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과학자, 정치인.2. 생애
1932년 6월 7일, 함경남도 단천군 가응리에서 태어났다. 성분이 좋았는지 1949년 8월, 만경대혁명학원 입학 이후 친위중대원으로 복무하였으며,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군관으로 복무했다. 1952년 10월, 화학을 공부하러 동유럽 유학을 갔으며 졸업 이후 귀국하여 1957년 과학원 화학연구소에 배치, 1958년에 다시 유학을 가서 1962년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1962년 말에 과학원 함흥분원 부원장으로 배치되었으며 이후 남흥청년화학공장 기사장으로 일했다.1969년 과학원 함흥 분원장을 지냈으며 1976년 10월, 김석기의 뒤를 이어 교육위원장 겸 고등교육부장에 임명되었다. 1977년 12월,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정무원 교육위원장에 유임되었다. 1979년 10월, 당정 대표단장으로 소말리아에 다녀왔으며 교육대표단장으로 1980년 4월, 말리, 5월에 베냉, 앙골라, 토고를 다녀왔다. 1980년 7월, 예멘, 르완다, 부룬디를 순방했으며 1980년 8월, 리비아와 이라크에 다녀왔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81년 3월, 당 부장에 임명되었는데 과학교육부장으로 보인다.
1982년 3월, 조선로동당 대표단장으로 베트남 공산당 5차 당대회를 다녀왔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4월에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조선로동당 대표단장으로 1982년 4월, 덴마크 사회주의 인민당 대회에 다녀왔고 1983년 3월, 과학원장에 임명되었다. 1983년 4월, 최고인민회의 7기 2차 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으로 보선되었다.
하지만 1983년 9월 25일, 13시에 52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당중앙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정무원은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김일대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당과 혁명위업에 무한히 충실하였으며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3. 장의위원회 구성
4.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 사전 4권.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