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크리스토반 페레이라 | |
수도명 | 베드로 |
출생 | 1580년 |
포르투갈 | |
사망 | 1650년 10월 11일 (향년 70세) |
사망지 : 일본 | |
국적 | [[포르투갈| ]][[틀:국기| ]][[틀:국기| ]] |
종교 | 가톨릭 |
직업 | 신부, 수도자 |
소속 | 예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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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예수회 소속 선교사제이며 일본어에 능통했다. 1609년에 일본에 입국했으며 이 시기엔 이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신부의 일본 첫 선교 이후 수십년 이상 지난 상태였다. 페레이라 신부는 일본 예수회의 중심으로 일하다가 1633년에 나가사키에서 포박되었다. 1633년 10월 18일, 나가사키에서 줄리안 신부 등과 함께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이들은 쉽게 죽지 않도록 조정된 아주 악독한 고문을 받았는데, 다른 이들은 전부 순교했으나 페레이라 신부는 결국 배교했다.그는 배교 이후 일본인 아내를 얻고 이름을 사와노 다다안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다른 배교자들과 함께 키리시탄 단속에 참여했다. 1644년에는 가톨릭을 공격하는 내용인 "현위록"이라는 글을 출판했다. 또한 서양의 천문학 등의 과학을 일본에 전달했다. 그의 배교는 일본 예수회와 유럽 가톨릭교회에 매우 큰 충격을 주게 되었으며 페레이라 신부는 이후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모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