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남궁욱(南宮旭) |
본관 | 함열 남궁씨 |
생몰 | 1886년 12월 20일 ~ ? |
출생지 |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한정리[1]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남궁욱은 1886년 12월 20일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한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1월 초 신환과 함께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할 군자금 모집을 계획하고 최윤성(崔崙成)에게서 문서의 인쇄 방법을 자문받았다. 이후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서리 김문환(金文煥)의 집에 찾아간 그는 군사공채모집취지서 및 통지서를 작성해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조선독립운동에 종사 중이니 이 취지에 찬동해 응분의 자금을 각출하라"는 내용을 기재하고 신환, 최윤성, 김문환 등과 함께 문서 60부를 인쇄했다.그 후 남궁욱은 신환과 함께 황해도 평산군 금암면 일대의 민가 십수 호에 이 문서를 배포했고, 금암면 용천리의 조인선(趙仁善), 부정리의 조영근(趙永根) 및 대촌리의 유양우(柳楊雨)의 집에 들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보낼 자금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20년 2월 1일 구류되었고, 그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출판법, 보안법 위반 및 강도죄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의 경력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남궁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