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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12:57:36

강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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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9년 8월 21일
평안북도 벽동 성남 성상 116
사망 몰년 미상
서훈 2021년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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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 생애

1919년 평안북도 선천군 선천면에서 일어났던 3월 1일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일의 12시, 신성학교의 집회당에 집합한 교사와 학생들은 독립 연설을 마친 후 선천의 시가로 걸음을 향했다. 머지않은 12시 30분경, 읍내 중앙에 위치한 버드나무 다리 아래에서 학생들과 5-6백여 명의 시민들은 함께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뒤 독립만세를 외치며 선천의 시가를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은 어느새 2천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그들은 선천군청과 선천경찰서 등의 주변에서 독립만세를 합창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들과 군인들의 무력 제압으로 시위대는 해산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때 강학수는 동료 친구들에게 독립선언서를 편지에 동봉하여 인편으로 전달했다.

그 후 체포되었던 강학수는 신의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부당함을 느꼈던 그는 판결에 불복하며 상고(上告)하였으나 1919년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棄却)되어 결국 감옥에서 옥고를 겪어야 했다.

강학수에게는 2021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출처:공훈전자사료관
한겨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