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남인상(南仁相) |
이명 | 남성우(南性佑), 남인상(南仁祥) |
생몰 | 1868년 ~ 1951년 5월 2일 |
출생지 | 함경남도 안변군 |
사망지 | 중국 연길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남인상은 1868년경 함경남도 안변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하여 장로로 활동했고, 1905년 만주로 망명하여 1910년 연길현 와룡동에 창동학교(昌東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서 민족교육을 실시했다. 1919년 3월 13일 용정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김약연, 구춘선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했고 재남북만주 조선민족대표 17인 중 1명으로 참석하여 '조선독립선언서 포고문'에 서명했다. 또한 구춘선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성원으로 활동했다.1920년 일본군이 간도 참변을 자행하자, 그는 각처로 피신해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힘을 기울였고, 이후에는 만주에서 기독교 장로로 목회 활동에 전념하는 동시에 농업에 종사했다. 8.15 광복 후에는 기독교 대표로 연변 제1차 임시참의원을 맡기도 했다. 1951년 5월 2일 연길시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남인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1997년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