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琅邪王氏중국 고대사에서 낭야군(琅邪郡) 임기현(臨沂縣)[1]를 근거지로 삼았던 문벌귀족 가문이었다.
2. 역사
초한전쟁 당시 왕전의 손자인 왕리는 거록대전에서 항우에게 사로잡혔으나 그의 아들인 왕원(王元)은 난리를 피해 낭야군에 정착해서 낭야 왕씨의 시조가 되었다.낭야 왕씨는 진나라 때부터 그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4효의 일원으로 유명한 왕상의 경우 서진 건국에 일조했다. 이후 영가의 난으로 진나라가 강남으로 파천한 가운데 왕도가 원제 사마예와 명제 사마소를 보좌하며 강남에서 진나라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이로 인해 낭야 왕씨의 명망은 높아져서 '왕씨와 (사)마씨가 천하를 공유한다(王與馬, 共天下)'는 말이 나왔다. 물론 왕도는 겸양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왕돈은 점점 교만방자해지다가 반란을 일으키고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비수대전 이후 동진에서 진군 사씨의 명망이 높아지면서 낭야 왕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가로 발전하여 항간에서는 이들 집안을 합쳐 '왕사(王謝)'라고 불렀다.
그러나 남북조시대 후경의 난과 수나라의 남북조시대 통일 이후 낭야 왕씨는 점점 영향력을 상실해 갔다. 당나라에서는 중앙 정계에 진출한 이가 왕방경을 비롯해 소수에 불과했으며 오대십국시대 이후로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3. 주요 인물
3.1. 삼국시대
- 왕웅(王雄)
3.2. 진
- 왕상(? ~ 268)
- 왕람(王覽, 206 ~ 278)
- 왕원희(王媛姬)
- 왕돈(王敦, 266 ~ 324)
- 왕도(王導, 276 ~ 339)
- 왕희지(王羲之, 303 ~ 361)
- 왕헌지(王獻之, 348 ~ 388)
- 왕신애(王神愛, 384 ~ 412)
3.3. 남북조시대
3.4. 당
- 왕방경(王方慶, ? ~ 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