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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 더글러스 애덤스
<colbgcolor=#111><colcolor=#fff> Graham Chapman 그레이엄 채프먼 | |
본명 | Graham Chapman 그레이엄 채프먼 |
출생 | 1941년 1월 8일 |
영국 잉글랜드 레스터 | |
사망 | 1989년 10월 4일 (향년 48세) |
영국 잉글랜드 메이드스톤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장 | 193cm |
직업 | 코미디언, 배우, 작가 |
활동 | 1960 ~ 1989 |
소속 | 몬티 파이선 |
배우자 | 데이비드 셜록 (파트너, 1966 ~ 1989) |
학력 | 케임브리지 대학교 엠마누엘 컬리지 (의학 / 학사) 퀸 메리 런던 대학교 (의학 /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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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몬티 파이튼의 성배에서 아서 왕으로 분한 모습 | 사석에서의 인터뷰 모습 |
2. 상세
TV 시리즈에서는 겉으로 보기엔 고지식하고 올곧을 것 같으면서도[2] 한꺼풀 벗겨보면 완전 싸이코인 캐릭터들, 혹은 군대나 경찰의 높으신 분들을 주로 연기했다. 반면 영화에서는 주연 캐릭터를 맡아서 한지라, 그나마 가장 상식인에 가까운(어디까지나 비교적) 모습을 연기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더 왕'이나 '브라이언'.[3]실제로는 TV 시리즈의 모습처럼 예측 불허의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몬티 파이선을 촬영할때도 항상 지각을 하거나 심지어 만취 상태로 나타나 동료들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술집에서 바텐더가 주문을 받지 않자 바지 지퍼를 내리고 음경을 꺼내 바를 툭툭 두들기며 바텐더를 불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1967년에 이미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였다. 아예 비행 서커스 스케치(보험설계사 스케치 - 주교 스케치로 이어지는)에서 개그로 써먹기도.[4]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촬영 당시 스태프와 출연진들의 부상을 직접 치료해줬다고 한다.
몬티 파이선 해체 후에는 "노란수염"이라는 해적 영화를 만들었다가 완전히 말아먹고,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은 하지 않다가 1989년에 편도선암으로 사망. 평소 즐기던 파이프 담배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위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술을 좋아하다 알코올 의존증에 걸려 극복하는 데 고생하는 등 건강은 좋지 않았다.
채프먼의 자서전으로 "A Liar's Autobiography" 라는 책이 있다. 채프먼 외에도 동반자였던 데이비드 셜록, 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5] 등이 함께 집필한 책인데, 동명의 애니메이션도 있다.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1] 케임브리지 대학교 엠마누엘 컬리지에서 의학을 전공하다가 연극 활동으로 인해 학업을 미루고, 나중에 세인트 바톨로뮤 의대에 들어가서 학업을 마친다.[2] 중후한 목소리가 이런 이미지를 준 것도 있다.[3] 영화화 된 Life of Brian (1979)에서는 전라연기까지 감행했다.[4] 그리고 20년 뒤 1988년 마거릿 대처 정부가 ‘섹션 28’ 입법으로 동성애의 공론화를 범죄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동안 가만히 있던 네임드급 퀴어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간달프로 유명한 이안 맥켈런. 1988년 1월 27일 BBC 라디오를 통해서 커밍아웃했다.[5] 비행 서커스 제4시리즈에서 잠깐 각본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