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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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츠크 공국 | 나치 독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 | |||||||||||
투로프 공국 | }}}}}}}}} |
문장 | |
현재 문장 | |
존속 기간 | 987년 ~ 1397년 |
1. 개요
오늘날의 벨라루스 지역에 10~14세기까지 존속한 국가. 드네프르 강과 드비나 강을 잇는 수운 요충지 위에 건설된 폴라츠크 시를 중심으로 벨라루스 북서부와 발트해 연안을 영향권에 두었다. 키예프 루스의 일원으로써, 드네프르 강을 통해서 운반된 교역품을 다우가바강을 통해서 발트 해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키예프 공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합병되었다.보통 이 폴로츠크 공국을 벨라루스 최초의 국가로 본다.
2. 역사
키예프 공국의 일원으로써 오늘날의 벨라루스 북서부와 라트비아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폴로츠크 공국은 10~12세기 수운을 통한 중개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 다우가바 강(서 드비나 강)이 비쳅스크를 지나 폴라츠크를 거쳐서 오늘날의 라트비아를 가로질러 발트 해로 향하는데, 이 수운을 이용하여 흑해에서 수입된 물산을 중계 무역하고 발트 해 인근 여러 부족들에게 조공도 받아낼 수 있었다.그러나 1201년 독일인 선교사와 상인들이 발트해 연안에 리가 시를 건설한 후에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을 끌어들이면서 전성기에 암운이 드리워진다.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은 폴로츠크 공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일대를 정복한 후에 요새를 건설하고 폴로츠크 공국과 싸웠다. 폴로츠크 공국은 발트해 연안을 다시 탈환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요새 공략에 실패하면서 좌절되었다.
13세기 몽골군의 침략으로 폴로츠크 공국의 종주국이던 키예프 루스가 멸망한다. 폴로츠크 공국은 몽골의 직접적인 침략과 파괴는 대충 모면했지만, 그동안 같이 교역하던 이웃 도시들이 완전 파괴되어 버리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키예프 루스가 멸망하자 리보니아 기사단은 정교회를 믿는 동슬라브족 공국들을 만만하게 보고 침략을 자행했다.
노브고로드 공국이 리보니아 검우 기사단과 싸울 때 노브고로드 공국을 지원하고,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튜튼 기사단과 싸울 때 리투아니아 대공국을 지원하던 폴로츠크 공국은 결국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커다란 유혈사태 없이 합병되었다. 애초에 몽골인들이나 튜튼 기사단이 체계적으로 주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전부 불질러버린 것과는 다르게,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노브고로드 공국은 루테니아 주민들에게 관대한 편이었다.
루테니아라는 단어는 정교회를 믿는 동슬라브족을 지칭하는 라틴어 어휘인데, 폴로츠크인들은 루테니아 알바 즉 백(白)루테니아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1] 폴로츠크 공국의 지배계급들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귀족계급으로 그대로 편입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