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音普
? - 1374년
1. 개요
고려의 반란자. 목호의 난 때 석질리필사, 초고독불화와 함께 주요 지도자였다.2. 생애
1374년 8월 28일 고려군이 명월포로 상륙하자 석질리필사, 초고독불화 등과 함께 목호군을 이끌고 싸웠다.[1]초반 목호군은 고려와의 협상을 거부하고 고려군 선발대를 전멸시키는 선전을 거뒀으나,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 본대와의 싸움에서 밀린 목호들은 오늘날 서귀포시 범섬까지 쫓기게 되었다. 최영이 배 40척을 동원해 목호들이 농성하고 있던 범섬을 공격하자석질리필사는 처자식들과 함께 투항하고 관음보는 초고독불화와 함께 벼랑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2]3. 기타
조선왕조실록에서 관음보라는 인명이 몇 차례 등장하는데, 모두 중국인 인명으로 기록되어 있다.[3][1] 최영 열전에 의하면 당시 목호군은 기병 3000여명과 보병들을 동원했다고 한다.[2] 항복한 석질리필사는 세 아들들과 함께 허리가 잘려 처형당했는데, 1362년에도 초고독불화, 탐라성주 고복수와 함께 고려에 배반하는 반란을 일으킨 전적이 있는데다 반란군 수괴였으니 처형한 것으로 보인다.[3] 태종실록 태종 17년 2월 10일 정묘일 기사에 등장하는 예관음보(倪觀音保), 세종실록 세종 18년 6월 7일 임인일 기사에 등장하는 관음보(觀音保), 문종실록 문종 1년 5월 15일 기사에 등장하는 최관음보(崔觀音保), 영조실록 영조 33년 7월 25일 을묘일 기사에 등장하는 관음보(觀音保)로 총 4명이 등장하는데 모두 중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