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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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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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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 열성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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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비서
김용범
김일성
제1차대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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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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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대표자회 중앙위원회
총비서
제5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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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대표자회 총비서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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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차대회 총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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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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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현직 수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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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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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대원수 김정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로동당 군정지도부장 총참모장 국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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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원수 리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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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원수 박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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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차수 리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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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강순남
총정치국장 사회안전상 보위국장 미싸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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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정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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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군 대장 리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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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조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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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장창하
국방성 제1부상 조선로동당 민방위부장 공군사령관 해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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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김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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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오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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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대장 김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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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대장 김명식
전략군사령관 특수작전군사령관 국가보위상 정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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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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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리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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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리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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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리창호
호위사령관 국무위원회 경위국장 만경대혁명학원 원장 강반석혁명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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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곽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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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상장 김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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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김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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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방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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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휘장.svg 위원장
김정은
제1부위원장 부위원장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덕훈
내각 총리
위원
조용원
당중앙
조직지도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정경택
총정치국장
김여정
당중앙
선전선동부
부부장
리선권
당중앙
통일전선부장
김성남
당중앙
국제부장
오수용
당중앙
경제부장
김영철
당중앙
통일전선부 고문
박정천
당중앙
군정지도부장
장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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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조선로동당 총비서
김정은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colcolor=#FED11E> 상무위원 <colbgcolor=#fff,#222> (총비서)
(국무위원회 위원장)
<colbgcolor=#fff,#222>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룡해
(내각총리)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김덕훈
(당중앙위원회 비서)
(당중앙 조직지도부 부장)
조용원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리병철
가나 리일환 · 박정천 · 조춘룡 · 김재룡 · 전현철 · 오수용 · 박태성 · 정경택 · 박정근 · 강순남
후보위원 최선희 · 리영길 · 주창일 · 김철삼 · 김형식 · 한광상 · 리철만 · 김성남
리히용 · 양승호 · 주철규 · 리창대 · 리태섭 · 김수길 · 김영철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제1비서 - <colcolor=#FED11E> 상무위원
비서
조용원
1비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박정천
(당중앙검사위원회 위원장) 김재룡
조춘룡· 리일환 · 전현철 · 박태성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전문부서
조직지도부장 조용원 선전선동부장 주창일
군정지도부장 박정천 근로단체부장 리두성
규률조사부장 김철삼 국제부장 김성남
간부부장 김재룡 법무부장 김형식
경공업부장 한광상 농업부장 주철규
통일전선부장 리선권 군수공업부장 조춘룡
민방위부장 오일정 경제부장 전현철
과학교육부장 최동명 재정경리부장 김용수
총무부장 김봉철 문화예술부장 ?
문서정리실장 박정남 당력사연구소장 리혜정
경제정책실장 ? 39호실장 신룡만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부위원장 리병철 · 박정천
강순남 · 조경철 · 김조국
리영길 · 리태섭 · 오일정
조용원 · 리창호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당중앙검사위원회
위원장 김재룡 부위원장 리히용 · 김철삼
(중앙재판소 소장) 최근영
(중앙검찰소 소장) 김철원
(국가검열위원회 위원장) 장기호
김광철 · 김성철 · 최준호
박광식 · 박광웅 · 오동일
장인철 · 전태수 · 김인철
파일:조선로동당 마크.png 로동신문
책임주필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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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시사저널 화이트 로고.svg
202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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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2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rowcolor=#fff> 2020 2021 2022 2023 2024
김정은 송영길 김건희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연도별 보기: 1990년대 / 2000년대 / 2010년대 / 2020년대
}}}}}}}}} ||
조선로동당 총비서[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B]
김정은
金正恩 | Kim Jong Un[3]
파일:김정은 국무위원장.jpg
<colbgcolor=#ED1C27><colcolor=#fff> 출생 1984년 1월 8일[4] ([age(1984-01-08)]세)
강원도 원산시 송천동 특각 602호 초대소[5]
현직 조선로동당 총비서[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B]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서명 파일:김정은 서명.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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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4FA2><colcolor=#fff> 본관 전주 김씨 (全州 金氏)
종교 무종교(무신론)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속령
북한
]]
학력 스위스 슈타인횔츨리공립중학교 (중퇴)[8]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학 / 학사)
직업 정치인[9]
계급 대장[10] (2010년 ~ 2012년)
원수[11][12] (2012년 ~ 현재)
신체 약 168cm[13] | 체중 약 150kg[14] | BMI 약 53[15] | 혈액형 A형
소속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대표적 호칭
(북한)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16][17] /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 최고사령관동지 /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 등
대표적 호칭
(남한)
김정은 / 김정은 (국무)위원장[18] / 김정은 총비서 등
가족
조부 김일성 (1912년 - 1994년)
조모 김정숙 (1917년 - 1949년)
김정일 (1941년 - 2011년)
고용희 (1952년 - 2004년)
이복형 김정남 (1971년 - 2017년)
김정철 (1981년생)
여동생 김여정 (1988년생)
아내 리설주 (1989년생)
장녀 김주애 (2013년 2월 19일생)[19][20] }}}}}}}}}

1. 개요2. 생애
2.1. 태생 ~ 학창 시절2.2. 후계자 생활2.3. 집권 이후
3. 통치
3.1. 숙청3.2. 선전
4. 특징
4.1. 성격4.2. 비만4.3. 사치4.4. 헤어스타일4.5. 김일성 따라하기4.6. 무명의 후계자
5. 전용 교통수단6. 평가
6.1. 긍정론
6.1.1. 다른 의견 : 김정은은 결코 절대권력자가 아니다?
6.2. 부정론
6.2.1. 외교 · 통일 분야
7. 매체에서8. 발언9. 가족관계
9.1. 자녀 관계
10. 별명11. 여담12. 경력13. 관련 문서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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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3대 최고지도자[21]이자 독재자.

북한의 초대 독재자김일성의 직계[22] 손자이자, 2대 독재자인 김정일의 방계[23] 아들로 김정일에게는 셋째 아들이다.1984년에 태어났으며, 학창시절에는 박운 (Pak Un)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 생활을 했으며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후계자로서 권력을 승계받아 현재까지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집권 당시 나이는 27세로, 세계 최연소 국가원수다.[24]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 등의 직책을 겸임하고 있다. 북한은 당국가체제(黨國家體制)로서 조선로동당 총비서 직함이 다른 어떤 직책보다도 앞서며, 이에 따라 북한 언론에서 사용하는 공식 칭호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25]동지'다.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칭하며,[26] 영어권에서는 President Kim 또는 General Secretary Kim 이라고 불리고 있다.

한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적인 측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대단히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를 통틀어 가장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한국사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27][28] 물론 나쁜 의미로 말이다. 대한민국미국을 향한 핵무기 위협 발언으로 인해 서방 매체에서 자주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 생애


본래라면 첫째 형인, 김정남의 후광에 가려져서 사라졌을 인물이었으나, 그들의 아버지 김정일이 자유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장남 김정남[29][30]을 후계자 자리에서 탈락[31]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삼남이었던 김정은에게 기회[32]가 돌아왔다. 그에게는 다행히도 자신의 친모인 고용희가 김정일에게 총애받기도 했고, 자신의 동복형제인 김정철이 너무 유약하고 무능력[33]해서 김정일 사후에는 자연스럽게 권좌가 김정은에게 넘어왔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는 연평도 포격전, 서부전선 포격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등 여러 대남 도발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되며 아버지 김정일을 뛰어넘는 호전성으로 크게 경계받던 인물이었다.[34] 그러나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나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고, 여기서 비핵화와 종전을 약속하면서 문재인과 함께 남북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다. 저 당시만 해도 북한 내부에서조차 개혁개방을 이끌며 통일이라도 해낼 수 있겠다며 남한에서의 긍정여론과 유사하게 지지가 높았다고 한다. 2019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북미정상회담을 가지며 북미관계에서도 큰 진전을 일으키는 듯 했으나, 이후 비핵화 협상에 난항을 겪자 어떠한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2020년대 들어선 오히려 미사일을 빈번히 발사하는 등 평화를 위한 노력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억압적인 전체주의 통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 일가에 대한 개인숭배 또한 여전하며, 잔인한 인권 유린 역시 줄어들 기미는커녕 2020년 이후 심해지는 추세로 파악된다. 집권 이후 선대의 정치적 유산에 의존하기보다 기존 정치구도를 재편해 스스로의 권력기반을 창출하기 위해 리영호와 장성택, 현영철과 최태복 등을 숙청하며[A] 당과 군부를 완전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의 영향으로 위상이 너무 막강해진 조선인민군의 기세를 약화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국가보위성사회안전성도 약화시키기 위해 조선로동당 및 중앙검찰소 라인을 우대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 전략은 2012년 경제관리개선조치 시범사업 → 2014년 ‘5.30’경제관리개선조치 발표 → 2016년 5개년전략(7차 당대회) → 2018년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남북관계, 북미관계 개선) → 2021년 5개년 계획(8차 당대회) 수립이라는 로드맵으로 체계화되었다.[B] 이 과정에서 경제핵병진노선과 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A]을 내세워 경공업의 발전을 꾀하고 수많은 건설사업을 통해 중공업의 현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대북제재의 해제가 동반되는 외부와의 무역 없이 국내 시장만으로 자력갱생을 실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고, 여기에 북한 정권의 유명무실한 행정 능력, 세계 최악의 부정부패, 그리고 2020년 한반도 폭우 사태까지 겹치며 결국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선 경제개발 실패를 인정하고 제2차 고난의 행군을 선언했다. #

2022년에는 북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과 비이성적인 무역 활동 제한,[38] 국제사회의 지원에 대한 거부로 인해[39] 북한에 심각한 식량난이 또다시 도래하였다. 이 때문에 최소 2018년 수준의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유의미한 경제적 성과를 거두긴 힘들어 보인다.

이렇듯 국내외에서 촉발된 여러 위기에 봉착하자 그동안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척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2020년대부터는 오히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 등을 통해 북한의 21세기 중 가장 심한 독재자로 북한 주민들을 더욱 무자비하게 옥죄고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 자신의 업적은 물론 한국 정부의 모든[40] 평화를 위한 노력마저 자신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였다며 선대의 업적마저 뒤엎는 행보도 생기고 있다. 젊고 외국 문물에 익숙하기도 한 김정은이 북한의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다는 기존의 낙관적인 예상이 무색하게도[41] 가장 폐쇄적인 북한 체제를 더욱 퇴행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2.1. 태생 ~ 학창 시절

“주변 사람들이 그(김 위원장)를 그렇게 (권력자처럼) 대하는 상태에서 그가 보통 사람으로 성장하기는 불가능했다”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

북한 기준 1984년 1월 8일, 강원도 원산시에서 김정일과 그의 두 번째 부인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김정철과 여동생 김여정은 고용희 소생으로 친남매이며, 김정남은 김정일의 첫째 부인 성혜림 소생으로 이복형제이다.

그의 출생지에 대해서 한동안 논란이 있었는데, 김여정은 2018년 최문순 당시 강원도지사에게 직접 김정은은 원산 출생이라고 알려주었다. 그의 이모 고용숙은 그가 1984년생이라고 여긴다. 2013년에는 조선일보에서 김정은이 원산의 초대소(별장) 태생이라고 하였는데, 적어도 원산 출신임은 확인이 된 상황이다. #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등은 그가 원산의 '602초대소'에서 탄생했다고 추정한다. # 따라서 김정은이 원산 출생인 건 기정 확인되었다.[42]

고용숙 씨는 김정은은 “말썽꾼은 아니었지만, 성질이 급했고 인내심이 없었다”고 회고하며, 김 위원장의 어머니가 그만 놀고 공부를 더 하라고 꾸짖자 김 위원장이 단식투쟁으로 맞섰던 일을 소개하기도 했다. 키가 크고 싶어서 농구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8살에 선물받은 장군복을 입었고, 군장성들이 충성의 맹세를 하여 이때부터 후계자로 결정되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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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 김정은은 매우 날씬한 체형이었다.
박운으로 기억하는데, 평범하지만 쾌활하고 자신감이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김정은 스위스 학교 동창생 이사벨라[43]
김정은은 나와 비슷한 평범한 아이였다. 그가 처음 ‘북한 지도자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
김정은 스위스 학교 동창생 주앙 미카엘루[44]
스포츠에서 경쟁하는 걸 좋아했지만, 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싫어했습니다. 그는 밤에 외출한 적도 없었고, 디스코나 파티에 나간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김정은 스위스 학교 동창생 주앙 미카엘루
그는 매우 열정적인 친구였습니다. 농구를 정말 잘했고 굉장히 빨랐습니다. 최근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죠. 모두들 그를 자기네 팀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습니다.
김정은 스위스 학교 동창생 니콜라 코바세비치

그에 대한 증언은 매체가 전달하는 바에 따라 다소 엇갈린다. 미카엘루가 한 인터뷰에서는 '가장 둔하지는 않았으나 자신과 김정은은 2군에 속했다'라고 했는데 김정은이 낙제생이라고만 알려진다든가, 2018년 즈음에는 미카엘루가 김정은에 대한 부정적인 증언도 많이 했는데 김정은에 대한 주관적인 기대를 담아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잘 대해주는 모습만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딱히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김정은은 대범하게 행동할 줄 알며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 행동을 조심하지만, 자기 아랫사람들에게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모습도 있다는 증언도 있다. 실제로 북한의 지도자가 된 이후 김정은은 데니스 로드먼이나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을 때는 깍듯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북한의 조선중앙TV 보도상에서는 아랫사람들에게 호통을 치고 격노하는 모습이 잘만 나온다. 김정일이 살아 있던 시절, 나이 든 장성 2명을 툭툭치며 화를 내는 모습이 북한TV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

김정은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인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슐레(Liebefeld-Steinhölzli Schule)'에서 재학했다. 당시에는 스위스에 있는 북한대사관 운전기사의 아들로만 알려졌었다고 한다.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이 1994년에서 1997년까지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 스위스 유학 당시 그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살던 베른 시 당국조차도 그가 북한 대사관 직원의 아들 '박운'으로 알고 있었다. 학부모 참여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갖가지 변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미카엘루가 2018년 JTBC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오히려 조용한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수학에 뛰어나며 성적도 '좋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미카엘루가 데일리 메일과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과 나는 가장 우둔한 아이가 아니었지만 가장 똑똑하지도 않았고, 항상 2군이었다.'[45]라고 했다. 북한 고향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의 안했지만 집에서는 서구 음악을 틀어놓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북한 애국가를 천 번은 넘게 듣는 '향수병'이 있었다고 했다.[46] 심지어 그 기사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아예 끼지를(join in) 않았다고 한다. # 다만 제임스 본드성룡의 쿵푸 액션 영화는 좋아했다고 한다. 2018년은 북미정상회담 등이 있어 김정은에 대한 기대가 컸던 시기였고, 김정은이 확인하여 미카엘루를 초대한 계기였던 '2013년 이전의 언론 인터뷰'의 내용 중 한국의 기대에 어긋나는 부분은 조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김정은과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식의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그의 잠재적인 문제점을 확인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도 가능하지만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분위기였다.

미카엘루의 JTBC에서의 언급에서는 김정은의 가장 큰 관심은 농구였는데, 그는 축구 밖에 모르던 친구들의 흥미를 농구로 돌려놓았다. 농구를 할 때면 항상 이기려는 승부욕을 보였다고 하는데, 미카엘루는 그 나이대에는 모두 이기고 싶어한다며 지나친 승부욕은 아니었다는 어감으로 이야기했다. 김정은은 농구를 할 때면 고급 나이키 농구화와 유니폼을 입고 다녔다고 하는데, 이에 체육 선생님은 김정은에게 '장비는 잘 갖췄는데 실력이 프로가 되려면 멀었다'는 농담을 했고 김정은은 웃어 넘겼다고 회고했다. 또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은 학교에 다니면서 기본 과목 중 하나인 '고급 민주주의' 과목을 들었다는 점이다. 우엘리 슈투더(Ueli Studer) 교사는 그의 제자 김정은에게 고급 민주주의 수업을 가르치면서 그가 북한의 로동당 위원장이 될 것을 꿈에도 몰랐다고 CNN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김정은은 자신과 가장 친한 미카엘루와 또 다른 한 친구를 가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살던 집은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집 자체는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조용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교를 도보로 걸어다닐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학교와 집이 있는 리베펠트(Liebefeld)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베른 구시가지에 대중교통으로 10분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다만 데일리 메일의 인터뷰에서는 내부에 플레이 스테이션 등이 있고 개인 요리사, 운전수, 개인 교사가 있었다고도 했다. 미카엘루는 김정은의 집에 갈 때마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미카엘루는 김정은의 집에 갈 때마다 그의 여동생 김여정을 만났고 돌봐주는 어른들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후일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영숙 부부이다. 김정은의 농구사랑은 집에서도 계속됐다고 하며 미카엘루는 그와 마이클 조던이 나오는 미국 영화물을 보거나 같이 게임을 즐겼다고 했다. 이외에도 김정은은 이따금씩 스키를 타러 다녔다고 하는데, 마식령스키장에 큰 공을 들인 걸 보면 스위스 생활이 확실히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

9학년이 끝날 때쯤 김정은은 북한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미카엘루에게 자신이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미카엘루는 이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믿을 이유도 없어서 그냥 농담으로 넘겼다고 한다.미카엘루의 증언을 그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제가 김정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오랜 시간 동안 김정은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김정은 때문에 농구에 재미를 붙였어요. 전 포르투갈 출신인데 포르투갈에선 축구만 하거든요. 대화는 저를 비롯한 조금 친했던 몇 명의 학생들하고만 나누었습니다. 승부욕이 강했는데, 운동할 때는 누구나 승부욕이 있는게 당연하죠. 그는 학교에서 성적이 좋았는데 수학을 좋아했고 그림을 정말 잘 그렸습니다. 어느날 김정은이 북한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9학년이 끝날 무렵이었던 것 같네요. 아마 2000년이었던 것 같아요. 실은 자기 아버지가 김정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 믿질 않았어요.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매우 먼 나라 이야기이고 김정은이 그냘 별 생각없이 한 말이라 여겼습니다. 그 말을 믿지 않았아요.#

다만 미카엘루는 텔레그라프지와는 다른 면모도 증언했다. 제임스 본드의 영화 등을 즐겼지만 '북한 음악, 특히 북한 국가를 많이 들었으며, 북한에 있는 여자친구라며 10대 소녀의 사진을 보여준 적도 있지만, 대체로 여자들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고'한다. # 농구를 같이 했다던 다른 친구인 마르코 임호프는 숙소에서 운전사이자 요리사가 좀 차가운 스파게티를 건네주자 김정은이 급작스럽게 화를 냈다며, 보통 때의 행동 방식이 아니어서 매우 놀랐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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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우들과 찍은 김정은의 사진. 혼자 아시아인이라서 구분이 쉽다. 또한 김정은은 트레이닝복을 많이 입었다. 그의 친구 마르코에 의하면 김정은의 옷장이 대부분 나이키 운동화와 나이키 트레이닝복들밖에 없을 정도로 아주 단순했다고 한다.

2013년 김정은은 미카엘루의 언론 인터뷰를 보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던 그에게 대사관 직원들을 보내 그를 평양으로 초청한다. 스포트라이트 측에 제공한 자료들에 따르면 미카엘루는 2012년 7월 21일부터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김정은을 만나 굉장한 환대를 받았다. 리설주는 물론 김여정도 참여한 식사자리가 있었고 김여정과도 반갑게 재회했다고 한다. 미카엘루는 자신이 알던 '박운'이 악명 높은 북한의 독재자가 되어서 자신 앞에 서자 어떻게 불러야 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그는 하던 대로 그를 '운'으로 불렀고 따뜻한 포옹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북한 귀국 후에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후계자로 기회를 잡을 목적으로 2년 남직한 기간 동안 전사한 대남공작원의 아들이라는 위장신분으로 인민군 하전사 체험을 했다고 한다. 신분을 감췄다고 하지만, 김정일의 아들이니 신분을 감춘 호위병 1명이 대동했다. 군 생활은 나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은 신분을 감춘 채 최전방 부대 신병으로 입소해 대략 6개월 정도 고된 군생활을 체험했는데,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불침번도 서고 얼차려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북한군 내에서 횡행했던 여러 병영부조리도 겪었다. 이후로는 자리잡았다지만 2년만에 조기제대하게 되었다.

이때 김정은을 잘 돌봐준 군인들은 김정은이 집권하자 크게 출세했으며, 반대로 김정은을 갈궜던 군인들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기도 했다. 특히 김정은을 잘 보살펴준 군대 선임병은 군관이 되고 김정은의 최측근 현송월과 결혼하는 등 크게 출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현송월의 남편은 박시철이라는 사람인데 북한군 체육단인 7.27 사단 정치위원으로 겨우 중좌 계급밖에 안되고 김정은과 별다른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선인민군 출신 탈북자들도 "김정은이 언더커버로 군복무를 했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면서 믿지 않는다고 한다.

병사체험 후로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들어가 포병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2022년 들어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에서 현철해의 도움을 받아 후계 수업을 받은 과정도 북한의 기록영화 《태양의 가장 가까이에서》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

스위스 유학 이유가 일반 주민들로부터 김정은의 존재를 숨기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있다. # 기사에 따르면 김일성이 김정일과 고영희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김정은은 대외적으로 없는 자식 취급이었고, 따라서 김정일을 '어머니를 고생시킨 나쁜 아버지'라 여기고 아버지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2.2. 후계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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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어요. 김정일은 김정철이 여자처럼 여리다며 맘에 안 들어 했지만, 김정은은 자신을 닮았다고 했죠. 즉, 막내아들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린 거죠. 군의 고위급 간부들도 있는 자리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생각한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
원래 김정은은 초창기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일설에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김일성은 장손 김정남을 귀여워했고 김정은은 찬밥 신세였다고. 링크 내용대로라면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 기사가 과장이라고 쳐도 일단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가 정실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신빙성은 높다. 김일성은 김정은이 10살이던 1994년 사망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장남이며 언론 노출과 해외 출입이 잦았고 더불어 나이와 경력이 있던 김정남을 후계자로 지목하였으나, 김정남은 정식 결혼이 아니라 원래부터 유부녀와의 불륜의 소산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없었다. 김정은은 후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정식결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정통성은 김정은쪽이 강하다.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달리 유일하게 김정일 곁에서 요리를 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일찍이 저서를 통해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점쳤다. 동복형 김정철의 경우, "김정일이 '여자아이 같다'는 평가를 내리며 후계자 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47]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김정철과 달리 권력욕과 지도력이 있으며 어린 나이부터 부하들을 휘어잡는 능력을 엿보였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김정남 후계자론이 대세였으며 김정남 대세론이 몰락한 후에도 김정철 대세론에 밀려서 김정은은 후지모토 겐지가 소개한 일부 일화만 주야장천 거론되며 "걔 성깔 있다더라~ 물론 증거는 없음" 정도의 평가를 받으며 고용희의 자식들이 대세인가 아닌가를 소개할 때 곁다리로 이름만 나오는 수준이었고, 2004년 고용희 사망 때도 형에게 밀려 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잊혀졌다. 이후 5년간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2008년 12월까지만 해도 김정철 세력과 김정남 세력이 알력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김정철은 조선로동당 부부장 직위에 취임해서 적어도 북한의 실세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48]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김정은 승계를 어느 정도 눈치챈 것으로 보이며 김만복 국정원장이 국정원 출입 기자들에게 세번째 아들의 승계가 가장 유력하다고 귀띔한 일도 있었으며, 2009년 6월 국정원이 김정은 후계자 등극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김정은이 후계자임이 만천하에 알려진다. 2009년 9월 18일 플리커에서 황한밍이라는 대만인 사진작가가 북한 원산에서 촬영한 사진이 업로드되었는데, 여기에 "만경대혈통과 백두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이것은 이런 칭호는 김정일만이 받았던 것이기 때문에 후계자로 주목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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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총참모장 리영호, 총정치국장 최룡해, 김정은.

2010년 1월 8일, 즉 그의 생일, 북한에선 TV에 연간 김일성 생일, 6.25전쟁 휴전일, 로동당 창단일로 딱 3번 트는 행사용 노래 <축배를 들자>를 틀었다. 그의 어릴 적 생일 축가로 지어진 노래 <발걸음> 또한 가사를 개사하여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자주 불러서 여러 가지로 후계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후에도 위의 각주에서 언급된 시게무라 도시미쓰가 김정은은 오토바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서 후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초를 쳤고 2010년 7월에는 신동아에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구해우가 김정은 후계자설은 뜬소문이라는 훈계조의 글을 게재하였으나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당 중앙위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는 등 후계자임이 명확해지면서 그야말로 개망신만 당했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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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청년 시절에 문화예술계(라고는 하지만 선전선동에 매우 중요한 요직이다) 쪽에서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10년 넘게 자기 입지를 강화해 나왔던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북한에서 아무 경력도 없다가 갑자기 띄워주려다 보니 넣을 게 없어서 별 해괴한 선전을 해댄다고 한다. 3살 때부터 백발백중의 사격실력을 갖췄다든가, 140km 이상의 거리를 승용차로 운전했다든가, 7살 이전에 전차 등의 중장비를 조종했다는 양판소, 무협지 수준의 소설이 북한 측의 선전 내용이라고.

그 밖에 김정일이 발에 땀나게 중국러시아 등을 오가며 건수를 벌어오면,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공이 컸다"는 식으로 밥을 떠먹여주었단다.

2.3. 집권 이후

2.3.1. 2011년~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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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김정일의 모습이 담긴 사진. 이 사진이 찍힐 당시에 자신의 아들인 김정은이 뿌듯하다는 듯이 웃는 모습도 보이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모습도 보여졌다. 그야말로 장성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고난의 행군을 인위적으로 일으켜 북한 경제를 나락으로 보내고 수 많은 북한인들을 죽게 만든 것, 수 많은 국지도발을 일으킨 것, 수 많은 죄없는 사람을 학살하고 박해한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이중적이고 증오스러운 사진인지 탈북민과 정당한 한국인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12월 17일, 건강이 계속 안좋아지던 김정일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김정은은 당시 존재하던 국가의 지도자 중 최연소 국가의 통치자가 되었다. 김정일의 장례식에서 상주로써 조문객들을 맞고, 영결식 때 제일 앞에서 김정일의 영구차를 따라가는 모습이 조선중앙TV의 장례식 방영에 그대로 나오면서 김정은이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되었음을 세상이 알게 되었다.

2011년 12월 19일, 조선중앙TV의 특별 방송에서도 김정일 추모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면서 권력 서열 1위로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대한민국의 전문가들은 "1994년 당시 김정일의 승계 과정보다 훨씬 불안정하지만 김정일이 구축해놓은 시스템과 중국의 지원으로 체제 붕괴나 내전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지 기반이 미약하기 때문에,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김정일이 해왔던 1인 절대 독재는 불가능하며, 요직에 있는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 등의 심복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세력 분포에 따른 집단 지도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박남기처럼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하면 많은 소련의 스탈린처럼 대숙청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50][51]그러나 예측과는 달리 장성택숙청 및 처형되었으며, 유력한 심복으로 지목되었던 김경희 역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잠적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이 정권 안정을 이제 자신하고 있다는 예측도 있다.

김정은의 상황을 김정일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각이 있었다. 다만 아래의 주장은 한국의 대립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추어 서술된 면이 어느 정도 있다. 권력을 적절히 승계하는 것은 사실에 가까우나, 스위스 유학파라서 현실 감각이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은 2018년에서 2019년 말까지를 제외하고는 금강산 관광의 업적마저 부정하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충동적인 기질로 인해 들어맞지 않을 위기도 있다.
김정일은 1970년대 후반에 김일성의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20년 가까히 정치 일선에 나섰으며 김일성 말년에는 계승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실권을 장악했다. 김정은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3년에 지나지 않으며 계승은 받았으나 실권을 장악했는지는 모른다. 직책은 로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다다.
반박하지만 '김일성-김정일의 직계 혈통'이자 '차기 지도자'로 김정일 생전에 인정받았으니 겉으로 보이는 직책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은 혈통이 지배하는 전제 왕국이다.
김정일은 50대의 원숙한 나이였으나 김정은은 30대 초반의 젊은이일 뿐이다.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의 국회라 할 수 있는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에서 김정은보다 어린 사람은 거의 없다. 김정은은 나이 든 간부들을 숙청하려 들 테고, 이 때문에 권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반박다만 김정일이 생전에 김정은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미리미리 치워놨기 때문에 이점은 있다. 김평일은 해외를 떠돌며 유배된 상태고, 김정철은 몸이 너무나 병약해서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한 상태인 데다가 권력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김정남과 장성택은 아예 암살, 숙청되었다. 김정일처럼 확고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딱히 강력한 대항 세력은 없다. 오히려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최소 몇 십 년은 살 테니 '구심점'이 될 수 있다.
김정일김일성의 첫 번째 아내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적장자(嫡長子)였으며 이것을 자신의 우월한 혈통성으로 내세우는 데 널리 써먹었다. 반면 김정은의 어머니는 재일교포 무용수 고용희다. 게다가 김정은은 장남은커녕 아들 중에서 막내다. 북한은 겉으로는 공산주의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철저하게 혈통의 순수성을 따지고 조선시대 유교 사회처럼 신분을 중시하는 사회다.
따라서 고용희의 신분은 북한에서는 오랑캐 출신의 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인지 김정숙과는 달리 고용희는 신격화하지 않고, 존재 자체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반박다만 그렇다고 김정일의 다른 자식들이 딱히 혈통 면에서 김정은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도, 북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존재는 아니었다. 그리고 고용희의 혈통이 그렇게 걸리면 날조하면 된다.[52] 그런데 모계혈통 같은 건 필요 없다. 김일성 라인이며 김일성 또는 김정일에게 인정받으면 그만이다. 또한 북한 여성은 아무리 본인이 적대계층이라 하더라도 김일성의 혈육을 출산하는 즉시 백두혈통이 되기 때문에 고용희는 김정은을 낳음으로 인해 김정일을 만나기 이전에 어디서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는 아예 지워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에 충분한 홍보 기간이 있었으나 김정은은 몇 년간의 홍보에도 아직 대중에 명확하게 각인된 인물이 아니다. 김정일도 그리 대중에 많이 나서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현재까지는 김정일 이상으로 비밀스럽게 움직이며 대중에 나서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 정치에서 일반 대중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지만 김정은은 아직 할아버지나 아버지 수준의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정일이 어느 정도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면서 권력을 잡았다면 김정은에게 있는 것은 진짜로 '조상의 후광'밖에 없다는 것.
반박하지만, 2015년 현재 김정은은 안정적으로 승계에 성공했고, 특히 제2권력자로 여겨지던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했다. 이제 김정은에게 대항할 만한 인물은 최룡해뿐인데, 그 최룡해마저도 2014년 1월에 김정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연설을 했다. 게다가 최룡해의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에게 대들 여유조차 없다. 당장 황병서가 치고 올라와 최룡해의 라이벌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또한 최룡해나 황병서나 김정은에 의해 현재까지도 계속 진급과 강등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당장 자신들의 계급을 쥐락펴락하는 이에게 누구라 해도 함부로 대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김일성 숭배'에 익숙한 북한 사람이라도, 난데없이 얼마 전에 나타난 새파란 20대 청년에게 복종하라는 것을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게다가 집권 얼마 전의 북한의 2009년 화폐개혁 같은 실정이 벌어진 탓에 민심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도 김정은은 김일성이 살아 생전의 외모와 같은 점에 희망을 걸지만 글쎄? 실제 생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김정은이 북한에서는 1982년생으로 취급하는 것도 1942년생인 김정일과 정확하게 40년, 1912년생인 김일성과 정확하게 70년의 연령차가 난다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반박그래서인지 김정은은 포상과 처벌을 번갈아가며 남발하고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예 "어린 김정은을 계속 내세워야 실권자가 마구 바뀌는 대혼란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할 확률이 높다. 일례로 새파랗게 어린 김정은이 원로인 장성택을 제거하고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김정은의 외모는 천연인지 성형인지 김일성과 상당부분 닮아 있어서 김일성을 생각나게 하는 얼굴과 몸매를 지니고 있다.
김정일은 어린 시절에는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 이 때문에 최소한의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은 태어날 때부터 장군가의 인간으로 철저하게 우대를 받고 길러졌기 때문에,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이 제대로일지 의심스럽다. 김정은은 조선숙종이나 일본도쿠가와 이에미츠처럼 날 때부터 지배자인 자이므로 왕조 시대의 인간을 현대에 집어던져 놓은 것과 같을 수도 있다.[53]
반박북한 사회가 다른 민주주의 사회 내지는 공산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세습이 고착화된 형태이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건 없다. 추가로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파이다. 이 때문에 되려 김정일보다 세상을 보는 안목은 더 넓다. 게다가 김정은은 형 김정철과는 달리 성격이 대단히 영악해서 그 나이 많고 군 경력이 오래된 원로들을 진급과 강등을 반복하고 포상과 숙청을 반복하며 심지어 골로 보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까지 해서 아예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사망 발표 직후엔 일단은 김정일 장례에 모든 관심이 집중해서 별 탈은 없지만, 장례가 끝나는 순간부터 북한 내 정권들의 존폐 여부에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김정은 초기에 집단 지도 체제 안에서 정권 안정에 변수를 줄 수 있는 건 오극렬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달려있으며, 김정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이복형 김정남이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다. 여기에 아버지 김정일의 이복형제인 김평일까지 가세할 수도 있어, 안정적인 승계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정작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계승이 순조로운 듯하다. 상중임에도 상당히 빠르게 인사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여서다. 대표적으로 25일 군부를 이끌고서 조문을 하는 모습에서 그의 고모부이자 핵심 실세로 예상하는 군부에 아무 직책이 없었던 장성택이 대장 직위를 달고 조문하는 모습이 잡혔다. 이 점은 현재 북한의 실세 장성택이 군부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니 김정은 체제가 군부에도 작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게 김정일의 생전 지시인지, 아니면 김정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김정일이 생전 '나와 닮았다'라고 한 발언처럼 김정일만큼의 정치 능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오극렬 못지 않은 권력자인 현철해가 김정은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김정일의 집권 체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하게 시작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열린 제4차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대신 '제1비서'라는 직책을 신설하여 취임해 조선로동당의 당권까지 장악했음을 공식화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김일성의 직책이던 '국가 주석' 자리를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여 폐지시켰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 그리고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다시 국방위원장 대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했다.

아버지를 영원한 총비서로 남겨서 자신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나란 추측도 했으나, 국방위원장직 역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만들어버림에 따라 헌법을 바꿔서 총비서가 아닌 제1비서로서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취임한 것에 비추어보면, 향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당 중심일 가능성이 높다.

2016년 5월 6일, 36년 만에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개최하였고, 5월 9일 새 직책인 조선로동당 위원장직을 신설하여 여기에 직접 자신이 취임하면서 완전히 당 중심으로 국가운영을 바꿨다. [54]

그리고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국무위원장에 추대되었다.[55]

2017년에는 제6차 핵실험을 통해 마침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초토화시킨 리틀 보이팻 맨을 능가하는 핵무기 개발 및 실험에 성공했고, 이로 인해 대북 제재가 더욱 강화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몰렸다.

2.3.2. 2018년

집권 이후 대남 대미 적대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180도 돌변하여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를 발표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56] 이를 계기로 개회식 당일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과 다음날 친서 전달 등이 이루어지며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2018년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특사를 파견했고, 남북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정상회담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다.

2018년 3월 25일부터 3월 28일까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집권 이후 처음으로 태양호를 타고 방중하여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북중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대한민국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불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으며 북중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 외교에 자신의 모습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게 되었다.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가지며 판문점 선언이라는 성과를 거둔다. 이때 김정은은 북핵(군사적 성취)보다 자신들의 정권 존립이 더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고 체제 안전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핵무기는 포기할 수 있다며 미국, 대한민국 등에게 핵무기 포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2018년 5월 7일부터 5월 8일에 이번에는 참매 1호로 재차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롄에서 2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2018년 5월 10일에는 방북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편을 통해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풀어줬다.

2018년 5월 16일 0시 30분에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고위급회담을 취소했다.

2018년 5월 26일 15시 판문점에서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완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6월 19일부터 6월 20일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을 받아 1박 2일로 참매 1호로 방중하여 시진핑 국가주석과 베이징에서 3차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극비리에 이루어진 3월 1차 방중과 5월 2차 방중과는 달리 첫 공식 방중이었다.

2018년 9월 18일부터 9월 20일까지 2박 3일간 평양에서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냈는데 특히 연내 서울 방문 추진이라는 파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018년 서울 답방은 무산됐지만, 2019년이나 그 이후라도 만약 김정은이 실제로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서울을 공식 방문하게 되는 사례가 된다.

2.3.3. 2019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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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한국, 미국과의 대화에 문을 닫은 채 북핵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3. 통치

2018년 4월 27일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싶고, 획기적인 경제 개발을 통해 북한동아시아의 주요국으로 부상시키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고 한다. 실제로 북한이 그동안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대한 연구 성과를 상당히 축적했다고도 한다.

베트남북한, 중국처럼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다. 베트남의 개혁 개방 정책은 '도이머이'(쇄신)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중국처럼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라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시장 경제 자본주의를 접목시킨 정책으로 1986년 응우옌 반 린 서기장이 취임한 후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 처음 도입했다. 도이머이 이후 베트남은 연평균 7.6%의 고도 성장을 달성하고 정책 추진 20년 만인 2006년에 세계무역기구에 150번 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는 일부 지역에 한해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고 거대한 내수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개선시킨 중국식 개혁·개방과는 차이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보다 자본에 대한 통제가 덜하고,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정일과 달리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서유럽의 발전상을 보면서 북한 경제에 서구식 제도를 대거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이 있지만 경제 규모나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이 처한 여건이 중국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정부의 외교 전문에 따르면 당시 김정일의 후계자 후보로 부상한 김정은은 베트남식 개혁을 선호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또한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이유는 중국의 내정 간섭 때문으로 장성택, 김정남 등 친중파 숙청의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고 추정된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중국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취하는 줄타기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57][58][59] 이는 김일성소련중국의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 양국 간 줄 타기 외교를 하며 실리를 취하려 했던 행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는 아버지선군정치 덕분에 세력이 비대해진 북한 군부를 반복된 숙청을 통해 약화시키고 길들이는데도 성공한 것 같다. 북한 군부는 우리나라의 안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동북아 평화와 개혁 개방의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젊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다. 따라서 할아버지아버지처럼 고립된 세계 최빈국 안에서만 신으로 숭상 받다가 죽는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 문제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집권 첫 6년 동안 군부를 통제하는 것에 주력했고 이를 위해 선대에 이어 핵무기 실험을 이어 나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침공해올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라지만, 내부적으로는 핵무기를 앞세우면 재래식 무기의 발언권이 약해진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이 집권하고 '선군정치의 시대'에서 '선당정치의 시대'로 변하자, 과거 선군정치의 영광과 특혜를 잊지 못하는 일부 군인들의 불만이 있다고 한다. 그간 공포의 대명사였던 북한군의 약탈과 횡포도 눈에 띄게 사라졌다고. 북 소장파 군인, 김정은 ‘선당정치’에 불만, 김정일 '선군정치' vs 김정은 '선당정치'

또한 김정은은 그간 군부가 누려온 각종 특혜를 회수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군부의 불만이 있었지만 큰 갈등으로 치닫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이 그런 반발을 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기지 않는 냉엄함을 보여주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와, 세계 최강국과 1년 내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위기감을 느낀 북한의 엘리트층이 김정은과 운명 공동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와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은 매우 폐쇄적인 국가라서 권력층의 내부를 직접 취재하는 것이 불가능하여서 무슨 의도로 정책을 내놓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어렵고, 이에 따라 각 정치권에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도 '이것은 대화를 하자는 뜻이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북한이 어떠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해도 면종복배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위의 내용이 무색하게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로는 고립주의, 폐쇄주의 성향이 심해지고 있다. “굶어죽고 얼어죽을지언정 버릴수 없는것이 민족자존”이라며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당정책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식의 주장이 노동신문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2020년의 연락사무소 폭파는 대화로 북한과 교류의 물꼬를 트고자 하는 더불어민주당마저 비난한 사건이었다. 2021년에는 국가정보원도 인정하였던, 북한이 전례가 없던 외부 문화 단속법인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채택이 확인되고#, 반사회주의를 적발할 연합지휘부 조직에 나서 주민 통제에 열을 올린다는 분석이 있다.

3.1. 숙청

할아버지아버지에 비해 권력 승계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 기반을 의식하여, 자신의 고모부이자 정치적 후견인인 장성택과 이복 형 김정남으로 대표되는 친족들을 비롯해 많은 군 장성들을 사소한 사유만으로도 목숨을 빼앗는 공포 정치를 펼쳤고, 그 덕에 후계자 수업이 덜 끝난 상태에서, 그것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최고 권력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권력 세계를 확실히 휘어 잡은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김정은 집권 초기 무분별 대규모 숙청을 통한 공포 정치는, 그의 정치적 입지가 북한의 건국자인 김일성과, 권좌에 오르기까지 수십 년간을 권력 핵심에서 복무하며 정무 감각을 익히고 세력을 다진 김정일에 비해 비교적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이 권력 전면에 나선 2012년 7월 이후 사형 당한 고위 간부는 100여 명에 달한다. 전술한 국정원의 발표 소스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6년에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를 인용한 것으로써 국정원 산하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 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김정일 집권 초기에 김정일이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행한 심화조 사건에서 희생당한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 숫자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오히려 김정일에 비해 권력 획득 과정이 안정적이거나,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정은의 첫 표적은 김정일 사망 이후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리영호김정일의 죽음이 임박하던 시절, 인민군 총참모장-당 정치국 상무위원-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파격 승진을 했던 인물로, 김정일이 김정은의 사람으로 쓰려고 발탁한 인물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은은 2012년 7월 리영호를 ('일신 상의 이유로 모든 보직에서 물러났다'고 표면상 밝혔지만) 해임해 버렸다.

그의 해임은 김정은의 군 통제 강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로 알려졌다. 리영호를 포함해 김정일의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군부 4인방’도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모두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세종연구소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주최한 2018년 4월 18일의 세종국가포럼의 발표에 의하면, 속칭 영구차 호송 7인방이 숙청된 일화는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김정은의 잔학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구차 호송 7인방이 거의 숙청되었다고 말하여 왔다.

이에 따라 다수 언론들은 “거듭된 숙청으로 김정일 사망 당시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점쳐졌던 총참모장 리영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등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은 모두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운구차 7인방’이 대부분 숙청된 것처럼 왜곡 보도해왔다.

그러나 리영호 총참모장은 과거 군부가 관장하던 외화벌이 사업을 당과 내각으로 이전하는 데 반발하다가 2012년 7월에 해임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며 김정은은 동년 5월 14일 “군대가 너무 돈 맛을 들였다. 총과 총알은 당과 국가가 만들어 주겠으니 군대는 싸움만 잘 하면 된다”라고도 지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리영호의 해임은 김정은의 1인 지배 체제 강화와는 무관하게 북한 군부를 사정(査正)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숙청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운구차 7인방’ 중 김기남과 최태복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2017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은퇴했는데 당시 그들의 나이는 각기 88세와 87세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퇴장 사유는 단순한 고령 때문일 것이다.

또한 김영춘은 2013년 4월 인민무력부장직에서 해임되었지만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직을 맡고 있다가 은퇴했으므로 숙청과는 무관하다. 2013년에 김영춘의 나이가 77세였으므로 당시 그의 인민무력부장 해임도 나이에 따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김정각은 2013년 4월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서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했다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김정각은 인민무력성 제1부상직으로 다시 이동했다가 2018년에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라는 군부 1인자 직책에 잠깐 올랐다가 2018년 5월 평양시 당 위원장을 지냈던 김수길에게 총정치국장 자리를 넘긴 걸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2012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퇴장도 정치적인 숙청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처럼 ‘운구차 7인방’의 운명을 분석해보면 장성택을 제외하고는 김정은의 1인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숙청된 인물은 없다는 것이 세종연구소의 발표 내용이다.[60]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죄목 중에는 김정은에 대해 ‘왼새끼를 꼬며(딴마음을 먹고)’, 김정은을 추대하는 자리에서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것도 있었다.

한미 당국이 북한 체제에 커다란 파급력을 낳으며 내부 쿠데타까지 몰고 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장성택의 허망한 죽음이 의외로 그냥저냥 지나가자 북한 체제의 견고함(regime's durability)이 상상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장성택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정일 정권 시절에는 비록 실각과 복권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늘 권력 2인자 자리를 놓지 않았던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세종연구소는 세종국가포럼의 발표 내용에서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된 이유로 '반혁명적인 종파행위'와 '방탕하고 난잡한 여자 관계'를 들고 있다. 여기서 '종파'(宗派)란 '개인이나 분파의 이익을 추구하며 당과 '혁명운동'을 분열·파괴하는 집단'을 가리킨다. 장성택이 김정은에 대한 반란을 꾀했다는 것으로, 김정은은 장성택을 제거할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2015년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재판 절차도 없이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되었다. 처형 이유는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꾸벅꾸벅 졸았기 때문’이었다.

현영철의 처형 한 달 뒤인 2015년 5월 김정은은 최영건 부총리도 처형했다. 최영건은 김정은이 추진하는 산림녹화정책과 관련해 불만을 표출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2월에는 우리 군대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군부 서열 3위)을 처형했다. 죄목은 ‘종파분자 및 세도·비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反)김정은 파벌을 구축하고 권력 남용 비리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그러나 2016년 5월, 리영길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국정원의 잘못된 정보임이 판명났다. 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10일 보도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차 전원회의의 인선 내용을 보면, 리영길 전 총참모장이 중앙군사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됐다. 가장 최근인 17년 4월 15일에는 대장으로 진급한 상태다.[61]

2017년 2월, 김정은의 이복 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인 VX 액체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정남 피살 사건을 참조.

한편 세종연구소는 2018년 4월의 발표에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숙청이 김일정과 김정일 시대의 ‘즉흥적’인 숙청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6년에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 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일성 사망 후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약 3년 동안 이른바 심화조 사건을 통해 숙청된 간부들은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2,000 명 정도로 추산된다. 김정은 집권 이후 140여 명의 간부가 숙청되었다면 그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 시대 심화조 사건으로 숙청된 간부들의 약 7% 정도에 불과한 수치다.

게다가 '심화조 사건' 때 최대 25,000여 명이 숙청되거나 유배되었다는 주장도 있기에 이 수치와 비교하면 김정은이 숙청한 숫자는 김정일과 비교했을 때 더욱 낮아질 수 있다. 심화조 사건으로 당시 핵심 실세였던 문성술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본부당 책임비서까지 처형되었으므로 김정일 시대에도 핵심 간부들이 결코 숙청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이 ‘숙청’되었다고 발표한 북한 간부들 중 일부는 얼마 후 복권되거나 다른 직책으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고 있어 실제 숙청 규모는 국정원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이는 현송월이나 같은 음악단 단원들, 리영길이 처형당했다는 잘못된 국정원 발 정보가 유통되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김정은은 권력이 안정된 이후 후기 소련처럼 온건한 숙청(최고 권력에 위협되지 않는 간부는 살려두는 숙청)을 실행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잔혹한 대량 숙청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국제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공개 처형보다 비밀 처형의 빈도가 늘어났다고 한다.#

2018년 기준으로 김정은은 북한의 오랜 핵무기 개발로 인해 받고 있는 국제 사회의 각종 경제 및 인적 제재를 돌파하고, 북한 경제를 치유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시진핑 국가주석 등과 소위 "정상 국가의 수장"으로서 외교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 중 하나가 김정은을 외교 무대에 데뷔시켜서 국제적 규범을 따르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성공한 셈이다. 심지어 기자회견 형식으로 선언문까지 냈는데 이는 김정은이 국제 외교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했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신호다. 이렇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 시기와는 다른 온건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대에서 주로 이루어져 왔던 인권 문제나 무자비한 숙청 문제에 관한 지적들이 정식 외교 무대에서 계속 거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이 원하는 당장의 대가는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모두 없애고, 앞으로도 독단적인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미국이 입에 담지는 않고 있지만, 후일 북한의 최대 외교적 숙원인 미국과의 정식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에 의해서 북한내 인권 문제가 충분히 거론될 수 있다. 앞으로 북미 간의 협상과 거래의 결과에 따라서 김씨일가, 특히 김일성, 김정일이 저질러 왔던 인권 탄압과 숙청의 강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정권이 온건한 숙청을 하는 지금보다 더 완화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김정은이 계속해서 인권 탄압을 멈추고자 하는 행보를 보이면 미국에 반항한 인권탄압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는 걷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권력이 안정화된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전후로는 고위 간부들을 숙청하더라도 왠만해선 다시 복권시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숙청 비중조차 줄어들고 있으며, 문책성 처벌에서 그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하급 간부들의 경우 여전히 처형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기도 한다.

김정은의 간부 현장 처형 방식

3.2. 선전

북한 정권이 김정은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바로 2009년에 북한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컴퓨터 수치제어 공작 기계의 핵심 기술인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이다. 북한 언론에서는 이것을 김정은의 치적이라 주장하고, "과학 기술에 능한 지도자"라며 CNC 홍보 노래까지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전파한다. 해당 노래는 유튜브에서 'CNC Song'으로 검색하면 들어볼 수 있다. 영상 링크

하지만 CNC 기술은 이미 1940년대 말~1950년대에 미국이 개발해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공작 기계의 기본 기능으로 여길 만큼 매우 보편화되었다. 물론 미국이 1940년대 개발했다고 이 기계가 만들기 쉬운 건 절대 아니다. 일본은 1967년, 한국은 1977년이 되어서야 자체적인 CNC 개발에 성공했다. 게다가 이것을 못 만드는 나라도 많은데 굳이 안 만드는 이유는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CNC 공작기계를 수입하는 것이 개발하는 것보다 싸게 먹혀서라고 한다.

어쨌든 이 기술을 2010년에 와서야 '과학 기술의 혁명'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북한이 시대에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CNC 절삭가공기계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생산된 제품의 품질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CNC 양산 가공품보다 더 열악할 것이라 예상된다.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때문인지 2010~2011년에는 대한민국으로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많이 줄었다. 탈출이 힘드니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는 줄었지만, 중국으로 탈북하는 숫자는 여전한 듯. 하지만 중국에 탈북자 체포를 강력하게 요청했고, 중국 경찰이 빡세게 잡아 들이고 있어서, 섣불리 대한민국으로 가려는 시도 자체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가 중국에 계속 정체되고 있는 상황. 이런 중국 경찰의 행태가 계속되자 미 의회기구에서 공개적으로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 의회기구 "중국, 올들어 탈북자 단속 강화" 비판

탈북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잘 살았다는 말을 하여 계층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주장도 많은데, 탈북자 문서에서도 보면 주관적 경제 계층은 바뀌지 않았다. 너무 넘어가기 힘들면 돈은 한국 가족이 댄다. 음지에서의 사경제가 발달하여 주민들은 이제 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상류층이 탈북하는 경향이 느는 것은 맞다. 정치활동 위주의 탈북자는 김정일 집권 말기 이후부터 탈북한 사람들이 많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치계에 만연한 숙청 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함과, 더불어 김정일 집권기부터 들어온 시장화에 따른 외부 문물의 여파로 이제는 자유 국가들의 문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다방면으로 북한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내부 분위기가 주민 사이에서 점차 팽배해지면서, 이들이 탈북에 앞장서게 됨으로서 탈북자들의 양상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도 탈북했다는 건,[85] 과거처럼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사회적 이유로 탈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는 잘 먹고 잘 살아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 인간의 근본 욕구가 채워지게 될 경우, 다음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눈을 옮긴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 수차례 나타난다. 당장 대한민국만 해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거쳐 먹고 사는 문제가 해소되는 순간부터,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처럼 탈북하는 계층이 부유해진다는 것은 북한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반 자체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탈북자에 대한 잔혹한 처벌 명령은, 그가 북한 내의 현 탈북자 상황의 의미와 특성을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래 3개 치적 시설들은 나름대로 시설이 고급화되어 있다. 문제는 관광객이 오기에는 교통이 아주 불편하며 무엇보다 이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데 전기 공급부족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굶주리는 인민들을 먹일 돈으로 사실상 평양 시민들과 간부, 돈주들만을 위한 시설을 짓고 이것을 '인민사랑'의 징표라고 삼는 것 자체가 해괴한 짓이다.

한편 선전 활동 중에서 특이한 점으로, 후계자로 공식 등장해서 집권한 이후 북한 정권에서 김정은의 생일(1월 8일)을 공식적으로 기념, 축하한 사례가 아직 한번도 없다. 1월 8일이 김정은의 생일임이 밝혀진 것도, 데니스 로드맨이 방북해서 농구 경기를 치룬 뒤 북한 매체에서 '원수님(김정은)의 생일을 기념하여 1월 8일 농구 경기를 열었다'라고 공개한 뒤에야 알려진 것이다. 김일성김정일의 생일은 각각 '태양절'(4월 15일)과 '광명성절'(2월 16일)로 부르며[86]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고 거창한 축하 행사를 치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북한 측에서 1월 8일을 사실상 국가명절로 지정해 쉬게 하거나 이 날 북한 주민들에게 '선물' 명목의 배급을 주고 있기에 1월 8일이 김정은의 생일임을 북한 주민도 눈치채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김정은의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었다 보니 선대와 같은 반열에 올라서 기념하기엔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기피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그의 생일이 알려지면 지도자의 권위나 신비로움이 유지되는 것이 어려워질 테니 집권의 정당성, 지도자로서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생일을 공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보았다. 연합뉴스 기사 자유아시아방송 기사

4. 특징

4.1. 성격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 김정일은 아들인 김정은이 자신을 꼭 닮았다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이 문단에 서술된 내용 중에는 후지모토 겐지의 저서를 인용한 부분이 많다.

'여색(女色)'에 대해선 주장이 엇갈린다. 김정일처럼 똑같이 기쁨조와 같은 미녀들을 뽑아서 즐긴다는 주장도 있지만, 반대로 기존의 기쁨조를 해체하고 비서나 별장 관리 등의 업무를 모두 남자 직원에게 맡겼다는 분석도 있다. 2013년 말에 장성택이 처형되자 과거 김씨 일가를 직접 알고 지낸 사람인 후지모토 겐지는 이에 대해 다소 흥미로운 발언을 했는데, 김정은이 여러 여자와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이 때문에 기쁨조를 창시하는 등의 문란한 가치관을 지닌 장성택을 제거해버렸다고 증언했고 여자관계가 대단히 문란했던 아버지 김정일마저도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갖는 것을 증오했다고 더 확실히 표현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장성택 처형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보긴 힘들겠지만 후지모토의 증언이 맞다면 자기 아버지 수준으로 여성편력이 난잡한 성향까지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의 난잡한 여성편력 아래에서 자란 김정은이 아버지처럼 안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반면 와세다대학의 시게무라 도시미쓰 교수는 김정일 사후 3년 뒤 김정은이 아버지 시대의 기쁨조를 은퇴시키고 자신만의 기쁨조를 완성했다고 분석했다.

일단 아내인 리설주와는 공식 석상에 함께 등장하는 모습이 매우 자주 나와서 단순히 권력자의 아내가 아니라 마치 공식적인 '퍼스트 레이디'의 위치를 마련해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김정일의 아내들이 단순히 가정 내에서 내조만 하거나 비서 수준으로 김정일을 보좌한 정도에 머문 것과는 대조적이다.

태영호 전(前) 공사의 저서인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2018년 4월 정상회담 뒤 언론과 온라인에서 김정은에 대한 찬양 일색의 인물평이 나왔지만 김정은은 고모부를 대공 기관총으로 처형한 것과 형인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것을 대중들이 잊고 있다고 말하며 여러 일화들을 서술해 놓았다. 책에 의하면 7월 27일은 휴전협정일이지만 북한에서는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는데, 2013년 7월 재개관을 앞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쟁기념관)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부리나케 달려와 아직도 불바다인 지하에 구둣발로 들어가더니, 수백 명이 진화와 정리 작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김정은은 “내가 그렇게 불조심하라고 했는데 주의 안 하고 무엇을 했느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쌍욕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p.518)

2015년 5월에는 김정은이 자라양식공장을 ‘현지지도’했었는데, 공장에 있던 새끼 자라가 거의 죽어 있었다. 김정은이 이유를 묻자 공장 지배인은 전기와 사료 부족을 이유로 들었으나 김정은은 “전기, 사료, 설비 문제 때문에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넋두리”라고 심하게 질책했다. 참고로 북한에서 이런 기술, 물질적 조건이 안되어 상식적으로 당연히 생산이 안된다는 것을 기술신비주의라고 매도하면서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돌파하라고 주접을 떨고 있다.

한편 2016년 대통령 당선 이전 "김정은과 대화할 수도 있다"라는 트럼프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APTN 특파원의 질문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양형섭 부위원장은 “우리는 대화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대화는 전쟁 때도 한다. 대화 못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외무성이 사전에 작성해 준 원고대로 ‘우리는 언제나 대화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었다. 그러자 김정은은 야밤에 외무성 김계관 1부상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질책했다. “야, 그 늙은이(양형섭)가 어떻게 내 승인도 없이 트럼프와 대화에 임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를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누가 줬는가. 나는 조선의 지도자이고 트럼프는 대통령도 안 된 후보인데 같은 급이 아니다. 외무성이 그 늙은이한테 그리 말하라고 써줬는가.” 양형섭은 1925년 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일성의 사촌 매부다. 그런 인물을 김정은은 ‘늙은이’라고 칭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2014년 7월 시진핑이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자 군 장성들을 모아 놓고 시진핑 개새끼라고 욕을 했으며, 중국과의 교류를 중단하고 러시아, 동남아로 교류를 하라고 지시했다.# 주성하 기자는 김정은이 인테리어 집착증에 걸렸다는 정신과 소견을 냈다. 1년 반동안 회의실 인테리어를 10번이나 바꾸는 등 회의실 치장에 돈을 퍼붓고 있다는 게 북한이 공개한 사진자료만으로도 드러난다. 하지만 단순 집착증이 원인이라기보다는 도청에 대한 히스테리적인 두려움 때문에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술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시진핑 및 중국 정부와는 필요상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매우 불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100년의 적이면 중국은 1000년의 적이다'라고 습관처럼 말한다는 증언이 있으며, 마이크 폼페이오 트럼프 정부 당시 국무장관은 회고록에서 2018년 3월 김정은이 '중국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주한미군은 필요하다. 중국인들은 한반도를 노리는 거짓말쟁이들이다'#라며 탁자를 내리치며 중국의 '주한미군 철수가 김정은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을 비웃었다고 회고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적군을 대하는 태도치고는 이례적이지만, 김정은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교상 이런 발언을 하면서도 2021년 당 규약에는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으로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 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라는 조항이 추가되고#, 심지어 2018년 9월에도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보도를 북한 매체가 전하는 등 이런 행태와는 결이 다른 모습도 보인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 때만 해도 스스로 비핵화에 대해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전하는 등 변덕이 아주 심한 성격이거나,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속내와 다른 말도 주저없이 할 수 있는 성향으로 보인다.[88] 다만 할아버지의 주북 중국군 철수 등에서 드러나는 태도 등을 미루어보면 적어도 베트남 때문에 독재를 더이상 할 수 없었던 캄보디아의 폴 포트처럼 외세에 의해 권력을 내려놓는 사태를 피하려는 마음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8월 27일 보인 행적을 보면 굉장히 이기적인 성격의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해군절 하루 전을 맞아 장녀 김주애와 함께 해군 관계자들과 배구 경기를 관람했을 때 김정은과 김주애의 의자만 바람이 통할 수 있는 의자였다는 것이 포착되었고, 이들 부녀의 등 뒤에 최소 서너개의 선풍기가 놓여 있는 것과 달리 다른 장성들의 뒤에는 선풍기가 전혀 놓여 있지 않았다고 한다. 김정은이 '위민헌신' '인민사랑'은 커녕 측근에 대한 배려심조차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인 인물이란 것이 잘 드러난 셈. # [89] 2014년 5월 20일 리설주와 함께 군인 전문병원인 대성산종합병원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환자들을 1명[90] 빼고 다 서있게 하고 자신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2. 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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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사진. 이때까진 그래도 통통한 정도였다면 이 이후에는 살이 매우 쪄서 이젠 이 사진이 리즈 시절이 되어 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동네 형 느낌까지 난다는 우스겟소리도 있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말에 따르면, 김정은의 인상을 "어렸을 때보다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면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많이 먹어 관록을 붙이라", "위에 있는(높은) 사람이 가늘어선(말라선)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며, 지도자의 풍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배불리 먹이고 재워 살을 찌운 듯하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살을 많이 찌워서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아직 30대 정도로 나이가 젊어서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이 바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아버지 김정일, 그리고 그의 형 김정남이 생전에 그랬듯이, 중장년이 되고 나서 고생할 가능성도 꽤 된다.

파일:attachment/김정은/fuckinghog.jpg

이 문서의 내용만 보면 그냥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당장 심장마비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하지만 김씨 백두혈통 집안만 전문으로 연구해온 전문병원[91]이 2개나 있는데다가 진짜로 좀 이상하다 싶으면 참매 1호[92]를 타고 우방국이나 스위스 등 중립국으로 날아가 그 나라 유명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기 때문에, 그리 쉽게 죽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 지도자라는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북한 중앙텔레비전에 리춘히 같은 거물급 아나운서가[93] 검은 상복 입고 나와서 펑펑 울며 발표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으면 안 된다. 게다가 김정일도 저 나이 때 저 정도 병은 달고 살다가 죽었다. 김정은보다 더 심했는데, 김정일은 19살 때부터 비만에 지방간을 달고 있었다. 지방간같은 경우 김정은도 심각할 거라는 추정이 북한 전문가들로부터 돌고 있는데 고지혈증을 앓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충분히 그럴 거라는 추측이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애주가에 골초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아버지인 김정일과 비교해 볼 때 더 심한 수준이며 이와 같은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인한 요인들이 겹쳐서 김정은의 간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2021년 하반기 들어서는 늘기만 하던 살이 급격하게 빠지고 있는 것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대역설이나, 말년의 김정일이 갑자기 수척해진 것처럼 김정은에게도 건강이상이 온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국정원에선 건강이상 동향이 없다고 발표하는 중이고, 아직 10년 전 체격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정도라서 '수척'해졌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인민을 위해 과로하느라 살이 빠지고 있다"고 선전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추측도 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원래 몸무게로 복구된 것이 드러나 건강 이상이 아니라 다이어트와 요요현상이라는 것이 중론이 되었다.#
김정은이 이렇게 된 데에는 할아버지 김일성의 외모와 최대한 흡사하게 만들어 김일성과 같은 위엄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이미 생전의 김일성보다도 훨씬 심각한 초고도비만이 되어버렸다. 이젠 할아버지 따라하기라기보단 생활습관 자체가 잘못된 듯. 배다른 형제인 김정남은 제외한 김정은 삼남매 중에서 나머지 김정철김여정은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보면, 특히 김정은의 식탐 자제력이 떨어지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런 심각한 비만으로 인해, 30대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분비계, 내장 등 건강상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지팡이를 짚고 걷는 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2020년 4월에는 사망설, 식물인간설이 돌기도 했는데,# 결국 20여일 후 생존이 확인되어 일단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비만 때문에 수술에 실패해 사망했다'는 설이 거론이 될 정도로 김정은의 비만도는 심각한 상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무리 건강이 안 좋아도 어지간해선 30대부터 건강이상이 눈에 띄게 찾아오진 않는데, 그가 워낙에 심각한 비만이다보니 벌써부터 종합병원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4.3. 사치

자신의 아버지 김정일 만큼이나 사치를 즐기는 독재자로도 유명하다. 김정은의 비자금은 조선로동당 39호실이 관리하며 전시 도주를 위해 스위스 은행, 오스트리아, 중국, 러시아 등에 차명계좌들을 개설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해외은닉재산들은 한화로 3조~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의 재산은 북한 해외노동자들의 송금, 북한 해커들의 해킹, 불법 밀수, 마약 매매, 무기 수출 등을 통해 충당되며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통해 김정은에게 들어갈 검은 돈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북한 당국과 종북주의자들은 김정은이 '쪽잠에 줴기밥'[105][106]으로 인민들과 같이 동고동락한다고 거짓 주장하며 김정은이 사치를 부린다는 사실이 대북비난용선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하지만(예시)[107] 김정은과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냈던 후지모토 겐지, 데니스 로드맨도 일관되게 김정은의 사치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미 인공위성과 국제 수사를 통해 김정은이 숨기려 했던 사치행각들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예산 분배 우선순위는 김정은 전용 사치예산 → 백두혈통 우상화호위사령부핵개발조선인민군체제 유지용 감시 체제내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예산 분배 구조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고 있다. 개선된 부분이라면 주민들이 당국의 허용 범위에서 벗어나 알아서 시장경제를 하여 2010년대 후반쯤 가면 끼니를 잇지 못하면 북한에서도 가난하게 여겨지는 정도 뿐인데 오히려 이것을 탄압하여 2022년에는 돈주(자본가)도 힘들어진다는 말도 나온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의 '애민정신'을 선전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선전'일 뿐 자신의 사치와 체제 유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 북한 주민들이 이를 정확히 아는지는 분명하지 않다.[108] 심지어 체제의 근본적인 주장에 가장 반항적인 장마당 세대조차 어딘가 나라가 시키는 대로 하면 굶어죽는 것을 알기에 이에 반항할 뿐, '충성심'은 물론 '반항심'조차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체제 유지에 사활을 걸어 극심한 단속으로 탈북을 절반 이상 줄이거나, 경루동[109][110] 2층집 같이 체제를 유지하는 계층을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혜택을 베풀어 일단 이들은 이런 정보가 돌아다니지 않도록 단속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 기간 동안 탈북민 중 연락조차 더 힘들어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해외로 파견을 나가 유튜브를 접하면 100 중 99는 잘못을 온전히 깨닫게 된다고 한다. # 대북 방송에도 이런 내용이 종종 방송되는 경우가 많지만 외부 라디오 청취 자체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이전보다 더 심하게 중범죄로 하고 있다.

한편 2016년 북한 관광을 갔다가 의문의 사유로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김정은의 은닉재산을 찾아내고 있다. 웜비어 집안은 유대교를 믿는데, 전 세계 유대인들의 네트워크는 매우 광범위하게 이들이 이런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언론에 따르면, 웜비어의 부모는 유대교 네트워크를 통해 현직 주지사와도 바로 직통전화 연결이 가능할 정도로 인맥이 넓다고 한다.

참고 자료 # # # # # # #

4.4. 헤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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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헤어스타일 본받아야'…북, 교사들에 강조

김정은 특유의 기괴한 헤어스타일은 북한 내에서 '패기머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헤어스타일은 김정은만의 전유물은 아닌데, 주민들 특히 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는 정보가 있다.RFA 실제로 2014년 황병서 방남 당시 황병서를 수행한 경호원들이 모두 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채널A(동영상)

데일리NK는 또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두발규제 때문에 북한 남학생들은 김정은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도록 당국에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지 않으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린다'고 보도했다.데일리NK

이 제한은 학생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교원(교사)에 대한 헤어스타일 통제는 북한 남학생과 맞먹는다. 북한의 '공식 이발소'는 무조건 이 헤어스타일로 만들어버린다. 개인 집 등에서 운영하는 이발소의 사용은 불법이고 몇배나 비싸지만 그런 사설 이발소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적발시에는 빡빡 밀게 된다. 조선일보

일본에서는 머리통에 검은색 전화 수화기를 얹어놓은 듯 하다 하여 검은 전화기라는 뜻으로 쿠로뎅와라고 부른다. 옆머리를 두피가 다 드러나 보이도록 너무 짧게 민 것을 제외하면 투블럭을 베이스로 가르마 혹은 포마드로 붙여 넘긴 스타일로, 사실 스타일 자체는 지금도 복고풍스럽게 해볼 만한 그럭저럭 멋쟁이 스타일인데, 저 옆머리와 요즘은 유행이 지난 지나친 후까시,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 살이 쪄서 안 어울리는 게 문제다.

4.5. 김일성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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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할아버지 김일성과 굉장히 닮았다. 이 때문에 김일성을 닮게 성형수술을 했다는 성형설도 나오나, 북한은 성형설을 극력 부인하고 있다. 성형설이 사실이라 쳐도 차라리 미남으로 성형을 하지 왜 지금의 용모로 하겠는가 싶겠지만, 북한 민중에게 김정은을 이미 신격화된 예전 지도자의 핏줄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된다. 지도자가 스타급 이상으로 신격화되어 김일성을 닮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큰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처럼 김정은 역시 신격화된 존재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충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이 살을 안 빼는 건가

역사상 한 왕조의 후계자가 민중에게 존경을 받던 부왕의 복장이나 외모를 흉내내어 민중에게 어필하는 일은 흔하고 특이한 일도 아니며, 몇 세기 이전 왕정 국가에서도 종종 있었다. 21세기인 지금 역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빛나는 전임자의 이미지를 따라 하려는 후임자 등으로 형태가 변형되어 계승되고 있다. 그렇게 없는 일도 아니라는 것. 물론 용모까지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부족 단위 국가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드문 일임에 틀림없지만, 대표적으로 어머니 육영수의 스타일을 벤치마킹하는 박근혜의 케이스를 보면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이때문에 김일성처럼 보이도록 성형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며, 확실한 정보는 없다. 물론 굳이 성형을 하지 않아도 피를 물려받은 손자이기에 외모가 비슷한 것은 당연한데, 마침 체구도 비슷하겠다 스타일링만 살짝 해 준다면 정말 판박이처럼 보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 굳이 성형까지 할 필요조차도 없기에, 성형설을 부정하는 쪽도 일리는 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김일성의 행보를 비교적 유사하게 따라가고 있고, 엘리트 계층의 탈북민이자 그 중에서도 꽤나 대북 강경파에 가까운 김길선[111] 기자는 김정은이 수령이 된 후에 이룬 것은 없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김정일이 걸었던 행보를 상당 부분 부정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태영호는 이에 대해 고난의 행군 등 20세기 말~21세기 초 북한이 겪어온 경제적 고난을 모두 김정일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다만 집권 14년차를 맞는 2024년도에 와서는 김일성의 행보를 따라하는것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을 더욱 우상시하기 시작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김일성의 생일을 칭하던 태양절과 김정일의 생일인 광명성절을 자칭 '민족 최대의 명절'에서 일반 명절로 격하시켰고 해당 호칭을 금지해 초창기 이름인 4.15명절과 2월절로 환원했으며 김일성의 칭호중 하나였던 '주체조선의 태양'이라는 칭호를 떼와 자신을 칭하는 칭호로 삼기 시작했다.

4.6. 무명의 후계자

그동안 세계의 관심 밖에서 있었던 인물인 만큼 초치에는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이 김정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게 알려진 당시에도 "김정을 잘못 쓴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김정은, 김정운, 김정훈' 등이 거론되어 꽤 혼란스러웠다고. 기사 1 기사 2[112]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측한 후지모토 겐지도 '김정운'으로 소개하였다. 일본어로는 '은'이든 '운'이든 'ウン'으로 옮기기 때문에 모종의 착각이 있었던 듯. 실제로 그의 저서에서 그가 직접 쓴 한글을 보면, 'ㅜ'와 'ㅡ'가 자주 뒤바뀌어 있다. 북한 구어체에서는 이 두 발음이 대한민국에 비해 구별이 힘든 것도 이유 중 하나.[113] 일본에서 2003년 발간된 만화 <김정일 입문> 서두의 계보를 보면 생뚱맞게도 金正雄(김정웅)으로 표기했고 'ウン' 발음으로 되어 있다. 일본어 화자의 청취 감각으로는 한국어의 '은, 응, 운, 웅'이 모두 'ウン'과 같게 들리기 때문에, 북한의 공식 한자 표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되는 대로 아무 한자나 기입한 것으로 보인다. 여동생 김여정은 그 당시 아예 한자 표기도 없던 걸로 보아, 북한 매체는 이름이나 한자 표기는 거의 안 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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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한자 이름까지 金正으로 보도하자[114] 중국, 일본 언론에서도 종래의 '은'에 해당하는 殷 대신 恩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115]

이렇게 이름이 김정'은'임이 확실시되자 그 때문에 김정은이 슬슬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에 이름이 '김정운'이기를 바랐다는 배우 김정은은 자신과 이름이 완전히 같은 것을 알고 좌절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래서 농담조로 "자신이 먼저 태어났고 내가 나이가 위니까 너가 이름을 바꿔라!" 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부 일본환빠 비스무리한 사람들은 "요코다 메구미가 김정은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요코다 메구미가 천황의 후손이라 일본의 고귀한 피를 이어받고 싶은 김정일이 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하여 김정은을 낳았고, 김정은은 그로 인해 한일혼혈이며 일본에 호의적이라는 것.[116] 불쏘시개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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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름 때문에 스위스의 한 언론매체에서 슈퍼주니어 예성을 김정은으로 만드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117] 당시 김정은의 이름을 김정운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해당 매체들은 예성의 본명인 김종운과 김정운을 혼동했다. 아마도 발음상 외국인들은 헷갈렸을 수도 있으며 김정은과 예성이 동갑이었던 만큼 더더욱 헷갈렸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예성은 당시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굳게 지키기도 했다. 본인도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정은의 이름이 김정은이라는 것이 완벽히 알려진 후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남한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는데, 남한의 걸그룹 이달의 소녀의 멤버 김립은 본명이 김정은이라는 이유로 학창 시절에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5. 전용 교통수단

6. 평가

전반적인 평가는 당연하겠지만 부정적이다.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아버지 이상의 대남 도발 관여, 고모부와 이복형을 처형한 것이 특히 문제가 되었다. 다만 2018년경 남북정상회담 때는 심지어 북한 내부에서도 개혁개방을 할 것 같아서 지지가 높았다는 증언이 있다. 그나마 이런 평가도 김정일보다 낫지 않겠냐는 것이지,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집권 내내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는 했다.

6.1. 긍정론

북한 정권을 유지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먼저 1년 만에 자신의 지도력을 해칠 만한 노련한 군부실세인 리영호를 숙청하며 군부를 휘어잡고, 이를 통해 당과 장악하는 면을 봐서는 아예 권력장악에 숙맥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성택을 처형한 뒤, 대규모 체제이탈 망명사태가 벌어지고, 숙청이 벌어지리라는 예상이나 보도가 이어졌고 4월의 당직·내각개편에서도 장성택 잔당 숙청 및 물갈이가 예상되었으나, 도리어 장성택의 심복이라며 숙청설이 나돌았던 여러 인물들(예를 들어 강석주)이 유임되었고 내각도 급격한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자신에게 잘 따르는 사람은 그대로 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이는 방법으로 권력을 효과적으로 획득했다.

민심의 불만도 교묘히 컨트롤하는 노회한 모습도 있는데, 2013년에는 2012년에 대규모 수해로 식량난이 극히 악화해 특히 봄철의 보릿고개에 인민의 불만이 폭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다. 그러나 2013년 김정은은 신성불가침이었던 군량미를 대규모로 풀어서 인민의 불만을 어느 정도 넘겼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초의 박봉주8.15 개혁 조치장성택의 가신이었던 박봉주가 주군인 장성택 처형에도 살아남았게 되었고, 5.30 경제 개혁 조치까지 이어졌을 만큼의 결과를 거두었다. 이를 통해 식량 생산이 크게 늘었으며, 중국에 헐값으로 자원을 넘긴 뒤에 받아온 외화로 비료를 대규모로 수입하는 등, 김정일처럼 을 깎는 다락밭 개간 같은 주체농법 없이 합리적으로 식량 증산에도 힘쓰는 등의 모습이다. 일단 미국의 평가로도 "식량난은 10년 후에는 거의 극복할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미 농무부 "북한 식량 사정 점차 개선"

북한이 신정 일치 국가인 만큼 내부적으로는 김씨 일가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없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봤으니 세상 물정에도 그리 어둡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식량 증산은 아비보다는 제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을 쓰고 있는 듯하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3년 안에 쫓겨나리라고 했지만 되려 죽을 때까지 권좌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김정은도 정권을 처음 10년 정도만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선조들처럼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 치하에서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신흥 부유 세력인 돈주들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118]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었던 15년을 제외한 2012~2016년까지 연평균 1.2%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2016년에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3.9%가 성장했다. [119]이는 김정은이 대외적으로는 대중무역을 확대하고 대내적으로는 시장 경제를 일정 부분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인 2012년 6월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방침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고히 고수하면서 국가의 통일적 지도 밑에 모든 기업체들이 경영 활동을 독자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가자"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생산수단은 사회가 소유하고 중앙집권적인 경제 계획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인이나 기업의 자율성을 조금 늘려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농업 분야에서 초과생산분은 개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업 분야에도 개인의 투자를 허용하였다. 농업 부문에서는 협동농장의 생산단위 규모를 기존 10명~25명에서 세분하여 3~5명으로 축소했고 해당 생산단위가 일정 규모의 경지를 담당하도록 하는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했다. 또 목표량을 초과한 생산물은 전량 농민들이 가져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하는 등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공업 부문에서는 공장·기업소에 경영상의 자율권을 부여했고 개인의 투자를 통한 경영 참여를 허용했다. 전문가들은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생산, 제품 판매(처분) 및 수익 처분에 이르기까지 기업 활동의 전 과정에서 기업의 권한을 확대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출처 이 모든 과정에서 신흥 부유층인 돈주들이 등장하여 달러를 축적하였으며 축적한 달러가 시장에 재투자되고, 그럼으로써 장마당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 돈주들은 유통업이나 건설업, 심지어는 광산 채굴업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한 비공식 사경제가 북한주민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올리고 있으며 김정은 정권의 명줄을 유지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외에도 13개 경제특구를 개설하여 외자 유치를 노리고, 일부 경공업 소비재에 한해서 품질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적어도 경제 면에서는 김정은은 예전보다는 나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통일 연구원 소속 박영자 박사에 의하면 김정은은 김일성만은 못해도 적어도 이런 경제 성장으로 인해, 김정일보다는 지지를 더 많이 받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에게 더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김정은 대에 부를 축적한 신흥 돈주들도 김정은과 유착관계를 맺으면서 지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김정은의 통치력에 대한 부정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김정은이 "과거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거의 없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볼 수는 없다. 김정일이 북한 경제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장마당을 탄압한 것과는 달리, 김정은은 장마당을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이 소양있고 성숙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로켓맨이라고 했던 평가와 상반되게 2018년 북미 정상 회담이후 "김정은은 매우 훌륭하고 똑똑한 협상가"라고 극찬했다. 스포츠 경향 2018년 10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서 기존의 입장을 선뜻 뒤집지는 않을지언정 판까지 깨려고 무모한 도발을 감행하는건 자제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파 중 하나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협상 과정에서 방해가 된다는 불만을 내세우면서 정작 그 당사자를 직접 평양으로 보내라는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을 정도. 특히 그렇게 만나서 "CIA가 나를 암살하려 시도해온 것을 사과하라."는 말을 한데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가 "(우리는) 지금도 당신을 암살하려 하고 있다."는 독설로 되받아치자 도리어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회담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위에 나온 성격 부분 정보에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듯이 사생활과 개인사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여 권력투쟁이나 여성문제 등 각종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개인사에 대한 정보도 훨씬 적고[120][121] 여성 편력으로 인한 대내외적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어 있지 않으며[122] 선대의 수령들과는 달리 역대 한국 대통령들처럼 당당히 정식 영부인을 공식 석상에 대동하며 정치적, 사회적, 대외적으로 더욱 좋은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김일성은 김정숙이 너무 빨리 사망하고[123] 재혼한 김성애를 공식적으로 대동하기는 했으나 김성애는 어디까지나 김일성의 총애를 받아 대외적 이미지 메이킹 용도로 나섰을 뿐이며 아내로써도 어머니로써도 형편 없어서 김일성의 정식 부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에 별 지적 역량도 능력도 없는 주제에[124] 야심과 권력욕과 오만함이 심해 김일성과 김평일만 믿고 함부로 나대다가 결국 의붓아들인 김정일과 졸개들에게 역관광을 당해 김일성의 대외적, 공식적 정식 부인이었음에도 결국 자신과 자신이 가장 든든하게 여겼던 김평일을 비롯한 집안 자체가 곁가지로 분류되어 갈려나가는 비극을 자초했다. 김정일은 애초에 부인을 공식적으로 드러낼만큼 당당한 적 자체가 없었고 공식 부인만 4~5명이었다. 여성편력 역시 김정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가 그 끔찍한 '기쁨조'일 정도로 난잡하고 지저분함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답게 여성 편력 논란 없이 늘 공식 석상에서 아무도 정통성과 도덕성을 부정할 수 없는 배우자로 영부인에 해당하는 리설주를 대동하여[125] 한국이나 여러 선진국들의 대통령, 총리 등 문명국가들의 국가수반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좋은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젊은 편임에도 그런 부분에서 선대 지도자들보다 깔끔하고 자유롭다는 뜻이다. 물론 김정은 역시 자세한 사생활은 알 수 없으니 아버지와 같은 행각을 하지 않았다고는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타국의 국가 최고지도자들이나 고위정치인들도 여성 편력 문제로 인한 스캔들로 구설수와 이미지 실추가 많으며 심지어 그로 인해 사임이나 탄핵 위기 등을 맞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비단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김정은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고 볼 여지가 많다.

선대 지도자인 김정일에 비해 건축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고평가가 있다. 선대 지도자이자 아버지인 김정일도 건축 사업은 많이 벌였으나 금수산태양궁전처럼 자신과 김일성을 우상화, 신격화하는 것을 비롯한 선전선동과 그에 따른 후계세습과 권력 강화의 정당화 등을 위해 비실용적인 건설 사업을 벌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민들의 등골이나 빼먹고 국부나 소진하는 폐해를 낳았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평양의 유명 건축물들이 김일성경기장, 주체사상탑, 평양 개선문 등이다.[126]

김정은은 집권 이후 려명거리신도시미래과학자거리를 시작으로 평양의 신시가지를 조성하고, 평양국제비행장평양종합병원, 문수물놀이장을 위시한 그 외 관광 시설들을 현대의 미적 감각에 그나마 가깝게 재정비하고 있다. 특히 옥류아동병원과 리모델링된 만경대학생소년궁전&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처럼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들의 내부는 남한 입장에서도 수준급으로 디자인되었다. 참고로 김정은은 집권 후 유난히 '아버지 같은 지도자'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지도자'를 내세우며 어린이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전술한 건물들을 건설한 것도 이 일환으로 보인다. 없는 살림에 대체 건축 자재를 개발하게 해서 핵심계층은 물론 동요계층에 해당하는 지방 인민들에게까지 살림집을 선물하고 있다. 특히 삼지연시와 같이 중요도가 높은 일부 도시는 인프라 재구축 수준으로 시가지를 환골탈태시켜놓았다. 이를 통해 본인의 방식으로 관광객 유치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 시설과 문수물놀이장, 위성과학자주택지구미래과학자거리 외벽처럼 파스텔톤을 사용한 디자인이 눈에 띄는데,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당시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 측이 선전하는 것처럼 신시가지와 건축물들의 안전성이 보장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며 병원의 경우 건물은 갖춰놓았는데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첨단 의료장비 부족으로 3차 의료기관조차 대부분 CT·MRI 진단장비가 없고 보유하고 있는 의료장비들은 전력부족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출처

6.1.1. 다른 의견 : 김정은은 결코 절대권력자가 아니다?

전 평양 주재 독일 대사[127]였던 토마스 셰퍼(Thomas Schäfer)는 2021년에 펴낸 <김정일부터 김정은까지, 강경파는 어떻게 세력을 키웠나>에서 김정은에 대해서 특이한 해석을 내놓았다. 쉽게 요약하자면 김정은은 북한에서 결코 절대적인 독재자가 아니며, 그 역시 북한이라는 시스템의 부품일 뿐이고,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제왕적 독재자'가 철권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128]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개개인이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셰퍼는 김정은이 김정일의 뒤를 이어 권력을 세습하게 된 것은 그가 백두혈통이라서 자동으로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2008년 뇌졸중 이후 체력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해진 김정일이 북한의 군부 엘리트층과 협상한 결과로 가능했다고 지적했는데, 김정은이 북한에서 절대적인 독재자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토마스 셰퍼는 이렇게 설명한다.
 
토머스 셰퍼에 따르면 2008년 여름 김정일이 쓰러지고 나서 2016년 초까지는 북한은 그들이 가야 할 방향을 놓고 수뇌부 안에서 서로 대립을 벌이던 일종의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셰퍼에 따르면 심지어 김정일마저도 북한에서 그렇게 대단한 독재자는 아니었으며 이미 김정은 정권 말기인 그는 또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인 2008년 여름부터 김정일을 중심으로 몰렸던 권력층이 와해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강경파가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여 "금강산 피격 사건에 대해 북한이 남한에 사과하지 않은 것도 권력이 약화된 김정일을 더 이상 배려하지 않았던[129] 강경파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셰퍼는 2016년 VOA와의 인터뷰에서도 김정은을 두고 "적어도 2016년까지는 김정은이 아버지보다 훨씬 약한 지도자였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 2011년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후 북한의 수뇌부 안에서는 중국식 경제개혁을 지향하고 국제사회와의 대화에 전향적인 온건파[130]와 핵 · 미사일 개발을 최우선시하고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강경파의 권력투쟁이 전개되었고, 이 온건파와 강경파의 권력 투쟁이 오가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집권하고 얼마 안 된 김정은은 그 과정을 통제하기는 커녕 관여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131]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하고 얼마 안 되어 셰퍼 본인이 만난 북한의 한 인사는 김정은을 가리켜 말하면서 김정은에 대한 존댓말도 쓰지 않았다고 셰퍼는 증언하였다. #
 
김정은은 2012년 4월 연설에서 "인민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며 경제개혁에 힘을 쏟겠다는 생각을 드러냈지만 이에 대해서도 강경파인 북한의 군부는 반발했으며, 2013년에 경제개혁과 핵 개발을 동시 추진하는 '병진노선'이 발표됐지만, 이것도 실제로는 인민의 생활을 희생하고 군사를 우선하는 노선으로의 회귀였다는 것이 셰퍼의 해석이다. [132] 섀퍼 전 대사는 "군부가 조선로동당의 방침에 반해 행동해도 김정은은 사후적으로 그것을 승인할 뿐이었다"며 "2015년 말까지 계속된 김정은 정권의 일관성 없는 정책과 정치적 통제의 결여는 적어도 이 기간에 북한의 프로파간다가 떠드는 것과 달리 김정은이 의사결정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하였다.

온건파 대표격 인물이었던 장성택의 처형도 셰퍼는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김정은이 주도한 것이라기보다, 북한 강경파가 "백두혈통 관련 인물이라도 언제든지 숙청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정적(온건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장성택 처형을 김정은에게 '압박'해서 기어이 관철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133] 그리고 장성택의 숙청은 김정은의 권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라, 북한 수뇌부의 강경파가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마저도 압박해 그들의 '정적'을 제거할 수 있을 만큼 득세했으며 김정은은 이러한 북한 수뇌부 강경파와의 권력 싸움에서 '압도당했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 2016년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중도파 인사로써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가 사망하고, 2016년 5월 북한 제7차 당대회 때 군과 선전부 등에서 김양건이 맡았던 통전부장에 대남 무력도발 총책임기관인 정찰총국의 총국장이자 강경파의 대표주자인 김영철 대장이 후임으로 임명된다. 이를 셰퍼는 "이제 군이 남측을 상대할 것이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도 군이 책임질 것이라는 명백한 신호"였다고 해석하였다. #

아울러 섀퍼 전 대사는 "2015년 말 이후 권력투쟁은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됐고, 김정은도 집권 초보다는 권력을 갖게 됐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은 (세력이 강해진) 강경파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진단하였으며, "중국 및 한국과 북한의 경제 격차가 한층 벌어지고 이런 외부 정보가 북한 내 유입돼 주민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다시 권력투쟁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 물론 온건파가 부활하더라도 공격적인 대외 정책이 바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섀퍼의 견해이다. #

6.2. 부정론

김길선: 북한은 내가 있을 때부터 고난의 행군 했어요. 지금은 악바리들만 살아남은거에요. 그래서 나름 굴러가요. 저들 식대로.. 김정은과 관계없이.. 성남 군은 기대했어요?
허성남: 전 기대 같은 건 하지도 않았어요. 애비가 못했는데 아들이 잘하겠습니까?
김길선: 진짜 애비가 못했는데 아들이 잘 할수가 있나요?
허성남: 다 말아먹었는데.. 뭘 해먹습니까? 다 말아먹었는데..
김길선: 다 말아먹었어요. 김정일이가 다 말아먹었기 때문에 김정은이가 뭘 하려고 해도 못해요.
- 유튜브 채널 <김길선의 평양만사> 中
"저희 삶은 20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큰 배신감을 느낍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정부에 등을 돌릴 것입니다."
"자식들을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이 희망 없는 지옥을 평생 살아야..."
2023년 6월 영국 BBC가 취재한 북한 취재 협조자의 발언 중. # 인터뷰의 영상 편집본의 제목은 '이곳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립니다'이다.
지는 노래가 전부 서정적입니더. 근데 뚱뚱한 저거는, 저거 고모부고사포로 쏴 직이고, 저거 이복형을 약으로 직이고, 당 회의 할 때 꿈뻑꿈뻑 존다고 직이뿌고. 그런 뚱뚱한 사람 앞에서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나훈아의 ‘사랑’), 이기 나옵니꺼? 으이?
나훈아, 2022년 6월 10일, 데뷔 55주년 기념 전국 투어에서 2018년 평양 공연 거절 이유를 밝히며. 그는 1981년 '대동강 편지'라는 곡을 부르고, 1985년 남북 예술단 교류를 마치고 '평양 아줌마'라는 곡을 지을 정도로 북한 동포에 대해서는 여러 유명 가수 이상으로 호의적인 인물이었다. 김일성보다 김정은이 훨씬 잔학하다고 판단하는 주장[134]으로, 김정은의 비인간적인 숙청은 그를 비판하는 가장 주된 근거였다.
제발 김정은을 농담으로 치부하지 말아달라. 그는 수백만 명의 사람을 죽이고 있다. 그들의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김정은 위원장은 범죄자다.
북한이탈주민이자 북한 인권 운동가인 박연미눈물의 호소.
일각에서는 현존하는 세계 최악의 독재자로 # 거론되기도 하다.[135] 권력에 취하여 국정운영을 보통 국가처럼 못하고 이성을 상실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으로 공개된 김정은의 사상을 보면 서울말 하나 썼다고, 단지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면 노동 교화소라는 열악한 감옥에 6년 이상 감옥에 보내어 굉장히 잔인하고, 이런 생각도 꿈도 꾸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공개처형도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뜻에 도전하는 모든 세력은 다 제거·박멸해야 한다는 매우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일단 언어 사용을 규제한 사례는 인류 역사에 좀 있어도 그걸로 누구든지 사형까지 시키는 사례는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136] 일단 일반인부터 공개처형을 관람해야 하는 등의 굉장히 하등한 존재로 보고 있으며, 아래 발언에서 보듯 전세계의 청년 자체가 타락했다고 여긴다. 정신질환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137][138]를 앓는다는 분석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

부하들과 국민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처형하고, 21세기 들어서도 개방을 막으면서 철저하게 국민의 알 권리를 봉쇄하는 중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챙기긴 한다고 보기에는 GDP의 23.5%라는 양을 국방비라는 명목으로 핵 위협에 사용하고 있으며 노동신문은 물론 김정은의 언급에서는 후술하지만 경제건설보다 사회주의 생활양식 고수가 중요하다든가, 기술만능주의가 아니라 사상제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등 상식 밖의 주장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노동신문은 직접 2019년 3월에는 "전후 잿더미도 헤치고 고난의 행군도 해보았지만 현세기의 10년대에 우리(북한)가 겪은 난관은 사실상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엄혹한 시련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더니 2022년 7월에는 더욱 퇴보하여 “상반년 기간 우리가 건국 이래 일찍이 없었던 시련과 난관을 겪었다고 하지만 하반년에 들어선 지금 형편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하여 갈수록 자기들이 말하는 '시련'이 심해진다고 한다. #

기분에 따라 고위간부를 숙청하여 선대 지도자인 김정일만큼 인명경시 성향을 보이기도 하거니와[139] 사람 먹을 물도 없는데 자라 공장에서 자라를 키워내라 하는 등 얼토당토하지 않는 명령을 내리고, 명령만 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양 생각하는 것을 보면, 세상 물정에 밝은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건설 사업도 경루동 건설처럼 엘리트를 위한 건설, 당이 추진하는 사업이 아닌 돈주(자본가) 같은 민간인이 주도하는 건설을 빼고는 김정일 시대였던 2008년경부터 이어진#[140] 단순 페인트 색칠로 인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삼지연시 건설은 북한의 선전 성격의 방송에서조차 시멘트가 없어 진흙과 '감자가루찌꺼기'로 만든 벽돌로 건설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롱의 대상, 끔찍한 조건을 견디는 관계자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대상이 되었다. #

여기에 인민에 대한 실질적인 연결성을 가진 농장과 같은 농업 관련 시설로 주로 현지지도를 나갔던 김일성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인민의 실생활과는 전혀 관계 없는 관광지 또는 사치성 시설에 대한 현지시찰이 대부분이라는 점에도 차이가 난다. 남북정상회담, 경제 개혁 등을 통해 나름 대내외적 지지를 얻기도 했으나 이를 다시 뒤엎기도 하고[141], 뚜렷한 이유없이 금강산 관광시설을 두고 욕하거나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며 핵개발을 하여 외부적 신임을 잃기도 한다. 선대처럼 보통 국가와 비교하면 인터넷 개방도 하지 않고 스스로 전면적인 무역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입병을 부르짖고, 국경을 가두고 이민을 허용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극심한 정책을 펴고 있으나 그나마 정권 유지 측면에서 봐주어도 과욕이나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자신이 직접 현송월을 통해 북한에 야간열병식을 조언했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말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2023년 7월에는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축하한다느니 참가자들에게 무기를 들고 '조국통일' 같은 구호를 외치도록 시키면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셈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놓고 자신은 민생보다 자신에 대한 충성이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2021년 8차 당대회 보고에서 김정은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고수하고 확립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 로동신문에 올라간 김정은 명의의 청년절 축하문에서도 탄원(탄광이나 염전 등 험지에 대한 자원[142]) 분위기가 고조된 것은 몇만대 기계가 생산됐다는 것보다도 더 고무적인 소식이라고 주장할 지경이다. # 코로나19와 수해로 민생이 더 악화되는 와중에도, 김정은은 직접 외부 지원을 거절하라는 선언을 하고, 외부 사회에 물품에 대한 방역을 요구한다는 선택지마저 고르지 않는다. # 2019년 한국 정부는 9년 만의 정부 차원의 쌀 지원을 추진했으나 코로나 사태가 도래하도록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쌀을 받지 않았다. # 거칠게 말해서 자신의 안위는 민생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국 정부의 인도적 지원이라면 무시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자신은 유례가 없는 위기가 닥쳤다는 말[143]을 해도 안 받는 경우가 꽤 있다. 이것 때문에 주민들의 생계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여기에 북한 연구자들을 경악케 했던[144] 한류 유포만 해도 사형, 한국 말투 써도 징역이라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제정, 80일 전투로 주민을 쓸모 없는 노동에 동원시켜 주민들을 통제하는 모습도 보인다. 연락사무소 폭파에도 인내하던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환멸을 느꼈는지, 이 법을 언급하면서 "북한이 잘못하면 남한에 흡수당할 수 있다며 통일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준다고 해서 쉽게 받을 것 같지도 않다", "분단의 고통과 불이익이 최소화되는 시점에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발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2021년 8차 당대회도 경제 부분에서 '비사회주의'를 없애겠다, 상업봉사부문에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는 등의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이를 두고 "장기적으로는 자살정책"이라고 일갈했다. #

2021년 4월에는 아예 청년세대를 꼬집어 "우리식 사회주의의 참다운 우월성에 대한 실체험과 표상이 부족하다[145][146]"고 언급하면서 열렬한 지지에 감사하다는 10월 열병식 발언과 모순된 발언을 하였다. # "간고한 시련 속에서도 우리 새 세대들과 인민들에게 베풀어지는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의 혜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비싼 것인가를 모든 청년들이 다 잘 알도록 해야 한다"라는 발언은 나는 간고한 시련을 못 없애겠으며, 너희는 그냥 세뇌되어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할 지경이다.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는 발언에도 당시 가족, 이웃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탈북민들이 격분하기도 했다. # 단기적으로는 나라 경제가 나아지지 않아도 주민에 대한 통제와 세뇌로 버틸 수 있을지도[147] 장기적으로 갈수록 어렸을 때부터 시장화와 한국을 비롯한 외부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눈높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 핵을 완성하여 잘살게 된다는 선전이 통하지 않는 미래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24년 3월 하순에 김정은은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에 내린 방침에서 "사회주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끓어넘쳐야 할 청년들이 개인의 경제적인 안정, 돈벌이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북한 청년들을 비난했다. #

2023년 1월 18일에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보다 더 극악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했고, 이를 주민들에게 공개조차 하지 않다가 동년 3월 23일에 전문이 유출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혈육관계가 아닌 청춘남녀들 사이에 '오빠'라는 말을 쓰거나 직무 뒤에 '님'이라는 말을 붙여 쓰면 '괴뢰식부름말'을 쓰는 것으로 간주되어 최소 6년 징역, 최대 공개처형을 당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북한 형법에서는 국가전복행위, 살인이 최소 징역 5년, 최대 사형이라고 한다. 즉, 이제 북한에서는 사장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반역죄, 살인죄보다 더 흉악한 범죄가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통해 북한 지도층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는 일반인이 자신의 욕망, 권력을 갖는 것일 것이라고 유추하고 있는데, 이 법에 따르면 제한 없이 높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수령밖에 없으며 다른 사람은 '동지', '동무'처럼 김정은의 생각을 잘 따른다는 의미가 담긴다는 것만 부를 때의 칭찬의 범위로 봐야만 한다고 하기에 북한 지도부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는 일반인이 자신의 욕망, 권력을 갖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정은은 2020년 5월부터 '괴뢰말찌꺼기'를 없애야 한다는 망상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며, '괴뢰말찌꺼기' '괴뢰말투를 쓰는 대상들이 전사회적으로 속박당하고 멸시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얼굴을 들고다니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세상에 없는 너절하고 역스러운 쓰레기말' 등 도저히 법조문에 들어가리라고 믿을 수 없는 막말들이 들어간 것도 이 법 제정에 김정은이 적극적으로 관여했음을 보여준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2023년 8월 들어 한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아예 대놓고 북한에서 김정은을 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16년 대비 2022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이 12% 감소[148]하고, 사적인 곡물 거래 금지 정책과 군량미 우선 배분이라는 기괴한 정책 때문에 곡물 가격이 고공행진을 한다고 한다. 북한판 MZ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김정은 일가와 당 정책에 대해 거침없는 불평과 집단 항의가 있음에 따라, 북한 당국이 지역 당[149] 산하에 불평분자 색출을 전담하는 비상설 TF를 신설했다고 전했다. # 2010년대 중후반만 해도 김정은이 시장 경제를 조금 풀어주는 것 같아 오히려 젊은 세대에서 지지가 높았다고 하는데,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던 것이다. 저 사적 곡물 거래 금지가 얼마나 잔인한 정책인가 하면, 정부가 지정해 준 직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양곡판매소에서 쌀을 주지 않고 굶겨버리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곡식을 구해야 하는 양곡판매소는 한 달에 1인당 5kg 정도의 쌀만 준다. 그냥 저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굶어죽기 때문에 법률대로 저 조치가 행해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각종 경제활동 금지로 돈 버는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도시의 상황은 꽤 나쁘다는 말도 있다. # 저러면서도 국제 사회의 지원도 거부하니 그야말로 기가막힐 노릇이다. # 그러나 배급을 구실로 노동 착취를 당하고 생계를 위협받는 일반 주민 뿐 아니라, 당 간부조차도 욕심많은 상부가 시장에서 나오는 돈 보다 대가를 적게 주는 배급은 반기지 않으니 간부마저 맹목적 충성이 아니면 적으로 돌리는 행태가 되어갔다고 한다. #

통치 정당성이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훨씬 떨어지는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일성빨치산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았고,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고 김일성이 죽은 1994년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며 나름의 내공을 쌓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0년에 갑자기 튀어나와 정치감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2011년 겨울, 최고지도자가 된다. 그래서 집권 초기에 이전부터 권력이 엄청나게 강했던 고모부 장성택까지 죽이며 공포 정치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했던 것이다. 특히 어머니 고용희가 북한에서 천시되는 재일교포, 남한 출신이라는 설이 있어서 일각에서는 이것을 체제 위협 요인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간부들은 탈북까지 고려하고 있다. 하다못해 해외주재 북한공관원들은 본국으로의 소환도 거부할 정도이니 말 다한 것이다. 이는 2015년 4월 말에 일어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으로 그 정점을 찍었는데, 심지어 현영철은 김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인사였음에도 숙청시켰으니, 다른 일반 간부들의 속내는 더 다른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6.2.1. 외교 · 통일 분야

외부에서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것은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으로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한다든가 '조국통일전쟁' 운운하며 남한 본토를 타격한 서부전선 포격 사건김정일 이상으로 호전성을 드러낸 점, 김정일과 달리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이라면 누가 지원해도 받지 않는 문제가 있다. 2018년에 보여주었던 모습조차 싱가포르 등의 방문을 제외하고 김정일이 이미 보여준 바가 있다. 이것은 북한의 언론에서도 기술만능주의, 기술지상주의가 아니라 사상제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며 실제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 2023년 한국 언론에서는 북한에서 남조선을 '대한민국'이라고도 하였다 하여 은근히 반기는 모양새도 있었으나 동시에 한국 언론이 거의 다루지 않았으나[150] 조국통일대전,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혁명전쟁준비 같은 과격한 막말도 부활하였다.

핵전쟁 같은 주장을 공공연하게 하여 핵으로 '대한민국'을 지도상에서 삭제하겠다는 망상을 주장함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표현마저 괄호 안에다가만 등장하여 '소위 대한민국'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다가, 한국 언론이 다루는 것보다 훨씬 김정은이 과격하고 상식에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12월부터 괄호를 떼고 대한민국으로 언급하는 성명이 발표되고서는, 2023년 12월 30일, 드디어 김정은이 자신의 발톱을 드러내며 평정이란 단어를 두 번 써가며 핵무력까지 동원해서라도, 남조선/남반부 전역을 점령하겠다는 말을 하여 그 발언이 알려진 31일에 즉시 여야가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이제는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으로 인식하고, 대한민국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동포라고 생각하지 말고 핵으로 쳐죽여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런 막말은 김일성과 김정일도 공석에서는 쓰지도 않았다.

가령 드레스덴 선언이니 뭐니하여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지원을 받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지원 시도에 대해서는 '비본질적 문제'라고 하여 그나마 김정은에 유화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람마저 열받게 하기도 했다. 개성공단 가동 당시에도 초코파이에 사상이 들어간다고 여긴 모양인지 북한제 짝퉁 초코파이를 근로자에게 주라고 하기도 했다.2022년에는 대한적십자사의 코로나19 지원 시도를 거절하기도 했다. '인도적 지원'이란 말을 싫어한다고 하여 주민 생명보다 정치적 이득을 중시하는 잔인함을 드러내었다. # 김정은은 사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문재인 정부를 두고는 '상용무기개발사업'을 방해하지 말며, 윤석열 정부를 두고는 "때없이 우리를 걸고들지 말고 더 좋기는 아예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것이 상책일것"이라고 2022년 7월에 주장하기도 하였다. 2020년 이후 주장하는 것은 어떤 건설적인 주장도 안하고 그냥 한국 정부는 대들지 말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라는 것뿐이다.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능력에 비교했을때 모자라는 부분들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였던 김정일의 난잡한 사생활이 그 첫 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성편력으로 인해 후계자 선정을 어렵게 만든 것은 자업자득인 셈이다. 당장 김씨 가문의 우상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백두혈통을 내세울 근거를 빼앗아버림으로써 명분면에서도 약했다.

더구나 1980년대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와 논란은 많았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후계자로 임명받을 수 있었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후계자 수업도 받은 일도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인해 갑작스럽게 지명된 처지라 권력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여기에 결정타는 해외에서 자랐다는 약점이 있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중국과의 관계도 김정일 시절보다 험악해졌는데, 최소한 김일성·김정일 라인까지는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서까지 통제를 무시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3차 핵실험은 중국에게도 상당한 위협감을 주며 그 사이에도 김정은이 조용조용 지내려는 중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가니,[151] 일반 중국인부터 중국 공산당 수뇌부까지 북한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북한의 전혀 가망없는 경제 상황은 중국 정부로서도 골칫거리다. 원조를 한다고는 하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도 않고, 큰 개선을 보이지 않는 경제난과 중국보다도 열악한 인권으로 인해 북한 주민의 탈북 동기가 늘어남으로서 이들의 처리도 고민해야 할 처지다.

물론 지금까지는 체포해서 다시 북한으로 넘기지만, 언제까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이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의 의견에서 드러나듯 한국 정치에서까지 초당적인 의제로 여겨지고 있다. # 여기에 툭하면 도발로 나오는 북한의 태도 역시 중국의 인내심을 점점 한계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2020년 이후 코로나 시국에 국경 차단을 하며 빠져 나가는 것, 무역도 막는 초강수를 두며 탈북은 일단 막았으나 민생을 심각히 나쁘게 만들었다.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뿐 아니라 '세계 유일 코로나 청정국'에서 '오염된 곳'으로 나가는 걸 막던 것이다.

중국이 북한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게 정말 한두가지가 아니다. 중국이 북한의 도발 때마다 '대화와 자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도발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기도 뭣한 상황이다. 이전 G20 정상회담을 광저우에서 개최했을때 중국은 이것을 통해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는 바람에 미국 등에 "야, 저런데 니네들 계속 그렇게 대화같은 소리할래."라고 핀잔만 들었고 망신만 당한 중국은 중국대로 이를 가는 상태로 빠지고 말았다. 중국이 북한이라는 골칫거리를 지금까지 유지시켜주며 아직도 '대화와 자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이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며 계속 중국의 의도에 어긋나는 행패를 부리고 있으니 중국도 정말 열이 날 대로 날 상황이다. 그래서 요즘은 대북제재 강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한다.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며 북한에 손을 내밀면, 북한은 중국에 온갖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시도를 한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이야 정권 교체와 함께 대북정책이 강경하게 변했다고 해도, 과거 대북지원을 받던 시절에서 10년도 안 지났는데 마치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호전적인 태도로 돌변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민간인의 생명까지 뺏는 무력도발까지 감행했다. 2018년 이전까지는 보수 정권의 정보 당국의 예상조차 뛰어넘는 막말을 해댔다. 최전방 서해 무도 방어대에서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水葬)시키라”라는 말을 할 때만 해도 특수부대 앞에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라는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 선대처럼 한국의 정권과 주민을 분리시키는 최소한의 분별을 하려는 제스처라도 한 것은 2018년 이후의 일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로는 김여정의 막말을 묵인하고, 금강산 관광 시설에 대한 막말을 시작으로 2022년에는 한국 정부를 '전멸'시킬 수도 있다는 등 갈수록 2017년 이전의 호전성을 보이는 움직임이 있다. 2022년 9월의 핵무력정책법을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력은 국가의 주권과 령토완정(완전 정복), 근본리익을 수호하고'라는 문구에서 진지하게 핵전쟁으로 적화통일을 꿈꾸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생겼다. # 평양문화어보호법에는 사용이 적발되면 누구든지 처단되어야 하고 언론까지 망신을 주며 사용자의 부모도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남한의 '괴뢰말투'란 '비굴하고 간드러지며 역스럽게 말꼬리를 길게 끌어서 올리는' 말이라고 규정을 하는데, 그런 말투를 쓰는 모든 북한 사람도 최소 반 이상 죽어야 하고, 남한 사람은 이미 그런 말을 쓰고 있다는 관점이나 국민들은 든든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정부는 한심하며 도전할 경우 정부를 아예 없애버린다는 등의 말로 보면 속으로는 남한 주민도 없애고 박멸시켜야 할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나마 북한을 현상유지시키는 통치력을 그나마 능력이라고 과장해서 평가해도 외교능력에 있어서는 도저히 능력이 있다고 볼 수가 없다. UN 상임이사국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현재의 형편상 북한을 언제나 감싸고 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미국까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나와 줄 것을 중국에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북한을 그대로 버려두기에는 북한의 붕괴는 중국에게도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로서는 북한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로서의 협상' 또는 '기권'이라는 형태로서 대응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어그로를 유발하는 북한의 행태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경우, 국제사회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부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국이 상당히 곤란한 형편에 놓인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중국이 북한을 감싸주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가 미국과 일본이 좀더 능동적인 대북제재를 중국이 실시해주길 원하나 북한이 없어지면 중국이 처해질 입장 때문에라도 그렇게 하질 못한다. 하지만 북한이 이렇게 망나니 짓을 해대고 있으니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것도 한계에 이르고 결국에는 홧김에라도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도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조족지혈이다. 그렇지만 2017년경에는 아예 북한에 등을 돌린 듯한 제스쳐도 자주 보였다. 자국으로 나온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연장도 연장해주지 않고 있으며 합작으로 연 북한기업조차 폐쇄된 상태이다.

2014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중국과 삐걱대던 외교관계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경제협력사업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급기야 중국이 북한의 항구를 빌려 동해를 통한 물류 통로를 개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러시아의 항구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중국 '동해 출구' 북한서 극동 러시아로 중심 이동

대규모 투자를 해봤자 북한이 지금처럼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전쟁이 일어나 투자회수를 못할 위험이 높은 데다가 도저히 통제도 안 되고 예측도 안 되는 북한보다는 차라리 러시아가 낫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2000년대 북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중국 기업들은 비참할 정도로 열악한 인프라와 북한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때문에 하나 둘 등을 돌리고 있다. 돈 떼먹히는 게 기본이었고, 감시까지 하면서 송금도 제대로 못 하게 막았다고 하니, 중국 기업들의 신뢰를 얻지 못함은 당연하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제무대에 데뷔한 김정은은 온건한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유엔대북제재로 민생이 파탄나고 국내 문제에서 초기의 공포정치를 버리고 자애로운 어버이 지도자라는 컨셉을 잡는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김정은의 지지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지는 그가 개혁을 택하리라 믿은 주민들의 지지였으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그런 기대에 반하여 비사회주의와 투쟁하고, 백두산 정신을 지켜야 한다면서 내부 단속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주민들의 김정은 지지 이유를 스스로 없애는 것이다. 연단에서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한국 정부가 보수층에게 비판 받아가면서 하는 지원[152]까지 거절하기도 한다. 남북관계를 파탄내며 많은 책임을 남측에 뒤집어 씌우는 모습도 보이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북미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던 한국과 미국은 이를 계기로 그냥 엿 먹어버리고 만다. 결국 야당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성일종 의원이 "북한 정권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폄훼를 중단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의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다."라고 북한을 비난한 것이 그 예. 2018년경에 스스로 비핵화를 해놓겠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선 갑자기 말을 바꾸면서,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고립주의를 택했다.

2019년 돌연 국민의 정부가 제안해 김정일이 승낙했던 금강산 관광을 이유 없이[153] 부정하며 '너절한 시설'을 철거하라며 본색을 드러내었고 더불어민주당은 유감을 드러냈다. # 대북제재를 풀기 위해선 핵도 포기해야 하는데, 하노이 회담에서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좋은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2018년 이후 탈북한 탈북자들은 대화가 있던 와중에도 남한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 말라는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는 증언을 하였다. 남한과 대화를 하겠다며 겉으로는 웃으면서, 북한의 젊은 세대에 많이 퍼진 한류를 차단하는 이중적인 움직임도 보인다. #

핵을 포기하는 것을 두고 리비아, 우크라이나처럼 된다는 주장도 많으나[154] 이들조차 북한보단 민생이 훨씬 나으며, 카자흐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핵포기로 북한과는 비교도 어려울 정도로 잘 사는 경우도 많다. 리비아는 단지 국제 사회가 시민의 편을 들어 몰락했고, 우크라이나와 달리 강대국이 북한을 침공할 역사적 근거가 적으며, 핵을 개발하여 오히려 국제 사회가 통제되지 못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들어 개입할 여지도 생겼다. 거의 북한의 핵개발이 알려지지 않던 김일성이 집권할 당시에도 북한 체제는 유지되었고 핵개발이 알려지며 대량살상무기 의혹을 구실로 미국의 공격을 받은 이라크의 상황이 될 수 있었으나 한국의 피해 우려 등 지정학적 여건 상 실현이 되지 않은 것을 무시한 것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가 공통으로 언급할 정도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한 곳이다. 핵을 포기하고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태가 일어난 나라들은 내치를 잘못해서 정권에 위협이 되는 사태가 일어나거나 민주화 같은 노력이 없던 점이 있을 뿐이다. 핵개발을 중도에 중단하고 가장 잘 사는 나라의 대표적인 예시는 대한민국이며,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은 이미 핵없이 북한보다 잘 살고 있다. 2021년 들어 핵무기는 남용하지 않겠다고 하여 먼저 자신들이 쏠 수도 있음을 암시하여 어그로를 끌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핵을 가지지 않아 침략당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우크라이나와 미국 제국주의자를 비난하는 러시아의 주장 중 어느 편을 옹호해야 할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일단 외부적으로는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전쟁 방지라는 핵보유의 구실을 포기하는 모양새지만, 내부적으로는 로동신문에 아예 전쟁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않으며 그냥 불리한 사실은 숨기는 행태를 보인다.

김정은이 묵인한 연락사무소 폭파는 한국의 제의에 대한 호응을 하지 않는다며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하기도 하였고, 연평도 인근에서 피격된 공무원에 대한 해명에서 정부의 주장에 해명을 제대로 못하여 송영길은 최고지도부가 알고 있을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며 비판했다. # 겉으로 보이고자 하는 모습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여 일각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정작 정부의 제안에 어깃장을 놓기도 하여 일부 인사가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긍정론에 서술된 식량 사정 등의 민생 개선도 결국 주민들의 생존 본능적 행위, 즉 자본주의를 막지 못해서이다. 체제 전환을 겪은 구 공산권 국가들은 위에서 개혁을 시작했지만, 김정은 정권은 제도를 그런 식으로 바꾸기 보다는 시장을 없애는 것은 체제 붕괴 위험을 증가시키므로 방치하고,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 코로나 직전까지도 식량난이 심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건 인구로 국력을 부풀리려는 북한의 통계 조작을 두고 국제기구가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한 과장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 그러면서도 2018년 신년사에서는 경제난을 관료주의 탓으로 돌리며 선대의 남탓하는 습관,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밀기' 수법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어떤 입장에서는 긍정론의 유화적 제스처도 결국 이런 태도로 보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잘해주지만, 너희는 대결을 일삼는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북한의 외교적 피포위 의식이 드러난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에 열심인 문재인 정부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내밀다가도 '남조선 당국은 지난 보수정권 시기와 다름 없이 부당한 구실과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내세워 각계층 인민들의 접촉과 내왕을 가로막는다.'고도 하였다. #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는 마침내 면목이 없고 미안하다는 발언을 하였으나, 이 발언의 전제로 온 나라 인민이 자신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것을 드는, 언플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주민들의 뜻에 반해 통제를 하고선, 이제 주민들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ICBM이 공개되자 웃는 모습, 고급 시계를 차며 우는 모습이 발언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는 시각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 선언에서 문 대통령이 체제를 존중하겠다고 해도 그냥 무시하고, 자신은 자신의 나라가 세계적인 핵강국이 되었고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긴다면서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심한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 같은 강경책을 추진하고 나서 몇 달 후에도 대화에 나서더니 하노이에서의 무리한 요구가 실패하자 일관되지 못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KBS의 통일의식조사에서, 2022년에는 김정은 정권에 '호감'이라는 응답은 2.7%에 불과한 한편, '반감'은 78.1%. 그중 '매우 반감'은 43.1%였다. 2018년은 호감 20.6%, 반감 35.4%, 매우 반감은 15.3%인 것을 감안하면 인식이 그야말로 바닥에 떨어진 셈이다. #

2024년 김정은의 대한민국 제1적대국, 동족관계 폐지 선언은 자신이 '먼저' 민족분단을 추구한 제국주의자들을 이긴다는 김일성, 김정일의 뜻을 이어받아 통치를 한다는 정당성을 분단을 추구하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주장한 '제국주의자들', '민족 배반자'의 행동을 자신이 먼저 해보임으로써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 되었다. 그 뜻을 이어받지 않은 사람이 지배자가 될 수 있다면 굳이 김정은의 일가만 집권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동족관계를 폐지한 이상 그 말대로라면 굳이 그 영토를 '수복'할 이유가 정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없지만 유사시 수복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한국의 역대 모든 집권당이 지킨다고 주장하였던 북방한계선 부정을 헌법에 담는다고 주장하여 자신의 영해를 이미 대한민국이 침범하고 있는 전쟁 도발을 하고 있다고 자신의 논리에 의해 주장한 셈이 되었다. 김정은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헌법에 주장하는 것은 나치 독일(김정은의 북한)이 단치히(북방한계선 이남 영해)를 내놓으라며 폴란드 전체를 침공(대한민국 정부의 영역 전체를 침공)한 일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실제 전쟁을 일으킬 의도는 없다고 해도 이렇게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것은 국제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도 이런 일을 자국 헌법에 반영하라고는 하지 않았는데 상식을 매번 뛰어넘는 기행을 일삼았다.

7. 매체에서

7.1.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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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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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가족관계


가족으로는 아내 리설주가 있고 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리설주는 선대의 부인들과는 달리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북한 최고 권력자의 배우자로서는 오랜만에 '여사'로 호칭되었다. [157] 여동생 김여정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으로서 김정은에 버금가는 위세를 갖고 비서실장 역할[158]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복 형 김정남 이외에도 동복 형 김정철이 있지만 최고 권력자가 되기에는 성격이 너무 부드러워 동생들과는 달리 권력과 거리를 두며 유유자적하게 산다고 한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조차도 "정철이는 (후계를 맡기면) 안 돼. 여자애처럼 너무 착해서"라며 권력을 맡기기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159], 반면 김정은에 대해서는 "나를 꼭 닮았다"며 호평했다고.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유성옥 氏에 따르면 1984년 1월 8일 출생으로 추정됐으나 북한에서는 1982년생으로 선전한다. 조작의 이유로는 김일성의 탄생년인 1912년과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권력승계 뒤에는 생일을 1월 1일로 선전하는 중. 김정일도 원래는 1941년생인데 김일성과 맞추기 위해 1942년생이라고 조작한 전력이 있다.

참고로 어머니 고용희제주도 출신 재일교포의 딸이었고 1960년대 대규모 북송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이 때문에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의 혈통적 순수성에 흠이 되지 않도록 조총련의 위상이 격하되는가 하면, 고용희의 출신에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현재 김정은의 가장 큰 콤플렉스로 보인다.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김정은의 존재를 알지 못했는데 김정은이 정실 부인도 아닌 김일성의 허락을 받지 않은 여자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취급받는 남조선계 출신(제주도)+재일교포 출신이었고, 심지어 아버지는 일본군에게 군복을 납품하던 친일 자본가였으니[160] 만약에 완벽한 일반적인 북한 주민이었다면 3대가 멸족되고도 남을 적대계급잔여분자 집안 출신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상화 교과서에도 김정은의 출생지는 커녕 생년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김정은의 출생지에 대한 성역화 시도도 전무하다.

이렇듯 김정은에게는 김일성 가문의 후손, 즉 백두혈통의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는 점이 큰 약점으로 따라다니고 있다.[161] 그러나 평양의 일부 간부들은 '장군님(김정은)과 자제들밖에 몰랐던 어머니의 헌신이 드러나지 못한 것에 대한 가슴 아픔'이 있다고 변명한다고 한다. # 김정은이 세습 독재를 하면 자신이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평양 어머님'이라면서 칭송한다고 한다. #

그 외의 여자 관계의 경우엔 성격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일단 공식적으론 김정은이 리설주 외에 ''이나 '정부'를 두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한때 현송월이 김정은의 애인이라는 설도 나돌았으나 이는 현송월 처형설에서 비롯된 루머에 가깝다. 다만 현송월과 김정은이 남매 수준으로 친한 사이라는 추론은 나오고 있다.

9.1. 자녀 관계

김정은의 자녀 관계 사항은 북한 정권이 3대 세습을 넘어 4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김정은의 자녀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가 알려진 것은 2013년 데니스 로드먼이 북한을 방문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데니스 로드먼은 김정은의 별장에서 딸을 안아봤다며, 그의 이름을 '주애'라고 알렸다.

이후 북한과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의 정보기관들은 사력을 다해 김정은의 자녀 관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으며, 2017년경 상당히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

2022년 11월, 북한의 공식 매체에서 김정은의 딸인 김주애를 공식적으로 보도하며, 김정은의 자녀 관계에 대해 다시 재조명됐다. 김정은의 첫째 아들의 체격이 왜소하다는 추측성 기사# 외에도 다양한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2023년 2월, 위와 같은 보도들에 대해 통일부 장관 권영세가 '첫째 자녀가 아들인지 추가 확인이 필요하며, 체격이나 건강 이상 등에 대한 사항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

2023년 3월,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의 자녀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밝혔다. 국정원은 김정은의 첫째 자녀 성별이 남성이란 것을 확실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이미 외국의 정보기관과 공유하며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외국 정보기관을 들먹이면서까지 이렇게 밝힌 거라면, 이미 김정은의 첫째 자녀는 아들이라는 확실한 물증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북한 권력층의 심핵부에 박혀 있는 정보원 노출 우려로 밝히지 못했을 뿐이다. 이와 함께 타국의 정보기관들도 북한 내 후계 구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아울러, 첫째 자녀가 정신 및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다는 점은 확인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둘째 자녀인 김주애는 정규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으며, 승마, 수영, 스키 등의 취미를 갖고 있는데 승마 실력이 뛰어나 김정은이 매우 흡족해했다는 정보를 밝혔다. 또한, 셋째 자녀 출산 사실은 확인되나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

10. 별명

악명높은 독재자이니만큼 좋은 의미의 별명은 거의 없다. 꿀꾸리우스(Culcurius), 뚱땡이우스, 돈종(豚宗), 돼지3호, 딤정은, 맹물단지, 몽타주, 쇠매, 열흘이, 저팔계, 북돼지, 핵돼지, 북부돼공 등의 별명이 있는데 상당수가 비만에 의한 별명이다.

북한에서는 젊은대장, 둘째며느리[162], 김제곱[163], 돼지, 유치원생, 전간환자(정신질환자) 등으로 불린다. 물론 이런 말 하다가 당국에 걸렸다간 평생 정치범수용소행이나 처형감이니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는 못한다.

2018년~2019년 초, 김정은이 남북관계 갈등 해소에 힘쓰는 것처럼 보이던 시절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별명 중 하나인 "이니"를 따와 "으니"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이후로는 사장된 별명이다.

11. 여담


파일:파리지옥 김정은.jpg

12. 경력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조선로동당 6기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2010년 9월 28일 2012년 4월 11일 3차 당대표자회에서 추대
4차 당대표자회에서 위원장으로 추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2011년 12월 30일 2019년 4월 11일 정치국 회의에서 추대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직함 개편
조선로동당 제1비서
2012년 4월 11일 2016년 5월 9일 4차 당대표자회에서 추대
7차 당대회에서 직함 개편
조선로동당 7,8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2012년 4월 11일 재임 중 4차 당대표자회에서 추대
7차 당대회에서 재선
8차 당대회에서 재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6,7,8기 정치국 상무위원
2012년 4월 11일 재임 중 4차 당대표자회에서 추대
7차 당대회에서 재선
8차 당대회에서 재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2012년 4월 13일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에서 추대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에서 재선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직함 폐지
조선로동당 위원장
2016년 5월 9일 2021년 1월 10일 7차 당대회에서 추대
8차 당대회에서 직함 개편
13,14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2016년 6월 29일 재임 중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추대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재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167]
2019년 4월 11일 재임 중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직함 신설
조선로동당 총비서
2021년 1월 10일 재임 중 8차 당대회에서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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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중인 총리 및 수상

[A]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당연직으로 겸한다.[B]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을 당연직으로 겸한다.[3]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Gim Jeongeun,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Kim Chŏngŭn이다. 북한의 자체적인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Kim Jŏng Ŭn으로 표기할 수 있으나, 해당 표기법은 변별 기호를 생략할 수 있다고 해 두었고 실제로는 변별 기호를 뗀 표기를 쓴다.[4] 음력 1983년 12월 6일. 북한·후지모토 겐지·일본1982년 출생으로, 고용숙·서양권은 1984년 출생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건 1984년으로, 미국·대한민국·중국도 이쪽으로 결론냈다.동아일보 우리민족끼리는 1983년 출생이라고 주장한다. 링크 공휴일이자 자칭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김일성의 생일 태양절(4월 15일)이나 김정일의 생일 광명성절(2월 16일)과는 달리 2021년 시점에서도 명절은커녕 공휴일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다. 2021년 김정은이 '김정은주의'를 내세우며 셀프 우상화에 나서고 있는데 그것이 완료되면 격상될 것으로 보인다.[5]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의 강 건너편에 있다. 2018년 방남한 동생 김여정최문순 강원도지사에게 밝힌 내용이다. # 이와 별개로 북한 당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량강도 삼지연시 출생임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할아버지(만경대고향집)나 아버지(백두산 밀영, 실제로는 러시아 하바롭스크 근교 출신)마냥 출생지(라고 주장하는 곳)를 대대적으로 사적지로 만들고 있지는 않으며, 대내적으로도 그다지 출생지를 알리고 있지는 않다. 이북 5도 기준 함경남도 원산시 송상동, 송중동, 송하동, 문천군 덕원면 부산리, 어운리, 문암리 일대[A] 당연직으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도 겸함.[B] 당연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을 겸함.[8] School Liebefeld Steinhölzli.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다녔으나, 중퇴했다고 한다. 베른 국제학교 맞은 편에 위치해서 알렉스 맞추켈리가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9] 김정은이 집권하는 명분은 그가 당(조선로동당 총비서, 2021 ~ ), 정(국방위원장, 2012 ~ 2016, 국무위원장, 2016 ~ 현재), 군(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장, 2012~ 현재)의 3권이 있기 때문이다.[10] 당시는 후계자의 위치였다.[11] 국가원수(元首)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元帥) 자체가 하나의 군 계급명이다. 북한군은 원수 계급이 대원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원수, 차수의 4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대원수는 김일성, 김정일(사후 추서)에게만 부여된 계급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는 김정은 전용 계급이다. '차수'는 군 원로들에게 선물처럼 분배되는 계급이고, 직업군인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계급은 그냥 '원수'('인민군 원수'라고도 함)이며 김정은의 취임 당시 이 계급에 도달한 사람은 오진우, 최광, 리을설뿐이었다.[12] 2021년 1월부터 대원수 계급장을 단 사진이 공개되더니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는 아예 대원수 견장을 찬 흰색 원수복을 입고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김정은은 원수로 호칭되고 있으며 원수 견장의 모습만 대원수 견장처럼 변경됐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는 김정은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13]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마주 서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키가 큰 편이라든가 아니면 트럼프와 만났을 때 키 높이 구두를 신었다는 등 여러 가지 추측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키가 170cm인 문재인 대통령보다 같이 섰을 때 살짝 더 작았다. 최대 168 ~ 169cm다.[14] 2010년에는 80kg, 2012년에는 90kg으로 추정되었는데, 몇년 사이 급격히 늘고 있다. 장성택을 공개처형한 이후로 특히 스트레스성 폭식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 뉴스에 따르자면 2014년에는 120kg, 2016년에는 130kg으로 나왔다고 보도했다. 신변 위협에 불면증…130kg으로 불어난 김정은 # 2020년 11월 3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체중이 140kg으로 불었다고 한다. # 그러나 2021년 9월 9일 정권 수립 73주년 열병식에는 체중을 많이 감량한 모습으로 등장했으며 연설은 생략했다. 이에 당뇨로 인한 체중 감소라는 건강 이상설이 돌고 있지만, 건강관리를 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정은이 조부인 김일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려는 전략으로 살을 찌운 것인 만큼 체중 감량도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2021년 10월 28일 김정은이 체중을 140kg에서 20kg 가량 감량했고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 2022년 9월 28일자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다시 140kg가 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5월 31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140kg대 중반으로 보인다고 한다. 최근은 150kg으로 늘었다.[15] 이정도면 병역판정검사 기준으론 2021년 체중 관련 조항이 없어지기 전 판정으로는 이것만으로도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는다.[16] 북한에서는 이름 바로 뒤에 직책이 오는 경우 일반적으로 이름과 붙여 적는다.[17] 모든 호칭들 중 가장 격식 있고 길다고 볼 수 있는 호칭이다. 2020년 하반기 쯤부터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표현이 '국무위원장'으로 바뀌었다. 2021년 2월 중순까지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라는 긴 수식어를 사용하다가 이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라는 직함과 '우리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령도자'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경애하는'만 넣어 짧게 줄여 사용하고 있다. 특히 당 행사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라는 표현도 삭제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처럼 매우 짧게 사용하고 있다.[18] 주로 뉴스, 신문 등 공식 석상에서 주로 불린다. 인물의 개인적 행태와 평가 등과는 별개로 뉴스와 신문, 공식 석상 등에서 격식을 갖추고 문제 발생을 최소화하는 등의 목적을 위해 김정은에게 위원장의 직함을 붙여서 표현하기도 한다.[19] 김정은의 자녀 중 둘째이나, 이외 다른 자녀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것 외 알려진 정보가 없다.[20] 첫째는 2010년생 아들로 알려져 있으며, 셋째는 2017년생이라는 것 외에는 자료가 없다. 2019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근무하다 탈북했다는 모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이 있는데, 아들이 변변치 않고, 막내딸은 너무 어려 둘째 딸인 김주애를 늘 공개 대동한다고 한다. 물론 현 기준에는 추측에 불과한 상황. #[21] 주체사상 일당제를 표방하므로 민주주의를 채택한 공화국에서의 명칭인 대통령, 총리 등은 사용되지 않으며, 명목상의 직책은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자 국무위원장이다. 물론 헌법 상 명시되어있는 국가원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장(長)인 최룡해지만, 실질적인 권력이 없는 바지사장으로 현재 김정은이 국가원수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상태이다.[22] 김정일이 본처인 김정숙의 아들이다[23] 사실 김정일은 정식부인 아래에서는 신원미상의 딸 한 명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내연녀의 자식들이다. 다만 김정남의 친모인 고용희가 북한 법률상 불가촉천민재일교포출신이므로 정통성은 김정남이 더 높아 김정남을 적자로 본다.[24] 참고로 역사상 최연소 비군주 국가원수는 아이티장클로드 뒤발리에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나이가 무려 19세였는데, 물론 이는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권력을 세습받은 것이다. 김정은 외에는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가 김정은과 동갑인 만 27세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고,(이후 카다피는 42년 동안 초장기 집권했다) 라이베리아새뮤얼 케니언 도 전 대통령이 만 28세에 쿠데타로 대통령에 올랐고, 캄보디아훈 센은 만 32세에 수상에 올랐다.[25]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름은 북한에서 반드시 볼드체로 표시하게 되어 있다.[26] 그의 아버지 김정일은 국방위원장, 그의 조부인 김일성은 보통 주석으로 칭한다. 이는 정식 직위를 따른 것이다.[27] 2022년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는 영국 총리보다 인지도가 높게 나왔다. 김정은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 사람은 어느 나라를 이끌고 있느냐고 질문했는데, 79%는 북한, 6%는 중국, 5%는 한국, 9%는 모르겠다는 답이 나왔다. 물론 독재자의 인지도가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교체되는 고위급 정치인(대통령, 총리 등)보다 높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28] 심지어 그의 아버지할아버지보다도 인지도가 높다.[29] 본래 김정일 뺨치는 거만함으로 김정일을 쏙 빼닮아서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으나, 나이를 먹고 외국으로의 유학으로 외국물을 먹은 후에는 개혁개방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이 령도자가 되면 기업을 세우고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도입하겠다고 주장하는 등 김정일과 정면충돌했다. 측근들과 가족들에게도 지배자라면 인민들을 먼저 생각하라고 강조하는 등 인민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이로 인하여 백두혈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김정일의 미움을 받아 후계자싸움에서 실각하게 된다.[30] 개혁개방을 주장하던 장성택이 처형당한 것도 장성택이 김정남을 지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노골적으로 김정남을 옹호했는데, 김정일 사후에도 외국에 나가있는 김정남을 후원해 주는 등 밉보이는 짓을 많이 했다. 문제는 개혁개방파가 거의다 장성택김정남을 지지했던 터라서 김정은이 후에 장성택과 김정남 지지자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개혁개방파가 거의 전멸해버렸다. 문제는 이 개혁개방파에 경제 실무진들이 많았기 때문에 장성택 사후인 2014년 때부터 경제정책이 맛이 가기 시작했고, 그것을 메우기 위하여 2017년부터 대남정책을 바꿨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생각보다 많이 주지 않았고[168] 미국에서도 딱히 뭔가 챙겨주지 않는데[169]다가 2020년부터는 코로나19로 경제가 다시 퇴행하면서 김정남과 장성택 파벌에 대한 대숙청에 대한 댓가를 치뤘다. 2022년부터는 통제력 강화를 위하여 장마당을 탄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는데, 이로 인하여 지방경제는 붕괴수순을 밝고 있다.[31] 김정일이 죽어가는 것이 보이기 전부터 김정남과의 대결구도가 보였는데, 기자들이 계승하러 북한에 들어가야하지 않는지 질문할 때, 김정남은 "어차피 곧 망할 나라인데 가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대답하는 등 북한 체제에 환멸하는 모습을 보였다.[32] 외국물을 먹은 뒤에 개혁을 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 김정남과 다르게 김정은은 외국물을 먹고도 자신의 아버지인 김정일만큼이나 잔인한 성정을 못버렸다. 이는 김정은이 총애받은 원인이 되었다[33] 김정은은 집권 후에 자신의 동복동생인 김여정을 전적으로 내세울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혈연에 집착했는데, 게임중독자에 놀기에 바쁜 친형은 그냥 평화롭게 살게 냅뒀다. 무능력한 것을 잘 아는 지는 몰라도 권력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복형제인 김정남과 다르게 암살당하지도 않았다. 최고 지도자의 남성자식들에게 으레 붙는 대장동지 칭호도 받지 못했다.[34] 김정일 시대의 대남 도발은 우선적으론 한국에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 한국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이를 넘어 핵무기 사용 및 전면전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한반도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A] 김정은 정권의 국가전략 변화와 자력갱생노선의 한계, 조한범[B] 김일한(2021), “선군에서 인민으로, 국가정상화 전략 평가와 전망”, 경남대학교 극동문제 연구소 및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공동 컨퍼런스(제목: 북한 김정은 정권 10년:평가와 전망) 발표자료[A] [38]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제재에 참여한 국가들의 대러 수출은 전년 대비 최대 60%까지 감소했지만, 김정은은 스스로 무역을 차단해 2021년 북한의 대중국 수입은 전년 대비 91.3% 감소했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2022년 코로나19 대유행을 피할 수 없었다.[39] 김정일의 태도와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김정일은 상대가 이명박 정부라도 외부 지원을 받는 데 망설임이 없었으나, 김정은은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문재인 정부의 지원을 '비본질적 문제'라며 거부했다.[40] 2023년 연말 전원회의에서의 발언, 2024년 1월 10일 북한에서 보도된 '근 8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우리 정권과 체제를 뒤집자고 피눈이 되어 악질적인 대결사만을 추구해온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라는 등의 발언에서 이런 인식을 보였다.[41] 2019년 즈음까지는 사업이 쉬워졌다며 이제는 경제 활동을 풀어주고 특히 북미정상회담 때는 해외여행도 허가해주지 않겠냐는 기대가 북한 내부에도 있었다. ## 그때까지만 해도 경제 활동을 심하게 막는 모습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중앙집권적 자력갱생' 같은 말이 등장하더니 북한 내부를 취재하려는 언론들은 일반인의 무역과 장사를 심하게 방해하는 모습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경제를 파탄낼 수 있는 정책이 추진된다고 할 수 있기에 북한의 권력층이나 그냥 김정은을 따르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 조치를 북한 안이나 밖이나 굉장히 싫어한다.[42] 아버지인 김정일은 북한에서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출생했다.[43] 출처: 그것이 알고싶다 830회[44] 출처 스위스 유학 친구 “北 김정은, 열여섯살 땐 좋은 녀석이었다”[45] 'We weren't the dimmest kids in class but neither were we the cleverest. We were always in the second tier.'[46] 이 때문인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애국가의 중요도가 더욱 높아졌다. 이전에도 각종 행사에서 애국가가 연주되기는 했지만 그다지 비중이 있지는 않았다. 김정일 시대에는 열병식을 할 때 김정일이 등장하기 전에 애국가를 연주했을 정도로 요식행위에 가까웠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로는 매 행사마다 애국가의 편곡이 달라지고 있으며, 김정은이 따라 부르는 모습을 부각할 정도다. 이 외에도 김정은은 '애국' 키워드를 강조하면서 인공기 티셔츠나 후드까지 내놓고 있다.[47] 출처: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 4장[48] 다만 와세다대학 명예교수 시게무라 도시미쓰는 김정남도 김정철도 아닌 다른 아들이 전면에 부상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하긴 했다. 하지만 뉘앙스를 보면 '공개되지 않은 아들'이라고 하는데 김정은의 경우에는 정보가 거의 없긴 해도 기존에 알려진 아들이긴 해서 김정은을 의미한다고 보기엔 좀 거시기한 면이 있다. 2003~2005년 사이에 성혜림과 고용희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이 아닌 제4의 아들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썰이 없던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시게무라는 김정은 식물인간설, 김정은 김일성 아들설, 김정일 대역의 북한 통치설 등 황당무계한 북한 관련 낭설을 하도 많이 유포한 전력이 있어서 믿기 매우 힘든 인물이기도 하다.[49] 이후로도 시게무라는 온갖 뇌피셜 음모론을 늘어놓다가 학계에서 공공연하게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조리돌림당하는 수준이 되었으며 한때 일본 방송에서도 자칭 북한통으로 패널 섭외가 많이 들어왔지만 밑천이 다 털리면서 방송 섭외도 거의 끊겼다고 한다.[50] <김정일 사망> 북한 체제 어디로 가나[51] <김정일 사망> 김정은 후계구도 유지될까[52] 단, 이 경우 총련 등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53] [김정일 사망] 암투로 권력 쟁취한 김정일 vs 귀공자로 자란 김정은[54] 北 김정은 '신설' 노동당 위원장 취임…김일성 따라 당 중시[55] 北김정은, 최고인민회의서 국무위원장 추대…'유일체제' 완성[56] 다만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을 강조하며 대화를 제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4년 신년사에서는 "우리는 민족을 중시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며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참다운 애국의 가치, 우리민족끼리 이념 밑에 굳게 단합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거족적 투쟁에 힘차게 떨쳐나섬으로써 올해의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2015년 신년사에서는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으며, 2016년 신년사에서는 "우리는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것이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론의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2017년 신년사에서는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북과 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충돌과 전쟁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북남관계개선은 평화와 통일에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며 온 겨레의 절박한 요구입니다. 파국상태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수수방관한다면 그 어느 정치인도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민심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신년사들이 있었던 매년, 적어도 2차례 이상의 심각한 무력도발-핵, 미사일 실험 및 대한민국을 향한 직접적 포격-및 외교적 도발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즉, 이전 김정은이 했었던 유화적 신년사들에는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고 이건 2018년 이후 180도 돌변한 김정은의 진정성을 충분히 의심케 한다. 자세한 내역은 북한/대남 도발 문서를 참고하기 바람.[57] 김정은, 도보다리서 `베트남 모델` 말했다[58] 중국에게 북한은 중요한 완충지대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중국과 불평등한 무역을 할 수도 있고, 중국이 헐값으로 북한 지하 자원의 채굴권을 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개방은 중국에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다. 남북통일에 대한 주변 강국의 생각은?[59]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 뒤에는 과거 김정일의 주한미군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저술한 김대중 자서전에 의하면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1992년 초 미국 공화당 정부 시기에 자신이 김용순 비서를 특사로 보내어 주한 미군 주둔을 요청했다고 발언했다. 김정일이 주한미군 존속을 원한 이유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주변 강국들이 전략적 이점을 탐내어 수많은 침략을 자행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자서전은 전한다. 주변 강국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김정일은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은 남아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김정일은 내부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반미 감정 때문에 주한 미군 철수를 선전하는 것뿐이라고 발언하였다. 김정일의 이 같은 인식이,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김정은에게 계승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총력특집(2)] 정상회담 ‘뜨거운 감자’ 주한미군의 미래[60] 세종국가전략포럼: 2018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전략[61]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이 가져온 북한 인사들의 처형 소식은 잘못된 것들이 많았고, 주류 언론들도 이를 그대로 재생산하는 데 바빴다.리영수 총참모장 확인…“생존 위한 맹종” 여기서 보듯이 지상파인 KBS도 리영길이 처형되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방송하고 있다. 이 문서도 리영길이 생존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를 2016년부터 실어놓고 있었다.[62] 인민무력부 부부장. 2012년 3월에 처형됨[신변불분명] [신변불분명] [탈북] [탈북] [67] 그 외에도 장성택의 직계 가족들은 어린이들도 가리지 않고 대부분 사형되었다고 한다.[68]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2014년 9월에 처형됨[69] 2015년 1월[70]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2015년 1월 처형됨[71]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2015년 2월에 처형됨[72] 2015년 5월 처형됨[73] 내각 부총리. 2015년 5월에 처형됨[74] 내각 교육부총리. 2016년 7월에 처형됨[복권됨] [복권됨] [복권됨] [신변불분명] [신변불분명] [복권됨] [신변불분명] [복권됨] [복권됨] [신변불분명] [85] 실제로 2010년대 후반 탈북한 탈북자들을 조사한 결과, 시골에서도 쌀밥에 기름을 두르고 일주일에 고기를 한두번 먹고 살았다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물론 그때는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을 통해 가장 먹고살기 좋았단 시절이란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86] 참고로 생일을 ㅇㅇ절로 부르는것은 황제의 예법이다. 제후국을 자처하느라 조선에서도 하지 못했던것을 현대국가가 차용하고 있는것.[87]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술은 좀 마실 줄 알아야 하지만 담배는 일찍 배우면 키가 안 큰다."라며 담배를 못 피우게 했었는데, 기어코 중학생 때부터 입을 대기 시작해 아버지 말을 거역했다. 결국 김정은은 김정일의 걱정대로 169cm의 단신이 되어버렸다.[88] 그런데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게, 김정은만 주한미군의 철수에 반대하는 말을 남긴 게 아니라는 점이다. 김정일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과 만난 자리에서 아들과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 김대중이 '그럼 평소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이유는 뭐냐'고 묻자 김정일은 '그건 국내정치용입니다'라고 답했다고...[89] 그나마 2023년 8월 27일 평양 밤 평균 온도가 23도열대야만큼은 벗어난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90] 다만 이 환자가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게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기 때문이다.[91] 1976년에 설립된 장수연구소와 1982년 설립된 만수무강연구소가 바로 그것이다. 장수연구소는 자연요법과 한의학, 만수무강연구소는 현대의학 전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 기관의 진짜 이름은 각각 북한 기초의학연구소와 임상의학연구소다. 평양의학대학 안에 있다.[92] 비행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김정일도 아플 때는 탔다고 한다.[93] 리춘히는 현재 너무 고령이어서 다른 아나운서가 김정은의 사망 발표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94] 아사히 "韓특사단 만찬서 정의용·리설주, 김정은에 금연 권해"[95] 여담이지만 육영수도 박정희의 흡연을 싫어했다. 수사반장에서 1시간 짜리 드라마에 담배 피는 장면이 네 번 나오자 박정희도 똑같이 피운다며 최불암에게 전화해 담배 피는 장면을 줄여달라 요구한 적이 있다. 이후에는 수사반장에서 흡연하는 장면이 한 번으로 줄었으나 그렇다고 박정희의 흡연량이 드라마틱하게 줄진 않아서 여전히 박정희의 흡연을 못마땅하게 봤다고.[96]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배경이 푸르다. 10월의 북한이라고 볼 수 없기에, 8월에 찍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97] 김정은과 달리 문재인은 등산을 즐기며 본인이 직접 히말라야 등정까지 다녀올 정도로 체력이 건강한 편이다. 오히려 60대인 문재인이 30대인 김정은을 배려하여 직접 등반이 아닌 케이블카를 이용해 백두산을 올라갔다는 점에서 상당히 대비된다고 볼 수 있다.[98] 대형 별장들을 최고급으로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유지비는 억 단위로 깨진다.[99] 서양권 언론에서는 김정은의 개인 별장인 것마냥 소개되기도 했으나, 실은 외국 귀빈 전용 호텔이다. 물론 김정은이 어떤 사람인지를 고려하면 김정은 본인의 개인 별장은 이보다 더 호화로울 가능성이 높다.[100] 외국에서 수입한 고급 대리석, 프랑스제 파인 세라믹 그릇, 스위스제 고급시계, 러시아나 일본 등지에서 생산된 고급 가구 등[101] 참고로 김정은은 원산 별장의 수영장에서 수영, 요트,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을 즐겼다고 한다.[102]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완전히 익힌 웰던 스테이크를 좋아한다고 한다.[103] 만약 대한민국소속 자동차에 김정은을 태웠다면, 그건 그거대로 욕 먹겠지만, 적어도 국제망신은 면할 수 있다.[104] 당연히 로동신문 보도로 이 사실을 접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최악이다. 자신들은 굶고 있는데 국민들에게 식량을 주지는 못할망정 외부로부터 차나 선물받았으니... 참고로 이 차의 가격은 99500~111500달러라고 한다. #[105] 친부 김정일이 본인은 매일같이 샥스핀 요리와 고급 스시를 먹어댄 주제에 '쪽잠에 줴기밥' 선전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주민들을 기만했다. 물론 이후 북한 주민들은 해외 정보 유입과 김정일의 비만 체형(...)을 통해 쪽잠에 줴기밥이 거짓이란 것을 다 알게 되었지만. 다만 김정일은 확실히 줴기밥을 먹긴 했다. 최고급 재료만 때려넣어 한 개 재료값만 45달러 정도 되는 초호화 줴기밥을 현지 시찰을 나갈 때 벤츠 안에서 간식 개념으로 먹었다는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이 있다.[106] 북한에서는 김정일 때와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현지지도 때마다 먹는 줴기밥은 무우오가리(무말랭이)가 든 소박한 줴기밥이라고 거짓 선전하고 있다.[107] 2015년 기사로, 당연히 북한 주민들의 비웃는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당시 김정은의 몸무게가 120kg이 넘었다. 차에서 쪽잠을 자가며 끼니마다 줴기밥 한두개만 먹는 걸 반복하면 100kg이 넘는 초고도비만이 됩니다[108] 물론 상술한 것처럼 '쪽잠에 줴기밥'이 거짓이란 것은 웬만한 북한 주민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109] 원래 김일성의 사저 '제5호 관저'가 있었다. 이 저택은 1950년대 후반부터 주석궁이 완공된 1977년까지 김일성이 살던 곳으로서 김정일이 젊은 시절을 보내던 곳이다. 2009년 평양 10만호 건설사업 와중에 김정일이 철거를 지시했으나 10만호 사업의 실패로 흐지부지해지는 듯 싶었다가 2021년 김정은이 헐고 그 자리에 경루동을 건설한 것이다. 위성사진 1(경루동과의 비교) 위성사진 2[110] 사족으로 북한에서는 '5호댁'을 건설할 당시 김일성이 대리석과 수입 자재로 장식하지 말고 조선식으로 소박하게 꾸미라고 지시해 '5호댁'이 수수한 집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연히 이 묘사는 5호댁이 실제로는 대리석과 수입 자재 등으로 서구식으로 장식되었다는 것만 간접적으로 암시할 뿐이다. 당연히 이 에피소드도 기존에는 언급되지 않다가 '5호댁'을 헐 무렵부터 갑자기 언급된 날조 에피소드이며, 애초에 저렇게 '평민들의 집같이 너무도 작고 소박한' 집을 헌 부지가 800세대 주택단지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넓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111] 북한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김씨부자에 대해서 혐오와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며 김일성의 일족들을 김일성 족속이라고 부른다.[112]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구역을 위시한 평양 중심부 사람들은 김정은의 이름을 정확히 알았으나 사동구역 같이 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김정은의 이름이 '김정훈'이고 나이도 36세(실제보다 10세 가량 많다)인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113] 대한민국 표준어나 문화어는 ㅡ는 평순인 /ɯ/, ㅜ는 원순인 /u/로 대립이 확실한데, 북한에서는 사투리가 입에 남은 사람들은 두 발음을 구분을 못하기도 한다. 문화어는 원칙적으로는 이를 구분하나 실제 언어 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에서 ㅡ는 u로 표기한다. 로마자 표기명도 Kim Jong-un이다. 한편 슈퍼주니어 예성의 본명이 '김종운'인 관계로, 서구권에서는 한때 오해도 생겼다고 한다.[114] 관련 기사[115] '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을 때의 한자 표기는 '正雲'으로 표기해 왔다. 물론 북한 당국의 한자 인증(?)이 없었기에 일단 자의적으로 표기했다.[116] 아마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재일교포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것을 바탕으로 루머를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117] 사진은 U 활동 당시 앨범 자켓 사진이다.[118] [랭킹쇼] 김정은 경제정책 7년…북한경제 현재 모습[119] 북한경제의 플러스 성장을 견인하는 대중국 수출과 시장화[120] 다만 이는 김정은 본인의 개인적 사생활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어서 애매한 부분이기도 하고 김정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경쟁자들과의 암투를 벌일 여지가 별로 없었고 젊고 어린 나이에 갑자기 후계자로 급부상했기에 그런 추악한 이야기들을 쌓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또한 김일성과 김정일이 너무 더러워서 상대적으로 더 깨끗해보일 뿐이지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121]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여성 문제와 성가치관, 가정관 등이 매우 올바르고 건전한 것처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에 관해 외국인치고는 매우 잘 아는 편에 해당해서 그가 김정은의 그러한 부분들에 대해 언급한 것이 어느 정도 신빙성과 공신력을 내재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항목을 보면 할 수 있듯이 그는 허풍이 심한 사람이며 그도 백두혈통이라 불리는 가족이 아님은 물론 그저 외국인 신분으로 고용된 직원에 불과해 정확하게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122] 물론 김일성과 김정일이 너무 지저분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김정은도 그 부분에서 훌륭하고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기쁨조를 비롯하여 북한 여성들의 심각한 인권 실태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김정은 역시 그 문제로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123] 김정일이 만 10세도 안 된 어린 나이일 때 죽었다.[124] 김일성의 수하들이 중학교 밖에 못 나온 여인이 수령만 믿고 까분다며 싫어해서 주변에 적을 많이 만들었고 여맹을 장악한 막강한 권력 역시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125] 리설주가 수령 배우자로써 매우 당당한 위치이기 때문에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얄밉다고 농담을 하고 옆에서 김정숙 여사가 웃으며 받아주는 훈훈한 광경도 연출이 가능했다.[126] 다만 경기장 같은 것은 수도나 대도시 같은 곳에 한두개쯤 필요하기도 하고 북한 같이 개발이 안 된 국토가 대부분인 곳은 더더욱 필요성이 높을 수 있으며 그러한 것들로 평양이 화려하게 장식되면 당장 북한의 입장에서는 김씨 일가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 외에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나 훗날 통일 후 평양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홍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을 수도 있다.[127] 2007~2010년과 2013~2018년 두 차례에 걸쳐 8년 동안 북한에 머물렀다.[128] 물론 이 집단 역시도 대개는 김일성 주석과 인연을 맺은 가문에 속해 있다.[129] 금강산 관광 프로그램은 김정일의 작품이었다.[130] 이 온건파의 대표격인 인물이 바로 2013년에 숙청되어 처형된 장성택이다.[131] 토마스 셰퍼는 이를 두고 김정은이 그 권력투쟁에 '압도'된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한다.[132] 개성공단이 일시 폐쇄된 것도 그때(2013년 4월)였다고 섀퍼 전 대사는 부연했다. 당시 북한이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를 전원 철수하면서 가동이 중단됐고, 다음달 남측 인원까지 전원 철수한 바 있다. 남북 논의 끝에 개성공단은 그해 9월에서야 재가동할 수 있었지만, 결국 개성공단은 전면 폐쇄되고 말았다.[133] 장성택이 숙청된 뒤에도 2017년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북한의 자객에 의해 피살되고, 아버지 김정일은 물론 할아버지이자 북한 정권의 '시조'라고 할 김일성의 대남 온건유화책에 대한 부정과 비판이 이루어지는 것도, 다르게 생각하면 토마스 셰퍼의 말처럼 '백두혈통' 김씨 가문의 신성함과 김정은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고 싶을 김정은 본인의 개인적 이해관계와는 완벽하게 상충되는, 김정은 본인의 세습 기반도 명분도 모조리 깎아내는 제 살 까먹기다. 동서고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세습의 정당성은 선대의 위업을 어떻게든 드높이고 포장하는 데서 나오지, 선대를 깎아 내리려 드는 것은 세습의 정당성을 자칫 부정하고 권력 기반마저도 흔들어 버리기 쉽다. 왕정 시대 조선에서도 과거 국왕의 부정한 행적에 대한 비판을 해도 "주상께서는 그러실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 신하들이 계속 부추겼다"고 에둘러 말하지 대놓고 '국왕이 문제'라고 부정하지 않았다.[134]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로 알려진 시기에는 자신이 공연을 하러 갔기 때문이다.[135] 관점에 따라서는 (특히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 2020년대부터는) 이디 아민도 능가하는 독재자로 간주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준일 정도다.[136] 심지어 크메르 루주, 탈레반, 다에시 같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광신도 집단들조차 이러지는 않았다.[137] 이 질환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조두순, 이은해 같은 범죄자다. 개인적인 이득이나 쾌락을 위해 후회하는 감정 없이 불법적, 기만적, 착취적이며 무모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이복형 김정남과 얽힌 권력투쟁에서 불안을 느끼고, 승마나 전속 요리사 같은 과도한 사치와 8살 때부터 장군 제복을 입고 나이든 장성들이 조아리는 특권을 누리며 자라난 나머지 현실 감각이 떨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다만 너무 막나가면 해를 입음을 알게 되는 경우, 숙이는 척은 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아예 이런 유형의 범죄자조차 유형에 따라 사람은 좋았다는 평가를 받을 지경이니 권력에 대한 편집증이나 불안이 큰 김정은도 인민이 불쌍하지는 않아도 기만적일지라도 일시적인 유화적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138] MSD 매뉴얼이 제시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증상에는 김정은이 저질렀던 타인에 대한 무시, 자신이 언급했던 신년사 공약을 무시하고 그 해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며 아버지의 업적을 부정하는 패륜, 남측과 같이 운영한다던 공단을 몰래 빼앗아서 쓰는 무책임이 모두 있다. # 참고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질환의 증상 중 하나인데, 이로 미루어보면 집권하면서 유독 어린이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어린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양심'이라는 '쓸모 없는' 감정을 가진 보통 사람보다는 자신이 훨씬 우월하게 느껴질 것이다.[139] 다만 이는 김정은 특유의 잘못이라기보다 아버지 김정일이 만들어놓은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면도 있다. 김일성 때만 해도 수령과 수하들의 관계가 서로 신뢰하고 충성하며 나름 괜찮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김정일이 집권 과정에서 수령이 수하들을 믿지 못 해서 잔인하게 숙청해버리는 문화를 제대로 형성해버렸다. 김일성도 그러한 배신, 숙청, 토사구팽을 통해 권력기반을 잡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살벌하지는 않았는데 김정일은 집권초기부터 병적인 의심과 잔혹성 등으로 그러한 시스템을 형성해버려 이미 김정은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그 바닥은 이미 그런 지옥 같은 세상이 되어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심화조 사건. 김정은 역시 폭력성과 잔혹성 등이 있어서 김정일로부터 유약한 김정철 대신 선택 받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지만 그 배경 자체를 김정은이 형성했다고 볼 수는 없다.[140] 영국 배우 마이클 페일린은 평양을 방문하며 김정일이 페인트칠을 명령했다고 하였다. #[141] 2021년에는 8차 당대회 때 사회주의적 경제를 천명하더니, 북한 내부와 연락한다는 서로 다른 언론들에서 상거래나 장사 제한이 심해진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1#2#3#4 장사 자체를 하지 말라는 '규찰대'에 맞서 장사꾼들은 울거나 아우성치며 저항한다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온다.[142] 말이 자원이지, 1년 정도 지나면 원칙적으로는 그런 험지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기피된다고 알려져 있다. 고아가 자원했다는 조선중앙통신의 기이한 뉴스도 있다.[143] 대내적으로는 위기를 과장하는 경향도 보인다.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의 경우도 해방 이후 최대라는 언급이 있었으나 북한 관영 매체는 이것보다 심한 재해를 언급하기도 했다.[144] 법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 않으나, 북한 관련 언론사는 일부 조문 내용을 취재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도 이 보도를 믿으며, 놀라움과 실망을 금치 못한다. 동아대 강동완 교수 논평, 문순보 대진대 북방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논평. 2021년 2월 16일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 업무보고에서도 이 내용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져, 이 언론의 보도가 맞는 부분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후 2023년 3월에 수정 보충된 법 전문이 유출되었다. #[145] 북한의 경제위기였던 고난의 행군의 영향을 두고 한 발언이다. 참고로 이때는 나라를 믿어 배급을 기다리던 사람은 굶어죽고, 그렇지 않고 장사하던 사람들이 살던 시대였다.[146] 여담으로 김정은이 생각하는 현 북한 청년들이 본받아야 하는 모습은 천리마 운동 시기 '사상정신'과 '투쟁기풍'이 넘쳤다는 '천리마시대 청년들'이다. 참고로 천리마운동은 1950~60년대의 일이다.[147] 평양 당간부는 남쪽이 약속을 저버렸다고 속고 있으며, 평양의 한 주민은 남조선이 식민지 노예라고 속고 있다는 인터뷰가 존재한다. 링크 타보면 알겠지만 평양 옆 동네 평성시부터 분위기가 그만 때려 잡으라고 아우성이며, 평안북도 당 간부는 8차 당대회는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경지대 주민은 부패 척결 주장 빼고는 냉소적이다. #[148] 6.25전쟁 당시 남한 GDP가 14% 감소했다. #[149] 북한에서는 이런 지역당이 단순 정치단체가 아니고 지역 단위를 지배한다.[150]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언급했다는 보도는 10개 이상의 언론에서 다루었으나, 통일을 위한 전쟁도 '대한민국'을 언급한 해군절 축하 연설에서 등장하였다는 사실은 군소 언론을 포함하여 두 개 정도의 언론만 다루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자신을 일컫는 집단이 자신의 인구는 7천만, 3면이 바다인 국가라고 하는 모습은 대북 강경파에서는 대한민국 정체성 부정, 대북 유화파에는 북한의 적화통일 시도를 노골화하며 부각하는 냉전적 시각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어 이런 접근이 이상하다보니 남한에서 잘 알려지지 못했고, 한국 기자도 좀 이해가 어려운 구석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대만 같이 중국과 교류가 많은 경우 중국이 자신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 알려져 있고, 저런 집단에게서 독립하겠다는 입장과 대만 같은 체제로 중국과의 통일을 이루겠다는 입장이 있다.[151] 북한의 도발은 일본의 재무장화의 명분이 되고 한국의 군비 증강에 영향을 주며, 미국아시아 개입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곧 아시아 전체의 군비 증가 및 전쟁 위험성 증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들은 중국의 입장에선 반드시 막아야 할 과제들이다.[152] 최근 보수 정당은 모든 대북지원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태영호 의원도 대북지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남북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여 국제기구를 통한 정기적 지원을 주장할 뿐이다. # 태영호 의원은 분배감시 시스템이 갖추어져 필요한 주민들이 한국 식량인 줄 알고 받을 여건도 된다고 판단한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북한 주민을 버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으려는 의도도 있다.[153] 연락사무소 폭파 같은 사건도 대북전단 같은 구실을 대고는 했는데, 이 건은 그런 구실도 대지 않았다. 토마스 셰퍼는 '권력이 거의 다 떨어져 오늘내일하는 지경이었던 김정일을 군부 강경파가 더 이상 배려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석했다.[154] 북한은 국제사회에 편입되면 한국이나 옛 동독처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자면 반드시 외부와 전면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토지개혁이나 그 이후 해방전을 소련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했다는 등 거짓말로 권력을 획득했던 김일성 가문의 특성상, 전면적인 교류는 권력에 대한 균열을 상징하기에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 다만 개방 초기에는 2018년경의 데탕트처럼 지지를 얻을 여지가 있으며, 그나마 선대의 적폐를 청산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올 여지도 있었다. 물론 주민들의 생계는 김일성 가문의 안위와 무관하게 훨씬 좋아질 것이다. 중국에 그러면 먹히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 주민 정서는 통일을 더 원하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은 싫어한다.[155] 이 때문에 독재자를 너무 미화했다는 비판을 들었다.[156] 정작 실제 김정은은 영어에 그리 능통하지 않다고 스스로 밝혔다.[157] 김정숙이나 김성애도 여사로 칭해진 기록이 있다.[158] 2018년 5월 1일에 보도된 한 기사에 따르면, 김정은의 비서실장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은 김창선 국무위원회 서기실장이라고 한다. 기사 다만 김정은이 참여하는 행사마다 격에 맞게 수행해야 하는 인물이 달라지는 측면이 있으므로 비서실장 역할을 김창선 혼자서 다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긴 하다.[159] 원래 김정일은 김정철에게 중앙당 선전부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히고 후계자 수업을 시켜보았으나 권력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다보니 잘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근거리에서 김정철을 모셨던 태영호도 기타밖에 모르는 청년으로 기억했다.[160] 이것이 어느 의미에서는 김정은의 입지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요소인데, 북한이 김일성 우상화에서 제일 중점을 두는 것이 김일성이 일제강점기에 했다는 (매우 과장된) 항일투쟁이란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김정은은 '수령님'과 싸우던 왜놈들에게 군복을 납품하며 왜놈들을 돕던 친일 반역분자의 자손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161] 김일성도 북한 입장에서는 적대계층 중의 적대계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친모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에 친부는 누구보다 강경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즉, 김정은은 누구보다도 순수한(?) 적대계층 혈통을 타고난 셈이다. 그리고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은 북한에서는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라고 불리우는 존재다.[162] 첫째며느리(김정일)가 그리워질 정도라는 의미. 주로 조선노동당 간부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라고 한다.[163] 김일성, 김정일을 제곱한 것 만큼 포악하다는 의미[164] 한 행동 전문가는 몸을 흔드는 것은 김정은이 자신의 불안함 혹은 긴장을 유난히 더 하게 될 경우에 하는 행동으로 분석하였다. 실제로 열병식 초창기때 몸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점차 나아지기도 했으며, 그 이후로도 몸을 흔드는 장면들이 종종 보였는데 대부분 울컥하거나 긴장을 하는 모습이 같이 포착된다는 것이 가장 큰 근거.[165] 이 우표 발행을 두고 일부에서는 "수천만의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의 얼굴을 대한민국 공식 우표에 집어넣었다"며 "아직 과거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절차가 법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단계에서 김정은의 얼굴을 대한민국 공식 우표에 넣는 것은 몰역사적인 처사"라고 비판했을 뿐 아니라, 2017년에 박정희 대통령 탄생100돌 기념우표 발행이 불발됐던 점을 언급, "'대한민국 전 대통령의 우표'는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발행하지 않고 '대한민국 우표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사람의 우표'를 발행했다"고 비난했다.대학생들, 우정사업본부 '남북정상회담 기념우표 발행' 규탄[166] 2013년 고급차를 사치품으로 규정해 대북 반입을 금지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데 이어 2017년에는 대북제재에 모든 교통수단 반입 금지를 규정했다.[167] 2020년 10월에 일시적으로 '공화국무력 총사령관'을 사용한바 있지만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2021년 2월 중순부터는 이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외국에서 김정은에게 보내는 각종 축전에는 여전히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직함 자체는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022년 3월 25일 화성-17 시험발사 보도 때 오랜만에 다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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