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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1년 1월 7일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오포리 | |
사망 | 1953년 11월 24일 |
경상북도 영덕군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대열은 1881년 1월 7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 오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장로회 신자로, 1919년 3월 기독교 장로교회 조사 강우근(姜佑根)과 함께 영덕면내 화개동, 금호동, 남정면내 남정동 등지의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동지 포섭에 힘을 쏟았다. 또한 젊은 청년들을 동원해 거사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제작했다.3월 18일 오전 2시경, 강대열은 포섭한 동지 50명의 기독교도와 함께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 시위엔 수백명의 군중이 가담했지만 일본군, 경찰의 무력 탄압으로 해산되었고, 강대열 등 주동자들이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았고, 1919년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 공소심에서 징역 1년을 확정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살았으며, 1953년 11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대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