當事者主義
1. 법학에서의 당사자주의
Adversarial system소송에 있어 소송 당사자에게 소송의 주도권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 개념으로는 소송에 있어 법원에 주도권을 주는 '직권주의'(Inquisitorial system)가 있다.
2. 사회학에서의 당사자주의
2.1. 개요
Self-determinism특정 소수자와 관련된 담론과 인권 운동에 있어 그 소수자의 정체성을 지닌 당사자가 주 목소리를 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인권 운동에서 대표성이나 운동 혹은 담론의 방향을 비당사자가 지닐 경우 해당 단어를 통해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인권 운동에 있어서 당사자주의가 부재할 경우 소수자 스스로 실제로 겪은 차별, 억압, 인권 침해 등에 대한 문제에 대한 제기와 해결이 아니라 비당사자 활동가의 자의적/시혜적 문제 제기와 해결 방안이 제시되어 소수자에게 근본적인 도움이 안 되거나 엉뚱한 방식의 해결책이 나오거나 심지어는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비당사자들은 당사자만큼 당사자의 고통과 당사자로써 당하는 차별, 억압, 혐오 등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심지어 잘못 파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 관련 담론이나 정책 입안 단계에서 최대한 소수자 당사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참여하여야 한다.
2.2. 사례
당사자주의는 여러 소수자 운동에 사용될 수 있는 단어이지만 세계적으로 대부분 장애인 인권운동 진영에서 많이 사용된다.[1] 왜냐하면 장애인 관련 담론 자체가 다른 소수자 운동과는 달리 장애인 당사자가 적극 이끌기보다는 "비장애인들의 잣대로" 담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당사자의 고통과는 괴리된 시혜적이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2] 이미 서구/선진국의 복지 담론에서 자리매김하였고 한국에서는 사회파적인 장애권리운동단체[3]가 도입・주장하는 소위 '장애인 탈시설' 담론이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예시 중 하나라고 볼수 있다.신경다양성, 자폐 권리 운동 진영에서도 쓰이는데 이 장애인 인권운동의 경우와 비슷하다.[4] 자폐인들나 신경적 소수자들을 위해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담론들은 대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신경전형인들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5] 소위 치료 담론도 자폐를 열등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바라보는 신경전형인 중심적 관점이기 때문에 당사자주의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 당사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자폐는 선천적이며 뇌 깊숙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 #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좁은 의미의 '치료'가 아닌 행동치료(=행동교정)라는 것도 많은 인권침해 논란이 있다. 당사자주의를 중시하는 신경다양성, 자폐 권리 운동가들은 이러한 치료 담론을 반대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주민, 다문화가정 관련 이슈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대한민국의 이주민, 다문화가정 관련 이슈에서도 진보진영조차 당사자주의가 결여되어 비당사자들이 압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도 대체로 마찬가지다.
즉 이러한 당사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려가 결여된 정책, 사회적 담론 등을 비판할 때 '당사자주의'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6]
반면에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사회적 약자이면서도 경제계에 속하는 부류들이 "그들(당사자가 아닌 자)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우리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억압하려 하고 있다. 최저임금 협상에도 우리는 소외되고 있다."면서 당사자주의를 주장하기도 한다.
사회/시사적인 의미로서의 당사자주의와는 약간 다르지만 갓겜충, 콘솔빠, PC빠, 성우빠 등 문화 상품 분야에서의 일부 폐쇄적인 팬덤/커뮤니티에서 당사자주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3. 비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수장 박경석(1960)을 비판하며 치열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이준석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사자주의를 합리적인 토론을 저해하는 개념으로 보고 비판[7]하며 각각의 정치인이 젠더 감수성, 장애인 문제에 대해 자기 견해를 갖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 성신여대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는 당사자주의가 자신의 정체성(당시 토론에서는 장애)에 매몰되어 편협하게 하는 개념이라고 비판하며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칠 것을 강조했다. #특히 신경다양성 진영처럼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진영이 당사자주의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라는 시각이 있다. 솔직히 해당 진영들이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오로지 자기들만이 항상 옳으며, 다른 진영은 항상 틀리다"며 다른 진영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걸 다양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차라리 선택적 다양성이라면 모를까...
'당사자가 아닌 자에 극히 배타적'이라는 특성상 보수주의자, 신경전형인, 상공/경영인 등 정체성 정치에 적대적인 진영이라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순한 목적으로서 악용할 수도 있으며, 이는 당사자라도 대체로 마찬가지라는 것도 큰 문제다. 다시 말해,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이 반대 진영에 의해 사회 구성원에서 제외되어 더더욱 무시당하고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8] 결국 당사자주의는 아무리 당사자라도 이해득실을 따져서 신중히 판단해야 할 일종의 양날의 검인 셈이다.
그 밖에도 문화 컨텐츠의 일부 팬덤 혹은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당사자주의는 아예 "업계에 종사하지 않거나 그 작품을 즐기지 않는 자는 우리들이 응원하는 작품에 감히 평가하지 말라."는 뜻으로서 사용된다. 심지어 관련 문화 상품 회사나 문화사업 종사자가 자기 무덤을 자신이 스스로 파고 있음을 팬덤이 스스로 인지했음에도 말이다. 이런 팬덤/커뮤니티는 그냥 분탕이자 지능적 안티이니 웬만하면 그냥 무시하는 게 정답이다.
4. 같이 보기
[1] 이를 사회학적 용어로 consumerism in disability, 한국어로 '장애인 당사사주의'라고 한다.[2] 당사사주의에 입각하면 장애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복지시설 그 자체도 이러한 비당사자에 의한 시혜주의적 유산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탈시설 담론이 나올 수 있었다.[3] 대표적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略 장차연).[4] 자폐 권리 운동은 장애인 인권운동의 일부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게 보는 관점도 있어서 장애인 인권운동과는 별개로 설명한다.[5]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자폐 권리 운동과 관련된 단체조차 없기 때문에 자폐, 아스퍼거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학부모들의 목소리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것도 당사자주의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6] 당사자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은 당사자주의가 자신의 정체성에만 편협할 수 있고 담론에 있어서 비당사자를 배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이에 대해 일부 반박하는 부류들은 "비당사자를 완전하게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당사자의 입장이 당사자와 관련된 사회적 인권 문제에 있어서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한다.[7] 당사자주의 개념에서 많이 지적되던 부분이다. 젠더 문제나 장애인 문제들은 엄연히 사회와 함께 풀어가고 논의해야 하는 것임에도 당사자들이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함이 옳다는 모순되고 극단적인 태도를 갖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난다. 이런 식의 태도에서는 운동의 주체에 대한 물음이나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런 운동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8] 독선적이고 과격한 당사자주의로 하여금 사실상 모든 국민을 적으로 돌려 사회적인 비판과 멸시를 받고 있는 전국철거민연합 및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바로 대표적인 예시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