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육군군수사령관
대한민국 육군군수사령부 예하부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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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종합보급창 | 육군종합정비창 | 육군탄약지원사령부 | ||||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제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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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군수사령부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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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군수사령부 陸軍軍需司令部 Republic of Korea Army Logistics Command | ||||||
본질에 충실, 경영 혁신, 전승 보장 | ||||||
창설일 | 1954년 12월 22일(제2군관구사령부)[1] 1960년 1월 15일(군수기지사령부)[2] 1970년 12월 15일(육군군수사령부) | |||||
상징명칭 | 칠성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대한민국 육군본부 | |||||
종류 | 기능사령부 (군수사령부) | |||||
역할 | 대한민국 육군의 군수 업무 지원 | |||||
사령관 | 중장 손대권 (육사 47기) | |||||
참모장 | 소장 박춘식 (육사 49기) | |||||
주임원사 | 원사 000 (부사후 000기) | |||||
위치 | 대전광역시 유성구 반석동 | |||||
홈페이지 |
육군군수사령부령 제2조(설치와 임무) ① 육군에 육군군수사령부(이하 "군수사령부"라 한다)를 둔다. ② 군수사령부는 육군의 군수지원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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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전광역시 유성구를 근거지로 하는 대한민국 육군의 군수 분야를 책임지는 대한민국 육군본부 직할의 군단급 사령부. 애칭은 칠성대. 약칭은 군수사.2. 상세
1960년 1월 15일,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제2군관구사령부 부지에서(현 양정 근린공원) '군수기지[3]사령부'로 창설되었다. 제2야전군에서 담당하던 군수지원이 1959년 육군본부 군수참모부로 이관되었으나 당시 육본이 서울에 있던 관계로 업무가 수월하지 않던 문제가 있어 제2군관구사령부를 해편하여 군수지원을 보다 전문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부대 창설 목적이다.당시 초대 사령관은 후에 대통령이 된 박정희 소장. 위키백과에서는 이 부대의 실질적인 전신으로 제2군관구사령부를 언급하고 있으나, 사령부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군수기지사령부로 개편된 1960년 1월 15일을 부대창설일로 삼으며, 인트라넷 사이트 부대 약력란에서도 2관구사령부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1970년 12월 15일 군수사령부로 개편시 '국군 군수사령부'로 개편하는 안을 국방부에서 검토하기도 하였으나 각 군의 이해관계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993년과 2011년에 검토되었다가 만 것을 마지막으로 아직도 국방부 직할부대로의 개편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4]
1970년 12월 15일 '군수사령부'로 개편(증편)되었다. 사령관 편제도 소장에서 중장으로 바뀌면서 군단급 부대로 증편되었다.
1964년에 동래구 연산동(현 부산광역시청 부지)로 이전했다.[5] 1974년 10월 1일에 남구 대연동(현 대연 힐스테이트 푸르지오)으로 이전하여 2007년 2월까지 그곳에서 주둔하였다. 같은 해에 탄약지원사령부를 예속받았다. 1974년 4월 1일 2군관구사령부(사령관 소장)가 거제리에서 재창설되면서 부산지역위수 임무를 2군관구사령부로 이관하였다. 다만 그 이후에도 부산지역 계엄사령부 수임부대 역할은 군수사가 계속 맡았다.1979년의 사례 아마도 부산지역 군부대 중 최상급부대였던 것이 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제2군관구사령부는 1974년10월 연산동 '구' 군수사령부 부지(현 부산시청)로 이전하여 1982년 해체될 때까지 주둔하였다. 1982년 2월 16일 부산의 지역방위사단인 제53보병사단이 창설되어 부산지역 위수임무를 맡게되고 2군관구사령부는 그해 10월 해체되었다. 제53보병사단은 1982년부터 연산동 '구' 2군관구 사령부 부지(현 부산시청)에 주둔하다가 1992년 6월 해운대 장산으로 이전하였다. 제2군관구사령부는 2번 창설되고 2번 해체되는 역사를 가진 부대로 기억되고 있다.
과거 군수사령부 예하로 있었다가 독립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분리된 육군수송사령부가 국군수송사령부로 전환되었고, 여러 정비창, 보급창이 통폐합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2007년 2월부로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6]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대전 도시철도 1호선 반석역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 거리로[7] 예전에는 육군교육사령부의 터[8]였다. 사령부 본부지역에 있는 연못이 교육사 시절에 조성된 것이다.
대전권 부대라 사령부 본부가 자운대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군수사령부는 자운대 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운대에서 멀지 않은 대전 유성구 모처에 자리하고 있다. 반석역 시가지와 사실상 연담화되어있다. 이 때문인지 군수사령부라는 이름의 버스정류장도 있을 정도로 부대 위치가 대놓고 눈에 띈다. 이런 사령부급 부대는 애당초 위치를 숨기는 게 의미가 없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타지의 예하부대가 아닌 사령부 부지 안에 있는 부대원들은 꽤 축복받은 근무환경 아래 생활하는 편이다. 아주 가끔, 사령부 앞 아파트에 사는 병사가 사령부를 자대로 배치받아, 외출박시마다 아예 자기 집서 살다 오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집이 대전이 아닌, 수도권이나 부울경이더라도 지하철역이 가까워서 유성버스터미널이나 대전역으로 가기가 매우 편리하다.[9]
한강 이남 후방지역 전국에 예하부대가 산재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해병대 군수지원까지 책임지기 때문에 소수의 해병대 간부들이 사령부에 파견되어 있다. 경례구호는 대전권의 모든 육군본부 직속부대의 경례구호인 '충성'. 상징명칭이 칠성대인 이유는 창설 초기에 병기와 병참, 수송 등 군수지원과 관련된 7개 병과를 아우르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지금은 생산성, 효율성, 투명성, 신뢰성, 통합성, 전문성, 창의성 등 군수사령부 7대 가치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같은 육군본부 직속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와 육군교육사령부는 최근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폐쇄했지만, 육군군수사령부는 군수물자 납품계약과 같은 대민접점이 많아서인지 아직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유지하고 있다.
군수사령부와 군수지원사령부가 같이 있어서 혼동스러울 수 있는데, 군수사령부는 전군 군수지원 위계상 상위계층에서 계획하고 조달받으며 배분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군수지원사령부는 군수지원 위계상 하위계층에서 인접 야전부대와 밀착하여 현장에서 군수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아이러니 하게도 군수사령부 직할대ㆍ예하부대는 역으로 군수지원사령부의 군수지원 대상에 포함된다.[10] 유통회사로 치자면 군수사는 본사[11] 내지는 분야별 사업본부[12] 내지 직할 종합물류센터[13] 역할, 군지사(군수지원여단의 경우는 외주화된 위탁지점으로 빗댈 수 있음)는 지역별 독립운영 지사[14] 및 물류센터 내지는 대리점[15] 역할이라 보면 된다.
군수사령부 직할대와 예하부대 모두 군복에 군수사 부대마크를 착용하며, 군수사령부가(부대가)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탄약창 등 예하부대 장병 및 전역자도 자신의 부대가 군수사 예하인 건 어느 정도 자각하는 편이며, 군수사 칠성대용사로서의 정체성이 일부 있다. 이 부분에서 예하부대 독자적인 정체성이 강한 수도방위사령부(제52보병사단, 제56보병사단), 육군교육사령부(육군훈련소, 종합군수학교, 수송교육연대 등) 예하부대와 사뭇 다르다.[16]
3. 편제
3.1. 직할부대
- 본부근무대대
- 군사경찰대
3.2. 육군종합보급창
자세한 내용은 육군종합보급창 문서 참고하십시오.- 제1보급단
- 제2보급단
- 제3보급단
3.3. 육군종합정비창
자세한 내용은 육군종합정비창 문서 참고하십시오.- 기동화력장비정비단
- 기동화력부품정비단
- 총포·사통장비정비단
- 통신전자장비정비단
- 생산지원단
- 정비기술연구소
- 특수무기정비단(이천)
- 항공기정비단(진해)
3.4. 육군탄약지원사령부
자세한 내용은 육군탄약지원사령부 문서 참고하십시오.- 예하의 탄약창[17]
육군군수사령부로 분류된 육군훈련소, 신교대 퇴소병들의 대부분은 예하부대인 육군탄약지원사령부의 휘하부대인 탄약창으로 가게 되며, 그것도 경계병(소총수), 탄약관리병이라 쓰고 탄약고작업병이라 부른다.일 확률이 크다. 자세한 내용은 탄약창 문서 참조.
4. 과거부대, 역사적 연관부대
군악대: 대전 이전과 동시에 53사단 군악대에 통폐합. 부산 시절에는 B급 군악대였는데 대전 이전으로 원래 C급이었던 53사단 군악대가 그 지위를 물려받았다. 1991년 기준으로는 대대급 부대 (실제 규모는 소대급), 즉 지휘관이 중령이었다.의장대: 본부근무대 소속으로 위관급 장교인 대위가 의장대장으로 부대를 지휘하였고, 부산 어린이날에 사직 운동장에서 의장대 행사 공연을 하였음. 1990년 여의도에서 진행된 마지막 국군의 날 행사에는 대구 2군사령부 육군의장대에 배속되어 행사에 참여하였다. 대전 이전과 동시에 모 단위대 휘하 경비소대로 축소. 대전 이전으로 인한 부대 통폐합 이후로도 모 단위대 병사들(행정병, 의무병, 취사병 등)과 경비소대 병사들 간에 아저씨 관계가 유지되었으나 2010년에 지휘관 일반명령에 의해 선후임 관계를 맺게 되었다.여군(소)대,기동대?[18]제물통제단 혹은 물개단: 대연동 사령부 영내에 위치했음.제12탄약창: 더 이전에는 미군부대(캠프 에임스)[19]였고, 현 탄약지원사령부 주둔 중.제1정비창, 제2정비창, 제5정비창, 중앙수집근무대, 칠성사업단: 지금의 육군종합정비창으로 통폐합.제5보급창: 대전 중구 문화동에 있었다. 2002년에 1보급단으로 통폐합.501병기탄약창(해운대)- 제1군수지원사령부
제2군수지원사령부[20]제3군수지원사령부[21]- 제5군수지원사령부
- 항만사령부(항만사) → 육군수송사령부 → 군수사 예하에서 분리되어 독립 육직부대 분립 → 국직인 현 국군수송사령부로 개편
- 육군수송학교(수송교)
- 육군대학(육대)
- 제39보병사단(충무부대)
제69보병사단(태풍부대)- 부산경비단(충렬부대)
- 31유류지원대 32유류지원대 33유류지원대: 인천, 울산, 충남 연기군 소정리에 주둔했었음
5. 출신인물
5.1.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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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박정희 | 2대 박현수 | 3대 김용순 | 4대 신재식 | 5대 노재현 | |
6대 최주종 | 7대 이규학 | 8대 이동화 | 9대 고광도 | 10대 임지순 | |
11대 김용휴 | 12대 이범준 | 13대 김학원 | 14대 박찬긍 | 15대 안종훈 | |
16대 최영구 | 17대 문응식 | 18대 김용진 | 19대 류근무 | 20대 정숭렬 | |
21대 김상호 | 22대 배일성 | 23대 이중환 | 24대 최경근 | 25대 유재열 | |
26대 김석원 | 27대 안성용 | 28대 정중민 | 29대 김기성 | 30대 류우식 | |
31대 양원모 | 32대 이봉원 | 33대 이상돈 | 34대 전동운 | 35대 정항래 | |
36대 이정근 | 37대 박주경 | 38대 황대일 | 39대 박양동 | 40대 엄용진 | |
41대 손대권 | |||||
※ 초대~5대: 소장 / 6대~현재: 중장 | |||||
※ 관련 직위 둘러보기 | }}}}}}}}}}}}}}} |
자세한 내용은 육군군수사령관 문서 참고하십시오.
5.2. 장교/부사관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 |
- 장호강: 육사 8기, 예)준장, 부사령관 역임[22]
- 김정천: 학군 22기 예)준장, 참모장 역임
- 서정천: 육사 42기. 예)소장, 참모장 역임.[23]
- 정찬환: 육사 44기. 소장, 참모장 역임[24]
- 이동석: 육사 45기. 소장, 참모장 역임[25]
- 이계철: 육사 46기. 소장, 참모장 역임[26]
- 이정환: 육사 49기. 준장, 참모장 대리 역임
5.3. 병
직할부대 출신만 기재 요망이되, 구체적인 예하부대가 밝혀지지 않았거나 현재는 해체된 예하부대 출신도 기재 가능. |
- 김민욱
권투선수, 동양태평양 복싱연맹 수퍼라이트급 前 챔피언. 사령부 헌병단에서 복무했다. - 손석희
전 아나운서, JTBC 사장. 사령부 본부근무대 소속 사령관 비서실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 이계진
전 아나운서, 정치가. 1971년 당시 예하 제5보급창에서 복무했으며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 1999년 7월 26일자에서 언급. - 정혁
모델. 2020년 기준 예비군 7년차이며, 해당 부대 출신으로 추정된다. 단, 예하부대 출신일 가능성도 있다. # - 배유근
유튜버. 07군번 헌병대 출신. - 조희대
대법원장. 군법무관으로 복무해 중위로 전역했다.
- 조경태 - 제17, 18, 19, 20, 21, 22대 국회의원
1990년 6월 11일 입대, 1991년 11월 29일 상병 복무만료.
6. 기타
6.1. 근무환경
- 본부근무대대[27]: 분대단위 침대형 생활관이며, 24시간 온수가 나온다. 2015년 현재 일선 전방부대에 보급이 확대되어가는 1층 침대가 깔린 생활관이 아니라 초창기 형태의 침대 생활관이라 철제 2층 침대이다. 대전으로 이전해 오면서 본청, 병영막사 등은 새로 지었다고 한다. 다만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있던 시절에는 대연동으로 옮겨진 1970년대 초반에 건축된 것이어서 시설이 낡은 편이었으며, 침상형 생활관이었다. 침상형 생활관이긴 했지만 관물함이 철제라는 점은 자운대로 이전하기 전 지금의 군수사 자리에 주둔했던 교육사령부의 당시 사정에 비하면 양호했다. 대연동 옛 부지는 2007년 대전 이전 후에도 몇 년간 방치되어 곽경택 감독의 MBC 드라마인 친구2의 촬영장소로도 쓰이다가 모두 철거되어 2013년 7월 아파트 공사가 완료되고 입주하였다. 대연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항목으로. 해당 아파트 단지 내에 옛 군수사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조그만한 기념비가 세워졌다. 병영시설에 헬스장은 물론 노래방과 게임기까지 설치되었다. 헬스장은 국방부 근지단 수준은 못되지만, 런닝머신은 물론 웨이트트레이닝용 장비까지 기본적으로 구비할 것은 구비해놓은 상태다. 사이버지식정보방 인터넷 속도 수준은 사회에서 쓰던 수준보다는 느리지만 육군 전체로 보자면 꽤 괜찮은 편이다. 군 마트(PX)와 병사식당은 본근대대 막사에 바로 붙어있다. 영내에는 실내체육관이 있는데, 그 시설수준은 초중고교에 있는 체육관과 비슷하다. 2010년 기준으로 열대야 시즌에는 본근대 전 병력을 체육관으로 집결시켜서 대형 냉방장치가 있는 체육관을 활용하기도 했다. 2017년 기준으로 병사들도 가족이 면회 오면 칠성회관 사용이 가능했다. 그래서 가족끼리 회관에서 배달 음식을 선임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 상병이 여자친구를 불러 회관 노래방에서 불미스러운 행위를 하다가 회관 병사에게 적발돼 병사의 회관 사용은 금지됐다.또 32사단 505여단 모 대대[28], 군수사 군사경찰이 모두 본근대 건물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불편한게 있다. 수송소대 기준으로 장군 운전병으로 선발되기 정말 좋은 조건인데 대부분의 운전병들이 장군들을 모실 기회가 온다. 장군들이 생각보다 운전병 선발에 신경을 쓰지 않고 편제가 줄어들고 있어 운전병 선발에 어려움을 겪고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기존에 있던 병사를 장군 운전병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이 좋으면 장군이 진급을 해 사단장 운전병으로 갈 수 있다. 물론 갈지 안 갈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경비소대는 100% 면접 선발로 근처의 사단 신교대에서 선발해온다. 32, 35, 37사단으로 다양하게 선발하는 편. 2020년 현재는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과 비슷한 시설이 들어섰다고 한다. 지하철역(반석역)이 근처에 있어서[29] 대전시내 지하철따라 대전역이나 유성버스터미널을 통해 전국 각지로 휴가가기가 편한 편이다.
- 군사경찰대: 과거에는 대령급 지휘관이 지휘하는 육군의 몇 안 되는 군사경찰부대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소령급으로 격하되었다. 다만 대령급 부대 시절에도 인원 규모 자체는 소대급이긴 했다.군사경찰단 용사들이 사용하는 막사는 본근대대 건물이랑 함께 있다. 원래 생활관은 본근대와 별도의 건물이었는데 본근대 인원이 축소되면서 본근대 생활관과 물리적으로 통합되었다. 용사들이 생활하는 모든 생활관에는 2017년도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쾌적한 내무생활을 할 수 있다. 출타 및 교통 여건은 본근대대와 동일.
6.1.1. 부산 시절
참고 블로그대연동 시절(1974~2007년 2월)을 중점으로 서술한다. 내무반은 구식 침상 막사였고 나무 관물대를 쓰다가 80, 90년대에 철제 관물대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서함 주소는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사서함 120-2였다.
대연동 주둔지는 사령부가 옮겨오기 이전에는 예하 재물통제단 주둔지였고 더 이전에는 미군부대 및 경비행장 기지였다.
1970년대 말에는 유격훈련이 1주일이었고 전투수영하러 바닷가로 가는 등 지금과 상이한 부분이 있었다. 군수지원을 총괄하는 기행부대이지만 당시에는 부산지역 위수임무도 맡던 부대였다보니 전투부대의 성격[30][31]도 약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직할 단위대 중에 사령부 대전 이전으로 사라진 부대로는 의장대(모 단위대 예하 경비소대로 축소로 되어 흡수), 군악대(53사단 군악대로 흡수)가 있었다. 이 동영상에 따르면 옛날에는 기동대와 55대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여군(소)대가 있었다고 한다.
위병소는 현재 대연동 힐스테이트 정문 5차선 진입도로 부지였으며 수영로와 붙어있었다.
양정동 옛 주둔지에는 헌병 파견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풍 매미때는 부산지역 피해 복구 대민지원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는 53사단 등 부산지역 군부대들이 다 마찬가지였겠지만.
부산지역에는 53사단, 69사단, 군수사가 있었으며 유일하게 군수사가 부산시내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위병소만 나오면 바로 경대번화가였기 때문. 이 때문에 군수사에 자대배치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부산시절에는 부산의 터줏대감격 부대였기에 군악대에 의장대까지 갖추어 행사지원도 꽤 나왔다.
영외에 금련사라는 사찰을 건립하여 운영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부산에 위치한 군수사 소속 모 예하부대가 관리하는 상태로 운영 중이다. 금련사는 군 사찰이나 일반인에게도 공개되어 있으므로 일반인도 방문 및 법회 진행이 가능하다.
6.2. 칠성회관
칠성회관 七星會館 Chil Sung Hall | ||||||
위치 | 대전광역시 유성구 반석동 |
6.3. 사령부가
1절 겨레 위한 충정으로 일어선 우리 영광된 나의 조국 빛을 내리라 필승의 군수지원 우리의 사명 번영의 내일 위한 국군의 동맥 장하다 대한의 군수의 요람 영원 무궁 빛내리 군수사령부 2절 조국의 평화 위해 일어선 우리 내 나라 지키는 민족의 방패 우리의 군수지원 승리뿐이다 새 역사 창조하는 칠성용사들 장하다 대한의 군수의 요람 영원 무궁 빛내리 군수사령부 |
김학원 사령관 재임기(1978년)에 제창되었다.
군수사령부가(歌) 듣기 (2012년 공홈 업로드버전)
7. 사건사고
(언론에 보도된 것만 수록. 예하부대 사건도 포함.)- 1999년에 부산 지역 산사태로 본근대 소속 장군 운전병이 운행 중 매몰되어 숨졌다.
- 2006년 예하 육군종합정비창에서 군용차 전복사고로 경계근무에 투입되던 병사 여러명이 숨졌다. 상세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2008년 본근대 모 단위대 소속 통신병이 생활관(세탁건조실)에서 추락사했다. 원래는 일반사망으로 처리되었으나 이후 유족의 불복 민원 끝에 순직처리되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기사1 기사2 그런데 2011년에도 유사 사건(화장실 창문 추락사)이 있었던 모양.
- 2014년 예하 모 탄약창 이 병장 자살 사건
8. 여담
- 육군군수사령부의 (숨겨진)[32] 모체는 제2군관구사령부이며 군수사령부가 창설되며 해체되었다.
- 사령부가 부산에서 대전으로 이전할 적에 민간(대한통운) 대형화물차 500여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보안을 위해서 이동도 야밤에 했다고 한다.#
- 부산 시절에는 태풍 매미 재해복구 작업 등 대민지원도 나갔으나 대전 이전 이후에는 반석동 환경정화 봉사활동(쓰레기줍기)[33] 이외에는 대민지원에 잘 나서지는 않지만 탄약창 등 일부 예하부대는 종종 대민지원에 동원되는 편이다.
- MBC <우정의 무대> 1997년 2월 2일 방영분에선 예하 제2보급창을 다루었고,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에 소개되었다. 방영날짜는 1999년 7월 26일(영상, 제5보급창) [34] 1999년 9월 6일 (영상, 종합정비창)
9. 관련문서
[1] 사령부 측에서는 이 부분을 무시한다.[2] 사령부에서 공식적으로 삼는 부대창설일[3] 실질적으로 기지(base) 성격을 띄는 부대가 많다보니 현재도 군수사 예하부대(직할대 포함)는 혹한기 훈련, 전투준비태세 등에서 일반 야전부대와 상당히 이질적인 특성을 보인다.[4] 해군군수사령부, 공군군수사령부와 통합해 국직부대가 된다면 3군의 물자, 유류, 급양, 병기, 정비 지원을 총괄하는 거대 조직이 된다.[5] 그럼 현 시청역의 원래 이름은 연제역이었다. 지금은 시청역의 부역명이다. 그럼 예전에 시청은 어디 있었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답은 간단하다. 롯데백화점 광복점. 옛 시청을 밀고 백화점을 세웠다. 도로원표는 덤이다.[6] 현재 그 자리는 대연 힐스테이트 푸르지오가 들어서서 이제 군부대였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변하였다. 단 단지 내에 육군군수사령부 기념비가 있어서 그나마 이 자리가 예전의 육군군수사령부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7] 실제로 반석역의 부역명은 육군군수사령부의 별칭인 '칠성대' 로 지정되었다.[8] 육군교육사령부는 2004년 10월 자운대로 이전했다.[9] 반석역에서 세종 방향 버스를 타면 세종고속버스터미널을 약 10분 만에 갈 수 있는데(대전과 세종을 이어주는 버스는 대부분 터미널을 경유한다), 세종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 부산과 같은 대도시를 갈 수 있다. 버스 시간도 자주 있어 지역 이동이 매우 쉬운편이다.[10] 군수사 직할대에 대한 군수지원은 5군지사 예하 제53군수지원단이 담당한다.[11] 사령부[12] 종합보급창, 종합정비창, 탄약사령부[13] 보급단, 탄약창, 정비창[14] 각 군지사 사령부[15] 탄약대대, 정비대대, 급양대 등[16] 또한 수도방위사령부, 육군교육사령부와 다르게 직할대 근무 부적격 병사의 전군 재분류(전방 야전부대로의 전출) 제도가 없어서 사고를 크게 친 군수사령부 직할대 병사가 탄약창으로 유배(영구전출)당하는 경우가 있었고, 반대로 탄약창 병사가 사령부 요원으로 차출(영구전입 내지 파입)되는 등 상급부대와 예하부대 간 어느 정도의 접점이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7] 탄약창의 위치와 보유 물자 등 관련 정보는 모두 II급 군사기밀에 해당한다. 따라서 몇 개의 탄약창이 존재한다는 것도 군사기밀에 해당될 수 있다.[18] 순수 기행부대에는 있을 필요가 없는 편제로서, 과거 군수사가 부산지역 위수부대 역할도 했다는 흔적이기도 하다.[19] 미군 핵무기를 보관했었다고 한다.[20] 제5군수지원여단으로 재창설[21] 제1군수지원여단으로 재창설[22]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 시인[23] 제50보병사단장을 거쳐 부임했으나, 이후 군수학교장으로 이동한 후 전역했다.[24] 제25보병사단장을 거쳐 부임했으나, 이동석 한미연합사 군수참모부장과 보직을 맞바꿔서 이동.[25] 한미연합사 군수참모부장으로 있다가 정찬환 참모장과 보직을 맞바꿔서 부임. 이후 군수학교장으로 이동.[26] 제23보병사단장을 거쳐 부임했으나,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이던 박안수 소장이 진급과 함께 제8군단장으로 영전하면서 이동.[27] 예전에는 본부근무대(지휘관 중령)라는 대급 부대에 대급 단위대들(지휘관 소령)이 있는 특이한 편제였는데, 아마 과거에 각 단위대들이 각자 독자적인 직할대로 있었다가 훗날에 본부근무대 아래로 통합된 역사의 영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본부근무대가 대대로 개편되고 산하 단위대가 중대(이후 소대)로 개편된 지금은 상관없는 얘기.[28] 2010년 당시에는 기무사, 국통사 파견병만 더부살이했는데, 현재는 대전지역 위수부대인 505여단 예하부대도 군수사 본근대에 더부살이하고 있다.[29] 이런 점에서 자운대보다는 교통 여건이 더 좋은 셈.[30] 보통 공군기지 및 후방 대규모 기행부대의 외곽 기지방호는 지역방위사단 같은 인접 전투부대가 담당하는데, 당시 군수사는 부산지역 위수부대 역할도 겸했다보니 사령부 외곽 기지방호도 자신이 직접 책임져야 했다는 의미다.[31] 현재는 군수사 본근대 건물에 32사단 예하 유성구 관할 위수부대가 더부살이하는 특이한 구조다.[32] 사령부 측에서 공식적으로 흑역사 취급.[33] 학창시절 동네 쓰레기 줍기 봉사활동 수준이다.[34] 이 날 이계진은 MC가 아닌 출신병 신분으로 출연해서 송지헌 아나운서가 임시 MC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