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 나카지마 아쓰시 [ruby(中島敦, ruby=なかじま あつし)]|Atsushi Nakajima | ||||
본명 | 나카지마 아쓰시 ([ruby(中島 敦, ruby=なかじま あつし)]) | |||
출생 | 1909년 5월 5일 | |||
일본 제국 도쿄부 도쿄시 요츠야구 요츠야 탄스마치 59번지 | ||||
사망 | 1942년 12월 4일 (향년 33세) | |||
일본 제국 도쿄부 도쿄시 세타가야구 세타가야 | ||||
직업 | 소설가, 교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 학력 | <colbgcolor=#fff,#191919>용산공립심상소학교 (졸업)[1] 경성중학교 (졸업) 제1고등학교 (졸업) 도쿄제국대학 (국문과 / 학사) | ||
활동 기간 | 1927년 – 1942년 | |||
부모 | 아버지 나카지마 타비토 어머니 나카지마 타카[2] | |||
아내 | 하시모토 타카 (1932년 결혼) | |||
자녀 | 장남 나카지마 타카시 장녀 나카지마 마사코[3] 차남 나카지마 노보루 | |||
장르 | 소설 | |||
데뷔작 | 고담 (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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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昔、私は、自分のした事に就いて後悔したことはなかった。
옛날에, 나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후회 한 적은 없었다.
しなかった事に就いてのみ、何時も後悔を感じていた。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만, 언제나 후회를 느끼고 있었다
<빛과 바람과 꿈> (「光と風と夢」) 中
옛날에, 나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후회 한 적은 없었다.
しなかった事に就いてのみ、何時も後悔を感じていた。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만, 언제나 후회를 느끼고 있었다
<빛과 바람과 꿈> (「光と風と夢」) 中
나카지마 아쓰시 ([ruby(中島 敦, ruby=なかじま あつし)])는 일본의 소설가이다.(일본 위키피디아) 33세에 지병인 천식으로 요절하였다. 제2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고 불리는 작가이다.
2. 생애
2.1. 성장 과정
1909년 도쿄 요츠야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3살 때 부모가 이혼해 고향의 할머니 슬하에서 길러졌다. 한학자였던 조부 나카지마 후잔과 한문 교원이었던 아버지[4]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양질의 한문학 교육을 받았다. 가풍에 할아버지의 유풍이 짙게 남아 있었던 것이 그의 작품의 근거를 이루는 한학의 기초가 되었다.6살 때 재혼한 아버지와 계모의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계모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계모의 마음에 거슬리면 감나무에 묶였다가 아버지의 퇴근 직전에야 풀려나기를 여러 번 했는데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상처를 안은 채 자라게 되었다고.... 14살 때(1923년) 이 계모가
가정환경은 불우했지만 학교에서는 대단히 촉망받는 학생이었다. 줄곧 최우등생이었으며, 상장과 상패를 밥 먹듯이 타며 전교생의 기대와 동경을 한몸에 받았다고. 아버지의 전근을 통해 1920년 경성의 용산국민학교와 경성중학교(현 서울중고등학교)를 다닌다. 1926년 동경으로 귀국 후 제1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동경제대 문학부 국문과에 입학하였고 동대학 대학원에 진학, 1933년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복잡한 가정을 떠나 학교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기에 문학에 정진할 수 있었으나, 늑막염으로 1년을 휴학하고 천식 발작에 시달리는 등 여전히 안락한 생활을 얻지는 못했다.
2.2. 결혼과 그 이후
그의 결혼은 사연이 매우 파란만장하다. 그의 아내 하시모토 다카는 나카지마의 대학 친구의 누나가 경영하는 마작 클럽의 여종업원이었는데, 본인 왈 '인생을 건 애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그녀는 아이치 현 출신으로, 어릴 적 숙모 집에 양녀로 입양되고 다시 양오빠를 돕기 위해 상경했었다. 단호한 반대에 부딪쳐 격리, 이별, 오해 등으로 많은 시간을 견딘 다음, 1936년에야 정식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해였으며, 이때 이미 첫아들이 출생해 있었다고 한다.1933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사립 요코하마 여자고등학교에 국어와 영어 교사로 부임하고, 이때부터 8년간이 그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천식 발작으로 고통을 받았으나 대학원에도 진학하고, 처자와 함께 평화롭게 보낸 시기였으므로... 1941년에는 당시 일본이 통치하던 팔라우의 남양청[5]에 교과서 편찬담당으로 부임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귀국하여 고담(古譚), 빛과 바람과 꿈(光と風と夢) 등을 발표하지만 같은 해 12월 지병의 악화로 사망한다.
그의 이복동생은 어머니와 달리 아츠시와 사이가 좋았는데, 같은 해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 마쓰모토 세이초, 오오카 쇼헤이가 유명해진 것을 보고 "오라버니가 10년, 아니 5년만 더 살았더라면" 한숨을 내쉬며 읊조리곤 했다고 한다. 2차 대전이 끝난 후까지 살았더라면 신약 덕분에 천식이 나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를 증언한 여동생의 아들, 즉 외조카가 바로 소설가 오리하라 이치이다.
3. 작품
대단히 음울하고 습한 느낌의 작품이 많으며 대부분 중국 한문학 같은 형식을 보인다. 고사를 재해석한 작품이나 재창작한 작품이 많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책으로 <나카지마 아쓰시 작품집> 이라는 단편집과 <산월기>라는 단편집이 있으며, 저자 이름이 나카지마 아츠시로 표기된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이 있다.[6]일어에 능통하다면 아오조라 문고의 작가 페이지에서 전 작품을 읽을 수 있다. # 의고적 문장과 한문훈독체의 문장이 많아 독해가 상당히 어렵다.
생전 약 20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두 편을 제외하면 모두 단편이다. 대부분은 사후 유고의 형태로 발표되었으며, 작가로서의 명성 역시 사후에야 높아지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유년기를 보낸 경험을 토대로 당대 조선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 제국주의의 모순을 드러내는 작품[7]을 쓰기도 했으며, 금기시되었던 관동 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그리기도 한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3.1. 대표작
- 산월기(山月記) -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1951년에 처음 교과서에 실린 뒤로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다. 교만함과 타성에 젖어 스스로를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주인공의 극적인 파멸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이경량의 <인호전(人虎傳)>#을 토대로 삼았다.
당나라 농서의 서생 이징(李徴)은 젊은 나이에 과거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수재였지만, 성격이 교만하고 자신의 능력을 매우 자부하는 성격으로서 일개 향리의 직에 만족하지 못하고 시인으로서 이름을 드높이려 애썼다. 관직에서 물러나고 시작에만 전념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명성은 오르지 않고, 빈궁한 생활 끝에 좌절하여 다시 굴욕적 하급 관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이징은 발광하여 그대로 산속으로 숨어 행방불명이 된다.
감찰어사가 된 이징의 친구 원참(袁傪)은 여행지에서 식인 호랑이에게 습격을 당한다. 그런데 호랑이는 원참을 보자 풀숲으로 숨어 흐느껴 운다. 호랑이의 정체는 행방불명된 이징이었고, 이징은 원참에게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수치심과 나태함이 스스로를 짐승으로 만들었다고 하면서 통곡하였다. 날이 밝아오자 이징은 이제 다시 호랑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원참은 한 마리의 호랑이가 달을 향해 포효한 후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 제자(弟子) - 공자의 제자 자로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유이한 중편 중 하나. 작가는 이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데 상당한 고심을 한 모양으로, 원본 원고를 보면 원래 제목은 <자로>였다가 <사제(師弟)>로, 다시 제자로 바뀐 흔적이 역력하다고 한다.
- 이릉(李陵) - 한무제 때의 비운의 무장 이릉과 사마천의 역사적 일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유이한 중편 중 다른 하나. 나카지마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사후에 발표된 유고다. 이건 <제자>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서, 작가는 제목조차 정하지 못한 채 놔두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게다가 퇴고를 거듭해서 판독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후세 사람들은 제목을 뭘로 할지 고심하다가, 작가 수첩에 막북, 막북비가 등의 제목으로 정하려 했던 듯한 힌트가 남아 있지만 '가능한 한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담백한 제목'으로 정하기로 결심하고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였다.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중에 작품의 제목을 붙인 보기 드문 케이스.
- 명인전(名人伝) - <장자> 전국책과 <열자> 탕문편, 황제편을 소재로 한 작품. 생전에 발표된 작품 중 가장 마지막에 발표된 소설이다.
- 오정출세(悟浄出世) - 괴물의 아이에 영향을 줬다. 내용은 항목 참조.
- 호랑이 사냥(虎狩) - 자신의 조선인 친구에 관한 에피소드와 그와 갔던 호랑이 사냥을 추억하며 쓴 작품이다. 작중에서 조선인 친구인 조대환은 힘의 논리에 굴복하며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으나, 본인 또한 일제 부역자 집안 출신으로서 자신보다 더 하위 계층인 조선 민중에 대해 똑같이 힘의 논리를 이용하여 굴복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나카지마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되는 비정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피지배층인 조선인들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하였기 때문에 한동안 문단에서 외면당했으며, 나카지마 아쓰시 전집에서도 종종 빠지곤 하는 작품이다.
- 순사가 있는 풍경(巡査の居る風景) - 고등학교 시절 쓴 작품. 당시 금기시되었던 이야기인,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8]을 조선인의 시각으로 쓴 작품이다. 식민지 조선에 대해 일본인이 쓴 몇 안되는 문학작품 중 하나이다.
4. 대중매체에서
- 문호 스트레이독스 - 나카지마 아츠시(문호 스트레이독스)
- 문호와 알케미스트 - 나카지마 아츠시(문호와 알케미스트)
- 노을빛 세계에서 너와 노래를… - 나카지마 아츠시(노을빛 세계에서 너와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