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ACB8C4><colcolor=#000000> 알론소 데 바잔 이 구즈만 Alonso de Bazán y Guzmán | |
| 성명 | 알론소 데 바잔 이 구즈만 Alonso de Bazán y Guzmán |
| 출생 | 미상 |
| 스페인 제국 | |
| 사망 | 1604년경 |
| 스페인 제국 | |
| 아버지 | 알바로 데 바잔 솔리스 |
| 어머니 | 아나 데 구즈만 |
| 형제 | 알바로 데 바잔 이 구즈만 |
| 배우자 | 마리아 데 오렐라나 |
| 직위 | 칼라트라바 기사단 기사, 바야가스, 알보게라, 산타크루스 데 무델라, 엘 비소의 사령관, 스페인 갤리선 중장. |
1. 개요
스페인 제국의 군인.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해군 제독으로 손꼽히는 알바로 데 바잔 이 구즈만의 동생이다.2. 생애
카를로스 1세 치세에 대서양 함대 사령관을 맡아 무슬림과의 전쟁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알바로 데 바잔 솔리스와 테바 백작과 아르달레스 후작 가문의 직계 후손인 아나 데 구즈만의 아들이다. 형으로 알바로 데 바잔 이 구즈만이 있었다. 1565년 사드 왕조를 상대로 테투안 강을 봉쇄하고 무슬림 군과 전쟁을 벌인 아버지의 곁에서 함께 싸웠다.1584년 돛과 노의 힘을 결합하는 새로운 함선을 건조하려 했던 아버지의 계획을 이어받아서 갤리선과 자브라를 결합한 '갈리자브라'를 건조했으며, 1588년 스페인 대함대의 1차 잉글랜드 원정에 투입된 주력 함대를 지원할 제2함대에 가담했지만,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라코루냐와 리스본에서 잉글랜드군의 반격에 대비하여 방어를 준비하던 보병대 지휘관을 맡았다.
1589년 4~7월,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노리스 등이 이끄는 잉글랜드 대함대의 스페인 원정에 맞서 타구스강둑에 배치된 포르투갈 갤리선을 지휘했다. 그는 타구스강둑에서 리스본에 접근하는 잉글랜드 육군을 향해 대포를 쏘고 총격을 가해 큰 피해를 안겼다. 이후 잉글랜드군이 퇴각하자 즉시 추격하여 며칠 동안 낙오된 잉글랜드 함선 3척을 나포했다.
1590년 위그노 전쟁에서 프랑스 가톨릭 동맹을 지원하기 위해 테르시오를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로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591년 9월 9일 1차 플로레스 해전에서 함선 55척을 이끌고 초대 서퍽 백작 토머스 하워드의 지휘하에 보물선을 습격하려던 잉글랜드 함대 22척을 공격해, 후방에서 끝까지 버티던 리벤지 호를 포획하고 선장 리처드 그랜빌과 병사 250명을 사살 또는 생포했다. 그 후 보물선을 본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7일간의 폭풍에 휩쓸리면서, 나포한 리벤지 호와 스페인 군함과 상선 15척이 침몰하는 사고를 겪었다.
1592년 컴벌랜드 백작 조지 클리퍼드, 월터 롤리, 존 버러, 마틴 프로비셔가 이끄는 잉글랜드 함대를 상대로 2차 플로레스 해전을 치렀으나, 그들이 1,600톤급에 달하는 초대형 보물선 마드레 데 데우스 호를 나포하여 잉글랜드로 끌고 가는 걸 저지하지 못했다. 마드레 데 데우스는 역사상 가장 큰 범선 중 하나로 스페인 제국에 귀속된 포르투갈 왕국의 자랑거리였으며, 50만 파운드에 달하는 화물을 싣고 있었다. 알론소는 이 일로 궁정의 신임을 일시적으로 잃었다. 1597년 에식스-롤리 원정을 단행한 잉글랜드 대함대가 아소르스 제도를 습격했을 때, 이를 격퇴하기 위한 함대에 가담했지만 적을 실제로 발견하지 못했다. 1604년경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생전에 칼라트라바 기사단 기사, 바야가스, 알보게라, 산타크루스 데 무델라, 엘 비소의 사령관, 스페인 갤리선 중장을 역임했으며, 마리아 데 오렐라나와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