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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9-11 22:56:41

그웬(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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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문 배경2. 낯선 재봉사

1. 장문 배경

오래전 잊힌 왕국 카마보르에는 왕좌와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 시골 마을에서 한 평범한 재봉사가 사랑스러운 인형 그웬을 만들었다.

그웬은 과거를 떠올릴 때 사랑을 느꼈다. 재봉사와 그웬은 종일 뭔가를 만들며 하루를 보냈다. 재봉사는 가만히 있는 그웬의 손 위에 가위를 올려놓고 근처에서 바늘과 실로 바느질을 하곤 했다. 밤이면 둘은 식탁 아래에서 쭈그리고 앉아 결투 아닌 결투를 벌였다. 그럴 때면 촛불로 밝힌 주방에 가위와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곧 놀이가 끝나며 빛이 희미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웬은 자세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쓸 때마다 찌릿찌릿한 고통을 느꼈다.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한 남자와 연관이 있었다. 그웬은 수 세기 동안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잊혀 갔다. 그웬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바다의 파도와 함께 쓸려 갔다.

그러던 어느 밤 그웬의 눈이 떠졌다. 그웬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두운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깨어났다. 알 수 없는 마법의 힘 덕분에 마음대로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그웬은 삶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모래 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눈으로 먼 곳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피부에 느껴지는 조약돌의 감각과 등에 느껴지는 바람에 감동했다. 그때 해안을 따라 아주 오래전 버려진 듯한 잔해가 흩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망가진 상자 옆에 묘하게 익숙한 도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바로 가위와 바늘과 실이었다.

그웬은 그 도구를 바로 알아봤다. 자신을 만든 창조자의 도구였다. 그웬의 손가락이 도구에 닿자 손에서 빛으로 반짝거리는 안개가 터지듯 흘러나왔다. 안개는 안전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치 소중한 과거의 품에 안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마법에 이끌린 것은 그웬만이 아니었다.

섬에 도사리고 있던 다른 안개가 몰려들었다. 검은빛 안개는 감기고 뒤틀리며 무시무시한 망령들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웬이 새로 찾은 무엇인가에 이끌린 망령들은 그것을 갈구하며 집착했다.

그웬은 망령들이 달려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가위를 내질렀다. 기쁘게도 점점 더 많은 안개가 대기를 채우며 도구의 크기와 힘에 마법을 걸었다. 그저 강철에 불과했던 도구는 무형의 마법이 되었다.

하지만 망령들은 끈질겼다. 끊임없이 커지는 검은 안개의 힘으로 수가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그웬은 비통하면서도 기묘하게 익숙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싼 망령 사이에서 억눌린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웬을 만든 창조자는 다쳐서 고통스럽게 누워 있었다. 그웬은 창조자 옆에 있던 남자의 얼굴을 마침내 떠올렸다.

'비에고.'

남자의 이름을 기억한 그웬은 무릎을 털썩 꿇었다. 창조자와 함께 보낸 더 행복하고 소박했던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위를 슬쩍 보았다.

그때 그웬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 남자의 뒤틀린 허영심에 희생된 창조자는 아예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웬을 처음으로 꿰매어 완성한 창조자의 바로 그 도구가 이제 그웬의 손에 있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웬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의 창조자가 아직 자신과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선물을 당연히 여길 수는 없었다.

바늘과 실을 잡은 그웬은 신성한 안개를 휘둘러 몰려드는 망령들을 밀어냈다. 그웬의 가위가 빠르고 세게 공기를 갈랐다. 식탁 밑에서 창조자와 함께 대전투를 상상하던 행복한 밤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얼마 후 망령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웬은 승리했지만 이것이 겨우 시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령들과 비에고는 연결되어 있었다. 두 존재 모두 엄청난 고통을 퍼뜨리는 원인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웬은 검은 안개를 쫓아가 반드시 막겠다고 다짐했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웬은 살아 있는 매 순간을 즐겼다. 지금의 축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없을 삶을 살게 된 그웬은 온갖 역경에 굳건히 맞서는 선한 힘이 되기로 했다. 룬테라 전역을 다니며 다치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기쁨을 되돌려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순간순간이 소중한 그웬은 늘 자신의 목적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내딛는다.

2. 낯선 재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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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지는 가운데, 한 소녀가 빽빽한 풀숲 뒤에 숨어 있었다. 푸른색 머리에는 커다란 검은 리본이 매여 있었고, 섬세하게 봉제된 드레스에서는 금빛 장신구가 빛났다. 두 손은 거대하면서도 투명한 가위를 쥐고 있었다. 서쪽 대륙에 도착한 지 몇 주, 어쩌면 몇 개월이 지난 듯했다. 그곳은 생전 처음 보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었지만, 그웬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바로 검은 안개였다.

그웬은 그림자 군도에서부터 검은 안개를 처치하며 이곳까지 왔다. 멀지 않은 곳에 돌을 쌓아 지은 농가가 보였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촛불 빛이 어른거렸다. 그때 나무 문이 젖혀지며 인형을 손에 쥔 두 소년이 뛰어나왔다. 소년들은 서로 쫓아다니며 즐겁게 소리쳤다. 그 순간만큼은 인형 놀이를 하는 아이가 아닌, 병사를 이끌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왕들이었다.

그웬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만든 창조자의 집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근심 없이 놀던 그때가 그리웠다. 지금처럼 인간이 아닌 인형이었던, 창조자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살던 그때가...

언제나 먼저 찾아오는 것은 고통이었다. 가슴팍을 움켜쥔 그웬의 눈에 그것이 들어왔다. 동쪽 숲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덩굴 모양의 검은 안개였다. 안개의 줄기들은 서로 휘감기며 익숙한 형태로 변했다.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안개에서 기괴한 손이 뻗어나오자 소년들은 인형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웬은 차마 들을 수 없었다. 검은 안개의 괴성은 수도 없이 들어서 익숙했다. 그웬을 괴롭힌 것은 행복만 누리며 순수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의 비명이었다.

그웬은 풀숲에서 뛰쳐나오며 가위를 휘둘렀다. 교차된 가윗날은 하얀색 기운을 뿜고 있었다. 드레스를 휘날리며 가위를 아래로 내려찍자 검은 안개의 망령들이 갈가리 찢어졌다.

"하!" 그웬이 소리쳤다. "꽤 오래 뜸을 들였네. 내가 무서웠나 봐?"

망령들은 그웬을 바라보더니, 삐죽삐죽한 입을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놀란 소년들은 쓰러진 나무 뒤에 숨었다. 그웬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줄 테니까."

그때 망령들이 떼를 지어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괴성이 울려 퍼지며, 맑았던 하늘에서 사악한 연기가 내려와 그웬을 감쌌다. 소년들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그웬이 가위를 벌리자 망령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웬은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은 분간할 수도 없을 빠른 속도로 망령들을 베었다. 마력이 담긴 가위의 춤에 망령들이 하나둘씩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남은 적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웬은 한쪽 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골랐다. 다른 손으로는 가위로 바닥을 짚었다. 드레스에서 풀어진 실가닥들이 바람에 휘날렸다. 쓰러진 나무 쪽을 바라보자 겁에 질린 두 소년의 눈이 보였다. 그웬은 다시 망령들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잖아. 실망하게 해선 안 돼."

그녀는 주머니에서 바늘 몇 개를 꺼내 위로 던졌다. 그리고 손으로 땅을 내리치자, 바늘들이 일제히 주위로 떨어지며 원을 그렸다. 그웬은 눈을 감고 작게 말했다. "신성한 안개여, 나를 감싸라."

그러자 빛을 머금은 안개가 바늘에서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한 소년은 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다른 소년은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검은 안개와는 뭔가 달랐다. 고요하고 따뜻했으며, 안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마치 솜씨 좋은 재봉사가 옷을 만들듯, 빛나는 안개로 만들어진 실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곧 그웬의 몸을 감싸는 장막이 되었다.

용감했는지, 아니면 절박했는지는 몰라도 망령 하나가 안개 속으로 돌진했다. 주위를 둘러싼 다른 망령들도 따라 들어가려는 듯했다. 그웬은 안개 속에서 춤추며, 망령의 공격을 모조리 피했다. 가윗날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망령이 안개 속으로 들어가자,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년들은 그 모습을 경외하며 지켜봤다. '대체 저 사람은 뭐지?'

소년들의 눈에는 즐겁게 노는 듯 보였지만, 그웬은 망령들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가위를 휘둘러 망령 하나를 처치했다. 그리고 남은 바늘을 꺼내 모든 마력을 담아 앞으로 날렸다. 안개에서 발사된 바늘은 망령들의 가슴팍에 적중했다.

그웬은 웃는 대신 자신감에 찬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망령들은 모조리 폭발하며 사라졌고, 남은 건 바닥에 꽂힌 바늘뿐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젖은 그웬의 눈썹을 간지럽혔다. 그녀는 가위와 바늘을 집어 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소년들이 있는 쓰러진 나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니?"

지저분한 얼굴의 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소년은 망가진 인형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정말 대단했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 했는데 말이에요."

소년들의 아픔을 느낀 그웬은 눈살을 찌푸렸다. 망령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으니 슬프고 화나는 게 당연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인형들을 보자 그웬은 더 마음이 아팠다.

"누나는 누구..." 한 소년이 입을 여는 순간, 다른 소년이 끼어들었다. "우리랑 같이 있어 줄래요?"

그때 후줄근한 차림의 여인이 뛰쳐나와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얘들아! 무사해서 다행이야." 여인은 울면서 소리쳤다.

"실례합니다만 누구시죠?"

그웬이 정중하게 묻자 여자는 대답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여자는 눈물을 닦더니, 그웬을 보며 머뭇거렸다.

"우리 엄마지 누구겠어요!" 소년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에게 입을 맞췄다.

"감사합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괴물들은 대체 뭐였을까요? 사실 당신도 누군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을 구해주셨으니 전 그거로 됐어요." 여자는 감사의 표시로 그웬에게 손을 뻗었다.

여자의 손은 굳은살투성이였고, 손톱은 갈라져 있었다. 앞치마 주머니에 든 실패에는 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집까지 실이 이어진 걸 보니 달려오면서 풀려 버린 듯했다. 그웬은 망가진 인형들을 보며 알겠다는 듯 미소 지었다. 여자는 아이들을 끌어안았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행복과 안도감이 느껴지는 그 소리에 아이들의 아픔보다 더 강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순수하고 깨끗하기만 한 것이 아닌, 희생에서 비롯된 사랑이었다. 그웬은 지평선을 보며 자신을 만든 창조자를 생각했다. 그리고 가위를 내려놓고 아이들의 인형을 들어 여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런, 제가 애들에게 만들어 준 인형이에요. 형편없죠?"

"아뇨, 저도 한때는 이런 인형이었어요. 마법의 힘으로 인간이 되었죠."

"마법이라고요? 어떤 마법요?" 소년이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생각에 잠긴 채 그웬은 덧붙였다. "날 만들어 주신 분의 희생이 만들어 낸 마법이야. 그분의 마음속에는 기쁨과 사랑이 가득했지."

그리고 그웬은 아이들의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너희 어머니도 잘 아실 거야."

세 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웬을 쳐다보았다.

그때 검은 안개를 쫓아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죄송하지만, 가 봐야겠네요." 그웬은 한 손으로 가위를 집으며, 다른 손으로 실 두 가닥을 튕기듯이 날렸다. 그러자 실은 저절로 움직이며 소년들의 망가진 인형을 꿰맸다.

"우와!" 소년은 말끔하게 고쳐진 인형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다른 아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웬의 손동작을 따라 하며 중얼거렸다. "나한테도 마법이 있으면 좋겠다."

그웬은 여인을 바라봤다. 자식들을 끌어안은 팔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눈빛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이미 있는걸." 그웬은 낮게 속삭이고는 세 모자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