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6:22:00

궁이양


성명 궁이양(弓履陽)
이명 궁이순(弓履淳), 김일수(金日洙)
생몰 1876년 ~ 몰년 미상
출생지 평안남도 개천군 개천면 운양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궁이양은 1876년생이며 평안남도 개천군 개천면 운양리 출신이다. 그는 1920년 12월 17일 조용하(趙用河)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을 결성하여 대한독립광복군(大韓獨立光復軍)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뒤 같은 해 12월 28일 순천군 백낙현, 12월 29일 봉명면장(鳳鳴面長) 김형철(金瑩哲), 1921년 1월 18일 개천군 현기덕(玄基德), 3월 15일 순천군 김관호(金寬鎬)의 집 등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만주 관전현에 소재한 대한독립광복군에 찾아가 국내 사정을 보고했고, 1921년 2월 이웅해(李雄海)로부터 평안도 지방대(地方隊) 참의장(參議長)으로 임명된 뒤 평안도와 황해도에 대한독립청년단의 연락기관을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21년 11월 18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살인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궁이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