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07 23:27:47

노궤


1. 개요2. 생애

1. 개요

魯軌
(? ~ 449년)

동진, 북위의 인물로 노종지의 아들이며, 다른 이름은 상치(象齒). 부풍군(扶風郡) 미현(郿縣) 출신.

아버지 노종지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열전은 없으나 『송서』와 『남사』에서 아들인 노상의 열전을 통해 노궤의 행적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2. 생애

기마와 활쏘기를 잘 했고 기력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동진에서 경릉태수(竟陵太守)를 지냈다.

아버지 노종지는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지만 자신이 언젠가 유유에게 제거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415년, 유유가 사마휴지를 토벌하고자 출정하자, 노종지는 결국 노궤와 함께 사마휴지를 돕고 유유를 막고자 하였다. 당시 강하상(江夏相) 유건지(劉虔之)가 군대를 이끌고 삼련(三連)에 주둔하며 다리를 세우고 식량을 모아서 단도제와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궤는 유건지가 단도제와 합류하지 않은 틈을 노려서 유건지를 습격해 죽였다. 또한 파총(破塚)에서 서규지와 교전하여 이 전투에서 서규지, 왕윤지, 심연자가 전사하였다. 노궤는 다시 괴은을 공격했으나 괴은이 장병들을 독려하고 수비를 굳히며 움직이지 않자 결국 공격할 방도가 없어서 후퇴하였다.

이후 노궤는 사마문사와 함께 도합 4만의 군사들을 이끌고 유유군의 상륙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호번의 상륙작전과 분투로 인해 노궤는 결국 석성(石城)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조륜지와 심림자가 석성을 공격하자, 노궤는 이들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후진으로 망명했다.

416년, 노궤는 노종지와 함께 양양으로 출병했으나, 노종지는 도중에 병으로 죽었고 노궤는 조륜지에게 패배하였다.

417년, 유유가 후진을 정벌하여 멸한 뒤 노궤는 다시 북위로 달아났다. 노궤는 북위로부터 영남장군(寧南將軍),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임명되고 양양공(襄陽公)에 봉해졌으며, 장사(長社)에 진수하였다.

445년, 유송의 무릉왕(武陵王) 유준이 양양에 진수한 뒤 노궤는 측근 정정(程整)을 보내 귀순을 타진했다. 유송의 문제 유의륭은 여러 차례 노궤에게 사신을 보내서 노궤를 사주자사(司州刺史)로 삼겠다고 약조했는데, 노궤는 유강조의 아버지인 유건지, 서담지의 아버지인 서규지를 죽인 일로 인해 자신이 추궁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결국 남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노궤는 449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