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강환진(姜桓珍) |
생몰 | 1902년 9월 10일 ~ 1936년 10월 14일 |
출생지 |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주봉리 |
사망지 | 전라남도 보성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환진은 1902년 9월 10일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주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5년 전남도립사범학교(全南道立師範學校) 강습과를 졸업한 후 미력공립보통학교(彌力公立普通學校) 교사를 지냈다. 1928년 6월 정은찬(鄭恩燦)·구오현(具五鉉) 등 8명의 동지와 함께 비밀결사 자외선(紫外線)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32년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에 가입했다. 전남노농협회는 1931년 12월 19일 김호선(金好善)·이우적(李友狄)·김백동(金百東)·윤승현(尹昇鉉)이 주도·조직한 사회주의 비밀결사로서 전남지역의 노동자·빈농(貧農)을 규합, 혁명적 노동조합·농민조합을 조직하고 소보르주아 및 학생층을 중심으로 반제국주의동맹(反帝國主義同盟)을 결성하여 이를 통일적으로 지도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강환진은 1932년 3월 정은찬, 구오현과 함께 선태섭(宣太燮)의 지도를 받아 전남노농협의회의 세포반으로 보성적색농민부(寶城赤色農民部)를 조직했다. 그러나 조직 활동이 노출되는 바람에 그를 비롯한 동지들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934년 11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보성군에서 당국의 감시를 받다 1936년 10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강환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