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기 드 뤽상부르리니 Guy de Luxembourg-Ligny |
출생 | 1340년 |
프랑스 왕국 리니 백작령 | |
사망 | 1371년 8월 23일 |
신성 로마 제국 율리히 공국 바이스와일러 | |
아버지 | 장 1세 드 뤽상부르리니 |
어머니 | 플란데런의 아델라이드 |
형제 | 마리아, 필리프, 장, 카트린, 잔, 발레랑, 앙리, 장, 필리프 |
아내 | 마호트 드 샤티옹생폴 |
자녀 | 발레랑 3세, 피에르, 마르그리트, 장, 앙드레, 마리, 잔 |
직위 | 생폴 백작, 리니 백작 |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왕국의 생폴 백작, 리니 백작.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 왕국 편에서 활동했으며, 바이스와일러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1340년경 프랑스 왕국 리니 백작령에서 리니 영주 장 1세 드 뤽상부르리니와 리슈부르 영주인 기 드 플란데런의 딸 아델라이드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마리[1], 필리프[2], 장[3], 카트린[4], 잔[5], 발레랑[6], 앙리[7], 장[8], 필리프[9]가 있었다.1370-1731년 겨울에 베르트랑 뒤 게클랭의 오베르뉴 원정에 동원되어 잉글랜드군과 대적했다. 1371년 8월 22일 룩셈부르크 공작이자 브라반트 공작 벤첼 1세 폰 룩셈부르크와 나뮈르 후작 기욤 1세가 율리히 공작 빌헬름 6세와 헬러 공작 에두아르트를 상대로 바이스와일러 전투를 치를 때 참전했다가 중상을 입고 쓰러진 뒤 전장에 버러져 있다가 8월 23일 약탈자들에게 피살당했다. 사후 장남 발레랑 3세가 생폴 및 리니 백작위를 물려받았다.
3. 가족
- 마호트 드 샤티옹생폴(1335 ~ 1378): 생폴 백작 장 드 샤티옹생폴의 딸, 생폴 백작 기 5세 드 샤티옹생폴의 누이.
- 발레랑 3세 드 뤽상부르리니(1356 ~ 1415): 리니 및 생폴 백작.
- 피에르 드 뤽상부르리니(1369 ~ 1387): 메츠 주교, 추기경. 1527년에 시복되었다.
- 마르그리트 드 뤽상부르리니: 레체 백작 피에르 데잉겐과 초혼, 1384년 남편과 사별한 뒤 에노 백국 출신의 기사이자 시인으로서 유럽 전역에서 활동했고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의 편에 서서 싸우다가 전사한 장 드 베르친과 1398년에 재혼했다.
- 장 드 뤽상부르(1370 ~ 1397): 보부아르 영주. 생폴 백작 피에르 드 뤽상부르와 리니 백작 장 2세 드 뤽상부르의 아버지.
- 앙드레 드 뤽상부르(?~ 1396): 캉브레 주교.
- 마리 드 뤽상부르: 장 드 콩데와 초혼했고, 장 드 콩데가 1391년에 사망한 후 사임 백작 시몽과 재혼했다.
- 잔 드 뤽상부르생폴(? ~ 1430): 생폴과 리니 여백작.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장 2세 드 뤽상부르리니에게 포로로 잡은 잔 다르크를 잉글랜드군에 넘기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1] ? ~ 1376/1381, 제네빌 백작 앙리 5세 드 제네빌의 딸.[2] ? ~ 1359년 이전, 르네발 영주이자 프랑스 대제빵관 라울 드 레네발의 아내[3] ? ~ 1360/1361, 루시의 영주.[4] ? ~ 1366, 다니엘 반 할베인의 아내[5] ? ~ 1392, 생폴 백작 기 5세 드 샤티옹생폴과 초혼, 마튼과 블랑작 영주 기 8세 드 라로슈푸코와 재혼[6] ? ~ 1347년 이후, 기사[7] ? ~ 1366년 이전, 쾰른과 캉브레의 정경[8] ? ~ 1373, 스트라스부르 주교(1365 ~ 1369), 마인츠 대주교(1371 ~ 1373)[9] ? ~ 1347년 이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