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벤 엘케어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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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1986 FIFA 월드컵 브론즈볼 |
1984 Ballond'or | ||
수상 미셸 플라티니 | 2위 장 티가나 | 3위 프레벤 엘케어 |
1985 Ballond'or | ||
수상 미셸 플라티니 | 2위 프레벤 엘케어 | 3위 베른트 슈스터 |
1984 Onze d'Or | ||
Onze d'Or | Onze d'Argent | Onze de Bronze |
미셸 플라티니 | 장 티가나 | 프레벤 엘케어 |
1985 Onze d'Or | ||
Onze d'Or | Onze d'Argent | Onze de Bronze |
미셸 플라티니 | 프레벤 엘케어 | 디에고 마라도나 |
Player of the Year 1985 | ||
수상 미셸 플라티니 | 2위 프레벤 엘케어 | 3위 디에고 마라도나 |
덴마크의 前 축구 선수 | ||
이름 | 프레벤 엘케어 Preben Elkjær | |
본명 |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 Preben Elkjær Larsen | |
출생 | 1957년 9월 11일 ([age(1957-09-11)]세) 덴마크 코펜하겐 | |
국적 | [[덴마크|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2cm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해설위원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반뢰세 IF (1976) 1. FC 쾰른 (1977~1978) KSC 로케런 (1978~1984) 엘라스 베로나 FC (1984~1988) 바일레 BK (1988~1990) |
감독 | 실케보르 IF (1995~1996) | |
국가대표 | 69경기 38골 (덴마크 / 1977~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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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덴마크의 前 축구 선수.1980년대 대니쉬 다이너마이트[1]의 주포이자 에이스. 스트라이커임에도 드리블 돌파 능력이나 발밑 기술이 상당히 좋은 선수였다. '로케런의 광인(Preben Elkjær)'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여러 클럽의 유소년팀에 있다가 1976년 반뢰세 IF에서 데뷔했다. 15경기 7골을 넣은 엘케어는 반시즌만에 당시 독일 최고의 클럽 중 하나였던 FC 쾰른으로 이적했다. 이적 첫 시즌 쾰른은 컵대회에서 우승했으나 정작 본인은 리그 9경기 1골로 매우 부진했다. 그 이유는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라커룸 분위기나 감독에게 전혀 적응하지 못해서였다. 당시 쾰른의 감독이었던 헤네스 바이스바일러는 엘케어가 밤마다 클럽에 가서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결국 1978년 2월[2] 엘케어는 떠밀리듯이 벨기에의 KSC 로케런으로 이적했다. 그곳에서 엘케어는 완전히 날아올랐다. 그는 6년간 활약하면서 리그에서만 98골을 넣었고 모든 대회를 합치면 100골 이상을 넣었다. 이 시기 팀은 리그, 컵 준우승을 기록하고 UEFA컵에 출전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1984-85 시즌을 앞두고 엘케어는 이탈리아 무대로 향했다. 팀은 지난 시즌 6위를 기록한 엘라스 베로나 FC였다. 엘케어는 베로나의 기적적인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특히 유벤투스를 상대로 40m 단독 드리블 돌파 후 득점한 것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유명한 골 중 하나이다. 엘케어 본인은 미셸 플라티니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 2위에 랭크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고 4시즌간 총 130경기 48골을 득점했다.
1988년 엘케어는 바일레 BK로 이적하며 덴마크로 복귀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느정도 있었던지라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녀주지는 못했고 2시즌을 뛴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프레데릭스베리의 유소년 팀에서 뛰고 있었을 때인 1975년 덴마크 19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11경기 6골을 넣었다. 1년만에 21세 이하 대표팀에도 발탁된 엘케어는 다시 1년만에 성인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고 약관의 나이가 되기 전에 핀란드를 상대로 멀티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견인, 충격적인 데뷔전을 가졌다.
UEFA 유로 1984에 참가해 본격적인 명성을 덜치기 시작했는데, 이 대회에서 엘케어는 조별리그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4강행에 기여했다. 그러나 정작 4강전인 스페인전에서는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실축해 탈락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덴마크 대표팀은 '데니쉬 다이너마이트'라 불리는 팀으로 엘케어를 위시해 미카엘 라우드럽, 프랑크 아르네센, 쇠렌 레르비, 얀 묄뷔 등의 엄청난 멤버가 포진된 우승후보로 부상하던 팀이었다. UEFA 유로 1992에서 깜짝 우승한 세대보다 실력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 엘케어는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냈으며 우루과이를 상대로 해트트릭이라는 폭탄을 터트려 6-1 대승에 기여했다. 대회 준우승팀인 서독을 2-0으로 격파한 것은 덴마크의 돌풍이 보통이 아닌 것을 증명했으나 서독전 아르네센의 퇴장 공백이 너무컸던 나머지 16강에서 스페인의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에게 4골을 내리 허용하며 1-5로 패배했다.
UEFA 유로 1988에도 출전했으나 엘케어는 1골도 넣지 못했고, 덴마크는 3전 3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 대회는 그의 마지막 국제 대회이며 2차전이었던 서독전은 그의 마지막 A매치 경기였다.
3. 감독 및 해설 경력
은퇴 이후에는 잠깐 실케보르의 감독을 맡았다가 이후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이다.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아약스 vs 토트넘 2차전에서 모우라의 극적인 해트트릭 직후 카메라에 잡혔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엘라스 베로나 FC
- 세리에 A: 198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