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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1 00:07:39

저고리 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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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1111><colcolor=#fff> 저고리 시스터즈
파일:저고리 시스터즈.jpg
왼쪽부터
홍청자 · 왕숙랑 · 박향림 · 이난영 · 서봉희 · 김능자
장세정 · 이화자
리더 이난영
데뷔 1939년 ([age(1939-01-01)]주년)
해체 1945년
소속사 조선악극단[1]

1. 개요2. 멤버3. 활동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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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9년 데뷔해 해방 전까지 활동한 한반도 최초의 걸그룹.[2]

2. 멤버

성명 생몰년도 포지션 기타
이난영 1916년 6월 6일~1965년 4월 11일 리더 김해송과 결혼
장세정 1921년 5월 28일~2003년 2월 16일
박향림 1921년~1946년 메인보컬
이화자 1916년~1946년/1950년
김능자 1916년~?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서봉희 ?~?
홍청자 1920년[3]~? 메인댄서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이준희 ?~?

이외에 신카나리아, 김백희, 심연옥, 백설희, 옥잠화, 나성려도 저고리 시스터즈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3. 활동

멤버의 상당수가 김해송과 남성 동료들의 '조선악극단'의 멤버로서 중복 활동을 하였다. 멤버가 계속 고정되면서 활동한 것은 아니고 이난영과 장세정만 고정 멤버였고 여러 멤버들이 그룹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했다. 김능자와 홍청자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이며 홍청자는 1940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퇴단하면서 그룹에 들어왔다. 무대 의상으로 저고리를 입고 나와[4] 당시 나라 잃은 한민족에게 민족의식을 환기했다.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서 공연을 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광복 이후 해체되었다. 활동 기간 동안 정식 앨범은 한 장도 내지 않았다.

4. 여담



[1] 엄밀히 말하자면 소속사의 개념은 아니고 당시 조선 음반업계의 큰 손 중 하나였던 오케(OKEH) 레코드사(원래는 제국축음기회사의 경성지부 혹은 서브레이블 개념으로 시작했지만 그쪽 사장이 조선인인 이철이라 자연스레 조선 음반시장의 큰 손이 되었다) 산하에 있는 공연단이며 당시 오케 사장이던 이철에 의해 결성되었다. 저고리 시스터즈는 이 조선악극단의 여러 팀들 중 하나였다.[2] 참고로 대한민국 최초의 걸그룹은 1953년에 데뷔한 김시스터즈이다.[3] 혹은 1922년[4]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