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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1:34:43

김형열

김형열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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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파일:FB_IMG_1606645540157-1.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김형열
金亨烈 | Kim Hyeong-Yeol
출생 1964년 2월 20일 ([age(1964-02-20)]세)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現 경기도 안양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은행원 (차장[1] / 퇴직)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국민은행 축구단 (1986~1996)
감독 고양 KB국민은행 (2001~2003)
전북 현대 모터스 (2004~2005 / 수석 코치)
전북 현대 모터스 (2005 / 감독 대행)
성남 일화 천마 (2006~2008 / 코치)
허난 젠예 (2010~2011 / 수석 코치)
강원 FC (2012~2013 / 수석 코치)
가톨릭관동대학교 축구부 (2015~2018)
FC 안양 (2019~2020)
국가대표 없음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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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학력 안양중학교 (졸업)
안양공업고등학교 (졸업)
국민대학교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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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고양 KB국민은행 감독3.2. 전북 현대 모터스 수석 코치, 감독 대행3.3. 성남 일화, 허난 전예, 강원 FC 코치3.4. 가톨릭관동대학교 축구부 감독3.5. FC 안양 감독
3.5.1. 2019년3.5.2. 2020년
4. 지도 스타일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은행원 출신 감독.

선수 시절에는 무명 선수에 불과했지만 FC 안양 감독을 맡으면서 플레이오프 한 번 진출해 본 적 없는 구단을 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이끌며 명성을 얻었다.

2. 선수 경력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해 축구 명문 안양중 - 안양공고를 거쳐 국민대를 졸업했다.

국민대 졸업 후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해 10년 동안 12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는 등, 실업계 정상급 공격수로 군림했다. 당시 팀 동료 중에서는 김학범이 있었다. 이후 34살에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3.1. 고양 KB국민은행 감독

선수 은퇴 후 국민은행(1963년)에서 은행원으로 취업해 2년 간 은행원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과장 직함을 달던 어느날, 국민은행 축구단이 해체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당시 국민은행 노조에서 축구부를 재창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2001년 고양 KB국민은행으로 재창단되는 구단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축구계로 복귀했다.

복귀 전 김학범과 3개월 간 브라질 유학을 다녀오며 선진 축구를 익혔고, 2003년 창설된 한국 내셔널리그에서 팀을 전기리그 정상에 올려놓았고 후반기에는 통합 리그 우승컵을 이끌어 냈으며, 그에 힘입어 2003년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최우수지도자상을 받는 등 승승장구 했다.

3.2. 전북 현대 모터스 수석 코치,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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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국민은행에서 눈부신 성과를 기록하면서 조윤환 감독의 부름을 받아 전북 현대 모터스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였다.[2]

2005년 6월 조윤환 감독이 물러남에 따라 코치직에서 물러나려 했으나 구단의 요청에 감독 대행직에 올랐으며, 2005년 6월 15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원정경기부터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날 경기에서 전북은 박동혁이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이후 루시아노와 뽀뽀에게 연속골을 허용하며 패했다.

그리고 두 번째 경기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서도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명승부를 연출하며 희망을 보여줬다. 두 골을 먼저 뽑아낸 뒤 연이어 두 골을 내준 전북은 이후 3:2로 다시 앞서 나갔지만 후반 추가시간 두 골을 허용하며 3:4로 역전패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인상 깊은 경기력이었으며, 리그 개막 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공격력은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경기인 대구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리그 첫 승을 따냈으며[3], 이어진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도 네또가 두 골을 기록하며 2:1 승리를 챙겼다.[4]

김형열로 인해 전북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고, 전북은 수원과 대구, 광주를 단번에 제치고 꼴찌에서 10위로 뛰어올랐으며, 이에 구단 관계자는 김형열에게 하반기에도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성과가 조금만 더 나오면 정식 감독 승격도 고려해볼 것이라고 제안했으며, 구단에서도 남은 시즌을 김형열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히면서 김형열이 체제로 쭉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었지만, 인천전 이후 김형열 감독대행은 해임 통보를 받았으며, 사흘 뒤 전남 원정 경기를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전북을 떠났다.

후임 감독에는 최강희가 선임되었다.

3.3. 성남 일화, 허난 전예, 강원 FC 코치

2006년을 앞두고 과거 국민은행 시절 한솥밥을 먹던 김학범 감독의 부름을 받고 성남 일화 천마의 코치로 부임해 총 두 차례 K-리그 우승과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4강 진출을 이끌어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2010년 중국 허난 젠예의 수석코치를 맡으며 다시 한번 김학범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2012년 강원 FC의 수석코치로서 또 다시 김학범 감독을 보좌하였다. 2013년 중반 성적 부진으로 김학범 감독과 함께 팀을 떠났다.

3.4. 가톨릭관동대학교 축구부 감독

파일:20180220_113603.jpg

2015년부터 가톨릭관동대학교 축구부의 감독을 맡으면서 U리그 1권역에서 2016 시즌 우승, 2017 시즌 준우승, 2018 시즌 우승을 기록하는 등 강원 권역의 최강자로 이끌었으며 또한 2018년 2월 제54회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는 강호 연세대학교를 5-1로 꺾은 데 이어 중앙대, 수원대, 광주대 등 강팀들을 차례로 누르고 4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3.5. FC 안양 감독

2019 시즌을 앞두고 고정운 감독의 후임으로 FC 안양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정식으로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으며, 김종필 감독에 이은 두번째 구단 지역 출신 감독이 되었다.

3.5.1. 2019년

시즌 전 인터뷰를 통해 상대에 따른 맞춤형 전술로 승부를 걸겄이며, 싸움닭처럼 패기 넘치는 축구를 펼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3월 2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시즌 첫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부산의 홈구장에서 4-1이라는 스코어를 만들어 승리하며 감독 데뷔전 승리를 거두었고, "안양 승격하는거 아니냐" 라는 말이 나왔다. 특히 전반전 2골을 넣었음에도 김문환에게 우측면을 탈탈 털리자,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신인 이선걸을 빼고 김상원을 투입했는데, 이 김상원 카드가 정확히 적중하며 후반전에서 김문환을 그냥 지워버렸다. 특히 조규성은 신인임에도 신인답지 않은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줬고, 외국인 선수인 팔라시오스는 1골, 알렉스는 2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리그 경기에서 5경기 연속 무승을 거두며 주춤했지만 4월 17일 자신이 과거 감독대행로 팀을 이끌었던 팀인 K리그1 절대강호였던 전북 현대를 FA컵에서 1:0으로 잡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연이은 아산 무궁화전에서도 조규성알렉스 리마의 골을 앞세워 2:0 승리를 거두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분위기를 제대로 탄 안양은 4월 28일 대전 시티즌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면서 3연승을 이어갔으며, 5월 1일 수원 FC전에서 2:1 승리로 4연승을 질주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허나 그 이후에 상승세가 주춤하였지만, 6월 23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를 2대1로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수원 FC, 대전 시티즌, 아산 무궁화를 차례로 격파하고 7월 20일에는 19경기 연속 무패를 이어가던 광주 FC7대1로 격침했다. 이 경기로 안양은 5연승과 함께 광주 FC의 무패 기록을 처참히 깨부쉈다.

하지만 시즌 막판 1무 3패의 좋지 않은 흐름 속에 플레이오프 티켓이 걸린 남은 3경기를 맞이하게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하였는데, 3-4-3 전술로 윙백을 많이 이용하던 김형열이었는데, 시즌 막판 상대에게 이를 읽히면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던 것이 패인이었으며, 특히 강팀에게 강한 모습도 보여주는 것에 반해 하위권 팀들을 상대로는 안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광주전 패배를 잘추스르고 10월 26일 4위 안산 그리너스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11월 2일 대전 시티즌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안양의 사상 첫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으며, 리그 3위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부천 FC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 부산 아이파크와 맞붙게 되었고, 부산을 상대로 후반 막판 김상원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며 아쉽게 승격에는 실패했지만 앞으로 가능성을 보여준 한해였다.

3.5.2. 2020년

2020시즌을 앞두고 조규성, 팔라시오스 등 기존의 주축 선수들의 이탈을 막지는 못했다.

안산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1:0으로 패했고, 경남과의 3라운드까지 3연패로 불안한 시작을 알렸고, 또한 경남전에서 골을 넣는 등 주축 선수로 활약한 이정빈이 경남전을 끝으로 군입대를 하게 되면서 팀을 이탈한 자원을 대체할 자원을 찾는 것이 더더욱 시급해졌다.

하지만 경남전 종료 후 김형열은 인터뷰를 통해 "오늘 경기는 선수들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경기"라고 언급했다.

이날 안양은 전술적으로 많이 준비했는데, 전반 초반 경남의 공세에도 잘 버텼고, 이정빈의 기습적 역습으로 선제골을 얻어내기도 했다. 후반 초반, 파상공세를 펼쳤고, 수많은 찬스가 났다. 김 감독의 말처럼 아코스티의 결정적 찬스 2~3개가 너무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팀이 정비되면서, 경기력 자체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4라운드 서울이랜드 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연패 탈출, 리그 첫 승을 달성했다.

부진했던 아코스티가 드디어 K리그 데뷔골을 넣었는데, 5라운드 전남전에서도 아코스티가 선취골을 넣으며 앞섰지만 종료 막판 PK로 실점하며 무승부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 부진을 이어가며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리그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결국 2020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는데, 떠나면서 팬들에게 남긴 인사를 보면 안양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4. 지도 스타일

안양에서의 기본 전술은 스리백을 기본으로한 3-4-3 포메이션의 선수비 후역습을 내세우는데 수비시 실제로는 좌우 윙백과 스리백이 주저 앉는식의 5-2-3 형태를 취하지만 역습시에는 좌우 윙백을 윙어처럼 활용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여 3-2-5 형태로도 보인다. 권용현의 플레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3-4-1-2의 자리1에 권용현을 넣는 전술도 간간히 쓰고있다

수비전술은 전방압박시에 상대 공격지역도 압박하지만 주로 중원라인에서 매우 강하고 거친압박으로 볼을 탈취하는 플레이를 펼치고 협력수비보다 상대공격을 전개하는 길목을 기다리다 볼을 탈취하는 패턴을 매우 많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대형을 이루며 라인을 내려서 수비하다가 상대방 뒷공간 노리는 카운터공격이 상당히 가장 위력적이다 특히 득점패턴이 점유보다 심플한 직선적인 축구로 스리톱 공격수들의 드리블과 역습하고 측면돌파후에 윙백이 크로스 올려주면 침투하는 공격수들이 헤딩이나 공받아서 해결하는 플레이가 작년시즌에 굉장히 위력적이였지만 단점은 윙백의 크로스질이나 공격수 드리블 개인기량에 의존하기에 공격력 기복이 심할수밖에 없다 거기에 올시즌은 상대팀들이 이러한 패턴을 어느정도 간파하고 이에 대응하는 전술을 준비를 대부분 하였고 김형열 감독이 해결방안으로 점유하며 적극적인 빌드업 플레이를 펼쳤으나 오히려 선수들이 익숙지 않다보니 불안한 패스미스등 잦은실수로 미끄러지는 경기가 올시즌초에 많았다 나름 융통성있게 상황에 따라 다시 작년처럼 직선적인 축구했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이고 일정한 공격력을 만들기 위해서 작년과 다르게 볼점유에 크게 공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좋은 경기력으로 안양 팬들 뿐만 아니라 리그2 팬들에게도 칭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윙백이 공격에 가담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역습을 수비할 때 수비진은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특히 강팀을 상대로는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하위권 팀들에 약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큰 원인은 상대가 잠구면 뚫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19시즌 안양의 팔라시오스, 알렉스, 조규성[5] 조합이 가진 공격력은 단연 리그 최고수준이었지만 매번 단 세 명만이 1차 공격을 진행하였다. 즉, 공격 시에는 팔라시오스와 알렉스, 그리고 조규성 등 세명 만이 올라오고, 1차적인 속공이 지공으로 전환될 때에서야 윙백이나 미드필더가 올라갔으며, 안양의 공격 전개가 중원을 거치는 공격이 아닌, 공격수 세 명의 드리블 돌파를 통한 속공 및 역습 위주로만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라인을 올려 경기를 하는 강팀을 상대로는 강할 지 몰라도, 이미 수비라인을 내려선 상대를 공략하기에는 버거웠다.

5. 여담



[1] 국민은행 감독 시절 차장까지 달았다고 한다.[2] 사실 처음에 수석코치직 제안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전북은 지금과 같은 강팀이 아닌 K리그에서 중간과 꼴찌를 오가는 팀이었다. 그리고 김형열은 당시 국민은행을 이끌며 이룬 성과 덕분에 차장을 달기 직전이었고, 지점장까지 승진도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 축구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역량을 한 번 확 쏟아 부어 보고 싶었기에 은행에 과감히 사표를 냈다고 한다.[3] 네또가 두 골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으로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대구에 4:1로 대승했다.[4] 당시 인천은 ‘비상’을 찍던 시기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5] 또는 모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