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의 아버지 월리엄 트리톤은 1916년 10월 마더 전차보다 더 작고 빠른 전차를 만들 것을 제안했고 영국군의 수뇌부도 이에 동의하며 예상외로 빠른 속도로 개발되며 1917년 10월 첫 양산형 전차가 나오며 12월 실전배치되었다. 초기 수량은 200대였다.
무장이 기관총 4정으로 상당히 빈약했으나 상당히 빠르며 고속 주행 능력과 준수한 험지 돌파 능력을 보여줌으로서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고, 승무원이 고작 3명에 불과했으나 2명이 기관총을 각자 운용하며 움직이는 기관총 포대로서 활약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Mk. I 마더의 암컷(Female)형 기관총 전차를 대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설계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엔진 등의 동력 계통이 전면에, 전투실이 후방에 위치함으로써 기존에 엔진과 전투실이 구분되지 않아 승무원들이 매연과 진동에 무방위하게 노출됐던 것과 달리 비교적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다.
하지만 2대의 엔진이 각각의 궤도를 담당하는 식으로 운용되었기 때문에 조종수의 부담이 컸고[2] 복잡한 구동 방식과 엔진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자주 시동이 꺼지거나 엔진이 고장났으며 꼼수로 한쪽 엔진을 멈추고 반대쪽 엔진으로만 회전할 시 궤도가 자주 이탈했다.[3]
1918년 8월 벌어진 백일 공세 중 아미앵 전투 당시 독일 제국군의 대반격에 전선이 붕괴되며 적진 한가운데 갇힌 휘펫 전차 뮤지컬 박스는 9시간을 버티며 적 포대 1개와 관측기구를 파괴하고 적 보병 1개 대대를 패주시키며 야포 사격에 파괴되기 전까지 1개 사단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공적을 세웠다.
[1] 정확히는 전차가 새로 등장한 무기이기에 현재의 전차기준으로 분류하기가 어렵다. 현대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중전차에 제일 가깝다.[2] 왼쪽으로 회전하려면 왼쪽 엔진의 출력을 낮추고 오른쪽 엔진 출력은 높인 다음 회전이 끝나면 다시 출력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했다.[3] 사실 이 방법은 한 쪽 궤도를 멈추고 다른 쪽 궤도만 움직이는 것으로, 제자리 선회가 불가능한 전차의 일반적인 선회법이다. 단지 초창기 전차라서 구동계 설계가 원시적이었을 뿐이다.[4] 이 휘펫들은 러시아 내전 시기 적군이 백군에게서 노획한 물건이다. 1918년에 영국은 백군에게 17대의 Mk. A 휘펫과 수량 불명의 Mk. B를 지원했고, 적군은 이 전차들을 노획하여 내전 기간 중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