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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넵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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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러시아 국영방송 로시야 1이 러시아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러시아인’을 선정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투표가 진행됐으며 러시아 인구 1억 4,300만 명 중 5천만 명 이상이 투표에 참가했다.
그러나 투표 과정에서 부정과 방송국 측에 의한 순위 조작 정황으로 인해 러시아 내에서 광범위하게 비판받았다.
1위2위3위4위
알렉산드르 넵스키 표트르 스톨리핀 이오시프 스탈린 알렉산드르 푸시킨
5위6위7위8위
표트르 대제 블라디미르 레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9위10위11위12위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이반 4세 예카테리나 2세 알렉산드르 2세
영문 위키 참고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키예프 루스 제41대 대공
블라디미르 대공국 제11대 대공
노브고로드 공화국 제47대 공작
알렉산드르 넵스키
Алекса́ндр Не́вски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lexander_Newsk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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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435px-Alexander_Nevsky,_Russian_School_19th-20th_century.jpg
<colbgcolor=#870100><colcolor=black> 출생 1221년 5월 13일
블라디미르-수즈달, 페레슬라블잘레스키
사망 1263년 11월 14일 (향년 42세)
블라디미르-수즈달, 고로데츠
재위기간 노브고로드 공작
1차 1236년 ~ 1240년
2차 1241년 ~ 1256년
3차 1258년 ~ 1259년
키예프 대공
1246년 ~ 1263년
블라디미르 대공
1252년 ~ 12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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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0100><colcolor=#fff> 이름 알렉산드르 야로슬라비치 넵스키
(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Яросла́вич Не́вский)
(영어: Alexander Yaroslavich Nevsky)
배우자 폴로츠크의 알렉산드라
바실리사
자녀 바실리 알렉산드로비치
에우독시아 알렉산드로브나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아버지 야로슬라프 2세
어머니 표도시아 이고레브나
묘소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
종교 동방 정교회 }}}}}}}}}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33.media.tumblr.com/tumblr_meoegm2uyx1rg58puo1_1280.jpg
우리에게 칼을 빼들고 온 자는 그 칼에 죽는다.
알렉산드르 넵스키노브고로드 공화국의 공작,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 대공이었다.

스웨덴과 독일 침략군을 물리치고 능란한 외교술로 몽골인들의 침략을 저지하며 노브고로드 공국을 지켜낸 공로로 러시아인이 꼽은 가장 위대한 러시아인 1위에 선정되었을 정도로[1]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 되어 현재까지 숭상받고 있다.

2. 생애

블라디미르의 대공이었던 야로슬라프 2세의 둘째 아들이며 페리슬라블 잘레스키에서 태어났다.

노브고로드 연대기에 의하면 스웨덴군이 이조라 강과 네바 강의 합류지점에 상륙하자 1240년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공격해 네바 강의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무찔렀다고 한다. 이 전투로 19살의 그가 네바 강의 이름을 딴 넵스키(Невский)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꽤나 유명한 전설이다. 그러나 비 러시아 측 기록에서는 이러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실제 역사에서 스웨덴은 이 당시 내전 중이었기 때문에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 기록을 부정하고 있다.

한편 1239년부터 북방 십자군을 수행하던 튜튼 기사단의 일파인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노브고로드 공국 근처로 쳐들어왔다. 리보니아 기사단은 원래는 현재의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살던 발트족핀족 이교도들을 정복하며 가톨릭을 전파하는 십자군을 자처해왔는데, 이번에는 동방 정교회를 믿는 노브고르드 공국을 이단으로 규정한 뒤 침공한 것이다.

튜튼 기사단과 리보니아 기사단이 발트계, 핀계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짓밟고 착취하며 정체성까지 말살해왔던 상황에서, 노브고로드 공국마저 리보니아 기사단의 손에 넘어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했다.[2] 1241년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은 먼저 노브고로드의 형제 도시 프스코프를 점령한 뒤 다른 십자군 기사단원들 및 에스토니아인 징집 농노들과 합세하여 노브고로드로 진군한다.

넵스키의 군대는 숫자는 더 많았어도 리보니아 기사단과 그 동맹군에 비해서 무장이나 전투 경험이 빈약해서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대규모 회전은 1242년 4월 5일 페이푸스 호수 위의 빙판에서 벌어졌다. 넵스키는 노브고로드 보병들이 기사단의 돌격에 깔려죽지 않도록, 기사들이 마음껏 돌격하지 못하는 빙판 위를 전장으로 택했다. 그럼에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무장이 빈약한 노브고로드 공국의 보병들이 기사들에게 밀리며 고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리보니아 기사들의 무거운 갑옷과 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빙판이 깨져 기사들 상당수가 얼음물에 빠져 죽으면서 리보니아 기사단의 주력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고, 뜬금없이 자기편의 최정예 전력이 빙판 밑에 빠져죽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리보니아 기사단 군은 급격하게 사기가 떨어졌다. 보조부대로 데려왔던 에스토니아인 보병들이 제일 먼저 도주하자, 얼음물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아남은 기사들도 퇴각하기 시작했다. 넵스키가 이끄는 노브고로드 군대는 최정예 대부분이 얼음물 깊숙히 빠져죽어 사기가 곤두박질 친 리보니아 기사단 군을 추격해 만만한 에스토니아인 징집 농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이렇게 넵스키는 다시 한번 러시아를 외세의 침공에서 구하게 된다.

패배하고 돌아온 리보니아 기사단은 얼음물에 빠져 죽은 게 창피해서인지, "60배가 넘는 적들하고 싸우다가 기사 20명이 전사했다."라고만 간단하게 적어 놓고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페이푸스 호 전투 당시에는 리보니아 기사 100여명 말고도 400여 명의 다른 십자군 기사들까지 참전한 상황이었으며,[3] 보조부대로 데려간 에스토니아인들은 대부분 도망가거나 잡혀 죽었다. 리보니아 기사단의 명백한 완패였다.

페이푸스 호 전투가 벌어지던 때는 바투를 위시한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군에 의해 키예프 루스가 무너지면서 러시아인들 대부분이 생지옥을 겪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브고로드 공국마저 북방 십자군에 의해 무너졌다면, 러시아인들은 더 심각한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훗날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정교회에서 러시아군의 수호성인으로 받아들여지며, 위의 이콘도 그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형인 표트르는 소년기에 일찍 죽었으나 아버지 사후 삼촌인 스비야토슬라프에 의해 밀려나면서 블라디미르의 대공위를 물려받지 못했고, 결국 몽골의 힘을 빌려 1252년 블라디미르의 대공에 취임한다. 이후 그는 일생동안 반가톨릭에 친몽골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국내의 정적들을 견제하는 데 몽골의 권위를 빌리기도 했다.

비쳅스크 공이자 폴라츠크 공인 브랴체슬라프 바실코비치의 딸과 결혼해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두었으며, 그 중 막내아들이자 훗날 모스크바의 다닐로 불리는 다닐 알렉산드로비치모스크바 대공국을 세우며 모스크바 대공의 시조가 된다. 죽기 얼마 전 두 번째 아내와 재혼했는데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3. 사후

독소전쟁에서는 아래 그림처럼 독일(게르만족) 침략에 맞서 조국을 수호한 영웅으로 포스터나 선전화에 널리 그려졌다.

파일:external/www.allworldwars.com/Poster181.jpg


파일:external/www.saint-petersburg.com/alexander-nevsky-bridge-in-st-petersburg.jpg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교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소련 해군의 스베르들로프급 순양함 11번함은 그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러시아 해군의 보레이급 전략원잠 2번함의 함명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4. 평가

군사적 재능 뿐 아니라 정치적 재능도 뛰어나 로마 가톨릭과 몽골계 칸국 사이에서 적절한 행보를 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몽골계 칸국과 러시아를 싸움붙이려는 교황청의 부추김을 무마하였는데, 이는 종교 및 문화보다는 세금에 관심이 많던 몽골계 칸국보다 자신들을 방패막이로 이용하려는 교황청이 러시아에 더욱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서이다.

고로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진가는 정교회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로 동로마 제국에도 인정받고, 키예프 루스의 붕괴로 공멸하고 있는 루스계 공국들을 중재하고, 동서 양쪽에서 위험이 되는 카톨릭 세력과 킵차크 칸국에 적당히 비위 맞춰주는 다자적 줄타기 외교의 성공적인 수행자였다는데 있다. 전쟁 영웅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있지만 넵스키의 본질은 노회한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다는 것.

5. 대중매체에서

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가 문피아에서 연재되던 시절 주치 울루스의 편을 들어 주인공의 적으로 등장했다. 가톨릭 세력과 직접 싸워 본지라 종교를 강요하고 말을 안 들으면 칼을 들이대는 가톨릭보다 돈과 복종만 제공 하면 문화와 같은 것은 터치를 안하는 몽골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에 이 판을 뒤엎으려는 주인공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들은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제국의 생존을 위해 주인공이 그린 큰 그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세계관에서는 넵스키가 시대의 흐름을 볼 줄 모르는 인물이 되어 비참한 결말을 맞을 것이라 예상하며 불쌍하게 보고 있다. 실제로 작가도 언급한 사실인지라 일단 몰락은 확정된 상태로 보였었다.

다만 이건 실제 역사에서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편인데 실제 역사에서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반가톨릭 친몽골 정책을 펼친 건 사실이나 자세히 보면 킵차크 칸국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 주면서도 동로마 제국과도 무작정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어느 정도 협력하는 등 줄타기 외교의 정석을 보여준 인물이다. 당시 러시아 교회의 수장은 엄연히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세계총대주교이며 키예프 수도대주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서품받았다. 정교회의 수호자로 불리는 인물이 정교회 수장을 적대했다면 그 자체로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 없기에 네이버 시리즈 연재에서는 위의 내용 역시 수정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내용이 수정되어 요안니스 4세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린다.

5.1. 영화

5.1.1. 알렉산드르 넵스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Alexander_Nevsky_Poster.jpg


제작사인 모스필름 채널에서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전함 포템킨의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이며, 1938년 제작되었다. 1의 인물을 영웅시하였다.

영화의 시작은 알렉산드르 넵스키가 스웨덴군을 물리치고 은둔한 상태에서 몽골 관리가[4] 그를 휘하의 장수로 회유하기 위해 찾아오는 장면이며, 이후 독일 기사단의 침략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그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 후 노브고로드로 돌아온 그는 병사들을 규합해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적을 물리친다.

여기서 독일 기사단은 그야말로 악마와 같이 묘사되며[5], 반대로 알렉산드르 넵스키가 이끄는 러시아 군대는 악마를 물리치는 영웅들과 같이 묘사된다.[6]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을 비롯한 영화의 제작자들이 1941년 스탈린 상을 받은 것과, 영화의 제작 시점이 독소전쟁 직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뭔가 의미심장하다. 영화가 제작되었을 때는 아직 독일과 소련이 동맹국이었던 때라 상영이 금지되었으나 독소전쟁의 개전으로 상영금지가 풀렸다.

현대 영화에 자주 나오는 2인조 개그 캐릭터가 이 영화에도 존재한다.

한편 이 영화의 영화음악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하였다. 두 거장의 협업이라 어떨땐 저녁때 에이젠슈타인이 찍어 놓은걸 보고 시간을 써간 뒤 다음날 아침에 거기에 딱 맞는 곡을 써 들고 오기도 하고, 어떨땐 프로코피예프가 먼저 작곡해 놓은 곡을 에이젠슈타인이 듣고 영화 장면을 그 박자에 맞춰서 찍기도 하는 등 호흡이 잘 맞았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유성영화 극초기 작품임에도[7] 영화음악이 효과적으로 잘 쓰였다.

또한 프로코피예프는 이때 작곡한 곡 중 7곡을 추려서 칸타타를 만들었는데(Op.78),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고 흐름이 잘 이어지기 때문에 그의 중후반기 대표곡으로 평가받으며 종종 연주되고 있다. (다만, 단순한 영화음악 모음곡이 아니라 칸타타여서 합창단과 알토 솔로까지 필요해서 아주 자주 연주되지는 못한다.)

톰 클랜시의 소설 붉은 폭풍에서 소련의 방송을 모니터링 하는 미국의 정보장교들이 소련 방송에 갑자기 편성된 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가 갑자기 편성된 데는 소련 정부의 무슨 의도가 있는것 같다고 미국 정보장교들이 의심하는데 과연 그 다음날 아침 크렘린 궁에서 폭탄이 터져 영화에서 독일 기사들이 갓난아기까지 학살한 바로 그 장소인 프스코프에서 견학온 어린이들이 죽는 사건이 생기고, 소련 정부가 '서독 공작원이 저지른 테러'라고 발표하면서(사실은 KGB 요원이 저지른 자작극) 소련의 서독 침공 명분이 만들어진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이땐 아직 CG도 없던 시대여서 진짜로 수백명을 대려와서 직접 백병전씬들을 찍고 기마병들이 말 타고 돌격하는 씬들 전부 실제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진짜로 돌격한 것들이다.[8] 때문에 컴퓨터 CG로는 느낄수 없는 생생함이 있다.

5.2. 게임

5.2.1. 도미네이션즈

할인 이벤트 중 얼음 위에서의 전투의 배경 지식에 등장한다.

5.2.2. 징기스칸 4

시나리오 1, PK에서 추가된 시나리오 3에서 동유럽의 재야장수로 등장 하는데 정치74/전투88/지모76이며, PS판에서는 정치74/전투90/지모76인 먼치킨 장수. 시나리오 3에서 네바 강의 전투 이벤트를 보고 나면 전투가 4 상승하지만 NPC전용 이벤트라 플레이어가 루시 제공국으로 플레이할 땐 이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

5.2.3. 크루세이더 킹즈 2

역사대로 1246년대에 맞추면 알렉산드르 넵스키를 플레이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키에프의 대공이며 킵차크 칸국의 봉신이다 1252년부터는 블라디미르 대공직도 겸직하고 있다 무력은 21정도로 높은 편이나 넵스키라는 별도의 별명을 달고 있지는 않다.

5.2.4.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비잔티움 쇠망사에서 키예프 루스의 주력 영웅으로 등장한다. 유닛은 히페리온으로 게임 내 공중 영웅들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사실상 알렉산드로 넵스키가 죽으면 보라를 이기기 무척 힘들정도.

5.2.5. 라이즈 오브 킹덤즈

2022년 현재 최고의 기마병 적폐 중 하나. 공성에서 항우와 조합하면 1티어의 모습을 보여주며 필드에서도 기마병에게 보병에게 상성이 안 좋음에도 보병 최강 파칼 하랄 조합도 이겨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육성이 거의 필수로 추천된다.

5.2.6. 월드 오브 워쉽

해당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소련 해군의 스베르들로프급 순양함 11번함의 이름을, 또다시 따서 붙인 소련 경순양함 테크 트리의 10티어 함선으로 등장한다. 실제 스베르들로프급 순양함이 아닌 프로젝트 84형 순양함 설계안을 기반으로 제작된 함선이다.


[1] 다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본래 1위였는데 스탈린을 언짢아하던 국영방송이 수치를 조작했다는 말도 있다.[2] 이들은 개종한 원주민한테도 "응 아니야"를 외치며 칼질을 하던, 성기사 스킨 쓴 침략자 집단이었다.[3] 참고로 십자군 기사 한 명의 전투력은 셀주크 튀르크 기병 여러명과 맞먹는 것으로 고평가받았고 레반트 십자군 기준으로도 기사들이 수 백명 단위로 전사하면 대패로 간주되던 시절이었다.[4] 실제 동양계 배우가 출연한다. 당시는 소련 시절이라 카자흐, 우즈벡 등도 있었으므로 이쪽에 있던 동양계를 배우를 활용한 듯 하다. 하지만 러시아인 지금도 부랴트인, 칼미크인, 에벤키 같은 동아시아 외모랑 비슷한 몽골계 소수민족이 러시아에 수백만명 가까이 살고 있으며, 한국계 러시아인(고려인, 사할린 한인)과 중국계 러시아인도 적지 않게 살고 있다.[5] 가장 극단적인 예로 프스코프를 함락한 뒤 갓난아기를 불구덩이에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이후 여러 공산주의 국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인 여러 작품에서 클리셰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6] 그러나 노브고로드 주교와 귀족들은 적과 내통하는 배신자들로 묘사된다.당연하지만 당시 소련은 공산주의 였기에 귀족과 종교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것이다.[7] 에이젠슈타인의 실질적인 첫 유성영화 작품이다.[8] 잘보면 말들이 돌격하고 적들 앞에서 바로 멈추는걸 볼수 있는데 실제 역사였다면 그냥 문답 무용으로 돌격했겠지만 영화 촬영인데다가 아무리 이시기 소련이 사람을 갈아마시기로 유명했어도(…), 영화에서 진짜로 그렇게 했다간 다치거나 심하면 사망하는사람만 수두룩 빽빽하기에 안전장치로 배우들이 도중에 멈추게 한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