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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1 17:13:54

나집 라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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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말레이시아 제6대 총리
나집 라작
نجيب رزاق‎
파일:external/a738ad2ce7a5a735ab39066e3bd25c539996bb6a9cc51ecaea219ec517f47872.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나집 라작
Najib Razak
YAB Dato' Sri Haji Mohammad Najib bin Tun Haji Abdul Razak
نجيب رزاق‎
출생 1953년 7월 23일 ([age(1953-07-23)]세)
말레이시아 쿠알라리피스
학력 노팅엄 대학교
약력 말레이시아의 제6대 총리
말레이시아의 제9대 부총리
정당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파일:external/sea-globe.com/najib.jpg
파일:external/www.blog.thehoya.com/Malaysia-Prime-Minister-Najib-Abdul-Razak.jpg

1. 개요2. 생애3. 총리 취임4. 총선 후 현황5. 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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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말레이시아의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 6대 총리를 지냈다. 현재는 프칸 선거구 하원의원.

말레이시아의 국부로 존경받는 제2대 총리 압둘 라작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친의 사후 정계에 입문하여 파항 주수상, 장관직 등을 거치면서 정계의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총리 시절 부총리로 임명되었으며, 압둘라 총리가 사임하자 총리에 취임해 부미푸트라 정책 완화, 복지 정책 확대(BR1M) 등을 주도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졌고, 설상가상 논란이 많은 1MDB 스캔들 의혹 속에서 결국 집권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을 포함한 국민전선(BN)의 패배로 총리직에서 물러나, 말레이시아 최초로 선거 패배로 퇴임한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흔히 그를 부패 스캔들로 국민들의 퇴진 요구에 시달리자 이를 탄압한 독재자로 보기도 하지만, 조 로우의 정치공작[1]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2. 생애

1953년 파항쿠알라리피스에서 전직 총리이자 초대 부총리였던 압둘 라작과 영부인 라하흐 노아흐의 아들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나지르 라작이 있는데 지금은 유명한 기업인이다.

젊은 시절 영국노팅엄 대학교에서 유학했었고 귀국 후에는 공무원 및 회사원 등으로 평범한 사람으로 살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가 맡고 있던 쿠알라리피스 지역 국회의원 직을 바로 승계했는데 이로써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파일:external/ww.daliulian.net/1970479.jpg

파일:external/4.bp.blogspot.com/GAMBAR+Bekas+Isteri+NAjib+Tun+Razak.jpg

1976년 텡쿠 푸트리 자이나흐 텡쿠 이스칸다르와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11년만에 이혼했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후로는 로스마흐 만소르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쭉 살고 있다.

1982년부터 4년간 파항 주의 총리대신을 역임했고 1986년 문화청년체육장관에 이어 1991년 국방장관, 1995년 교육부장관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경력을 쌓았고, 2004년 부총리에 오르면서 당시 총리였던 압둘라 아흐마드 바다위에 이어 권력 2인자가 되는 데 성공하고 2008년 재정부장관까지 오르면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2008년, 재정부장관에 오르던 그 해 시행된 총선에서 소속정당이자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 패하고, 결국 압둘라가 이에 대한 댓가로 사퇴하면서 권력후계에 성공한다.

3. 총리 취임

나집은 취임하자마자 매우 파격행보를 보였는데, 그것은 바로 말레이인 우대 정책인 부미푸트라 정책에 대한 완화였다. 그간 야권과 비말레이인을 중심으로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를 "과감히 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일자리 부문에서 외국인 부문을 대폭 늘리는 한편, 말레이인에 대한 과도한 혜택 축소 및 1Malaysia 정책을 통한 민족 간의 화합 추구 등, 전임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행보를 보이면서 모두의 기대감을 얻었다. 또한 국부로 추앙받던 부친의 아들이라는 점도 나름 신선했던 면이었다.

하지만 일부 말레이인들의 반발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야권이 호응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더 강한 대여공세로 번지면서 첫 판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제13대 말레이시아 총선거 무렵 야권의 승리를 점치는 여론조사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여권연합이 근소하게 승리하면서 위기는 간신히 넘겼다. 그러나 야권이 부정이라고 반발하는 한편, 이 전후로 "중국계 쓰나미"라는 발언을 했는데 중국인들은 이를 두고 "인종차별"이라고 반발했다.[2]

4. 총선 후 현황


2018년 14대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패배한뒤, 앞으로의 행보가 밝지 않다. 총리 재임 동안 측근들과 함께 1MDB[3]를 통해 45억 달러(약 5조원)가 넘는 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1MDB는 그가 국내외 자본을 유치해 경제개발 사업을 하겠다며 2009년 설립한 국영투자기업인데, 말레이시아 당국 조사에 따르면 부실 운용에 따른 1MDB의 손실 규모는 500억 링깃(약 13조8000억원)에 이른다. 가족들과 함께 출국 금지령이 내려졌고, 곧 구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기사

2019년 5월에 미국이 1MDB에서 빼돌린 공적자금으로 조성된 자국 내 자산 중 2억 달러(약 2천300억원) 상당을 말레이시아 측에 반환한다.# 그 중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제작사 레드 그라나이트가 지불한 6천만 달러(약 700억원) 상당의 합의금도 함께 반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7월에 말레이시아 고등법원은 라작 전 총리가 재임 기간에 내지 않았던 세금 16억9천만링깃(약 4천70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1MDB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징역 12년과 벌금 2억1천만 링깃(592억원)을 선고받았다.#

2022년 8월. 말레이시아 최고법원이 최종적으로 징역 12년과 2억 1천 링깃을 판결내렸다.#

결국, 2023년 9월. '1MDB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혀졌다.#

5. 짤방

파일:external/vision1gh.com/d67d098fe25caea5139ca2b7624c16a9_XL.jpg
파일:external/s2.stabroeknews.com/najib.jpg

가장 많이 응용되는 짤방. 이외에도 많은 짤방이 있다.


[1] 2023년 6월 11일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다.[2] 근데 하나도 틀릴 거 없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이 야권에 힘을 실어주는 건 맞는 말이니깐. 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논리가 대표적인 일반화 오류이며 논리적 곡해에 해당한다. 모든 중국인이 중국인이란 이유로 같은 정치적 단합을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3] 선술한 조 로우가 거기에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