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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2 12:22:47

김창학

<colbgcolor=#000><colcolor=#fff> 김창학
金昌學
출생 1929년 1월 29일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
사망 1950년 6월 28일
부산 해역
복무 대한민국 해군
최종계급 해군 하사
복무 기간 1948~1950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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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창학(金昌學, 1929년 1월 29일 ~ 1950년 6월 28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초기 생애 및 해군 입대
김창학은 1929년 1월 29일,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에서 출생하였다.
1948년 6월, 해군 신병 제10기로 입대하여 해군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제1함대 소속 701함에서 조타수로 복무하며 해상 작전에 참여하였다.

6.25 전쟁 참전
대한해협 해전과 북한 무장선 격침 (1950년 6월 25일 ~ 6월 26일)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한 직후, 대한민국 해군은 대한해협 해전을 수행하였다.
김창학 하사가 복무하던 701함(백두산함, PC-701)은 부산 동북방 30마일 해상에서 병력 600여 명과 탄약 및 식량을 가득 실은 1,000톤급 북한 무장 수송선을 발견하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해군은 즉각 교전을 개시하였으며, 이 전투는 약 4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1950년 6월 26일 새벽, 부산 동남방 11마일 해상에서 북한 무장선을 격침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교전은 6.25 전쟁 중 대한민국 해군이 치른 첫 번째 해전으로, 북한군의 해상 보급을 차단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최후의 순간과 전사 (1950년 6월 28일)
김창학 하사는 격렬한 교전 중 적탄에 의해 복부 내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조타 임무를 수행하며 함선의 기동을 유지하였다.
그는 조타실로 달려온 함장을 향해 "함장님, 끝까지 싸우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울부짖으며 전투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결국 부상의 악화로 인해 전투가 시작된 지 사흘 만인 1950년 6월 28일, 전사하였다.
그의 희생은 대한해협 해전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전 중 하나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김창학 하사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0년 하사로 1계급 특진을 부여하였으며, 같은 해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3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을지무공훈장 (1950년, 사후 추서)
해군 하사 1계급 특진 (1950년, 사후 추서)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3년 6월)

4. 참고 자료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김창학 해군 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