희롱하듯이 도발해서 진짜 따라나오게 만들었다.[20] 당시 CBS 성우였기 때문에 다른 주역들과 달리 김기환 역을 맡은 민응식과 함께 직접 자신의 배역를 더빙했다.[21] 상인들에게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라며 잘 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도 있다.[22] 말단부터 시작한 김두한이 일인자가 되기 위해선 기존의 주먹들이 퇴장하는게 옳다. 기존의 윗전들이던 쌍칼, 니또류 무사시, 김기환, 신마적의 리타이어는 비참한 수준. 쌍칼은 무사시와의 나이프 파이팅 후 퇴장, 무사시는 술집에서 깽판을 부리다 김두한에게 퇴장, 김기환은 술처먹고 혼마찌에서 화류계 여자에게 집쩍대던 형사를 폭행하여 수감(소설에서는 술에 취해 순사부장에게 오줌을 먹여서 도피), 신마적은 상기했다시피 하야시 생일상에 멋대로 쳐들어가 깽판부리다 칼부림에 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