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나형순(羅亨淳) |
생몰 | 1876년 ~ ? |
출생지 | 황해북도 황주군 구성면 화동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나형순은 1876년경 황해북도 황주군 구성면 화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신교 장로로 활동하다가 1920년 5월 김익진(金益鎭), 김필선(金必善)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결성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황주지회 설립에 참여했다. 그는 황주지회 부회장에 선임되었으며, 회장은 백승건(白承健), 회계는 안재서(安在序), 서기는 김필선이 맡았다. 이들은 각자 동지를 규합하고 향촌회와 군사주비회(軍事籌備會)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또한 나형순은 1920년 7월 황주군 구성면, 청수면 일대의 청년 계몽을 위해 이병조(李炳兆) 등과 함께 보성청년회(普成靑年會)를 발기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9일에 보성청년회 회장에 선임되어 강연회 개최, 신문 및 도서 구매 등 농촌의 문화 진흥에 노력했다. 그러나 1921년 초 대한국민회 조직이 일제에게 발각되면서 체포되었고, 1921년 7월 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그의 생애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나형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