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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6:32:42

육도삼략

삼략에서 넘어옴
무경칠서
손자병법 오자병법 육도 삼략 울료자 사마법 이위공문대



1. 개요2. 성립사3. 내용
3.1. 육도
3.1.1. 문도(文韜)3.1.2. 무도(武韜)3.1.3. 용도(龍韜)3.1.4. 호도(虎韜)3.1.5. 표도(豹韜)3.1.6. 견도(犬韜)
3.2. 삼략
4. 각국의 일화
4.1. 중국4.2. 한국4.3. 일본

1. 개요

병서 "육도(六韜)"와 "삼략(三略)"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두 책은 거의 한 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같이 읽히지만 본래 다른 책이다.

위서(僞書)로 알려져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표적인 병서 7종을 가리키는 무경칠서에 포함되고 있다. 그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고전 소설에서는 무능력한 똥별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기 PR에 쓰인다. 하후무동관이 언급한다.

2. 성립사

두 책 모두 주문왕의 군사인 태공망이 지었을 것으로 전해져 왔으나,[1] 청대 고증학의 연구로는 문장형식과 사용된 문체를 봐서는 후한에서 위진남북조시대 즈음에 만들어진 위서라고 한다. 그러나 위서지만 내용은 탁월하기 때문에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이나 일본까지 흘러들어와서 읽혔다.

누가 써낸 책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맛깔나는 명저가 나올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강태공으로 사칭할 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내거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래서 손자병법마냥 강태공이 쓴 병법의 원본을 후대의 누군가가 주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주류 학설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름은 포기할지언정 저서 자체는 후세에 남기려는 꼼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논리학에도 '권위에 호소하는 논법'이라는 게 있듯이,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자기 이름이 알려지는 걸 포기하는 대신 옛사람의 이름을 통해 권위를 빌려 자신의 책을 널리 알리려 했던 일이 나름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주장은 권위 있는 누군가가 한 주장이라고 날조를 한 사례라 볼 수 있다. 까놓고 말해 아무리 좋은 내용의 책이더라도 저자의 이름값 때문에 저평가 받거나 널리 알려지지 못할 우려도 있고, 게다가 당시 시대상 청담사상 등으로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이름 값 없으면 무시를 당하는 풍조도 있었다.

한편, 1972년 산동성 린이시 은작산(銀雀山)에서 출토된 한나라 시대 죽간 가운데 육도의 조각이 포함된것으로 보아,[2] 적어도 한나라 초기에는 육도가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3. 내용

3.1. 육도

육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육도는 6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문도(文韜)·무도(武韜)·용도(龍韜)·호도(虎韜)·표도(豹韜)·견도(犬韜) 등 6권 6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韜)라는 건 '감추다', '비결' 등의 뜻과 더불어 '활집'이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육도는 '군사와 관련된 여섯 가지 비법'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은 주로 주나라문왕과 그의 아들인 무왕태공망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3.1.1. 문도(文韜)

3.1.2. 무도(武韜)

3.1.3. 용도(龍韜)

3.1.4. 호도(虎韜)

3.1.5. 표도(豹韜)

3.1.6. 견도(犬韜)

3.2. 삼략

무경칠서 가운데 가장 짧다. 또한 상/중/하로 나뉘어[7] 세 가지 계략, 즉 삼략(三略)이다. 중국의 고대 병법서들은 군주와 신하가 대화를 주고 받는 문답집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8], <삼략>은 실전된 고대의 병서(군참, 군세)를 인용하며 논증하는 형식임이 특이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육도>가 주로 전술적인 내용이라면 <삼략>은 전략적인 내용, 혹은 더 나아가 정략(政略)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9] 이는 <삼략>이 기존의 병법서들과는 달리 유가적-도가적-법가적인 특징[10]을 너무 짙게 띌뿐더러 통치원칙, 정치원리, 천도(天道), 현자, 정의로운 전쟁(義戰) 등에 큰 관심을 쏟기 때문[11]으로 추측한다.

4. 각국의 일화

4.1. 중국

한(韓)나라의 귀족이었던 장량이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여 야인으로 살고 있었을 때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전수 받아서 공부한 책 태공병법(太公兵法)이 삼략(三略)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두 책의 관련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원/명 교체기 때 나관중이 쓴 삼국연의 때까지만 해도 삼략의 전수자는 장량이라는 설이 널리 퍼지지 않았다. 그 유명한 제갈량이 오나라 선비들과 토론하는 장면에서 엄준이 도대체 무슨 책을 읽고 그렇게 청산유수냐고 물었다.
孔明曰:「尋章摘句,世之腐儒也,何能興邦立事?且古耕莘伊尹,釣渭子牙,張良、陳平之流,鄧禹、耿弇之輩,皆有匡扶宇宙之才,未審其生平治何經典。豈亦效書生區區於筆硯之間,數黑論黃,舞文弄墨而已乎?」嚴畯低頭喪氣而不能對。

공명이 말하기를, '문장을 찾고 글귀를 뒤지는 것은 세속의 썩은 선비이니, 어찌 능히 나라를 일으키고 일을 세울 수 있겠는가? 또 옛날 신야에서 밭을 갈던 이윤과 위수에서 낚시를 하던 자아와 장량, 진평과 같은 사람과 등우, 경엄과 같은 무리는 모두 세상을 바로잡을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나, 평생에 어떤 경전을 닦았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어찌 또한 서생들이 구구히 붓과 벼루 사이에서 시비를 논평하는 것과 붓으로 법을 우롱하는 것을 본받을 뿐이겠는가?' 라고 하니, 엄준이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위와 같은 대목이 나오는데, 이윤[17], 강자아, 장량, 진평, 등우, 경엄[18]등의 유명한 장군들이, 무슨 책을 읽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고 이에 엄준은 대답하지 못했다고 했다. 즉 이 때까지만 해도 적어도 장량과 삼략의 연관성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19] 삼략도 육도와 마찬가지로 전한 ~ 위진남북조 시대에 누군가 황석공의 이름을 빌려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삼국지 연의에선 이장면 보다도 육도삼략 이라는 이름이 더 잘 알려지게된 명장면이 있는데 바로 위나라 최강 도독이자 육도삼략 마스터라고 조롱받는 하후무의 일화로 제갈량이 북벌을 일으켜 기세등등하게 위나라로 쳐들어 왔을 당시 위나라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제갈량을 무서워할 때 혼자 일어나서 큰 목소리로 "제갈량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오, 그런데 어찌 그를 이리 무서워한단 말이오!"라고 비분강개하여 일어나서 외치는 간지 넘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제갈량도 엄연히 신이 아닌 인간이라 가정을 마속 따위에게 맡기는 등 실수를 하긴 했고 학소에게 패배하거나 (연의한정 이지만)강유에게 계책이 간파당하기도 했으니 맞이야 맞는말이고, 아직 적과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장수나 신하들이 지레 겁을 먹고 벌벌 떨기만 하고 아무도 나서서 촉군과 싸울 생각을 안하고 있던 판이었다.

이러면 병사들의 사기가 어떻게 될지는 뻔한 것이고, 이 상태로 촉과 전투에 돌입해도 장수가 겁을 먹고 있으니 전투에서 제대로 이길수 없는 건 당연지사니 하후무가 어느 정도 능력 있는 사람이었으면 "오오 무간지 오오" 소릴 들었을 것이다.허나 실상 하후무의 능력은 매우 별볼일 없었고 이에 사도 왕랑이 하후무는 경험이 없어서 안 된다고 반대 했으나, "뭣이? 그대는 지금 내 재능과 능력을 시기하여 내가 공을 세울 기회조차 빼앗아서 적을 이롭게 해줄 참이요? 나는 어릴 적부터 병법을 터득하여 육도와 삼략에 통달하였소 "라며 육도삼략을 운운하며 되도 않는 고집과 어거지를 부리며 출전하기 전에 제갈량을 사로잡지 않고는 맹세코 돌아와 천자를 뵙지 않겠다고 하며 기어코 출전을 하나 제갈량에게 대패하였고 결국 제갈량에게 오리새끼 라고 디스 당하며 강유를 낚는 미끼로 전락하고 추하게 강족의 땅으로 도망가고 만다.

삼략에는 토사구팽에 관한 인상적인 구절도 있다.
하늘 높이 나는 새가 모두 떨어지고 나면 좋은 활은 상자속에 깊이 간직해두게 되고, 적국이 멸망하고 나면 좋은 계략을 세우던 모신(謨臣)은 쓸모가 없게 된다.
모신이 쓸모가 없다는 것은 모신을 죽여 없애는 것이 아니라 권위와 지휘권을 되돌려 받고 조정으로 불러들임을 말한다. 불러들인 모신은 제후로 봉하여 신하 가운데 최고의 지위를 누리게 하고, 그의 공로를 널리 밝힌다. 또한 중원의 좋은 영지(中州善國)로 내려주어 집안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여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많은 병사를 모아 군대를 편성하고 나면 갑자기 해산시킬 수 없고, 권위와 지휘권을 한 번 주면 갑자기 거두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군대를 해산하고 장수를 조정으로 불러들일때가 바로 나라의 보존과 멸망이 판가름나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그러므로 장수에게 중앙의 높은 벼슬을 주되 권력은 주지 않아서 세력을 약화시키고, 영지를 봉해주고 군대의 지휘권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패자(覇者)가 신하를 통제하는 책략이다. 패자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순수하게 도덕 명분만을 내세우지 않고 권모술수를 섞어써야 한다. 군주는 권세를 은밀하게 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故勢主秘焉).[20]

4.2. 한국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글에서도 오자병법과 함께 가끔씩 인용되는 것으로 봐서는 이순신 장군도 애독한 듯. 조선시대 무관으로 출세하기 위해서는 병법서에 대한 지식은 필수였다.

4.3. 일본

역사적으로는 이 책이 일본 전국시대에 흘러들어가서 많은 전국 다이묘들이 이 책을 공부했다고 한다. 타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도 이 책의 애독자였고, 오다 노부나가의 군사인 타케나카 한베에구로다 간베에 모두 이 책을 오다군 가신들에게 강의했다.[21] 오다 노부나가는 이 책 때문에 중빠가 되어서 주나라의 옛 수도였던 기산(岐山)과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의 이름을 따서 미노국 이나바 산성을 기후(岐阜)성으로 개칭하였고, 이 이름이 지금의 기후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1] 삼략의 경우 유방의 군사인 장량이 황석공이라는 기이한 노인에게서 받은 태공병법이라는 책이 원본이라고 한다.[2] 이때 육도뿐만 아니라 울료자, 손자병법, 손빈병법도 함께 출토되었다.[3] 작전참모로 오해될 수 있으나 인사참모에 가깝다[4] 이 부분에서는 손자와 오자의 입장차이가 두드러진다. 손무는 합려에게 등용된 이후 합려의 참모로서 활동했고 오기는 야전사령관으로서 활동했다.[5] 하지만 손자병법, 오자병법, 육도삼략 모두 되도록이면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목표달성을 지향해야 옳지만, 정말 해야한다면 이겨놓고 싸워야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전쟁이 국가와 민생에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남기는지를 알기에 최소한의 피해로 가능한한 빨리 전쟁을 끝내야 하며, 군주의 덕과 민심은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정말 수도 없이 강조한다.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승리를 위한 전제조건은 세 책 모두 동일하기에 내용만 보면 서로 연결되거나 겹치는 부분이 정말 많다.[6] 롤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손자병법이 강조하는 것은 지금 게임을 돌릴만한 상황인지에 대한 판단기준, 맵리딩과 적에 대한 분석과 이에 맞는 전략전술이다. 오자병법이 강조하는 것은 컨트롤과 팀워크라면 육도삼략이 강조하는 것은 같이 플레이할 팀원에 대한 분석과 선택, 챔피언 선택-밴 그리고 아이템과 스킬 테크트리에 관한 것이다. 물론 셋 다 잘해야 게임을 이기는 것 처럼 세 책 모두 무경칠서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7] 상책/하책처럼 상중하가 우열을 뜻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8] 무경칠서 안에서도 이미 오자병법, 육도, 울료자, 이위공문대가 이런 형식이었다.[9] 신동준 (2012)[10] 심지어 이들을 자기 멋대로 섞어 놓기까지 했다.[11] 유동환 (2019)[12] 전쟁에 관한 예언서로 추정한다. 작가는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은 실전돼 사라졌다.[13] 도가의 색채가 여기서 나온다.[14] 유가의 색채도 여기저기 있다.[15] 법가를 넘어설 정도로 상벌의 공정성, 보상의 중요성, 장수/현자/영웅/인재의 섭외 및 인사 관리를 중요시한다.[16] 마찬가지로 작자미상의 실전된 문서.[17] 상나라의 개국공신[18] 전한 말과 후한유수의 수하군인으로 그가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부터 그의 휘하에서 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었다.[19] 다만 송나라때 장상영(長商英)이 황석공이 지었다고 알려진 소서(素書)에 주석을 달면서, 이 소서를 장량이 전수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20]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군주론의 핵심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21]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은 한문은커녕 한자도 자기 이름이나 겨우 쓰는 일자 무식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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