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3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자란 고인은 서울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해 농민운동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학 재학 중 서울대 농대 학생동아리 ‘농사단(農士團)’을 만들고 당시 대학 동기인 김성훈 前 농림부 장관이 작성한 ‘농민가’ 초안을 함께 다듬었다. 그리고 그는 농민가가 농민들에게 보급되는 데 앞장섰다. 대학 졸업 후 1964년에는 서울시 농촌지도소에서 농촌지도사로 일했고,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가 1972년 말 가농으로 바뀐 뒤 1·2대 부회장을 지냈다. 1977년부터 신구전문대 원예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성남 지역 농민·빈민·신협 운동에도 참여했으며 실제 1981년 성남YMCA를 창립했다. 1988년에는 민중의당 창당에 관여했으며 1989년부터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대변인을 맡았다. 한편 1990년엔 북의 농사 현황 등을 소개하는 잡지를 출간한 혐의를 받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1993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였고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자통) 의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평화협정운동본부 고문으로 일했다. 한편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성남시민후보로 선출돼 성남 수정구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후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고문과 당기위원장 등으로 활동한 그는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 진보진영 후보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다. 2003년엔 민주노동당 농업회생운동본부장을 맡아 활동하며 전국농민회총연맹과 합의를 통해 농민 정치세력화의 물꼬를 트는데 앞장 서기도 했다. 또한 2017년에는 재혼을 했으며 2018년부터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의장과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을 맡았다. 2020년대에도 활동을 이어가 2020년부터는 평화협정운동본부 고문을 맡으며 고령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