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30 18:12:00
<colbgcolor=#000><colcolor=#fff> 김훈철 金燻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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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 남명(南溟) |
출생 | 1933년 8월 24일 |
전라북도 남원시 |
사망 | 2023년 4월 16일 (향년 89세) |
경기도 광주시 참조은병원 |
학력 | 전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조선공학 / 학사) 미시간 대학교 (조선공학 / 석사) 미시간 대학교 (조선공학 / 박사) |
직업 | 조선공학자 |
가족 | 배우자 박순함, 슬하 2남1녀 김석진·김석규·김영 |
약력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자문봉사단 단장 조선학회 회장 한국기계연구소장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과학기술특보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선박연구소 초대 소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조선해양연구실을 초대 실장 |
[clearfix]대한민국의 조선공학자.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그는 전주고,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1967년 미시간대 전임강사·조교수를 거쳐 1967년부터 미국 해군선박연구개발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다 1968년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 KIST에 조선해양연구실을 만들고 초대 실장으로 취임했다. 1970년 4월 국내 기계공업의 밑그림을 그린 ‘한국기계공업육성방향 연구조사보고서’ 작성에 참여했으며 3차 경제개발계획(1972~76) 조선공업 부문 담당자가 되었다. 그는 당시 국내에 1만t급 조선소 밖에 없을 때 “20만t 생산 규모의 조선소를 건설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 조선업 발전 밑그림 그렸던 그는 KIST에 길이 200m가 넘고 건조 비용도 200만 달러가 드는 국제 규모 수조를 만들자고 제안해 1974년에 공사를 시작했다. 이 수조는 1978년 완공 후 물을 채우기 시작했고 덕분에 1980~90년대 조선 산업이 필요로 한 규모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직책을 맡고 수상을 받은 그는 2004년 '한국의 미래상'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하였다.
2023년 4월 16일 오전 1시 20분께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