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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8 23:04:48

남경명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남용희(南溶熙)
경명(慶明)
본관 의령 남씨[1]
출생 1898년[2] 9월 23일
경상남도 영산군 읍내면 성내동
(현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3]
사망 1968년 4월 25일 (향년 69세)
경상남도 창녕군
묘소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동리 인산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경명은 1898년 9월 23일 경상남도 영산군 읍내면 성내동(현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에서 아버지 남정건(南廷乾, 1856 ~ ?. 12. 29)[4]과 어머니 김해 김씨 김기택(金基澤)의 딸 사이의 8남 1녀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5] 이후 영산면 죽사리로 이주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13일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남산에서 구중회·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비밀리에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고 독립만세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했다. 이들은 '독립운동에서 후퇴하는 자는 생명을 빼앗긴다'는 내용의 맹세서에 각기 서명한 후 7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영산면 읍내를 행진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판결이 일부 최소되었을 뿐 형기는 유지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창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4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남경명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의산위공파-군수공파 23세 희(熙) 항렬.[2] 남씨대동보 11권 528쪽에는 1897년생으로 등재되어 있다.[3] 의령 남씨 집성촌이다.[4] 이명 남정술(南廷述).[5] 어머니 김해 김씨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다. 첫째 부인 단양 우씨 우석동(禹錫東)의 딸은 1855년에 태어나 슬하에 맏형 남백희(南百熙, 1873년생)를 둔 뒤 1882년 8월 23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