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고종석 高鐘碩 | |
출생 | 1931년 12월 6일 |
경기도 개풍 | |
사망 | 1950년 8월 25일 |
경상남도 통영 | |
복무 | 대한민국 해병대 |
최종계급 | 해병대 일등병조 |
복무 기간 | 1949~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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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종석(高鐘碩, 1931년 12월 6일 ~ 1950년 8월 25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2. 생애 및 군 경력
초기 생애 및 해병대 입대고종석은 1931년 12월 6일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 3월, 개성 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그해 7월 해병대 제2기생으로 입대하였다.
이후 지리산 및 제주도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활약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해병대로서 낙동강 방어전선의 주요 전투에 투입되었다.
6.25 전쟁 참전
진동리 전투 (1950년 8월 3일)
고종석 일등병조는 경상남도 마산 방어를 위한 진동리 전투에 참전하였다.
당시 북한군 제6사단의 정찰대대가 진동리 방면으로 침공하였으며, 그는 선제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적의 침공을 저지하였다.
이 전투를 통해 진동리-마산 간 보급로를 확보함으로써, 낙동강 최후 방어선 사수에 기여하였다.
통영 상륙작전 (1950년 8월 16일 ~ 8월 18일)
1950년 8월 16일, 북한군은 마산과 진해를 해상에서 봉쇄하기 위해 전략 요충지인 통영에 침입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해병대는 "통영 장평리 해안 상륙작전"을 전개하였으며, 이것은 대한민국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이었다.
고종석 일등병조는 분대장으로 작전에 참여하여 이틀 만에 통영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장렬한 최후 (1950년 8월 25일)
통영을 탈환한 후, 북한군은 재진입을 위해 집요하게 역습을 감행하였다.
이에 고종석 분대장은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선에서 선두에서 싸우며 3명의 적을 사살하고, 도망치는 적 6명을 추가로 저격하였다.
이때 적이 투척한 수류탄이 그의 개인호(개인 참호)로 떨어졌다.
그는 "엎드려!"라고 외치며, 즉시 자신의 몸을 던져 수류탄을 덮었다.
결국 그의 희생 덕분에 분대원들은 목숨을 건졌고, 진지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만 19세의 나이에 조국과 전우를 위해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의 희생은 6.25 전쟁 당시 해병대의 전투 정신을 대표하는 사례로 평가되며, 해병대원들에게 "끝까지 싸운다"는 교훈을 남긴 전쟁영웅으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종석 일등병조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1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5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을지무공훈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 1951년)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5년 8월)
4. 참고 자료
대한민국 해군, "6.25 전쟁과 한국 해군 작전", pp. 226-236대한민국 해병대, "6.25 전쟁 해병대 전투사", pp. 46-155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고종석 해병대 일등병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