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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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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경
올바른 인성을 지진 창의적 인재육성
민족교육의 산실
고창고등학교
高敞高等學校

GoChang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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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지성(知性)·근로(勤勞)·실천(實踐)
<colbgcolor=#d8f6ce,#123108> 개교 1919년
교화 동백꽃
교목 소나무
성별 남자고등학교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운영형태 공립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50 (교촌리)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학교알리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학교 연혁
2.1. 오산학교 시절2.2. 고창고등보통학교 시절2.3. 공립학교로 전환
3. 교훈 및 상징
3.1. 마크3.2. 교가3.3. 교목, 교화
4. 학교 특징5. 학교 시설
5.1. 본관5.2. 성호관5.3. 과학관5.4. 흥학관5.5. 기숙사
5.5.1. 흥학원5.5.2. 성호원
5.6. 교직원 숙소
5.6.1. 구 관사5.6.2. 신 관사
5.7. 모듈러 교실
6. 학교 생활
6.1. 학교 일과6.2. 주요 행사
6.2.1. 체육대회6.2.2. 학교축제6.2.3. 합창제6.2.4. 스포츠 리그
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8. 기타9.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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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 위치한 기숙형 공립고등학교이다.

1919년 일본인 마스도미에 의해서 오산학당으로 설립되어, 1921년 고창군민들이 인수 최초고 군립고등학교가 되었다. 1944년 공립학교로 전환되었다.

2. 학교 연혁

1919. 04. 14 사립 오산학교 인가
1920. 03. 27 사립 오산고등보통학교 인가
1922. 06. 03 사립고창고등보통학교로 교명 변경
1922. 04. 01 오산고등보통학교 인수(양태승 교장 대리 임명)
1922. 02. 02 고창군 군민대회 개최 학교 인수 운영을 만장일치로 결의
1923. 07. 07 재단법인 고창고등보통학교 인가
1924. 03. 10 제1회 졸업식 7명
1925. 06. 20 본관 교사 준공
1937. 09. 25 전주 신흥학교 고등과 전교생 전입학 10학급 완성
1937. 05. 15 서편 신관 준공
1938. 03. 15 사립 고창중학교로 명칭 변경
1944. 02. 15 무도관 준공
1946. 06. 12 중학교 수업 연한을 4년에서 5년으로 변경
1950. 07. 18 ~ 1951. 05. 15 전란 휴교
1951. 09. 01 학제개편에 의하여 고창고등학교로 승격, 중학교 분리 병설 운영
1951. 03. 10 교육법 개정 학제 6, 3, 3, 4년제 개정
1966. 12 양태승 교장 기념관 준공
1974. 09. 01 고창중학교 분리 이전
1975. 10. 26 도서관 1층 준공
1976. 10. 16 도서관 2층 증축
1977. 04. 26 새마을 합숙소 준공
1986. 04. 08 구 본관 철거
1987. 10. 23 고등학교 24학급 인가
1987. 09. 16 본관 준공
1988. 11. 20 조회대 및 체육자료실 준공(33회 조병채 기증)
1989. 04. 06 교훈탑 건립
1991. 05. 26 민족정신 선양 기념비 건립
1991. 04. 02 신관 교실 준공
1992. 09. 01 교장관사 준공
1994. 12. 30 성호관(체육관) 준공
1995. 12. 06 성산학사(흥학원) 준공
1995. 12. 06 과학관 건립
1997. 09. 12 흥학관 준공
1997. 04. 13 흥학보국탑 건립
1999. 12. 30 성산학사(흥학원)3층 준공
2000. 04. 16 자유, 평화, 진리 탑 건립
2002. 09. 12 본관 4층 증축 준공
2006. 01. 20 급식소 신축 준공
2009. 04. 12 교직원 사택 준공
2010. 06. 17 성호도서관 준공
2010. 04. 12 성산학사(성호원) 준공
2011. 04. 14 민족교육역사관 개관
2012. 05. 21 운동장 인조 잔디 시설 완비
2019. 04. 14 개교 100주년
2020. 02. 06 제 96회 졸업식(졸업생 170명, 총 18.764명)
2020. 06. 23 본관 리모델링 공사 완료2020. 09. 01제 39대 김영주 교장 부임
2022. 01. 05 제 98회 졸업식(졸업생 132명, 총 19,044명)
2022. 03. 02 제 101회 입학식(121명)
2022. 12. 28 제 99회 졸업식(졸업생 119명, 총 19,163명)
2023. 03. 02 제 102회 입학식(124명)

2.1. 오산학교 시절

서울의 경기고등학교만큼은 아니지만 1919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역사[1]가 긴 학교이다. 초대 교장은 일본인 枡富安左衛門(마스토미 야스자에몬)이다. 다만 초대 마스도기 교장의 교육관에 따라, 일제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육은 한국인이 해야한다라며, 교장직을 사양하고 양태승 前 교장에게 교장직을 이양하였다. 그리고 이사장을 했다 즉 마스도미는 그 당시 몇 안 되는 개념 일본인[2]이라고 평가받는다. 애초에 마스도미가 고창고등학교를 설립한 목적도 한국인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이유가 컸다.

1995년 마스도미 교장 교육훈장 추서 기사

그러나 마스토미의 초기 평가와 달리 최근 학계에선 마스토미 야스자에몬의 행적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그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났다. 실상은 소작민들을 착취하는 일본인 지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육에 이바지한 개념 일본인으로 알려졌지만 초기 농장의 자금확보를 위해 교회를 설립했다는 순수한 종교인이라면 가지기 힘든 기록 또한 나오면서 논란이 있다. 학교의 운영도 과수원에서 나오는 자금으로만 운영했지 농장에서 얻은 수익금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그가 정말로 선의의 일본인이었는가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현재 알려진 개념 일본인이란 이미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이규수, 일본인 지주 마스토미 야스자에몬과 '선의의 일본인'론 재고 논문과 저서 참조

https://www.dbpia.co.kr/pdf/pdfView.do?nodeId=NODE01535134&mark=0&bookmarkCnt=0&ipRange=N&accessgl=Y&language=ko 이규수, 일본인 지주 마스토미 야스자에몬과 '선의의 일본인'론 재고

2.2. 고창고등보통학교 시절

1921년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이 가혹해지고 1차 세계 대전 이후 공황의 여파로 마스토미는 재정 악화로 인해 학교 경영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고창 군민들은 군민대회를 열어 학교를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기금을 모아 마스토미로 하여금 학교 경영권을 산다. 고창군민의 모금운동으로 인수한 오산고등학교는 2층 벽돌 건물로 된 학교 건물을 완성하고 1922년 고창고등보통학교로 개칭 인가받게 된다.

1923년부터 교장에 오른 양태승은 학생들에게 민족독립심 고취와 애국심 함양을 위해 민족적 색채가 짙은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마스토미 교장은 이사장으로 있지만 실질적으로 학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놓게 된다.

고창고등보통학교 시절 항일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참고자료1
참고자료2

2.3. 공립학교로 전환

1944년 사립재단이 전라북도로 강제이관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민족 의식이 강한 학교로 주목받았다.

3. 교훈 및 상징

3.1. 마크

파일:jbkchs-logo.jpg
보리가 高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3]

3.2. 교가

파일:external/gochang.hs.kr/02.gif
2절
임술년(壬戌年)[4]의 봄빛이 성산(聖山)에 들 때 잠깨는 종소리
높이울리니 십여만- 농부들- 괭이를 들고 이 밭을 갈려고 모여 들었네
3절
반등산(半登山) 오르는 붉은 햇빛은 사시(四時)를 비추어 삶의 힘 주고
황해로 흐르는 인내 물결은 주야로 굽어처 북돋아주네
4절
수려한 반등의 위대한 기상 유구한 인내의 무궁한 힘을 우리의
본받아 자강불식(自强不息)해 고원(高遠)한 이상을 도달하겠네

과가에는 고창고등학교에서 따로 교가를 배우지 않고 대신 중학교 1학년 음악 수업 때 배웠었다(...).[5] 하지만 2021년에 고창중학교와 자유중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고[6] 이 해 중학교 신입생들이 2024년 고창고에 입학한 후에는 음악시간에 교가를 배운다.

3.3. 교목, 교화

소나무와 동백꽃이다.

4. 학교 특징

개교 당시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는 민족의식이 강인한 학교 중 하나로 주목받았고 실제로 학교 수준도 높은 정도였으나 지금은 지방에 있는 그저 그런 인문계 고등학교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7]

고창군의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는데, 한 마디로 여느 한적한 여느 시골학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의지 차이가 좀 큰 단점이 있으나, 대체로 학생들이 예의 바르고 순진하다는 평이다.

2011년 잘 꾸며진 민족교육역사관이 준공되었다. 초대 교장의 국적과 개교일, 그리고 민족교육의 산실이라는 표어 3가지를 보면 상당히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학교의 역사가 걸어온 길은 분명한 정체성이 있다.

고창지역의 특수성-장거리 통학으로 인해 기숙사 시설이 존재한다. 기숙형 고교라서 군청 측에서 전기세 정도는 확실히 지원해준다. 아주 더운 여름이 있던 그 해는 전기세만 1억 가까이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입학은 쉬운 편이다. 그냥 입학원서 넣고 시험만 응시해도 붙는다.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약 2004년 이후로 입학 경쟁률이 1:1이었다. 이 현상은 2015년까지 지속되다가 2016년에 처음으로 깨졌다.[8] 이건 입학생들과 재학생들의 수준이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현재 지방보다 더 센 교육열을 자랑하는 도시권 학생들의 영향이 크다.[9] 2017년 고창고등학교 신입생 지원자가 미달되어, 시험만 보면 다 붙었다. 이후 2019년에도 미달이 발생해 6개 반이 될 뻔했으나 각 반당 20명씩을 배정해 7반을 유지했다.

5. 학교 시설

보통 학생들이 공부하고 쉬는 본관, 강당 역할을 하는 성호관, 다목적실로 활용되는 흥학관, 구 고창고등보통학교 강당[10], 기숙형 고교답게 흥학원, 성호원이라는 기숙사가 있다[11]. 출퇴근 시간이 긴 교사들을 위한 교직원 숙소가 있다[12]. 매점도 있다. 도서관에 대해서는 논란과 혼선이 좀 있는데, 자세한 것은 후술한다.

5.1. 본관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건물이 구관, 바로 옆에 작게 있는 것이 신관이다. 구관은 신관보다 지어진 지 더 오래 되었는데, 창문과 같이 약간 손을 본 곳을 제외하면 고창고등보통학교 때부터 그대로 내려온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근데 어째 신관이 더 낡아보인다(...). 이건 예산 문제와 직결되는 점인데, 학교 측에서 예산이 부족해 리모델링을 구관에서만 겨우 했다는 게 그 이유다. 덕분에 신관은 신관답지 않게 창문이 잘 열리지 않거나 여기저기 부서진 물품 등 버려진 건물이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
2019년 11월 수능이 끝난 뒤 리모델링이 진행되었다. 공사 중에는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현재는 리모델링이 끝났다. 2층을 2학년이, 3층을 3학년이, 4층을 1학년이 거의 사용한다.

5.2. 성호관

고등학교 체육 과정으로 인해 주로 1학년이 많이 쓴다. 넓은 공간을 자랑하는데, 천장에 빔 프로젝터도 설치되어 있어 필요할 때마다 리모컨으로 빔 프로젝터를 내린 후에 연결해서 쓴다.[13] 강당 한 구석에는 문이 있는데, 샤워기 걸이가 있던 것을 보면 원래 용도는 샤워실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창고.

5.3. 과학관[14]

과학 교육을 전용으로 하는 건물이다.
1층은 화학실 2층은 물리실과 지구과학실 3층은 생물실과 학생부실이다.
계단이 있던 자리에 화장실을 설치하는 바람에 건물 내부에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으로 가는 계단이 없다. 본관으로 가서 2층으로 올라간 후에 다시 통로를 통해 과학관으로 이동해야 한다.
여담으로 과학관의 모든 화장실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2018년까지는 과학관 화장실에 불도 들어오지 않았으나 이후에는 불이 들어온다.

5.4. 흥학관

다목적으로 이용되는 건물이다. 그래서 말 그대로 안 쓰이는 교실도 있고 쓰이는 교실도 있다. 안 쓰이는 교실 내부를 보면 분위기도 음산해서 기분 나쁘다.[15] 정말 교실처럼 칠판도 있었던 것을 보면 실험이 있는 수업, 이를테면 과학같은 과목을 위해 있었다고 하지만 어차피 실험 안 해도 다 교과서에 나오고 실험할 시간에 글자 한 자라도 더 외워야 하는게 현실이다보니 버려진 것이다. 그래도 엔젤로스가 연습할 때 쓰는 교실도 있고 목공을 배우는 학생들을 위해 안 쓰던 교실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땜빵용 교실이필요하긴 한가보다.
1층에는 목공 체험교실과 밴드부 동아리실, 2층에는 미술실이, 3층에는 음악실이 있다.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잠시 2층에 본교무실과 미술실이, 3층에는 행정실과 교장실, 음악실이 자리잡았다.

2023년 1층에 도서관이 자리잡았다.

5.5. 기숙사

기숙형 고교라서 학교 뒷편에 기숙사가 존재한다. 기숙사에서 묵고 있는 학생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에어컨이나 히터 정도는 빵빵하게 틀어준다고 한다[16]. 어느정도 기숙사비를 받고 있는데 흥학원이나 성호원이나 가격은 똑같다. 다만 시설은 흥학원이 성호원보다 더 안 좋은 편이다. 학생들의 불만사항은 기숙사 일정이 빡세다는 건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주는 유인물을 보면 알겠지만 눈알이 빠질 정도는 아니고, 비기숙사생들보다 조금 더 힘들긴 하다. 학교에 있는 시간을 포함, +α로 공부를 더 해야 한다. 흥학원은 10시 15분부터 11시까지 따로 자율학습을 의무적으로 시행하지만, 성호원은 자율학습을 시행하고 있지 않고, 심야 자율학습만 한다.
흥학원, 성호원 두 기숙사 모두 호실 내에 화장실이 없다.
퇴사할 때에는 담임교사, 본인, 부모님이 동의하는 퇴사서가 필요하다.[17]
기숙사를 나가면 6개월 뒤 재입사 가능이라는 패널티가 적용된다.

5.5.1. 흥학원

일반 학생은 이곳에서 자고 씻고 공부할 수가 없다. 성적 우수자들만 받는 기숙사로[18] 일종의 VIP 대접이라 볼 수 있다. 물론 3등급 이내로 든다고 무조건 기숙사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고 기숙사에 들어올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참고로 규칙과 벌점, 상점 제도가 있는데 성호원보다 훨씬 좋게 대해준다. 쉽게 설명하면, 벌점이 주어지는 경우에 '충전기를 꽂아두고 학교에 가는 경우'가 있는데, 성호원에 묵는 학생들에게는 이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기를 요구하지만, 흥학원은 그리 엄격하게 지키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엄연한 차별이지만, 학교 내에 있는 학생들도 '쟤네들은 공부 잘하니까'라는 이유로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성적으로 모든 것이 판가름되는 고등학교의 어두운 면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기숙사에 묵으려는 학생이 줄어들면서 상기한 대로 일정이 조금 빡세다. 기존 심야 자율학습 시간은 비시험 기간에는 1시까지, 시험기간에는 2시까지였으나 최근에 들어서 시험기간이든 아니든 시간 제한없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원하는 대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참고로 흥학원생들은 야간자율학습이 12시까지는 의무적이다.

2018년 12월 인원 부족으로 인해 성호원과 통합될 위기에 처했다. 원인은 인원 부족 및 관리 비용의 낭비이다[19].

2019년 흥학원과 성호원의 통합은 거의 확실시되었고 흥학원 건물은 관사로 사용 예정이라고 한다. 그럴거면 석면공사는 하지 말던가

현재는 흥학원이 성호원과 통폐합되었고 성호원 2층을 분리하여 흥학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존에 쓰던 흥학원은 예정대로 관사로 사용되고 있다

2018년 12월 인원 부족으로 인해 성호원과 통합될 위기에 처했다. 원인은 인원 부족 및 관리 비용의 낭비이다[20].

2019년 흥학원과 성호원의 통합은 거의 확실시되었고 흥학원 건물은 관사로 사용 예정이라고 한다. 그럴거면 석면공사는 하지 말던가

현재는 흥학원이 성호원과 통폐합되었고 성호원 2층을 분리하여 흥학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존에 쓰던 흥학원은 예정대로 관사로 사용되고 있다
기존에 쓰던 흥학원은 1층을 목공실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방치되고 있다.-- 담배피는 학생의 소굴이 되었다.

5.5.2. 성호원

일반 학생들도 신청하면 묵을 수 있는 기숙사.
기숙사 담당부장 교사에게 기숙사 입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1~2주일 정도 기다린 후에 허가가 떨어지면 자기가 들어가고 싶은 방에 생활하면 된다.[21] 신청자에 한해서 받는다. 흥학원이나 성호원 둘 다 시설 자체는 깨끗하고 좋은 편이나, 흥학원은 건물 자체가 오래전에 지어진 것인 반면[22] 성호원은 증축한지 오래되지 않아 흥학원보다는 성호원이 더 깔끔해 보이고 더 크다 [23] 성호원과 흥학원이 붙어있으니 비교하면서 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2021년 기준 2층에 2학년, 3층에 1학년, 4층에 3학년이 있다.

2021년 내부 공사로 인해 몇 달간 흥학원에 머물었다. 시설이 너무 안 좋아서 고생좀 했다. 내부 공사 이후에는 전 호실 신식 에어컨이 장착되었고, 보일러도 개선되었다.

4층 중앙계단에 갑자기 소방용 셔터가 내려와 사실상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21년 9월 7일 원인불명의 사고로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24]

5.6. 교직원 숙소

보통 학교에서는 관사라 칭한다. 강당으로 쓰이는 성호관 옆 쪽에 있는 관사가 신 관사, 흥학원 길 아래로 내려가는 쪽에 쓸쓸히 존재하는 낡은 건물이 구 관사다.

5.6.1. 구 관사

일반 집처럼 생겼는데 관사다. 즉, 교사들이 묵을 수 있는 건물이긴 하다만, 시설 자체가 매우 열악해서 웬만해서는 그곳에서 묵지 않으려고 한다. 지내본 교사의 말로는 일반 가정집 보일러가 아니라서 겨울에 기름통 들고 기름을 부어줘야 하고, 기름을 넣었다고 해도 방바닥이 따뜻해지지 않아서 전기장판을 깔아야 할 뿐더러 따뜻한 물도 금방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전기장판에 들어가서 이불 덮고 숨 쉬면 입김이 나온다고. 여름에는 문 열어놓고 지내면 그럭저럭 보낼 만 하지만 겨울에는 그야말로 혹한기 훈련이다. 구 관사에 지내던 교사가 신 관사로 옮겼을 당시에는 따뜻한 물이 바로 나오는 게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5.6.2. 신 관사

다른 건물에 비하면 지은지 오래되지 않은 신 건축물이다. 내부 모습이 비밀이었으나 고창고등학교 교지인 성호 제 34호에서 전격 공개되었다. 그냥 일반적인 집인데 평수에 비하면 가격은 싸다고 한다. 따뜻한 물도 잘 나온다.

5.7. 모듈러 교실

2019년 본관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수업교실 확보가 어려워 모듈러 교실을 지어서 2020년 2학기까지 생활하였다. 총 2층 건물로 학년 교무실과 보건실만 임시 건물 내부에 있고 본교무실과 행정실, 교장실은 흥학관으로 이전하였다. 학생들은 2019년 12월 16일부터 생활을 시작하였다.
1학년은 1층에, 2학년은 2층에, 3학년은 1, 2층에 있으며 과학관은 공사를 진행하지 않아서 과학시간만 되면 다들 과학관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본관보다 컨테이너 시설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포스코의 철강재를 이용해 제작하고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공급했다. 건물 사진은 이 링크를 참조하자. #

6월 31일 본관 리모델링이 완공되어 학생들이 모두 본관으로 책상과 의자를 나르면서 모듈러 학교 생활이 끝이 났다. 7월 18일 기준 해체작업이 진행중이다.

6. 학교 생활

아침시간에 10분간 영어듣기를 한다.[25]
점심 먹을 때는 학년 순서대로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시간]
저녁 먹을 때도 같은 시간이 정해져있다.

6.1. 학교 일과


이후 3학년은 추가 야자를 한다.
1, 2학년은 매주 수요일 5, 6교시에 동아리 활동을 진행한다.

타 고등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등교 시간은 오전 9시가 아니라 오전 8시 10분까지다.[28] 그나마도 이게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나서 늘려 준 거다. 근데 학생인권조례가 생기자마자 등교 시간을 늘려준 게 아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4~5년 전만 해도 전교생 모두 등교 시간이 오전 7시 40분이었다.

6.2. 주요 행사

합창제와 성호제가 통합하여 진행한다. 학생 수 감소로 축제규모 축소가 원인인듯 하다

6.2.1. 체육대회

반 대항전으로 학년 내에서 경쟁한다.
승리하면 상금과 상장이 주어진다.[29]

6.2.2. 학교축제

명칭은 성호제이다.
오전에는 동아리 학생들이 부스를 운영하고 오후에는 장기자랑이나 외부 댄스팀의 공연을 관람한다. 마지막에는 경품 추첨도 진행한다. 학생회의 주도로 이루어지며 심사도 진행한다.
미리 예선을 진행한 e 스포츠 대회[30]의 결승도 진행한다.

6.2.3. 합창제

학교의 모든 반[31] 지정곡 1곡과 자유곡 1곡을 가지고 서로 경연하는 대회이다. 각 학년별의 1,2,3등에게 상금을 수여한다.

특이하게 2019 합창제에서는 지정곡[32]이 있었으나 진행하지 않고 자유곡 1곡씩 준비해서 진행하였다.

6.2.4. 스포츠 리그

반 대항전으로 종목은 농구와 축구가 있다. 진행 방식은 토너먼트 형식이다.
1등 반에게는 상금을 수여한다.

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터미널 기준으로 도보는 약 10분 이내정도다.
만약에 읍내에 거주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터미널에서 8번(석정온천) 버스를 타고, 군청에서 내려 2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다.

8. 기타

9. 출신 인물


[1] 2019년 4월 19일에 개교 100주년이 된다.[2] 그는 기독교 장로 직분이였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교육유공 국민훈장을 추서받는다.[3] 학교 정문에 해태 석상 2개가 떡하니 있어서 학교 상징이 해태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고창고등학교의 상징은 보리다.[4] 壬戌 :1922년에 운영난에 봉착한 오산학교를 고창군민들의 성금으로 인수하여 고창고등보통학교로 인가 받은 해.[5] 원래 고창중학교가 고창고등학교에서 독립한 학교다.[6] 이 과정에서 고창중학교의 교가 가사가 일부 수정되기도 했다.[7] 사실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백날 민족교육에 개교 100주년을 바라본다고 떠들어봐야 돈 왕창 때려박아서 지은 고등학교, 특히 자사고보다 입지가 좁다. 특히나 시골에 있다는 점이 취급 수준을 더욱 떨어뜨린다.[8] 2016년 고창고등학교 신입생 지원자 중 약 18명 가량이 떨어졌으니 아주 근소한 차이로 깨진 것이다.[9] 애초에 도시와 시골에서의 교육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10]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 17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탁구대, 운동기구등이 위치하고 있어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 피트니스클럽의 동아리실이다.[11] 흥학원은 성적우수자들이 따로 머무르는 기숙사이다.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12] 이 역시 구관과 신관이 나뉜다. 학교 내에서는 관사라고 칭하는 모양이다. 예를 들면 '구 관사' 혹은 '신 관사' 이런 식으로.[13] 여러 행사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14] 정식명칭이 아니다.[15] 건물 위치 때문에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16] 몇몇 학생들은 더워서 창문이나 호실문을 조금 열고 잔다.[17] 가끔 동의를 안 해주는 교사들이 있는데, 이 경우는 너무 빨리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8] 내신 + 모의고사 성적 22등 이내만 가능하다.[19] 흥학원생과 성호원생의 비율은 약 1:4 정도 되지만 전기료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다고 한다.[20] 흥학원생과 성호원생의 비율은 약 1:4 정도 되지만 전기료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다고 한다.[21] 성적 순으로 1,2층 그리고 3,4층으로 나눈다.[22] 일제시대에 지어졌다는 말도 있다.[23] 1층은 예전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낡아 보인다.[24] 3학년들은 1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수단 3가지 중 두 가지가 사용이 불가능해서 오른쪽 끝에 위치한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25] 필수인 것 같지만 사실상 아니다.[시간] 3학년 12시 30분, 2학년 12시 40분, 1학년은 12시 50분[27] 코로나19로 인해 등교시간과 일과시간이 변경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등교시간은 그대로이다.[28] 20분으로 변경되었다가 코로나19로 인해 30분으로 변경되었다.[29] 각 종목당 상장도 있고, 우승한 반의 MVP에게는 따로 상을 준다.[30] 주로 종목은 리그 오브 레전드이다.[31] 3학년 제외[32]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33] 학교 홈페이지가 전체적으로 리메이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화 교목이 보이지 않는다.[34] 사실 이렇게 풍수지리적인 명당 자리는 그리 많지가 않다. 기껏 해봐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전부. 그래서 명당 자리 자체는 희소성이 높은 편이다.[35] 2024년 기준 남녀공학 전환 계획은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