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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1 21:12:45

다나카 에이스케

타나카 에이스케에서 넘어옴
다나카 에이스케(田中英祐/Eisuke Tanaka)
출생 1992년 4월 2일, 효고현 타카사고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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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학력 하쿠로 고교-교토대 공학부[1]
프로입단 2014년 NPB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2015~2017)
등장곡 GReeeeN - 道
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3.1. 2015 시즌3.2. 2016 시즌3.3. 2017 시즌
4. 기타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전 일본프로야구 선수. 포지션은 투수로, 교토대학 야구부 출신으로 프로에 드래프트된 경우는 이 선수가 처음이라고 한다.[2][3]

2.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리틀 야구팀에서 야구를 시작해 주로 포수와 3루수, 외야수 등도 경험했었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투수로 전향했다. 하쿠료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가을부터 에이스로 활약했다.

야구선수였으나 공부도 상당히 잘했는지 교토대학 공학부 공업화학[4]과에 입학하였고 그와 동시에 야구부에 입단, 1학년 봄부터 간사이 학생 야구 리그에 첫 등판을 했다. 당시 교토대학 야구부 감독이던 히야네 요시노부는 다나카에 대해 “(다나카가) 던지는 모습을 한번 보고 4년 후에는 교토대학 최초의 프로 야구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2학년 때 춘계 리그에서 간세이가쿠인대학을 상대로 1대 0로 완봉승을 거두며 2009년부터 이어왔던 리그 최악의 연패 기록을 60연패에서 멈춰 화제가 됐다.

이듬해인 4학년 때 춘계 리그에서 도시샤대학을 상대로 자신으로서는 두 번째인 완봉승을 거두면서 1982년 신규 리그가 발족된 이후 교토대학의 투수로서는 처음으로 전체 5개 대학으로부터의 승리를 기록했다.

이렇게 대학교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결과 2014년 10월 23일에 열린 NPB 신인드래프트 회의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로부터 2순위 지명을 받아미쓰이물산의 입사를 포기하고[5] 같은 해인 12월 2일에 계약금 7,000만 엔과 연봉 1,500만 엔(추정)에 계약을 맺었다.

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3.1. 2015 시즌

이듬해 오키나와 현 이시가키 섬에서 열린 1군 스프링 캠프에 참여하였으나 시즌 개막은 2군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2군 경기에서 첫 등판한 이후 2전 2승을 비롯하여 14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때의 활약을 토대로 4월 29일에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출장 선수로 등록됐다. 같은 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 1군 데뷔전을 가졌지만 첫회에 4실점을 내주는 등 3이닝 동안 5실점을 내줘 기대 이하의 투구 내용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이틀 후인 5월 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홈 경기에서 4회말에 중간계투로 등판했는데 3이닝 동안 4실점을 허용하며 시원하게 두들겨맞았고, 결국 다음 날 2군으로 쫓겨나듯이 내려가야만 했다.

2015년 1군 성적은 2경기 0승 1패 ERA 13.50. Whip은 무려 3점대였다! 2군 성적은 9경기에서 2승 3패 ERA 5.63. 결국 연봉이 깎였다.

3.2. 2016 시즌

투구 폼의 균형이 무너진 영향으로 투구 폼의 재생과 체력 강화에만 전념하며 1군은 커녕 2군에서도 거의 뛰지 못했다. 1군은 아예 올라와보지도 못했고, 2군에서는 7월달에 딱 한 경기 선발로 등판해서 1이닝 던진게 끝. 결국 연봉이 더 깎여 17년 연봉은 첫 해 연봉의 2/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3.3. 2017 시즌

사이드암으로 전향했다. 결국 또 바뀐 투구폼 적응한답시고 시간을 허비할테니 올해도 1군에 올라오기는 글렀다.

2군 성적은 2경기 1.1이닝 1승 0패 ERA 47.25. 안타는 두개 밖에 맞지 않았으나, 볼넷을 아웃카운트 4개 잡는 동안 5개나 내주는 바람에 7실점을 하였다.

결국 2017년 10월 3일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인터뷰에 의하면 구속이 150km/h 가까이 나왔는데, 2015년 이후 120km/h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입스 증세가 온 듯. 본인은 더 던지고는 싶지만 현역 연장을 시도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명문대 공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엘리트라서 그런지 방출 이후에 치바 롯데 마린즈한신 타이거스에서 미래의 구단 간부로 키워주겠다면서 프런트 제의가 들어왔고, 일본 롯데그룹에서도 입사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6] 그 외에도 온갖 재계의 교토대학 출신 거물들이 교토대 출신으로서 아무도 해내지 못한 성취를 한 다나카를 노렸다.

그러나 야구계 밖에서의 구애에도 본인은 야구선수를 계속하고 싶다면서 11월에 열릴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7] 에 나가려고 하다가 포기했다. 결국 야구를 그만두고 미쓰이물산으로의 취업이 결정됐다고 한다. 참고로 미쓰이 그룹은 롯데그룹과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타나카가 자신을 상위픽으로 뽑아놓고 3년만에 방출한 롯데에 감정이 안 좋아서 일부러 미쓰이로 간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8] 다만 다나카 본인이 롯데에 악감정을 가진 징후는 없었고 롯데에 입단하기 전에 미쓰이물산에 입사가 내정되어 있었다는 배경을 생각할 때 도의상 미쓰이 물산으로 진로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9]

4. 기타



[1] 화학공학 전공. 교토대는 체육 특기자가 없어 운동부도 모두 일반 학생들이다.[2] 물론 야구부 출신을 제외한다면 교토대학의 대학원에 재적한 적이 있는 출신 프로야구 선수가 이전에 1명 더 있었다. 바로 코치대학 교육학부 - 교토대학 대학원 중퇴 후 독립 리그를 거쳐 요코하마에서 3시즌동안 뛰어서 통산 1홀드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은퇴한 후쿠다 타케히로.[3] 참고로 도쿄대학 출신으로 프로에 드래프트 된 선수는 2017년의 미야다이 고헤이까지 총 6명이다.[4] 한국으로 치면 화학공학과[5] 지금까지 모교에서 프로야구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드래프트 탈락을 대비해서 전공 공부와 취업준비를 야구와 병행해왔다. 그래서 미쓰이 그룹의 핵심기업인 미쓰이 물산에 취직이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다.[6] 이 소식을 들은 치바롯데의 새 감독 이구치 타다히토는 롯데 본사에 입사하는 것을 반대한다면서 프로에서의 3년을 낭비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7] 그 해 NPB에서 방출된 선수들을 대상으로 12구단이 모두 스카우터를 파견해서 지켜보는 트라이아웃. 보통 팀별로 몇 명 정도는 이렇게 구제되어 선수생활을 이어간다.[8] 미쓰이 밖에 갈 곳이 없었다면 몰라도 치바롯데 구단에서는 프런트로 입사시키려 했고, 롯데 본사에서도 취직을 내정해주겠다고 했었다.[9] 일본의 취업문화 상 이미 내정된 입사를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합격을 통보한 기업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이다. 다만 다나카 같은 경우에는 프로야구 지명이라는 특이한 케이스였고 게다가 그 때까지 단 한명의 프로선수도 배출하지 못한 교토대학 야구부 출신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미쓰이 물산 측에서 특별히 양해를 해준 것이고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됐을 때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으면 모를까 재차 입사제의를 했다면 롯데와 미쓰이와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일본의 구직문화 특성상 당연히 미쓰이 물산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