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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7-14 00:32:08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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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3일 상장(上將) 진급식에 모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 [1] 가운데가 시진핑 주석.[2] 별이 30개[3]

1. 개요2. 위상3. 역대 주석

1. 개요

中国共产党中央军事委员会(간체) / 中國共產黨中央軍事委員會(번체)
中华人民共和国中央军事委员会 / 中華人民共和國中央軍事委員會

중국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중국 공산당의 기관. 명실상부 중국 내의 모든 군사력을 총지휘한다.

1983년에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라는 조직이 따로 설치되었지만 선출 시기만 약간 다를 뿐 두 위원회의 구성원은 동일해 사실상 둘은 같은 위원회라고 봐야 한다. 즉,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는 당 기관이면서 동시에 국가 기관이다.

국무원 산하에 중화인민공화국 국방부가 따로 있기도 하지만, 국방부는 중앙군사위의 지휘 하에 주로 행정이나 기술적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엄연히 중국군 지휘권의 최종 권한은 당 중앙군사위에 있다.

2016년 1월 군 지휘 체계가 대폭 개편되면서 현재 중앙군사위의 구성원(위원)은 다음과 같다.

주석을 제외하면 모두 현직 상장들이다. 여담이지만 중국은 장성 계급이 3개 뿐이라 최고 계급은 상장(上將)이며 실질적인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군구사령관들도 모두 상장이다. 군구사령관은 중앙군사위에 참여하지 않는다. 다만 상장은 General로 번역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장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국방부장은 개국 때부터 1981년까지 모두 원수가 맡았고, 현재는 상장이 맡고 있다. 하지만 원칙상 민간인이 맡는 타국의 국방장관과는 달리 그저 여러 상장 중의 한 명에 불과할 뿐이며, 실질적인 업무는 군의 행정업무에만 관여한다. 다만 펑더화이린뱌오 시절 때의 국방부장은 군의 2인자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원래 군인만으로 구성된다는 법은 없고, 1970년대까지는 당이나 정부 인사들이 많이 참가했으나 1989년 장쩌민 이후에는 주석을 제외하고 전원 군인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2012년 11월 단행된 중앙군사위 인사에서 군인이 차지한 부주석 자리 2석 중 1석에 창군 이래 최초로 공군 소속인 쉬차량 공군사령원이 임명되었다. 최근 스텔스 전투기 J-20, J-31 개발 성공에 대한 포상의 의미로 추정된다.

2. 위상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 마오쩌둥
중국 인민해방군중화인민공화국의 국군(國軍)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당군(黨軍)이다. 따라서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모든 통수권을 가진다. 심지어 중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사용 결정권도 이 중군위 주석에게 있다. 중국 공산당 서열 1위인 총서기가 아닌 당 중군위 주석에게 모든 통수권이 부여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와는 별도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아까 이야기했듯 위원 전원이 일치하기 때문에 사실상 동일 기관이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던 마오쩌둥의 발언으로 대표되듯,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적인 최고지도자로 간주된다. 중국의 법적인 국가원수는 국가주석이고, 중국 공산당을 이끄는 건 당 서열 1위인 총서기지만, 이 두 직책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권력의 정점은 당 중앙군사위 주석이다. 사실상 이 기구의 주석이 중국의 국가수반이나 다름없다.

마오쩌둥은 평생토록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내놓지 않았으며, 이후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1인자로 부상한 덩샤오핑도 당 총서기나 국가주석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내세우면서도 1981년~1989년까지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움켜쥐고 중국을 통치하였다. 이 시기에 국가주석은 리셴녠양상쿤이 맡았지만 얼굴마담에 불과했고, 연이어서 당 총서기를 맡은 후야오방자오쯔양도 덩샤오핑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실무 책임자에 불과했다.[5]

그래서 덩샤오핑 시절에는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정부수반 뿐 아니라 국가원수 노릇도 했다. 대표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히로히토 일본 천황과 회담을 한 사람이 덩샤오핑이었다.

덩샤오핑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국가주석, 당 총서기,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모두 장쩌민 한 명이 겸임하도록 내정하면서 당/정/군의 지휘체계를 일원화하였다. 덩샤오핑의 배려 속에 장쩌민은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다만 겉으로는 모든 자리를 장쩌민 주석에게 넘긴 것 같아 보여도 국무원 총리 자리에는 리펑을, 중앙군사위 부주석 자리에는 류화칭을 내정하여 여차하면 장쩌민을 견제해 줄 세력들을 심어놓았고 실제 덩샤오핑 주석이 사망한 뒤에 장쩌민 VS 리펑 간의 파벌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시 같은 상하이방이었지만 계파가 달랐던 차오스 당시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경쟁자 중 하나였지만 얼마 못 가서 정계 은퇴를 하였다. 장쩌민 체제가 확고하게 중국을 지배하던 시기는 덩샤오핑이 사망하고 차오스 상무위원이 실각하고 난 뒤였다.

그리고 장쩌민 주석도 자신에게 배정된 5년 임기를 두 번 마치고 2002년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 자리를 덩샤오핑이 살아있을 때 정해준 후임자 후진타오에게 넘기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는 22개월 동안이나 움켜쥐고 넘겨주지 않았다.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상하이방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는 관측이 팽배한데, 하여튼 후진타오는 집권 2년차까지는 군 통수권이 없는 반쪽 자리 지도자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정치 체제에서 통치자의 가장 핵심적인 권력은 군 통수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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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1일의 중앙군사위 기념 촬영 사진. 가운데 왼쪽이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 오른쪽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이다. 이렇게 주석 두 명이 등장하는 어색한 사진이 나온 이유는 장쩌민이 후임자였던 후진타오에게 국가주석직과 공산당 총서기직은 제때 넘겼지만 이 군권은 시간을 질질 끌며 최대한 늦게 넘겨줬기 때문이다.

결국 2004년에 후진타오는 중앙군사위 주석까지도 장쩌민으로부터 넘겨받았지만, 장쩌민은 그 대신 자신의 측근이었던 쉬차이허우를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올려놓아 후진타오가 중앙군사위를 장악하지 못하게 방해했고, 그 때문에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넘겨받은 뒤에도 이미 군 고위층이 전부 장쩌민계 일색이라서 후진타오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외신 기사가 여러차례 나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장쩌민은 주요 정치 행사 때마다 후진타오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동일한 의전을 받는 등 내외에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반면에 후진타오는 5년 임기 두 번을 마치고 2012년 후임자 시진핑에게 국가주석, 당 총서기,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까지 모두 통째로 이양하였다. 장쩌민후진타오에게 반쪽짜리 권력(당 총서기, 국가주석)만 이양하고 2004년에 후진타오 측으로부터 자기 파벌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은 후에야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넘겨준 것에 비하면 심히 대조된다.

이런 속사정에 대해 일본중국 전문 르포 기자인 미네무라 겐지가 쓴 '13억 분의 1의 남자'라는 책에 따르면, 원래 후진타오장쩌민처럼 국가주석직과 당 총서기직만 시진핑에게 넘겨주고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자기가 갖고서 상왕 정치를 하길 원했지만, 전임자이자 정적이었던 장쩌민과의 알력 다툼에서 끝내 이기지를 못하자 장쩌민동귀어진하기로 결심하고 모든 자리를 시진핑에게 넘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된 시진핑후진타오가 바라던 대로 장쩌민을 비롯한 그의 세력을 반부패 운동을 명분으로 숙청해 주면서 덩샤오핑 때부터 시작된 '상왕 정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 뒤에는 자신의 종신 집권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중국의 정권 교체(?)의 관행이 대체로 자리잡히고, 권력 투쟁의 강도도 숙청이나 투옥이 아니라 한직 좌천 정도로 끝나며 그나마도 시간이 좀 지나고 능력이 있으면 재등용하는 현재에 와서는 아마도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권력에서 물러나면 중앙군사위 주석도 바로 넘길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최근 시진핑의 1인 독재 강화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3. 역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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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최고영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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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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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부터 현재까지 사실상의 중국 최고지도자이다. 따라서 국가주석, 당 총서기가 중앙군사위원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일당 독재 체제 국가인 중국의원내각제이원집정부제 국가처럼 변하는 마법을 볼 수 있다.

윗글처럼 후진타오시진핑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군권까지 통째로 이양했다. 헌데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의 임기가 불일치하기 때문에 시진핑은 당 총서기에 취임하면서 먼저 공산당 중군위 주석 자리를 넘겨받았고 이듬해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 공화국 중군위 주석직을 함께 넘겨받았다.

[1] 한국과 마찬가지로, 진록색이 육군(무장경찰+제2포병 포함), 하얀색이 해군(하계 한정근데 여름도 아닌 초겨울인데 하계 예복은 왜 착용했어요?), 청색이 공군이다.[2] 1990년대의 장쩌민 국가주석 이후 역대 중국의 국가원수는 대부분의 공식 석상에서 서양식 정장을 입지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격으로 참석하는 행사는 반드시 인민복을 입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사진 속에서 시진핑의 복장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3] 상장은 타 국가의 대장과 다르게 3성이다.[4] 중국에서는 사령관을 사령원이라고 부른다. 이는 예전 무계급제의 흔적으로, 대부분의 권위주의적인 명칭을 모두 평범하게 바꾸었다[5] 후야오방은 급진적인 정치 개혁을 주장하다가 덩샤오핑에 의해 총서기 자리에서 한 방에 짤렸다. 그리고 후야오방이 1989년 사망하자 전국에서 추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게 바로 천안문 6.4 항쟁의 시작이 됐다. 후야오방의 후임자였던 자오쯔양도 천안문 민주화 운동 당시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가 숙청됐고 장쩌민이 후임 총서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