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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6 06:46:47

고텐바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발단3. 체포4. 재판
4.1. 소년심판4.2. 1심(시즈오카 지방 법원 누마즈 지부)
4.2.1. 알리바이/증인4.2.2. 진술 번복4.2.3. 2001년 9월 9일의 날씨4.2.4. 판결
4.3. 2심(도쿄 고등법원)
4.3.1. 9월 9일의 알리바이4.3.2. 정말 범행 현장은 비가 내리지 않았는가?4.3.3. 의문점4.3.4. 판결
4.4. 상고
5. 수감6. 결백을 믿어주는 사람들

1. 개요

御殿場事件

시즈오카현 고텐바시 고텐바역 근처에서 2001년 9월 9일에 발생한 여고생 집단 강간 미수 사건.

피해자의 진술에 모순된 점이 많고 재판 중에도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나자 사건 발생 날짜를 바꾸는 등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져 엔자이 사건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2. 발단

2001년 9월 16일 일요일 시즈오카현 고텐바시에 거주하던 고등학교 1학년 A가 밤 늦게 귀가하였는데 왜 늦었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강간을 당했다고 이야기했다.

다음날인 17일 A의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하였으며 당시 A가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날 고텐바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 55분경입니다.
개찰구를 나와 역 계단을 내려가던 중 중학교 동창생인 B군이 "오랜만이야, 나 기억하지?" 하고 친구와 함께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제 손목을 강제로 잡고 끌고 갔으며 부모님께 늦는다는 전화를 하라고 강요했습니다.[1]
가는 도중 8명의 친구들과 합세하여 총 10명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8시 20분경 중앙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고등학교에 다녀?", "남자친구는 있어?" 등의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리더격인 남자가 나서서 저를 넘어뜨린 후 몸 위로 올라타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의도 벗겼으나 생리대를 착용 중인 것을 보고 하체에 손을 대지는 않았습니다.[2]
그 후 돌아가면서 제 위에 올라탄 후 가슴을 만지는 등의 음란행위와 성적인 말들을 했습니다.
모두 끝내자 리더격인 남자가 "경찰과 부모에게 고자질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저는 옷을 추스르고 집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혹시 따라올까 무서워 도중에 편의점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집에 돌아온 것은 자정 무렵입니다.

3. 체포

11월 26일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B가 임의 동행 요청을 받고 경찰서에 끌려온다.

경찰은 B에게 A와 있었던 사건에 대해 물었으나 "모르는 일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는데 경찰이 "인정하지 않으면 죄가 커지지만 인정할 경우 죄가 가벼워 지므로 바로 풀러날 수 있다."고 B를 회유하자 죄를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

이후 경찰은 공범을 찾기 위해 B에게 요즘 어울리는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었으며 B는 친구나 중학교 동창생, 선배 등의 이름을 알려줬다.[3]

B가 알려준 명단을 토대로 B를 비롯해서 C, D, E, F(당시 고등학교 2학년), G, H, I, J(당시 고등학교 1학년), K(당시 중학교 3학년) 총 10명의 소년들이 속속 구속되었다.

구속 후 조사 과정에서 처음에는 모두 범행을 부인했지만 길어지던 조사로 소년들은 지쳤고 "재판으로 가게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이 많이 든다."[4]는 등의 회유 및 강요로 일부는 범행을 시인했다.

4. 재판

4.1. 소년심판

2002년 3월 시즈오카 가정 법원 누마즈 지부에서 소년심판이 열렸다.

피고인들의 부모들은 사건 당일 범행 장소에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와 그것을 증언해 줄 사람들을 찾았으나 증인들의 대부분이 가족 및 지인들이어서 정식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C, D, E, F는 가정 법원에서 판단할 수 없어 형사 재판으로 송치되었고 B, G, H, I는 소년원으로 송치[5]되었으며 나머지 2명은 집행유예 및 불처분을 선고받았다.

4.2. 1심(시즈오카 지방 법원 누마즈 지부)

2002년 5월 30일에 열린 첫번째 공판에서 피고인 4인은 모두 자백은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 재판에서 사생활 보호를 위해 A는 별실에서 마이크를 통해 재판에 참여했다.

4.2.1. 알리바이/증인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거로 피고인들을 사건이 일어난 날의 알리바이를 제출하고 증인을 신청했으나 모두 반박 당했다.

A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들려서 도움을 요청했다고 진술한 편의점의 점주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사건 당일 A를 본적 있는지 물었으나 본적이 없 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검사는 "이 증인은 피고인 가족과 친하게 지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증언에 신빙성이 없습니다." 라고 반박했다.

4.2.2. 진술 번복

피고인측 변호인 질문 과정에서 몇 가지 모순점이 나왔고 A는 진술을 번복했다.
변호인: 당신은 편의점에서 집에 전화를 했습니까?
A: 네
변호인: 이상하군요. 당신 휴대폰에서 그 시간에 발신한 기록은 없습니다.
A: 전화하려고 했지만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 전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변호인: 팔을 억지로 붙잡혀서 공원까지 끌려갔는데, 당신은 저항을 했습니까?
A: 강하게 잡고 있어서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변호인: 그 시각 당신의 휴대폰 이력을 보면 메일을 주고 받는 중이었습니다.
A: 사실은 말을 걸어 준 게 기뻐서 스스로 따라갔습니다.
변호인: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A: 헤픈 여자라고 생각되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B의 강요로 인해 A가 부모님께 늦을 것 같다고 전화한 시간은 오후 8시 5분경이었지만 불과 1분 후[7]다른 남성에게 전화한 기록이 있었다.

변호인은 이때 A가 전화한 다른 남성인 Y(당시 19세)를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증인대에 선 Y는 "폰채팅을 통해 그날 밤 A와 만났으며 적어도 3시간은 같이 있었고 카섹스를 했다."고 증언했다.[8]

A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으나 Y의 핸드폰에 A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기록이 남아 있다고 이야기하자 결국 울면서 "죄송합니다, 거짓말을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9월 16일 A와 Y의 휴대폰 착신/발신 이력과 Y의 증언에 의하면 그날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변호인이 A에게 "범행 시간대에 사실은 다른 남성과 만났던 것이 아닌가?" 하고 묻자 A는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해서 모두에게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A가 본인의 진술을 거짓말이라고 인정함으로써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원래는 9월 16일에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사실 사건이 있던 날은 9월 9일이었습니다."

그리고 A는 다음과 같이 전체적인 진술을 번복했다.
이전 진술 번복된 진술
사건 일자는 9월 16일사실은 일주일 전인 9월 9일
강제로 끌고 갔다.말을 걸어 준 것이 기뻐 스스로 따라갔다.
늦는다고 부모님께 전화할 것을 강요그런 적은 없다.[9]
생리 중이었기 때문에 강간을 피했다.생리는 시작 전이었으나 분비물이 많아 생리대를 착용했다.
집에 도착한 것은 자정 무렵오후 11시 전에 집에 도착했다.[10]

A는 "16일 늦게 귀가한 것을 어머니에게 변명하기 위해 그 전에 당한 것을 이야기 했더니 경찰에 피해 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피해 자체는 사실이니까 언제 당한 것인지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고 경찰이 범인을 꾸짖고 가볍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크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범행일을 9월 16일에서 9월 9일로 변경하는 취지의 소송 원인 변경 신청을 하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지만 이는 "9월 16일 범행" 이라고 했던 피고인들의 기존 자백과 불일치했고 피고인들은 이 모순이 자백을 강요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모순이 보이는 점은 인정하지만, 피고인들의 자백 및 진술 내용이 피해자의 진술과 대체로 일치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다."며 기각했다.

3번째 공판 이후 2002년 10월 15일 보석으로 피고인 4명은 풀려났다.[11]

4.2.3. 2001년 9월 9일의 날씨

이 날은 태풍 15호가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폭우와 홍수 주의보가 내렸으며 고텐바시 주변에는 일일 강우량 45mm 이상의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A는 "날씨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바람이 불었던 것은 기억난다. 우산을 쓴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다.

다만, "공원 분수의 안개인지, 비의 안개인지 모르지만 안개같은 것이 얼굴에 내린 기억이 있다." 또는 "집으로 돌아갈 때 가끔 비가 조금씩 내렸다."고 진술한 적은 있다.

피고인 측은 A가 비에 대해서 별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12] 진술을 신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제출한 강우량에 대한 데이터는 다음과 같다.

이를 바탕으로 공원에만 비가 내리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고 확률론적이지만 적어도 30분 이상 비가 그친 적은 없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제출했다.[13]

하지만 검찰 측 증인인 시즈오카 지방 기상대 관계자가 "강우량은 몇 mm의 오차가 있고 관측 지점과 500m 떨어진 중앙공원의 강우량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mm의 강우량이 관측되어도 범행 현장에서 같은 정도의 비가 내렸다고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라고 진술해 이 주장은 기각되었다.

4.2.4. 판결

여러 차례의 공판을 거친 후 2005년 10월 27일 징역 2년의 실형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장은 "A가 범행 일시를 거짓으로 진술했기 때문에 심리가 장기화되었으므로 검찰이 구형한 3년에서 2년으로 형을 감형한다. A는 사건의 중요한 정보에 대해 거짓말을 했지만 그 이유는 납득이 가능한 일[14]이며, 변경된 진술 내용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고인 측은 바로 항소하기 위해 항소 동의서를 제출하려고 했으나 동의서 작성에 필요한 1심 판결서 제출이 계속해서 미뤄졌고 결국 1심 판결에서 반 년 가까이 지난 후에야 항소심을 신청할 수 있었다.

4.3. 2심(도쿄 고등법원)

2006년 12월 13일에 진행된 2심에서도 1심에서 제출된 증거와 증언들을 바탕으로 재판이 이루어졌다.

4.3.1. 9월 9일의 알리바이

4명의 피고인들은 범행 시각 친구의 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부모의 가게에서 일을 하는 등의 알리바이가 있었으나 모두 지인과 주변인의 증언뿐이라 기각되었다.

D는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고텐바 인근 고기집에서 식사를 하였고 11시 30분에 노래방에 갔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그날 방문했던 고기집을 확인하자 D의 성이 적힌 전표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재판관은 전표에 적힌 성은 이 주변에서 흔한 성이라 이 전표의 주인이 피고라고 단정할 수 없고 매년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았는데 이 해에만 축하한 것은 부자연스러우며 노래방 이용 내역을 보면 피고인이 주장한 시간과 차이가 있어 피고인이 11시 30분까지 고기집에 있었다는 것은 허위라며 알리바이를 부정했다.

4.3.2. 정말 범행 현장은 비가 내리지 않았는가?

범행 시각과 동일한 시각에 범행 장소와 200m 떨어진 곳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교통사고를 다룬 손해 보험 회사의 자료에 따르면 날씨는 "비"로 기록되어 있었다.

사고 당사자는 "사고 뒤 비가 억수같지 오지는 않았지만 우산을 쓰지 않으면 젖을 정도였습니다."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검찰이 제출한 다음의 데이터로 인해 1심과 같이 2심에서도 사건 현장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소방본부의 기록은 시즈오카 현경이 작성한 기상 상황 표로, 경찰이 실제 기록과는 다르게 작성한 것이 확인되었으며 시청 농업 연수 센터의 경우 강우량을 기록하는 용지 설정이 12시간이나 어긋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제출된 데이터는 9월 10일 오전 9시부터 오전 10시까지의 데이터였고 정상적인 강우량은 2.5mm로 확인되었다.

검찰이 잘못된 데이터를 제출했으므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기존에 피고인 측에서 제시한 강우량 데이터가 증거로 채택되어야 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4.3.3. 의문점

A는 중앙공원의 정자가 공사중 테이프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옆 잔디밭에서 범행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범행 일자가 처음 이야기한 9월 16일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중앙공원 관리사무소에 문의 결과 공사는 9월 14일부터 시작되었으므로 9월 9일에는 공사중 테이프가 붙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사건 당일 입었던 A의 의류[15]나 폭행으로 부상을 입은 사실 또는 이 사건을 목격한 목격자처럼 객관적인 증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 측 증거는 피고인들의 자백 조서만 있는데 체포된 10명 중 어느 누구도 사건이 발생한 날이 9일이라고 진술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상하고 피고인들도 자백 시 공사중 테이프를 봤다는 진술을 했는데 결국 이 부분이 사실과 달랐는데도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삼는 일은 없었다.

판결에서 A가 공사중 테이프를 착각한 건에 대해서는 "사건 당시는 밤이라서 정확히 주변을 인식할 수 없었을 것이며, 9월 21일 A가 사건 현장을 답사했을 때 공사중 테이프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9월 9일에도 봤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이므로 진술의 일부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아도 진술 전체의 신빙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피고인들의 진술은 엄격한 잣대를 들어 판단[16]하거나 자백을 강요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부분들은 무시한 반면 A의 진술은 착각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모두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4.3.4. 판결

2007년 8월 22일 항소심 판결에서는 원심의 판결을 깨고 징역 1년 6개월로 감형되었다.

재판장은 "피해자의 진술은 문제가 있었지만 일자를 제외하고는 내용에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으며 날씨는 현장 주변의 우량계가 0.0mm였고 부근의 교통 사고 당사자의 증언 및 전문가의 증언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사건 현장에 비가 내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들었다. 피고인 측은 즉시 상고했다.

4.4. 상고

피고인 측은 공원에만 비가 내리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증언한 전문가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은 것을 납득할 수 없고 비에 관한 사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쟁점화했다.

도쿄대학, 홋카이도대학, 도호쿠대학의 명예 교수 3명에 의한 9월 9일 날씨의 객관적인 분석 자료도 준비했으며 당시 공원에 비가 왔음을 뒷받침해 주는 여러 자료들을 함께 첨부하여 상고했으나 결국 상고는 기각당했다.

결국 4명의 피고인들에게는 1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되었으며 체포된 소년들 중 최연소였던 K도 보호 관찰 처분이 취소되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되었다.

5. 수감

대법원 판결에서 1개월 후인 2009년 5월 말 피고인들은 시즈오카 지검 누마즈 지부 근처의 가까운 감옥에 수감되었고 몇 개월 후 가와고에 소년 교도소로 이동되어 복역했다.

수감 전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 지지자들[17]이 지켜보던 가운데 "반성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들이 복역하는 동안에도 남겨진 가족들은 그들의 결백을 호소하고 피고인들도 "우리는 흡연이나 망나니 짓이나 하던 정도의 불량소년들이었지만 이 사건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우리가 불량했기 때문에 믿어주지 않았던게 아닐까"라고 이야기했다.

형기를 다 채우고 출소한 피고인들은 A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으나 기각당했다.

6. 결백을 믿어주는 사람들

고텐바 지역에 "무고한 소년들을 지키는 모임"이 생겼고 국민 구원회와 변호사 연합회에서도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사히 TV에서 10년에 걸쳐 취재했으며 보도 프로그램에서 해당 사건을 자주 언급했다. 특히 2009년에 방송된 "그래도 우리는 하지 않았어-부모와 자식의 투쟁 3000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큰 반향을 일으켜 이 사건의 지명도가 크게 상승하는 데 기여했다.

2018년 2월 11일 방영된 TBS의 드라마 99.9 Season 2 5화에서 위 사건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방송되었다. 사실과는 다르게 유죄 처분을 받지 않았으며 이 방송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1] 이때 A는 부모에게 전화하여 전철이 멈춰서 늦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2] 처음에는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했으나 생리 때문에 강간하지 못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3] 이 과정에서 경찰은 B의 중학교 졸업 앨범을 가져와 '이 중에 범인이 있다'고 했으며 B는 잘 몰라서 아는 얼굴을 적당히 가리켰다고 한다.[4] C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5] 2002년 12월 퇴원했다.[6]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종업원이 검찰에 의해 협박을 받아서 무섭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했다고 한다.[7] 정확하게는 오후 8시 6분 14초[8] Y는 그 다음 공판에서 검찰측의 증인으로 출석해서 A와 만난 것은 기억하지만 얼마나 같이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증언을 번복했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것으로 인해 검찰의 협박을 받고 증언을 번복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9] 이는 16일 전화한 것과 앞뒤를 맞추려고 했다고 진술했다[10] 이 또한 16일에 귀가한 시간과 맞추기 위해 사실과 다르게 진술했다.[11] 보석기간 중 피고인들은 가족까지 포함해서 서로 만나서는 안 되며 3일 이상 집을 비울 경우 신고하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12] 비가 이렇게 내리는 상황에서 잔디 위에 쓰러뜨린 후 올라타서 성추행을 했다면 옷도 더럽혀졌을 것이고 내리는 비와 잔디에 고인 물에 꽤 고생을 했을텐데 이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건 확실히 이상하다.[13] 이 의견은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14] 피해를 당한 후 강한 입막음을 당했고 그것이 무서웠으며 스스로 쉽게 따라가 피해를 당한것이 부끄러워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을 거란 의견이 있었다.[15] 잔디 위에 넘어뜨린 후 올라타 성추행을 했으므로 분명 옷이 더렵혀졌을 것이다.[16] D의 알리바이 중 고기집에서 나온 후 노래방에 갔다고 진술한 시간이 실제와 다르기 때문에 거짓말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는 D가 단순히 시간을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17] 엔자이 사건이라는 의혹이 나오면서 이들의 결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