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노르베르토 도로테오 멘데스 (Norberto Doroteo Méndez) |
생년월일 | 1923년 1월 5일 |
사망년월일 | 1998년 6월 22일 (향년 75세) |
국적 | 아르헨티나 |
출신지 | 부에노스 아이레스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
신체조건 | 180cm | 82kg |
소속팀 | CA 우라칸 (1941-1947) 라싱 클루브 데 아베야네다 (1948-1954) CA 티그레 (1955-1956) CA 우라칸 (1957-1958) |
국가대표 | 31경기 19골 (1945-1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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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어린 시절
멘데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누에바 폼페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대모는 산투초(Santucho)라는 이름을 가졌던 죽은 이웃의 이름을 따서 그를 투초(Tucho)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투초는 멘데스의 별명으로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누에바 폼페이는 CA 우라칸의 홈경기장인 에스타디오 토마스 아돌포 두코[2](Estadio Tomás Adolfo Ducó)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멘데스는 이 팀의 팬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클럽의 스트라이커인 에르미니오 마산토니오를 존경했다.
어린 시절에 멘데스는 여러 클럽을 돌아다녔고 1936년부터 우라칸의 유스팀에서 뛰게 되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1941년 4월 13일, 멘데스는 CA 우라칸의 1군 경기에 데뷔하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멘데스는 그의 우상 에르미니오 마산토니오와 같이 뛰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1947년까지 멘데스는 우라칸에서 199경기에 출전, 68골을 넣었다.[3]1948년, 멘데스는 라싱 클루브로 동료 5명과 함께 이적하게 되었다. 1949년, 라싱은 새 감독으로 기예르모 스타빌레를 영입했고 첫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멘데스는 라싱에서 133경기 출전, 49골의 기록을 남겼다.
멘데스는 CA 티그레에서 2년간 뛰고 데뷔팀 우라칸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2.2.2. 국가대표
멘데스는 1945년 1월 9일, 파라과이를 상대로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레네 폰토니의 4골을 앞세워 파라과이를 5대3으로 꺾었다.멘데스는 곧이어 열린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 참가, 아르헨티나의 세 번째 시합이던 콜롬비아왕디 경기에서 데뷔골을 신고했다. 득점포에 시동이 걸린 멘데스는 브라질전의 해트 트릭[4]을 포함 총 6골을 넣어 브라질의 엘레누와 함께 대회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역시 대회 우승팀이 되었다.
멘데스는 이듬해 자국에서 열린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 참가해서 5골을 넣었다. 득점왕 타이틀은 7골을 넣은 우루과이의 호세 메디나가 가져갔지만 멘데스도 5골을 넣어 똑같이 5골을 넣은 앙헬 라브루나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우승에 크게 힘을 보탰다.
1947년 대회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멘데스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마찬가지로 6골을 넣었고 아르헨티나는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멘데스는 1956년 3월 6일에 있었던 코스타리카전을 끝으로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멘데스는 반짝이는 앞머리와 콧수염, 뭔가 약해보이는 외모를 가졌지만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였다. 드리블 능력이 뛰어났고 능숙하며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며 예측하기 힘든 선수였다. 그는 그의 천재성을 이용해 그에게 상대 수비수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다양한 행동들을 경기장에서 보였다. 또한 멘데스는 필드를 오가며 동료들을 위해 기여도 했지만 주목할 만한 피니셔였다.4. 어록
5. 수상
5.1. 클럽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1949, 1950, 1951(라싱 클루브)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1회: 1952(라싱 클루브)
5.2. 국가대표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승 3회: 1945, 1946, 1947
5.3. 개인
- CONMEBOL 코파 아메리카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 17골[5]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득점왕 1회: 1945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1924년에 개장된 유서깊은 경기장으로 현재도 우라칸이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3]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도 1945년부터 1946년까지 우라칸에서 임대로 뛰면서 멘데스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4] 한 골은 35미터 거리에서 쏜 중거리슛이었다.[5] 지지뉴와 공동 1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