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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55:00

강흥문

1. 의병장, 강흥문2. 파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강흥문

1. 의병장, 강흥문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강흥문(姜興文)
생몰 1882년 ~ 1909년 9월 12일 (향년 26~27세)
출생지 미상
사망지 전라남도 보성군 봉덕면 법화리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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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는 1908년 3월부터 정봉택(鄭鳳澤)·김일선(金日善)·박일선(朴一善)·조동주(趙同朱) 등과 함께 의병대에 참여하여 전남 보성 일대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1909년 9월 6일 오후 3시경 보성군 검어면 입석 부근에서 일본군에 의해 김치선(金致善)·서장수(徐長水)·조동주(趙同朱)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9월 11일 보성군 봉덕면 법화리로 압송되던 도중 조동주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은 뒤 9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강흥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파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강흥문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강흥문(康興文)
생몰 1891년 3월 13일 ~ 1973년 12월 30일 (향년 82세)
출생지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발랑리
사망지 경기도 파주군
추서 대통령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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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3월 13일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발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조무쇠(曺茂釗)·이인옥(李仁玉)·남동민(南東敏)·정천화·정갑석(鄭甲石)·이기하(李起河) 등 7명과 함께 발랑리 주민 수백 명을 이끌고 광탄면사무소로 행진해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후 3월 28일에도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광탄면사무소에 모여 조리면 봉일천 시장까지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행진했다. 그러나 경찰의 발포로 4,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군중은 해산되었고, 그는 곧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6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파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73년 12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흥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