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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3 05:12:16

과르네리

파일:과르네리.jpg
위 바이올린은 니콜로 파가니니가 쓰던 1743년에 제작된 과르네리이다.
소리가 커서 '대포'란 뜻의 Cannone이란 별명이 붙었다.[1][2]

1. 개요
1.1. 의미
2. 가치
2.1. 명성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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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uarneri del Gesu

이탈리아의 악기 제작자 가문인 과르네리 가문에서 만든 현악기들의 통칭. 주로 바이올린이지만 첼로도 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바이올린 중 하나이다.

1.1. 의미

안드레아 과르네리로부터 시작된 과르네리 가문의 현악기를 통칭하며, 안드레아 과르네리의 손자인 바르톨로메오 주세페 과르네리가 가장 유명하다. 과르네리 중에서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비교되는 과르네리 델 제수는 특히 바르톨로메오 주세페 과르네리가 만든 현악기들로 주로 바이올린이 대부분이다. 가톨릭 신자였던 바르톨로메오 주세페 과르네리는 항상 자신이 만든 악기에 인류의 구원자 예수란 뜻의 그리스어 약자 I.H.S. (iota-eta-sigma)와 십자가를 라벨의 문양으로 넣었는데 그 때문에 예수란 뜻의 델 제수(del Gesu) 라는 별명을 얻었다.

2. 가치

바이올린의 경우 스트라디바리우스, 아마티 혹은 과다니니와 더불어 올드 바이올린의 삼신기로 꼽힌다. 그 품질은 물론이거니와 주세페 과르네리가 40대의 젊은 나이로 죽었기 때문에 현재 전해 내려오는 악기가 전 세계에 150여 개밖에 없고, 거기다가 20~30개는 가짜로 추정되는 데다가 그중에서도 많은 수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에 희소성까지 더해져 가격은 거의 부르는 게 값이다. 그 예시로 2010년, 1741년산 과르네리 비외탕(vieuxtemps)이 1600만 달러(약 179억 원)에 낙찰되어 바이올린 최고 경매가를 갱신했다. 사실 Vieuxtemps Guarneri del Gesu는 경매가 아닌 개인거래로 판매된 것인 듯하다.

참고로 비공식 1위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메시앙[3](추정가 약 2000만 달러)이다.

루이지 타리시오가 프랑스로 들여오기로 약속해놓고 평생동안 이행하지 않았기에, 프랑스의 제작자, 딜러, 연주자들이 이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에게 메시아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후 타리시오 사후 비욤이 발견해 취득 후 매각했다.

메시아는 영국의 에쉬몰리안 박물관의 소유로, 거래가 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상징적인 가격이 아닐까 싶다. 파가니니의 캐넌이 현재 1억불의 가치로 추산된다는 얘기와 비슷한 케이스.

2.1. 명성

스트라디바리우스와는 또 다른 개성의 뛰어난 사운드로 유명하며, 또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이미 갖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 엄청난 바이올린 연주 테크닉으로 인하여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렸던 니콜로 파가니니가 가장 아끼던 악기 역시 위 사진에 나오는 '캐논' 이라는 이름이 붙은 과르네리였다. 이외에도 야샤 하이페츠, 프리츠 크라이슬러, 아이작 스턴, 이작 펄만, 기돈 크레머, 핀커스 주커만, 장영주 등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사랑했던 악기이기도 하다. 명연주가였던 예후디 메뉴힌은 그의 스트라디바리 소일(Soil)을 이작 펄먼에게 팔고 과르네리 델 제수 로드 윌튼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요요마는 250만 달러(약 30억 원)짜리 과르네리 첼로를 뉴욕 택시에 두고 내렸다가 경찰의 도움으로 되찾은 적도 있다고. 요요마는 몬타냐나 첼로와 뒤프레가 쓰던 스트라디바리 총 2대의 메인 악기로 연주하는데, 택시에 두고 내렸던 악기는 몬타냐나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몬타냐나 첼로의 위상은 바이올린에서 델 제수가 차지하는 위상과 거의 대등하다. 또, 외신 기사들을 찾아보면 1733년산 스트라디바리 첼로를 택시에 놓고 내렸다는 기사가 많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도 1717년 과르네리 델 제수를 소유 중이고[4], 정경화는 무려 두 대의 과르네리를 소유 중이었다가 이 중 1734 Rode는 2021년 매각한 것으로 알려진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바이올리니스트)는 1730년 제작된 과르네리를 독일 정부 산하 기관에서 약 12년간 무상 지원을 받은 후, 2014년부터 1735년에 제작된 과르네리를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기타


[1] 현재는 '내 바이올린, 내 영혼을 이제부터 영원히 제노바에 기증하노라' 라는 파가니니의 생전 유언에 따라 이탈리아에 있는 제노바 시청에서 보관 중이다.[2] 바이올린도 지속적인 연주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Mario Trabucco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지속적으로 연주하며 악기 제작자 등, 여러 위원들이 관리해주고 있다. 또 매년 10월 12일에 이탈리아의 제노바에 있는 카를로 펠리체 극장에서 Premio Paganini라는 콩쿠르가 열리는데 이 콩쿠르 우승자에게 여러 부상, 녹음 기회와 함께 과르네리 캐논으로 연주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준다고 한다. 한국인 우승자로는 양인모김다미가 있다.[3] 프랑스의 작곡가 이름으로 유대교에서 구세주를 뜻하는 "메시아" 가 맞다.[4] 상기된 아이작 스턴이 사용하던 과르네리를 14세에 물려받았다.(정확히는 스턴에게서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